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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01강> (2018.04.09.)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코드주역(周易) (제29강)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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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코드주역> ; [55] 雷火豊 [56] 火山旅 [57] 重風巽
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③ ☞ [57] 중풍손(重風巽)
* [57] 손괘 * [重風巽]
* [巽卦 第五十七] ☞ 이 괘는 상괘도 ‘공손’을 상징하는 손괘(巽卦)이고 하괘도 ‘공손’을 상징하는 손괘(巽卦)이다. 손괘(巽卦)는 아래의 음(陰)이 두 양(梁)을 순조롭게 따르기 때문에, 만사에 거스르는 일이 없다. 상층부와 하층부가 모두 이와 같기 때문에 이 괘의 이름을 ‘겸손하다’, ‘순조롭다’ 등의 뜻을 지닌 ‘손(巽)’이라고 불렀다.
손괘(巽卦)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주역의 코드는 ‘조연(助演)’이다. 조연은 주연을 위하여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순순히 수행하는 자이다. 자기를 내세우거나 주연이 행세를 하겠다고 나서면 문제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일부분을 제외하고 우리 사회의 펑범한 사람들은 거의 조연(助演)의 삶을 살고 있다. 사회의 구성으로서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 겸손해도 문제가 있다. 겸손하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는 떨쳐 일어나야한다. 겸손해야 할 때 겸손하고 겸손하지 않아야 할 때 겸손하지 않는 것이 주역의 지혜이다. 손괘(巽卦)는 겸손해서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므로 전체의 질서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시중(時中)의 도리는 손괘(巽卦)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 [중풍손(重風巽)의 괘사(卦辭)] ——*
|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
[57巽] 겸손하게 임하는 상황이다. 작은 일에도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가 있어야 이롭다. 대인(大人)을 보는 것이 이롭다.
* [강설(講 說)] ————
손괘(巽卦)는 상(上)·하(下)가 모두 손괘이므로, 겸손(謙遜)한 마음으로 순순히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영화나 연극에서 조연(助演)을 맡은 사람의 성격적 역할과 유사하다. 실제로 조연이 없는 주연은 없다. 그러므로 조연의 극중 성격(性格)이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기가 맡은 역할이 비록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고 밝은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밝은 마음으로 나서는 바가 있어야 이롭다’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자기의 역할(役割)이 작은 일이라고 하찮게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앞날을 생각하여 적극성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전체를 위해서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앞으로 ‘보다 훌륭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뜻을 펴고 일어날 수 있도록 깨워주고 인도해 줄 ‘멘토’를 만나야 한다. 그래서 “대인(大人)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 [중풍손(重風巽)의 단전(彖傳)] ——*
[57巽] 彖曰, 重巽以申命. 剛巽乎中正而志行, 柔皆順乎剛,
是以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단(彖)에서 말했다. “중손의 괘는 명(命)을 펼쳐 나가야 한다.
굳센 것이 중정의 덕으로 겸손하니 뜻이 행해지며, 부드러운 것이 모두 굳센 것을 따른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밝은 마음을 가지고 나서는 바가 있음이 이롭고,
대인(大人)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
· ‘重巽以申命’에서 ‘申’은 ‘신(伸)’과 통용, ‘펴다, 펼치다’. ‘命’은 그 근본적인 의미는 ‘하늘의 뜻[命]’이지만 여기에서는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役割)’을 의미한다.
· ‘剛巽乎中正而志行’는 ‘중정의 덕을 지닌 구오(九五)’의 자질과 역할을 말한 것이다.
· ‘柔皆順乎剛’은 ‘부드럽고 순순한 초육이나 육사’의 자질을 말한 것이다.
