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9일, 국방부는 해상 어로보호임무를 내무부와 농림부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경비함들이 민간어로 보호 임무를 하느라 본연의 군사임무에 소홀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날 주문진 양양 속초 고성의 어민들이 모여 동해 최북단 거진항 뒷동산에 56함 충혼탑을 세우기로 의결했다. 56함이 피처럼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침몰하는 모습을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봤던 바로 그 장소였다.
4월27일. 해군은 56함을 대체할 고속 경비정(PCE) 1척과 초계호위함(PGMI) 1척을 미국으로부터 인수했다. 그날은 또 56함 격침 현장 인근 해역 DD 91함 함상에서 전몰장병 진혼제가 열린 날이었다. 침몰 직후 정부가 호언했던 ‘응분의 대가’ ‘모종의 중대 조치’는 별도로 지면에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70년대 초 해군에 입대한 장병들은 훈련조교들로부터 “56함의 복수를 위해 UDT대원들이 북한 00항에 야간 침투, 쑥대밭을 만들고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확인되지도 않고 보도되지도 않은 얘기였다.
56함 참사는 1월 말까지는 그래도 언론에 보도됐으나 2월 들어 급격히 자취를 감췄다. 67년 말 어로저지선에서 조업하던 어선 39척과 어부 340여명이 납북됐을 때, 또 이듬해 해군 방송선이 납북됐을 때 56함의 기억이 다시 국민에게 살아났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지금도 동해바다 북위 38도39분45초, 동경 128도26분48초 해저에는 56함이 잠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