비타민 C의 흥망성쇠
비타민C 신화 폴링 생애와 같은 卦
기초연구자적 식견으로 '만병통치' 조장
임상의학 부정적 통계 많아 맹신론 퇴조
- 비타민C 신화가 무너지다 -
세상에는 허다한 賞이 있지만 '賞中의 賞'은 노벨상이다. 이 상만이 모든 상을 압도하는 막중한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퀴리부인은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공동수상) 그의 딸 부부도 수상자가 되어 세계의 화제가 됐음은 익히 아는 바다.
그런가하면 천재문인 프랑스의 사르트르는 "노벨상은 작가정신을 제도 속에 묶어 넣는 불건전성이 있다"는 이유로 문학상(1964년)을 거절함으로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기에 혼자서 단독으로 노벨상을 2개나 받아 세계기록을 세워 가장 유명해진 20세기 대천재가 있으니, 1954년 노벨 화학상과 1962년 평화상에 빛나는 닥터 폴링(Dr. Linus Pauling. 1901-1994)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노벨상이 아니라 그가 바로 '비타민 C 신화'의 창조자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비타민 C가 한때 미국에서 만병통치약이 됐다는 사실이다. 그의 비타민 C 학설은 노벨상이라는 유명세를 무기로 미국시민의 종교처럼 되어 몇 천만명의 신봉자를 갖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의 별명이 바로 비타민 氏(C)였다. 비타민 C로 인해 그의 3번째 노벨상을 점치는 자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94년 그의 죽음과 더불어 비타민 C 신화는 내리막길을 걸어, 이제 붕괴될 날을 눈앞에 두고있다.
- 폴링의 생애-과학 평화 건강 -
Science and Peace and Health은 폴링이 말년에 쓴 책이름이며, 이것은 그의 일생이기도하다. 역사에 기록될 이론화학자에다 노벨 평화상 받은 평화주의자요, 말년에 노망할 즈음 건강장수를 내걸고서 비타민 C(다음 C라 함)의 신화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세기의 천재 폴링은 1901년 미국 시골 오리건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후, 고학으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육(오리건 주립대)을 마쳤다. 계속 칼-테크(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0세에 이미 50개의 권위있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유럽(스위스)에서 양자역학을 공부하여 1939년 이를 화학분야에 응용한 연구서 '화학종합론'이라 할 책 을 출판하여 역사상 가장 가치있는 과학서적으로 평가되고있다. 이 책에 포함된 그의 이론(DNA 구조)을 인정받아 1954년 노벨 화학상을 수여 받았다(이때 문학상수상자는 헤밍웨이였다).
그는 Molecular Disease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Ortho-molecular medicine 이라는 과학을 창출했다.
폴링은 연구소에만 갇힌 외곬학자가 아니고 대외적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행동가로 1945년 이후 반핵운동에 지도적 역할을 했다. 노벨 수상자 52명과 세계과학자 1만 명을 규합하여 그들의 서명을 얻어 UN에 제출하고, 세계전면군축을 주장했다.
그의 동료는 "닥터 폴링 천재의 핵심은 학문에 대한 그의 대담성(boldness)에 있다"고 평했는데,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사화활동에서도 대담성을 보였다. 저술가로도 잘 알려진 그는 반전서적 "No More War"를 출판했다.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적으로 그는 1962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다.
1927년부터 재직했던 칼-테크에서 1963년 퇴직했으며, 1966년대부터는 건강문제라는 새 과학분야연구에 도전했다.
비타민 C연구에 몰두하여 C 요법이 감기를 예방하고 심장병 뇌졸중 암의 유발을 막는다는 학설로, 1970년 "비타민C와 감기"라는 책과, 1986년 How to live longer and feel better(기분 좋게 장수하는 방법)책을 선보였다. 그리고 "Take C in heaps- 비타민 C를 많이 복용하라"면서 국민을 계몽선전 했고, 그 자신 비타민 C를 매일 3Gm씩 시작하여 만년에 가서는 13Gm 까지 복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사 들은 의사 아닌 그의 행위를 "돌팔이 놀음"라고 불렀다.
의사들 눈에 비친 천재의 말로는 아깝게도 노망이었다.
특히 그는 반전 반핵운동과 비타민 C를 통한 건강홍보를 하는데 있어서, 언론을 조종하는 능력에도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일반대중의 호응은 대단하여 그를 세기의 영웅이며 천재의사로 대접했다.
그는 죽기 몇 년 전(1990년) 일본의 철인이며 創價學會창시자인 이께다(池田大作)와 공저로 生命(In Quist of the Culture of the Life)라는 책에 Science and Peace and Health 라는 부제를 달아 출판했다.