* [강설(講 說)] ————
손괘(巽卦)의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은 그 자질이 순하고 겸손(謙遜)하기 때문에 명령(命令, 주어진 役割)을 받으면 공손하게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命令)을 내릴 때에는 거듭해서 내리는 것이다. ‘굳센 것이 중정(中正)의 덕(德)으로 겸손하다’는 것은 구오(九五)의 자질과 역할을 말한 것이다. 또 ‘부드러운 것이 모두 굳센 것을 따른다’는 것은 초육(初六)과 육사(六四)가 그 위의 양(陽)을 따른다는 말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巽順[겸손하레 따르는 것]의 道는 가는 곳마다 들어가지 못함이 없으므로,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巽順함이 비록 좋은 道이나 반드시 따를 바를 알아야 하니, 陽剛 中正한 大人[九五]에게 겸손하게 따르는 것이 이롭다. 그러므로 大人을 보는 것이 이로운 것이다. 九五나 九二와 같은 陽剛 中正이 大人이다.
[傳] 巽順之道는 无往不能入이라 故利有攸往이라 巽順이 雖善道나 必知所從이니 能巽順於陽剛中正之大人이면 則爲利라 故利見大人也라 如五二之陽剛中正은 大人也라
*—— [중풍손(重風巽)의 상전(象傳)] ——*
[57巽] 象曰, 隨風, 巽, 君子以申命行事.
상에서 말했다. “바람을 따르는 것이 손(巽)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주어진 명[역할]을 펼쳐서 일을 행한다.”
* [강설(講 說)] ————
바람은 순하다. 바람이 거듭되니 더욱 겸손(謙遜)하고 순(順)하게 따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바람을 따르는 것은 손(巽)이라 했다. 그래서 겸손(謙遜)하게 따르는 일에 가장 적절한 역할은 극중의 조연(助演)이다. 조연(助演)은 전체를 생각하여, 주인공과 조화를 이루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순순히 행함으로써 모든 극의 온전하게 이어져 나간다. 그래서 ‘주어진 명(命)[役割]을 펼쳐서 일을 행한다’고 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巽卦에서 隨는 서로 잇는 것이다. 君子가 重巽이 서로 이어 順從하는 象을 보고서 命令을 거듭하고 政事를 행한다. 따르는 것과 거듭하는 것은 上下가 모두 順한 것이다. 위는 아래를 순하게 여겨 命令을 내리고 아래는 위를 순하게 따른다. 上下가 순한 것은 重巽의 뜻이다. 命令[役割]과 政事가 理致에 순하면 民心이 합하여 백성들이 順從할 것이다.
*—— [중풍손(重風巽)의 효사(爻辭)] ——*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凶.’ ‘九五, 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六四, 悔亡, 田獲三品.’ ‘九三, 頻巽, 吝.’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吉, 无咎.’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
* [중풍손(重風巽) 초육(初六)의 효사] ——
[57巽]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象曰, “進退” 志疑也, “利武人之貞” 志治也.
초육(初六)은 나아갔다가 물러갔다가 하니, 무인처럼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상에서 말했다. “나아갔다가 물러갔다가 하는 것은 뜻이 불안정하기 때문이고,
무인처럼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이로운 것은 뜻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 ‘利武人之貞’에서 ‘貞’은 ‘참고 견딘다’ 곧 ‘무인처럼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 ‘志疑也’에서 ‘疑’(의)는 ‘망설이고 의심스러워하다’ 곧 ‘불안정하다’
· ‘志治也’에서 ‘治’(치)는 ‘다스려졌다’ 곧 ‘안정되었다’
* [강설(講 說)] ————
초육(初六)은 극중에서 조연(助演)을 시작하는 첫 단계이다. 그런데 초육(初六)은 양의 자리에 음이 와서 부정(不正)이고 또 부중(不中)이다. 조연의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자칫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 극중의 중심인물이 아닌 조연(助演)이라는 역할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육(初六)은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극중의 조연이 주인공처럼 스포터라이트 받지 못하지만 주어진 역할을 소신 있게 해 나가야 한다. 겉으로는 유약한 음(陰)이지만 양강(陽剛)의 자리에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초육(初六)이 지금은 조연이지만 앞으로 성장(成長)하면 없어서는 안 되는 훌륭한 조연자가 되기도 하고 또 주인공(主人公)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인(武人)처럼 꿋꿋하게 나아가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주역강설]▶ 바로 위의 선배인 구이(九二)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자기가 친한 육사(六四)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 같아서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형상이다. 그래서 ‘나아갔다가 물러갔다 한다’고 했다. 이런 경우 무인(武人)처럼 꿋꿋하게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이롭다.
