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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의 실전등산교실 ①
겨울산엔 특별한 재미와 추억이 있다
당일 산행, 무엇을 준비해서 어떻게 갖고 가나?
글 이규태 주간
사진 정종원 기자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2003년 2월부터 연재했던 나의 <실전리지등반강좌>에 많은 독자들이 성원을 보내주셨다. 2년 반 가까이 연재됐던 내용에 이론과 정보를 추가하여 <리지등반>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도 출간된 바 있지만, 그동안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는 <실전등산교실>을 처음 구상한 것은 6개월 전이다. 첫 원고를 작성하고서도 내 마음에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에 연재를 보류했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인터넷에서 손쉽게 등산정보를 얻을 수 있어 인터넷을 잘 검색하면 등산책 한 권은 누구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독자들에게 다가갈 등산강좌를 연재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원고를 작성했다 날려버리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연재를 최종 결정하고 나니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실전등산교실>은 교과서적인 설명보다는 산행현장에서 주고받는 경험담처럼 써나가고 싶다.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산행 노하우를 친구와 서로 대화하듯 글보다 사진으로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독자들과 함께 산길을 거닐며 나의 산 이야기도 곁들일까 한다. 독자들의 많은 조언과 사랑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겨울산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찬 대륙성 고기압 영향으로 오늘은 영하 12도로 금년겨울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이 되겠으며 한낮 기온도 영하 5도에 머무르겠습니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7도까지 내려가겠으며 주말인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눈 예보도 나와 있습니다. 서해안 지방은 대설주의보도 발령 예정입니다. 당분간 강추위는 계속되겠습니다.” 지난 12월 18일 새벽 일기예보 내용이다.
주말이면 산에 가는 나는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눈이나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추워 사람들 많이 안 오는 거 아니야?”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겨울산에서 특별한 재미를 느낀다. 쓸쓸한 산의 정취, 눈밭을 헤매는 즐거움, 추위를 이겨낸 생동감- 그런 것들이 복합되어 성취감은 더욱 커진다. 건강을 확인했다는 안도감(나 혼자 생각이지만)을 느끼면서 추위에 움츠린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겨울산은 특별한 재미도 있지만 따뜻한 추억도 많이 만들어진다.
눈 덮인 산은 좋지만 추위는 싫다
초보자들에게 겨울산에 가자고 하면 “추운데 어떻게 산에 올라가느냐?”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도 매년 첫 겨울산행을 준비할 때면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하얀 눈밭과 파란 빙벽을 떠올리면 마음이 설레지만 봄에 처박아두었던 겨울장비를 챙길 때는 귀찮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산에 안 갈 핑계거리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등산학교 교장을 한 사람이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므로 귀찮더라도 일단 겨울산을 향해 집을 나서면 여러분도 특별한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거기서 거기니까...
사람들은 집을 나서기 전에 상상의 추위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리고 만다. 겨울산행 준비의 첫걸음은 옷입기다. 옷입기는 쾌적한 속옷, 따뜻한 중간옷 그리고 바람을 막아주는 겉옷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옛날과 달리 좋은 원단에다가 목, 소매, 허리에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디자인을 해서 등산복을 참 잘 만들었다. 그것들을 자신의 경제력에 맞게 골라 입으면 결코 추위로 고생할 일은 없다.
그런 다음에는 신발을 준비하고 따뜻한 양말을 신는다. 양말도 좋은 제품이 많기 때문에 한 켤레만 신는다. 그리고 방한모와 장갑을 끼고 얼굴을 가린 다음 보온병에 따뜻한 물과 간식을 챙겨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 된다. 집을 나서기까지가 어려운 것이지 일단 집을 나서면 추위나 힘든 것은 여름산보다 덜한 것이 겨울산이다.
