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골프
얼마 전에 박인비가 100여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한 브라질 리우의 골프경기에서 뭇 강호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스코어로 금메달을 따냈다. 4라운드 내내 선두를 놓치지 않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경기를 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것도 부상 치료중의 대회였는데 어렵사리 연습하고 나온 그녀의 집념과 애착을 짐작하게 한다. 밤새 중계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뜨거운 응원을 보냈고, 태극기 아래 금메달을 목에 걸 때는 한국인의 자부심을 함께 느끼면서 이후 어떤 경기에서도 그녀의 팬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딱 한달이 지난 추석연휴에는 또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알프스 에비앙 산자락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메이저대회에서 전인지는 4일 내내 한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우승한 것이다. 스윙은 우아했고 퍼팅은 달인의 경지였으며 동양적 미소를 잃지 않는 단아한 자태는 운동선수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수많은 장타자와 상위랭커들을 모두 제치고 이룬 우승이라 더욱 갚지다. 또 남녀불문 최다 언더파 우승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의 최상위권인 2,3,5,6위에 입상한 선수가 모두 한국인이다. 유럽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우리나라 골프의 저력은 정말 대단하다. 여자 세계랭킹 20위 안에 10명 이상의 우리 선수가 있고, 최근에는 남자 선수들의 실력도 일취월장하여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아들 딸들이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으며, 우리 경제에 큰 보탬을 주고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골프를 배우고 즐기게 되어 이제 거의 대중화 단계라 할 수 있는데 아직도 호화스포츠라하여 중과세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젊은이들의 성취와 나라발전에 저해요인이 되지않을까 걱정스럽다.
▦ 38회원권
지금까지 큼직한 이야기만 했으니 이제는 내 주변 일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난 해 말 연수원에 유명 프로골퍼가 강의차 내려왔는데 나도 연수생들의 틈에 끼어 원포인트 레슨을 빋은 적이 있었다. 그는 내 드라이버는 백스윙이 짧아 거리가 나지않으니 백스윙을 과감하게 더 하라는 지적을 했다. 일견 수긍도 가고 연습을 해보니 진보도 있는것 같아 이후 몇일간을 집중적으로 이 연습을 했다. 그런데 무리했는지 왼팔에 심한 엘보가 왔다. 테니스 30년 경력에도 앓은 적이 없는데 비거리 욕심에 내 몸에 경고장이 날아든 것이다. 치약을 짜지 못할 만큼 아프니 연습은 어림도 없고 골프생명?이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어 정형외과로 달려갔고 주사에 진통제까지 겸하는 한달 정도의 치료 끝에 다행히 호전되었다. 하지만 백스윙은 아직도 문제이고 장타는 시간이 지날수록 요원하니 골프가 어렵다는 거 아닌가
엘보가 나으면서 내 열정은 서서히 또아리를 튼다. 가만히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인근에 물색해 보니 집에서 2km 남짓한 거리에 저렴한 연습장이 있다. 수지 동천동에 있는 '남영골프클럽'이다. 3층에 타석은 60개 남짓, 전장은 150m 정도이다. 연회원도 있지만 3개월 단위도 가능하다. 비교적 소규모라 이용료는 38만원 월 13만원 꼴이다. 70분에 2만원 하는 파라다이스에 몇번만 가도 그 비용이 드니 그런대로 경제적이다. 그래서 소시민이 평생 처음으로 비록 3개월 짜리지만 '회원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흐뭇하였다. 시작한지 이미 6개월이 지났는데 출석율이 80%를 상회할 만큼 열심히 다니고 있다.
가서 차 한잔하고 퍼팅연습도 하다보면 2~3시간은 금방 간다. 땀 흘린 후에는 욕탕에서 쉬기도 하고 저렴하게 커트도 할 수 있어 편하다. 꾸준한 연습 덕에 근래에 비거리가 다소 늘고 우드샷도 그런대로 치는데 실전에만 가면 실수를 거듭하니 타수는 별로 낮아지지 않아 아직도 안정적인 보기플레이어가 되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연습장프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아쉽고 아쉬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린이 그리울 만큼 골프에 빠져서 살아 가는 중이다.
▦ 70의 청춘
전주에서 올라오자말자 나는 '청춘초대'에 들었다. 청춘초대는 '젊은 청춘들을 초청하는 대회'라는 의미이고 행정자치부 출신 인사들과 그 배우자들로 이루어진 아마골퍼 모임이다. 60대후반 ~70대 초반 연령의 선배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정규회원은 25명 정도이다. 연부킹으로 매월 둘째주 금요일에 월례대회를 갖는다. 연수원에서는 최연장자였는데 이 곳에 오니 최연소자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그래서 선배들이 떠밀듯이 총무를 맡긴다. 얼떨결에 회비도 받고 조편성을 하며 진행도 한다. 그런데 그것도 무슨 '자리'라고 가입시켜 달라는 청탁?도 받고 모임의 성격에 대해서 세세하게 물어오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내기를 하는 방식이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역때는 스트로크를 하든 뽑기를 하든 각자 10만원을 내고 시작하는데, 우리 회원들은 5만원 에서 2만원짜리 정도의 저렴한? 경쟁을 한다. 현실을 감안한 방식이다. 어떤 이들은 단돈 천원도 걸지 않고 무덤덤하게 하기도 하는데 별로 재미가 없을것 같다. 타이거우즈가 연습경기를 할 때도 타당 1달러를 걸고 오바마도 그냥은 안친다는데... 작은 내기라도 하면 더 신중하게 플레이하게 되고 서로가 상대의 게임을 주시하니 긴장감 속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무튼 우리 '청춘초대'가 과거에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 서로 우의를 다지고, 모든 회원들이 이름 그대로 제2의 청춘을 구가할 수 있는 건전한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
▦ 年邁生活
골퍼에는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고수'로 10% 정도의 숫자다. 실력이 상위권에 있고 어디를 가나 솜씨를 뽐내는 자신감 넘치는 이들이다. 가장 이상적인 골퍼다. 둘째는 '퇴수'로 비율은 30%정도다. 이들은 여러가지 인연으로 입문을 하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신체적인 한계로 잘 되지 않아 일치감치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현명한가. 끌려다니지 않고 스트레스 안받고 용돈까지 절약하며 지내니 좋은 선택이다. 세번째 부류가 바로 60%를 점하는 '중하수'들이다. 생각은 잘될거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지만 아홉 타를 잘 못쳐도 한 타 잘 맞는 손맛에 포기하지 못한다. 이들이 바로 골프의 매력에 가장 심취해 있는 매니아들이고 골프시장을 유지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저변이다.
나도 분명히 세번째 유형일 것이다. 내 수준을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이려 애쓰고 그러기 위해 연습장에서 땀흘린다. 年邁(연매)는 nianmai로 읽히는 중국어로 연장자, 어른이라는 의미다. 우리 모임의 구성원 대부분이 nianmai에 이르렀지만 마음을 비우고 즐길 수 있다면 회원 누구에게나 제2의 청춘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과욕을 버리고 나름대로 체력을 기르고 꾸준히 연습하면서 건강을 증진하자. 아울러 우리 선수들의 발전하는기량을 지켜보며 감동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골프에서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