『역전』에서 말했다. “初六은 유약한 陰으로 卑巽에 거하고 中하지 못하며 가장 낮을 곳에 처하여 剛을 받들고 있으니 지나치게 卑巽한 자이다. 비루할 정도로 謙遜하면, 마음에 두려워하여 편안하지 못해서 혹 나아가고 혹 물러갈 바를 모르니, 이로운 바는 武人의 굳셈에 있는 것이다.”
[傳] 六以陰柔로 居卑巽而不中하고 處最下而承剛하니 過於卑巽者也라 陰柔之人이 卑巽太過하면 則志意恐畏而不安하여 或進或退하여 不知所從하나니 其所利在武人之貞이라.
* [중풍손(重風巽) 구이(九二)의 효사] ——
[57巽]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吉, 无咎.
象曰, “紛若之吉” 得中也.
구이(九二)는 겸손하게 상(牀)의 아래에 있으니,
그 때문에 축사나 무당이 분주하여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상에서 말했다. “분주하여야 길한 것은 중심(中心)을 얻었기 때문이다.”
· ‘用史巫紛若吉’에서 ‘用’은 ‘이(以)’와 통용. ‘史’는 ‘祝史’(축사) ‘제사 때 축문을 외는 사람’
‘巫’는 ‘巫堂’(무당). ‘紛若’(분약)은 ‘분주하다, 열심하다’, ‘~若’은 어조사 ‘~연(然)’과 통용.
‘史巫’, 즉 ‘祝史’(축사)와 ‘巫堂’(무당)은 제사를 지낼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자이지만 제사의 중심인물[제주]은 아니다. 한 마디로 제사의 조연(助演)이다.
* [강설(講 說)] ————
구이(九二)는 현재 조연(助演)의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이다. 구이(九二)가 양(陽)으로서 음(陰)의 자리에 있고 낮춤을 싫어하지 않으며 하괘의 중심(中心)에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겸손하게 상(牀)의 아래에 있다’고 한 것이다. 마치 제사를 지낼 때의 축사(祝史, 축문을 낭독하는 사람)나 무당(巫堂)과 같은 한정된 역할[조연]이지만 제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야 한다. ‘허물이 없다’[无咎]는 것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못 미치거나, 지나침이 없이 상황에 맞게 대처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구이(九二)가 중(中)의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二가 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처하여 아래에 있으므로 巽順함을 지나치게 하는 자이다. 恭遜함이 寢牀 아래에 있다는 것은 편안한 바를 넘은 것이다. … 九二는 실로 剛中이다. 미록 巽體로서 柔에 거하여 卑巽함을 지나치게 함이 되나 邪心이 있는 것이 아니다. … ‘史巫’는 誠意를 神明에게 통하는 자이며 ‘紛若’은 많음이다. 만일 至誠으로 謙遜함을 편안히 여겨 誠意를 통하는 자로 하여금 많게 한다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니 精誠이 남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傳] 二居巽時하여 以陽處陰而在下하니 過於巽者也라 牀은 人之所安이니 巽在牀下하면 是過於巽이니 過所安矣라 … 二實剛中이니 雖巽體而居柔하여 爲過於巽이나 非有邪心也라 … 史巫者는 通誠意於神明者也요 紛若은 多也라 苟至誠安於謙巽하여 能使通其誠意者多하면 則吉而无咎하리니 謂其誠足以動人也라 人不察其誠意면 則以過巽爲諂矣리라.