워킹용 아이젠 한 벌, 혹시 날씨가 많이 추우면 오리털 점퍼 하나쯤 배낭에 넣으면 그만이다. 한 번만 해보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 겨울산행 준비구나.’ 할 것이다. 귀찮은 모기나 벌, 뱀 같은 것 걱정 안 해도 되고 특히 구질구질한 비 걱정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겨울산이다.
부피를 줄여라!
장비 준비를 마치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면 부피와 무게의 고민이 시작된다. 무게를 줄이자니 성능이 떨어지고, 부피를 줄이자니 장비 가격이 비싸진다. 장비 선택의 기본은 <단순할수록 좋다>. 이미 있는 장비 중에서 선택할 경우에는 당연히 작고 가벼운 것을 선택한다. 짐이 많아지면 ‘꼭 있어야 될 것’과 ‘있으면 좋은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장비 가격이 비싼 것을 탓하지 말고 반드시 대용품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나는 30년 전 기능성 내복이 없을 때 여자용 ‘팬티스타킹’을 입고 겨울 등반을 하였다. 나의 선배들은 2중화, 3중화가 없던 시절 세차장에서 신던 고무장화를 신고 겨울 빙벽등반을 했다. 이 얘기는 모든 등산장비에는 대용품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두꺼운 옷 한벌 보다 얇은 옷 여러 벌이 더 따뜻하다
속옷은 땀이 젖어도 한기를 느끼지 않아야 한다. 면은 좋지 않다. 비싼 기능성내복 살 형편이 안 되면 고전적인 순모내복을 입으면 그만이다. 훌륭한 기능성 의류다. 나는 긴 속옷을 입을 때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 허리만 더 조이고 소변 볼 때도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중간 보온복은 가볍고 따뜻한 폴라플리스 원단을 많이 입는다. 바지는 방풍과 보온을 겸한 제품으로 준비한다. 여기에 방수까지 겸한(완전한 방수는 아니더라도) 제품을 구하면 영하 10도의 추위까지는 방풍 바지가 없어도 된다. 모든 의류의 방풍기능 확인방법은 제품 원단에 입을 밀착시키고 세게 불어보아 바람이 새나가지 않아야 한다.
실제 산행 시 방풍복 상의는 입고 벗기를 잘해야 한다. 겨울산행이라 해도 올라갈 때는 5분만 걸으면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 겉옷을 벗어 배낭 안에 넣거나 배낭 위에 묶어 두었다가 한기가 느껴지면 바로 다시 입는다. 이것이 귀찮으면 약간 춥더라도 출발할 때 겉옷을 벗고 가는 편이 낫다.
혹한의 추위에 대비한 방한복은 주로 오리털이나 거위털로 만든 다운재킷을 준비한다. 약간 무겁더라도 완전 방풍기능 처리된 폴라플리스 원단으로 된 점퍼도 보온력은 뛰어난다. 이때는 방풍복을 가장 겉에 입어준다. 요즘 다운으로 얇게 만든 중간 보온복도 있지만 이것은 방한복은 아니고 중간 보온복에 해당한다. 다운재킷은 겉감이 나뭇가지나 바위모서리, 화기에 매우 약하므로 사용 시 주의를 요한다.
레이어링(Layering) 또는 레이어링시스템(Layering System)
여러 겹, 층층이 쌓는다는 뜻의 Layer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등산용어로 사용할 때는 옷을 여러 겹으로 껴입는 방법을 뜻한다. 속옷을 입고 중간옷, 겉옷을 입는 방법을 레이어링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우리말의 ‘옷 껴입기’라는 좋은 표현이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영어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편 원단을 만들 때 여러 종류의 재질을 복합하여 하나의 원단을 만들 경우에도 사용한다. G텍스의 경우 겉감원단 안쪽에 얇은 기능성 필름원단을 압착시켜 하나의 원단이 탄생한다. 이때 투습기능(흔히 땀배출이라 표현)이 있는 필름원단을 압착시켜 만든 것을 ‘투 레이어드 원단(2-Layered)’이라 하고 여기에 보온기능 원단을 추가하여 세 가지를 압착시켜 만든 원단을 ‘쓰리 레이어드 원단(3-Layered)’ 이라 하기도 한다.
