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식생활(조리법)]
※ 본문설명
식생활은 토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음식 섭취 방법을 토기의 모양이나 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이죠. 가야고분에서 많이 출토되는 토기들 중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었던 그릇 종류는 단지류(壺), 독류(甕), 시루(甑) 등이 있었고 그밖에 길다란 모양을 한 제염토기도 있었습니다. 이들 토기기종들을 통해 볼 때 가야인들은 기본 식생활, 즉 조리,식사법 등에 있어서는 굽기, 찌기, 끓이기, 발효시키기 등의 방식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소금으로 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음식 재료를 조리하지 않고 날 것을 그대로 먹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채소, 생선이나 육류 중 일부 종류는 날 것을 그대로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하여 먹었습니다.
조리법은 불 위에 바로 굽거나 자갈돌을 달구어 그 속에 고기 등을 얹어 물을 끼얹어 찌는 것 등 원시적인 조리법도 있었으나, 토기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조리 방법이 가능했습니다.
가야시대 유적에는 시루가 많이 발견되고 있어 쪄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찌는 방법은 굽는 방법보다 원래의 향기, 맛, 색깔을 간직할 수 있는 발전된 조리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찌는데 시간 소모가 많고 음식물이 덜 불어나기 때문에 생산력이 미발달된 단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조리법이었습니다. 시루가 많이 이용되었다는 것은 가야의 식량 생산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또 과일이나 곡류를 발효시켜서 술을 잘 빚기도 했는데, 술은 각종 제전이나 의례 때 빼놓을 수 없는 품목 중 하나였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술 마시기를 즐겼습니다.
또 가야시대에는 주식과 부식의 개념이 없이 무조건 음식 재료에 맞추어 찌거나 죽으로 끓여 먹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곡물을 잘게 부수어서 야채와 구근류들을 함께 넣고 찌면 쉽게 익고 맛도 좋았기 때문에 오랫 동안 이 방법이 일반적인 식사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밥 짓기는 쇠솥이 사용된 이후부터이며, 밥 짓기가 일반화될 때까지 죽,떡,밥의 개념이 따로 정립되지 않았으며 주식 부식도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토기 기종이 다양해지는 3세기이후부터는 일부 지배층의 경우 주식과 부식이 어느 정도 분리된 식사가 가능했으며, 철기 생산이 늘어나는 4~5세기이후에는 더욱 다양한 식생활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의 용기로서는 나무로 만든 그릇이나 대나무를 잘라서 그릇으로 사용했습니다. 나무그릇 중에서도, 옻칠하여 고급스럽게 만든 나무굽다리접시는 상위지배층의 실생활용으로도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제사용으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음식을 분배할 때는 국자나 주걱 등의 조리 도구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가야인들의 수저는 지금까지 전혀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아마 국이나 죽처럼 끓여서 만든 식품은 나무나 골제로 만든 수저를 이용했을 것이고, 굽거나 찐 음식은 손을 움켜잡고 먹기도 했겠지요.
식사 끼니는 하루에 두 번 정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5세기 이후가 되면 식량 생산이 늘어나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지배층의 경우 하루 3끼도 가능했습니다. 이 시기에 오면 조리법의 발달과 함께 각종 저장식품이 증가하여 뚜껑이 딸린 저장용기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3세기까지는 생활용기, 특히 단지나 독 종류 외에 일반 식기는 주로 나무나 대나무를 많이 이용하였는데, 4세기 이후에는 일반 식기류에도 토기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조리법의 발달과 다양한 음식 재료의 이용으로 음식의 종류가 증가한 것이 식기 종류의 증가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지배층의 경우, 다양한 부식을 각종 그릇에 담아서 성대한 만찬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찬은 일상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의례 때 베풀어지는 것이었고, 이것은 음식물이 상위계층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을 반영합니다.
음식물을 획득하고 독점하는 일에 못지 않게 음식물의 분배를 통해 백성을 장악하는 것이 가야사회의 정치의 일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연회를 통해 읍락 내부의 화합과 왕에 대한 충성도를 확인하기도 했고, 음식 의례를 통해 상하를 구분하고 신분 질서를 규제하기도 했으며, 술과 음식을 관료들이나 백성에게 하사하여 군주의 은혜를 표현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야시대 후기에 접어들면 식생활에 있어서 계층간의 차이가 현격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일반인들도 조리법과 저장법의 발달로 이전시기보다 다양해진 식생활이 가능하였습니다.
※ 본문출처 : [
http://www.gayasa.net/gaya/index.html(권주현)]※ 이미지출처 : [
http://www.gayasa.net/gaya/index.html]야후블러그 문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