조연(助演)의 삶을 살다가 역사의 주인공(主人公)이 된 사례는 많다. 그중에서 춘추시대 진문공(晉文公)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공자 중이(中耳)는 망명 도중 제(齊)나라에 간 일이 있다. 그때 그는 제나라 공주(公主)와 혼인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돌아갈 뜻을 잃었다. 그러자 강(姜) 씨 부인인 제나라 공주는 ‘남자가 고생스럽지 않으면 쉽게 안주하므로, 큰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중이(中耳)를 다시 험한 망명길로 내쫓았다. 중이(中耳)는 후에 고국으로 돌아가 왕(王)이 되었고, 훌륭한 정치로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그가 바로 춘추 오패(五覇)의 한 사람인 진문공(晉文公)이다.
* [중풍손(重風巽) 구삼(九三)의 효사] ——
[57巽] 九三, 頻巽, 吝.
象曰, “頻巽之吝” 志窮也.
구삼(九三)은 자주 겸손해서 한스러워진다. 상에서 말했다.
“자주 겸손해서 한스러워지는 것은 뜻이 궁해지기 때문이다.”
· ‘頻巽’(빈손)에서 ‘頻’는 ① ‘자주’, ‘빈번하다’(程子) ② ‘찡그리다[빈(矉)]’(손기원)는 뜻이 있는데, ①의 뜻으로 풀면 ‘구차하게 자주(빈번하게) 겸손하다’이고, ②의 뜻으로 풀면 ‘찡그리며 겸손해 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 [강 설(講 說)] ————
구삼(九三)은 중(中)의 덕(德)이 없으면서 하층부 손괘(巽卦)의 극(極)에 있다. 그래서 겸손(謙遜)해 하는 것이 지나친 바가 있다. ‘자주[지나치게]’ 겸손하거나 ‘찡그리며’ 겸손한 것이 그것이다. ‘빈번하게 겸손하면’ 겸손이 지나쳐서 아첨(阿諂)하거나 비굴(卑屈)하기가 쉽고, ‘찡그리며’ 겸손해 하는 것은 조연(助演)의 역할을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다. 그러면 ‘막힌다.’
『역전』에서 말했다. “구삼(九三)은 陽으로서 剛에 처하여 中을 얻지 못하고, 또 하층부의 위에 있으니 剛하고 높은 체 하는 才質로 恭遜할 수 있는 자가 아니요 억지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번 잃는 것이다. 巽의 상황에 거하여 아래에 처하였는데, 위에서 謙遜함으로써 임하고 또 六四가 부드러운 巽으로 서로 친하며, 타고 있는 것[九二]이 剛이고 위에 다시 重剛[九五, 上九]이 있으니, 비록 恭遜하지 않고자 하나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 번 잃고 여러 번 공손하니, 부끄러울 만한 것이다.”
[傳] 三以陽處剛하여 不得其中하고 又在下體之上하니 以剛亢之質而居巽順之時하여 非能巽者요 勉而爲之라 故屢失也라 居巽之時하여 處下而上臨之以巽하고 又四以柔巽相親하며 所乘者剛이요 而上復有重剛하니 雖欲不巽이나 得乎아 故頻失而頻巽은 是可吝也라
* [중풍손(重風巽) 육사(六四)의 효사] ——
[57巽] 六四, 悔亡, 田獲三品.
象曰, 田獲三品, 有功也.
육사(六四)는 후회할 일이 없다. 사냥을 하여 세 가지 노획물을 얻는다.