바람을 피하라
겨울산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혹한 그 자체보다는 바람이 더 문제다. 강풍이 불면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있던 바짓가랑이, 허리춤, 귀, 목 부위 등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곳이면 찬바람이 파고든다. 바람은 체온을 뺏어갈 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에 그대로 작용한다. 흔히 체감온도라 하는 것은 몸이 느끼는 온도가 아니라 실제 몸에 작용하는 온도다. 다음 표에서와 같이 바람에 의한 신체 작용온도(체감온도)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발이 시리면 모자를 써라
노출된 체온의 절반을 머리에서 조절한다. 겨울모자 하나는 스웨터 하나와 바꾼다 할 만큼 보온모자는 체온유지 효과가 있다. 보온모자는 가벼우므로 모양이 다른 것을 두세 개 배낭에 넣어 가면 좋다. 보온장갑도 반드시 여벌을 가져가야 한다. 운행 중에는 손에 열이 나서 눈을 만지면 장갑이 젖는다. 방풍 덧장갑을 끼면 손에 땀이 나서 젖는다. 이래저래 젖기 마련이므로 여벌이 필요한 것이다.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머리와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 눈만 남기고 머리 전체를 감싸는 모자를 목출모(目出帽) 또는 바라클라바(Balaclava)라 한다. 신축성 있고 부드러운 얇은 천으로 만든 원통형의 보온용 다목적 감싸개를 넥게이터(Neck gaiter)라 한다. 넥게이터는 목 보온, 모자, 마스크 등 다용도로 활용된다. 가볍고 부피도 작으므로 여러 개를 준비하면 겨울철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나는 겨울산행 시에 넥게이터 하나는 목에 두르고 하나는 손목에 끼고 있다가 강풍이 불 때 목에 두른 것을 끌어올려 마스크로 하고 손목의 것을 머리위에서 뒤집어써 바라클라바가 되게 한다. 영하 10도보다 따뜻할 때는 목출모 대신 넥게이터를 대용해도 된다. 나는 이것은 네팔의 셀파에게서 배웠다. 히말라야 6000미터까지는 바라클라바 대신 이것으로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넥게이터에 눈과 입이 나오게 구멍을 뚫고 직접 바느질한 수제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겨울산행 시 찬 음식은 위험하다
따뜻한 음식을 보온 용기에 넣어 간다. 차가운 물이나 김밥은 체온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배낭 안에서 흔들린 물은 얼지 않으므로 영하의 온도다. 이것을 마시는 것은 얼음을 한꺼번에 위장에 넣는 것과 마찬가지의 영향을 준다. 나는 겨울산에서 영하 몇 도인지도 모를 냉막걸리를 마시고 신체 이상이 발생한 경우를 실제로 경험했다.
수분이 있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얼기 쉽다. 배낭 안에서 흔들리기 때문에 얼음상태는 아니지만 그 액체의 온도는 영하 10도, 영하 15도 일 수도 있다. 행동식은 빵이나 비스킷 종류를 준비해서 입에서 천천히 씹어 따뜻하게 한 후 삼켜야한다. 중요한 것은 장시간 보온력이 있는 기능성 보온병과 운행 중 마실 물을 따로 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아이젠(Eisen 독어) 또는 크램폰(Crampon 영어, 불어)
독어의 정확한 용어는 슈타이크아이젠이다.
굳어 있는 눈이나 얼음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등산화 바닥에 착용하는 금속성 발톱을 말한다. 발톱의 수에 따라 4발, 6발, 8발, 10발, 12발아이젠 으로 불리며 빙벽등반용은 12발의 정밀하고 견고한 제품을 사용한다. 워킹용은 코스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데 최근 체인형을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아이젠은 탈착이 쉬워야 하고 벗겨지지 않아야 한다. 필요한 구간에서만 착용하는 것이 제품 수명을 연장시킨다.
