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쇼크에 10대 그룹 모두 상반기 채용 연기.중단
"정부 대응 실패에 취준생 날벼락"
-삼성, 소프트웨어 시험 연기
-현대차는 면접일정 중단
-SK.LG도 서류접수 연기
-토익시험까지 사상 처음 연기
총알(취업준비생에게 기회를 뜻하는 은어)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취업 준비생 김채빈(26)씨는 29일 토익 시험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멘붕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토익 날짜에 맞춰 열심히 준비했는데, 3월 토익까지 취소되면 정말 큰일"이라며 발을 굴렀다. 국내에서 토익 시험이 취소되는 것은 1982년 시행 후 처음이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직군에 도전 중인 김모씨도 '전력질주'식으로 준비했던 '삼성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가 3월로 연기됐다는 소식에 좌절했다. 이 시험은 일정 수준 이상을 인정받으면 삼성 채용 전형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 소프트웨어 직군 응시생들에겐 '필수 시험'으로 꼽힌다. 삼성뿐 아니라 국내 10대 그룹 모두 '우한 코로나 쇼크'로 채용 일정을 연기 혹은 중단했다. 최악의 취업난에 코로나 악재까지 덮치면서 취업 준비생들의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
◆10대 그룹 채용 절차 올스톱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주요 기업의 채용 일정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1년에 한 차례, 하반기에만 신입사원 공채를 했던 효성그룹은 올해부터 상반기에도 공채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좋은 인재를 선점하고, 채용 규모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 회사 상반기 채용 계획은 현재 '스톱'상태다.
현재 국내 10대 그룹 중 상반기 채용을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3월 초로 예정된 신입사원 공채를 최소 1~2주씩 연기했다.
삼성전자는 3급 대졸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를 이달 15일에서 다음달 7일로 연기했다. 이마저도 제대로 이워질지는 미지수다. 지난해부터 수시채용으로 바꾼 현대차는 면접 일정이 중단됐다. 서류전형을 마친 뒤 직무별 면접을 남겨둔 상태였는데 연기된 것이다.
당초 3월 2일부터 채용 접수를 시작할 계획이었던 SK그룹도 3월 16일로 한 차례 미룬 데 이어 또다시 3월 말로 옮겼다. LG그룹도 신규 채용 접수를 4월로 연기했다. 또 오는 4월로 예정된 이공계 석.박사 유학생 채용 설명 행사인 'LG테크 콘퍼런스'도 취소했다. 이 콘퍼런스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첫 외부 행사로 참석했을 정도로 LG그룹 최고경영진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행사다.
10대 그룹 중 서류접수를 계획대로 하겠다고 밝힌 곳은 롯데그룹이 유일하다. 롯데 측은 "채용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초 계획된 3월 6일부터 지원서 접수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신 필기시험과 면접은 안전 등을 고려해 한 달 씩 늦추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포스코. GS그룹도 일정을 늦췄고, 수시채용인 한화. 현대중공업은 각각 "채용계획 수립중" "면접 일정 연기"라고 했다. 매년 하반기 한 차례 사원 공채를 하는 신세계그룹은 올해에도 상반기 공채 계획은 없다.
◆코로나 불황에 좁아지는 취업문
주요 기업의 채용이 미뤄지자, 취업 준비생들은 채용 규모가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하고 있다. 각 기업은 "전체 채용 규모는 지난해 수준까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올해 채용 규모를 줄어들 수 밖에없다"고 관측했다. 한 10대 그룹 인사 담당 임원은 "상당수 대기업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 올해 취업문은 그 어느 때부다 더 좁은 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들은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사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탓에 취업 준비생만 날벼락을 맞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취업 포털사이트 인쿠르트가 구직자 4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61%가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구직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불안한 이유로는 채용연기(25.8%), 채용 전형 중단(24.2%), 채용 규모 감소(21.7%) 등을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취업 준비생 박모(27)씨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경제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는데 어떤 기업이 대규모 채용에 나서겠느냐"며 "채용 절차까지 미뤄지니 경쟁자만 더 늘어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2020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