상에서 말했다. “사냥을 하여 세 가지 노획물을 얻는 것은 공(功)이 있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육사(六四)는 육사는 음의 자리에 유순한 음이 왔으므로 지극히 겸손할 줄 아는 자이다. 그리고 육사는 겸손한 사람이 이제 막 상층부에 진입하여, 윗사람의 위치가 된 경우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 겸손(謙遜)이다. 육사(六四)는 겸손하여 윗사람을 잘 모시고 거만하지 않아서 아랫사람들이 잘 따른다. 그래서 '후회(後悔)할 일이 없다.' … 겸손한 사람이 윗자리에 오르고 모두들 그를 좋아할 경우에는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 기쁜 일이 겹치게 된다. 비유컨대, ‘사냥을 나가 노획물을 많이 얻는’ 격이다. ‘三品’은 ‘많다’는 뜻이다. ‘사냥가서 노획물을 많이 얻는다’는 것은, 위로 리더인 구오(九五)와 상구(上九)의 신임을 얻고 아래로 구삼(九三)의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한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六四는] 柔弱한 陰으로서 應援이 없고, 이어받는 것[九五]과 타고 있는 것[九三]이 모두 剛이니 당연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나, 六四가 陰으로서 陰位에 거하여 巽의 바름을 얻고 上體의 아래에 있으니, 위에 있으면서 능히 몸을 낮춘다. 上體의 아래에 거함은 위에 恭遜함이요, 巽으로써 아래에 임함은 아래에 謙遜함이니, 잘 처신하기를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뉘우침이 없어진 것이다. 뉘우침이 없어진 까닭은 사냥하여 ‘三品’을 얻은 것과 같기 때문이니, 三品을 얻으면 上下가 두루 미친다. … 六四의 처지는 본래 뉘우침이 있을 것이나 處身하기를 지극히 잘하기 때문에 뉘우침이 없어지고 다시 공이 있을 것이다.”
[傳] 陰柔无援하고 而承乘皆剛하니 宜有悔也로되 而四以陰居陰하여 得巽之正하고 在上體之下하니 居上而能下也라 居上之下는 巽於上也요 以巽臨下는 巽於下也니 善處如此라 故得悔亡이라 所以得悔亡은 以如田之獲三品也니 田獲三品이면 及於上下也라 … 四之地本有悔로되 以處之至善이라 故悔亡而復有功이라.
* [중풍손(重風巽) 구오(九五)의 효사] ——
[57巽] 九五, 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象曰, 九五之吉, 位正中也.
구오(九五)는 (시비를 잘 가려) 바르게 해야 길하고 후회함이 없을 것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없지만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둘 수 있다.
변화하기 전 3일 동안 신중하고, 변화가 있고 난 뒤 3일 동한 신중하면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구오(九五)가 길한 것은 자리가 바르고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 ‘先庚, 後庚’의 ‘庚’(경)은 십간 중 일곱 번째. 여섯 번째 ‘기(己)’가 사태가 급변하는 지점이라면 ‘庚’은 그 다음이므로 사태가 급변한 이후의 시점이다. 따라서 ‘庚’은 ‘변경된다’의 뜻. 주역(周易)에서 초효(初爻)에서 시작하여 상효(상효)가 되고, 다시 초효(初爻)가 시작되는 것이 일곱 번째이니, 바로 십간(十干)의 경(庚)이다.
* [강 설(講說)] ————
구오(九五)는 중정의 덕을 갖춘, 구성원 전체의 중심인물로 극중으로 말하면 주인공이다. 그래서 모든 일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겸손하면, 남의 주장에 이끌려 우왕좌왕하여 배가 산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흉하다. 남의 주장을 경청하되 줏대를 가지고 시비를 가려서 소신껏 판단해야 한다. 구오는 양의 자리에 양이 와서 그 재질이 굳세다. 그래서 ‘시비를 잘 가려 바르게 하여야 길하며 후회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겸손한 사람이 논의의 장에서는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남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종합하고, 신중하고 원만하게 처리하면 ‘유종(有終)의 미’를 거둔다. ‘先庚三日, 後庚三日’은 조연(助演)에서 주연(主演)급으로 변화하는 시점이다. 그 변화의 상황에서 신중(愼重)하게 처해야 함을 주역 코드로 강조한 것이다. 주역 [18] 산풍 고괘에서 말한 ‘先甲三日, 後甲三日’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五가 尊位에 거하여 巽의 主體가 되었으니, 命令이 나오는 곳이다. 처함이 中正을 얻어 巽卦의 훌륭함을 다하였으나 巽은 柔順한 道이니 이로운 바가 굳셈[貞]에 있으니, 九五가 부족한 것이 아니요, 巽에 있기 때문에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바르면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다. 바르게 한다는 것은 中道에 맞는 것이니, 巽에 처하고 命令을 내는 것이 모두 中正을 길함으로 삼는다. 유순하기만 하고 굳세지 못하면 뉘우침이 있으니 어찌 이롭지 않은 바가 없겠는가. 命令을 내는 것은 變更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无初’는 처음에는 善하지 못한 것이요, ‘有終’은 變更하여 善하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미 善하였다면 어찌 命令할 것이 있으며, 어찌 변경할 것이 있겠는가. ‘先庚三日, 後庚三日’은 명령을 하여 變更하는 道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甲은 일의 시작이고 庚은 變更의 시작이다. 十干에서 戊己가 중간이니 中을 넘으면 변한다. 그러므로 庚이라 이른 것이다 일의 變更은 마땅히 始初를 근본하고 終을 맞추어 先甲後甲의 뜻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吉하다 ‘해설’이 蠱卦에 나와 있다.