피켈(Pickel 독어) 또는 삐오레(Piolet 불어) 또는 아이스액스(Ice ax 영어)와 스톡
눈이나 얼음을 찍거나, 짚을 때 사용하는 다용도 장비로써 피크(얼음을 깊이 찍는 부분), 브레이드(얼음이나 딱딱한 눈을 파내는 부분), 스파이크(얼음이나 지면을 짚는 부분), 샤프트(위 아래를 연결하는 나무 또는 금속제질의 봉)로 되어있다. 로프, 카라비너 등과 더불어 산악인을 상징하는 장비의 하나다. 이것을 발전시켜 샤프트를 짧게 하고 피크가 많이 휘게 만들어 빙벽등반 시 사용하는 것을 아이스바일(Eisbeil 독어) 또는 아이스툴(Ice tool 영어) 이라 한다. 피켈은 아이젠과 스톡의 발달로 그 효용성이 축소되었지만 경험 많은 산악인은 겨울산행 시에 스톡보다 피켈을 선호한다. 키 큰 사람은 샤프트 길이가 긴 것을 사용해야 편리하다. 험한 코스가 아닌 하루 산행은 스톡으로 충분하다. 히말라야 8천미터 14고봉의 노멀 코스는 피켈을 사용하지 않고 스톡에 의지해 올라갈 정도다.
스패츠(Spats) 또는 게이터(Gaiters)는 다용도로 활용
눈, 비, 흙, 작은 돌멩이가 등산화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각반인데 계절에 관계없이 유용하게 사용한다. 겨울산행 시에는 필수품이다. 신발을 보호하기도 하고 발과 종아리 부분의 보온효과도 있다. 짧은 것을 숏스패츠, 긴 것을 롱스패츠라 한다.
비가 오는 여름철에도 숏스패츠를 바짓가랑이 안쪽에 착용하면 바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신발로 들어가지 않아 좋다. 하나만 구입할 경우에는 긴 것을 구입한다. 스패츠는 효용성에 비해 일반적으로 그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등산화는 방수가 되어야한다
겨울산행 등산화는 방수가 확실해야하고 모(울)가 섞인 보온성 양말을 신어야한다. 방수가 안 되는 등산화일 경우에는 방수액을 발라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두터운 양말로 인해 여름철에 신던 신발이 꽉 조이면 깔창을 빼고 신는다. 꽉 조인 신발은 동상의 원인이 된다.
배낭과 예비 슬링
배낭은 40리터 이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론 산행 목적에 따라 증감은 있겠지만 배낭은 여유가 있을수록 편리하다. 배낭의 용량은 사이드포켓 용량까지 포함하여 표시한 제품도 있으므로 잘 확인하고 구입해야한다. 40리터라는 것은 사이드포켓 용량을 뺀 것이다. 배낭에 짐을 매달 때는 배낭 좌우상하의 버클을 잘 활용하면 10리터 이상 매달 수 있다. 버클이 없으면 끈을 묶어 매달면 된다. 이런 것이 경험 많은 사람과 초보자의 차이다.
그리고 슬링(Sling)이란 핸드백이나 어깨가방 끈처럼 생긴 튼튼한 줄로서 등산 도중 위험구간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한다. 회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대로 방치하기도 하는 예비 줄로서 일반등산 시에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겨울철엔 결빙구간이 많기 때문에 슬링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박음질을 하여 제품으로 판매되는 것도 있으나 가볍고 인장강도만 좋으면 폭 넓게 선택할 수 있다. 여러 개 준비할수록 좋다.
겨울산행 준비는 각자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준비요령은 경험이 쌓여야하는 문제이지만 초보자의 경우 다음의 <겨울철 당일산행 필수 준비품>을 참고 바란다.
첫댓글 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