- 비타민 C와 美 中 국교 -
폴링 연구에서 대량의 C(1알 1Gm 이상)를 계속 복용하면 감기바이러스감염을 예방케 한다는 보고는 일반국민에게 크게 고무적인 기쁜 소식이었다.
그의 비타민 C는 닉슨 방중으로 중국과의 국교재개에도 크게(간접적으로) 공헌했다.
모택동은 중공전문가며 연안시절부터 지기인 Edgar Snow(Red Star의 저자)를 1970년 말에 초대하여 미국과의 교류의사를 전했다. 그 결과 아시다시피 키신저 외교를 거쳐, 1972년 닉슨의 중국방문이 성사되고 국교재개가 이루어졌다.
Edgar의 수기에 의하면 그의 방문당시 모주석은 감기로 오래 고생하고있었다.
모주석 부탁으로 Edgar는 미국에 장거리전화를 걸어 감기나 독감치료에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Pauling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Pauling의 추천대로 비타민C 대량치료를 받더니, 아니나 다를까 몇 일 후에 모택동은 완쾌했다(필자 주: 모택동은 만년에 파킨슨병이 있어 일단 감기에 걸리면 오래가는 체질이었다. 그리고 감기는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절로 치유되는 병이다).
모택동은 "우리 중국의사 모두 엉터리야! 감기하나 못 고쳐!
나 너무 고생했어!
미국의사 남버 원이야! "를 되풀이했다고 한다.
결국 모택동도 비타민 C 신봉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돌파리의사(면허증 없는 닥터 Paulung)처방이 美中국교재개를 성사시키는데 일등공신 노릇한 셈이다.
- 비타민 C의 내리막길 -
비타민 C는 생체에 유익한 항산화제(anti-oxidant)로 잘 알려져 있다.
과거 20년간 여러 대규모 연구를 종합해보면, 폴링 이론이라 할 "대량의 비타민 C 보조제는 감기 심장병 뇌졸중 암 등을 예방한다"는 종전의 설이 아무런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대량 비타민C 보조제는 세포를 손상시키는 산화제역할을 한다는 연구도 있을 정도다(최근 연구는 이를 부정하고있지만).
폴링 연구소에서는 매일 비타민 C 200mg 이상 복용을 권유하는데, 이 분량은 미국정부와 전문의학회에서 권장하는 "1일 과일과 야채 5회 serving" 중에 들어있는 C 섭취분량과 같다. 그런데 다량의 과일야채섭취가 심장혈관질환과 암 등의 위험도를 낮추지만, 비타민 C보조제복용으로는 불가능하다. 효과기전이 다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 폴링 팀이 시행한 "암 말기환자에 대한 C 대량투여(1일 10Gm 이상)연구"결과 환자생존을 연장시키고 말기 환자의 QOL(삶의 질)를 높인다고 했다. 그러나 Mayo 클리닉에서 실시한 RCT는 대조군(C 복용 않는)보다 이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암 환자에게 C 투여가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없지만, C 투여를 암에 유효한 다른 치료(화학요법과 방사선 등)에 대치해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ACS(미국 암학회)회의에서 암 환자에게 C투여하면 암세포육성을 조장시키거나, 암 치료효과를 줄인다는 보고도 있다.
"Vitamin C and Cancer"라는 광범위한 조사보고서가 그의 사망 1년 전인 1993년 미국에서 출판된바 있다(Rev Prat Jan. 1993). 비타민 C 와 암 문제에 관해 세계에서 권위 있는 132개의 연구문헌을 분석평가 한 논문인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 발암물질은 외부환경인자로 인해 생기는 일이 많으며, 어떤 비타민은 이러한 외부인자로부터 생체를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역학조사에서 이 보호작용을 인정하는 데이터가 무수히 나와있지만, 애매하거나 부정적인 데이터도 많다. 그러나 현재(1993년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고있는 실험 연구결과 몇 년 내로 비타민 C가 암 치료에 유용한 보조제가 될 것이 기대된다. >
이와 같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최신의학은 폴링을 외면해버렸다. 그의 비타민 C 이론은 어디까지나 천재적 직관으로 이루어진 기초과학연구결과에 불과하고, 임상적 과학에 바탕둔 EBM(evidence-based medicine)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는 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s)가 아니고 역학적 연구조사(Cohort study)도 없었다.
EBM 에서는 대가나 천재들 주장을 크게 카운트하지 않으며, EBM이 지배하는 현대의학에서 폴링의 비타민 C 신화는 무너지고있다.
김일훈
재미 내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의학신문 2003-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