[傳] 五居尊位하여 爲巽之主하니 命令之所出也라 處得中正하여 盡巽之善이나 然巽者는 柔順之道니 所利在貞하니 非五之不足이요 在巽에 當戒也라 旣貞則吉而悔亡하여 无所不利하리니 貞은 正中也니 處巽出令이 皆以中正爲吉이라 柔巽而不貞이면 則有悔니 安能无所不利也리오 命令之出은 有所變更也니 无初는 始未善也요 有終은 更之使善也니 若已善이면 則何用命也며 何用更也리오 先庚三日, 後庚三日吉은 出命更改[一作故]之道 當如是也라 甲者는 事之端也요 庚者는 變更之始也라 十干에 戊己爲中하니 過中則變이라 故謂之庚이라 事之改更을 當原始要終하여 如先甲後甲之義니 如是則吉也라 解在蠱卦하니라
* [중풍손(重風巽) 상구(上九)의 효사] ——
[57巽]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凶.
象曰, “巽在牀下” 上窮也, “喪其資斧” 正乎凶也.
상구(上九)는 겸손하게 침상 아래에 있으면 힘이 되어 주던 도끼를 잃을 것이니,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흉하다. 상에서 말했다.
“겸손하게 침대의 아래에 있는 것은 윗사람으로서 궁한 것이고,
그 힘이 되어 주던 도끼를 잃는 것은 흉한 것이 틀림없다.”
* [강 설(講說)] ————
상구(上九)는 음(陰)의 자리에 양(陽)이 와서 부정(不正)하고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부중(부中)이다. 조연(助演)으로서 실권이 없는 원로(元老)에 해당한다. ‘겸손하게 침상(寢牀)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비루(鄙陋)할 정도로 겸손(謙遜)한 상태를 말한다. ‘도끼’는 원로로서의 권위(權威)를 상징한다. 마음씨가 지나치게 착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재산을 다 준 뒤에 외롭고 딱한 처지에 놓이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그래서 ‘도끼를 잃었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굳세게 하면 흉하다. 부드러운 음의 자질을 쏘야 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牀은 사람이 편안하게 여기는 곳이니, '寢牀 아래에 있다'는 것은 편안한 곳을 지난 것이다. 上九가 巽卦의 極에 있으니 恭遜함을 지나치게 하는 자이다. 資는 가지고 있는 것이고 斧는 決斷하는 것이다. 陽剛은 본래 결단함이 있으나 지나치게 恭遜하여 剛斷을 잃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으니 이는 所有한 도끼를 잃는 것이다.”
[傳] 牀은 人所安也니 在牀下는 過所安之義也라 九居巽之極하니 過於巽者[一无者字]也라 資는 所有也요 斧는 以斷也라 陽剛은 本有斷이로되 以過巽而失其剛斷하여 失其所有하니 喪資斧也라 居上而過巽하여 至於自失이면 在正道에 爲凶也라
¶ 주역 ☞ [57] 손괘(重風巽)의 괘사와 효사
[57]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凶.’
‘九五, 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六四, 悔亡, 田獲三品.’
‘九三, 頻巽, 吝.’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吉, 无咎.’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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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역] ☞ [57] 손괘(重風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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