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있다가- 이 말은 '비록 오늘은 존재한다 하더라도'란 뜻으로 그 생명이 극히 짧은 하찮은 들풀을 수식한다. 아궁이에 - 아궁이로 번역된 '클리바논'은 솥과 비슷한 것으로서 꼭대기보다 밑바닥이 더 넓은 편편한 오븐모양의 흙으로 만든 이동용 불 그릇이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어 열을 모두 흡수하고 흔히 떡을 굽는데 사용되었다. 한편 예수 당시에는 땔감으로 주로 건초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던지우는 - 이는 들풀들이 불쏘시개로 던져짐을 말한다. 들풀 - 문맥상 이것은 백합화를 가리키고 있으나 그 의미하는 바는 백합화가 자라는 곳에 함께 핀 들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의 원어 '콜톤'은 들의 모든 풀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다. 누가는 이 부분을 '톤콜톤 엔 토 아그로'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들에 있는 풀'이란 뜻이다.
즉 누가는 솔로몬의 궁전과 대조되는 황량한 이 들판을 강조하여 들판의 영광이 궁궐의 영광보다 뛰어남을 대비시키는 데 더 강조점을 두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조용히 꾸짖듯 말씀하신 것으로서 모든 근심은 바로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不信)에서 비롯됨을 역설한 것이다. 한편 잠언은 환난날에 낙담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 신자는 물질적인 궁핍과 가난으로 낙심하여 믿음이 적은 자란 책망을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 염려와 근심은 모두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오직 모든 필요를 홀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굳건한 신앙으로 오늘의 불만족스럽고 불공평한 이 현실을 진실되게 그리고 의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사 40: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같으니...."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 여기 '아름다움'은 '하스도'인데 그 원형은 '헤세드'이다. 이 말이 본문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두 가지 대표적 견해가 있는데 그 하나는 인간 관계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예의이며 또 다른 하나는 친절 긍휼이 여김이다. 야보고와 베드로는 둘 다 이것을 '돝사'곧 '영광'으로 번역하였는데 이 영광이란 어떤 사람을 아름답게,
힘있어 보이게 하는 건강, 기력, 미, 재능, 지혜 등을 뜻한다. 인간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예법, 그것을 지나서 상대방에게 친절, 선을 베푸는 것 그리고 건강미, 지혜 따위가 들의 꽃과 같이 마르고 시들 것이라고 본문은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인간의 모든 자랑거리와 아름다움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함을 뜻한다.
[사 40: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본절의 이미지는 사막의 열풍(sirocco)이 불어올 때 봄에 피어난 꽃들이 갑작스럽게 시들어버리는 현상에서 취해졌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 본문의 의미는 말씀의 영원성과 불변성뿐만 아니라 유효성, 곧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서리라'로 번역된 '야쿰'이 바로 '유효성'의 의미까지도 포함하는 용어이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