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0일(토) 오전 11시 반에 나리타 공항에서 고속기차로 행사장인 도쿄시내 시나노마치 교회에 도착해 NNAA(No-NukesAsia Actionz)설립기념 강연회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한일100년평화시민네트워크와 탈핵 세상을 위한 한국그리스도인 연대 차원에서 파견한 것이었다.
그날 오후 1부에서 <원발(핵발전소) 체제와 원발 메이커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3개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프리랜스기자인 스즈키 마나미씨는 2차 대전 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어 일본의 핵발전소 수출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에 관해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보증이 있어야 했고 미국의 이중 핵 전략하에서 이루어진다고 소개했다. 즉 원자력 수출과 핵(무기)확산방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미국의 원자력법 기술이전시의 협약 등을 통해 강제하며 국제법상으는 핵확산방지체제(NPT)를 통해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후반부에 후쿠시마의 참상에 관해 추가 설명을 했다. 그녀는 일본과 타이완의 원전에 관해 파악했고 이제 한국의 원전에 관해 파악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둘째로 일본 국회 후쿠시마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다나카 미츠히코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원자로 제작업체인 히다치에서 원전설계와 제작 건설에 참여하면서 경험한 부실한 실태와 문제점들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찌그러진 깡통을 펴든 수축된 원자로를 원형으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의 IBM의 슈퍼컴퓨터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비밀리에 수리를 위한 계산을 했고 그 결과로 포상도 받은 사례를 소개하면서 회사인과 사회인의 차이를 통해 집단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원전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책을 내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과학자의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로 록가수이기도 한 시마 아키히로 변호사는 일본 원자력손해보상법의 '책임 집중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부나 제조사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했다. 정부 책임에 관해서도 그러했다. 후쿠시마 사고피해자인 주민의 집단 소송 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는 소송을 위해 노력중이라고 했고 향후 아시아의 연대를 통한 여론 형성 필요성을 이야기 했다. 발표후 질문도 이어졌다.
강연 후 다나카선생과 따로 인사 하면서 한국에서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원자로 전문엔지니어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2부 설립식(기자회견)에서는 일본 국내외 참가자들이 차례로 발표를 하고 공동선언문을 낭독하였다. NNAA 최승구사무국장이 NNAA 설립과정 경과와 취지를 설명했고 이어서 각각의 대표가 준비해 온 메시지를 발표했다. 타이완 장로교회총회 총무인 후앙체옌목사는 타이완에는 현재 3개의 원자로가 가동중이며 4번째 원자로를 건설중 타이동에 원전폐기물처리장을 건설중이고 원주민인 타우족이 반대운동을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고다테에서 23km 거리의 오마(大問)원전 건설 지역의 활성단층지대의 우려 등 건설재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코다테와 몽골 등에서는 스카이프 영상통화로 발표하였다. 한국을 대표해 참석해 '탈핵평화를 위한 아시아 시민공동을 위하여' 라는 발표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에서는 여러 단체가 참여했고 캘리포니아에서 유학중인 일본 여성이 대신 발표하는 방식으로 전했다. 그리고 유럽에서도 영상 발표를 했다. 이번 결성에는 일본측의 단체가 가장 많았고 타이완에서는 녹색당 타이완장로교회 타이완 환경보호연맹 등이 한국에서는 탈핵공동행동 탈핵교수회 녹색당+ 환경운동연합 NCC-K YMCA YWCA 한일100년평화시미네트워크와 부산 경주 광주 등 지역 단체 등이 지지참여를 밝히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행사 후 근처 이자카야로 장소를 옮겨 뒷풀이가 이루어졌는데 록가수였던 시마변호사와는 재판 문제와 관련해 2000년 위안부 문제 도쿄국제여성법정의 사례를 참고하여 아시아 공동의 여론형성과 시민법정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스즈키 마나미씨는 아시아 지역 원발에 관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했고 한국에서의 조사에 협력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둘째날인 11일(일) 오전 사쿠라모토 교회 예배 참석 후 교회내에 식당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식사도 했다. 푸짐한 반찬에 넉넉한 밥을 제공해 주어서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루 식사가 해결되는 셈인데 노숙인들이 교회에 출석해 함께 예배하고 공동식사를 한다니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었다.
오후 2시 국회의사당 근처 지하철 역으로 이동해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니 탈원발 텐트가 자리잡고 있었고 수도권탈원발연합(http://coalitionagnistnukes.jp)에서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히비야 공원에서의 '1백만인 대점거' 집회가 금지되자 히비야공원 주변의 총리관저 국회의사당 외무성 등 정치 행정기관 근처 9곳을 집회장소로 정해 각 그룹별로 지역별로 모일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었다. 집회 참가자는 무척 많았고 다양했는데 연령대는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지만 젊은 층도 상당수 였다. 참가자들은 각종 집회 소품을 준비하고 나왔다.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그룹도 있었고 홍보 문구가 적힌 자전거를 타면서 시위대를 지지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원전 재가동 중지와 건설재개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고 NNAA에서는 원자로 제작자의 책임을 묻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했다. 그 가운데서도 호쿠시마 피해지역 주민여성들은 붉은 색 옷에 줄을 두르고 춤을 추면서 선두에는 죽어가는 소(사고 후 소들은 목장 외양간에 묶인채 죽어가거나 방사 되었다)를 조형물로 만들어 앞장세우고 시위를 했다. 모두 인도에서만 이루어지는 모습이 작년 11월 후쿠오카 집회에 이어 도로 1차선을 차지해 행진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질서를 잘 지켜서 그런 것인가. 자세한 위치와 화장실위치까지 안내해 주고 있어 일본인들의 꼼꼼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주최측은 전단을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집회장소가 불허된 과정도 설명하고 있었다. NNAA-J 그룹과 함께 자리를 잡았지만 틈 나는대로 이동하면서 시위대를 따라 다녔다. 오후 시간이 지나면서 비가 내리는 중에서도 집회와 시위는 계속되었고 5시를 넘기고서 지하철역으로 나오다 인도와 타이완 등의 불교도 모임 참가자 그룹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인사를 나누고 내년 타이완의 타이둥회의로 가게 되면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져 시내 스시집에서 타이완 참가자 여성 2인을 포함해 박종석선생 등 모두 8명이 즐거운 저녁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최승구선생은 가와사키역 숙소까지 함께 이동해 역 근처 단골 한식당에서 좀더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월요일 귀국편 비행기에서 후지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있는 행운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