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스머프 ©Peyo
하얀 모자를 쓴 파란 색의 [개구쟁이 스머프](Les Schtroumpfs; The Smurfs)는 성인의 어깨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지만 1958년, 벨기에의 만화 잡지에 첫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만화 시리즈이다. 벨기에 만화가 페요(Peyo)의 [개구쟁이 스머프]는 유럽 중세시대에 깊은 숲 속에서 흰 수염의 빨간 모자를 쓴 파파스머프를 정신적 지주로 삼으며 100여 명 넘게 모여 살고 있다. 파란 스머프를 잡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인 마법사 가가멜과 고양이 아즈라엘이 아무리 공격해도 파파스머프의 훌륭한 지혜와 스머프들의 일사불란한 협동심 덕에 언제나 위기를 넘긴다.
가가멜과 아즈라엘 ©Peyo
조그맣지만 영리한 스머프들과 독특한 캐릭터들의 모험담으로 이뤄진 [개구쟁이 스머프] 시리즈는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만화 시리즈의 성공에 이어서 스머프 캐릭터의 장난감 인형 사업과 애니메이션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이 펼쳐졌다. 또한 테마파크를 만들어 관광객을 모으고 관련 캐릭터 상품들을 개발하여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실사영화와 3D그래픽을 결합한 장편 영화로 2편의 시리즈가 제작됐다.
벨기에의 출판만화인 [개구쟁이 스머프]가 지금의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미국 할리우드로 진출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빅히트를 들 수 있다. 1981년에 [톰과 제리],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으로 유명한 한나 바버라 제작사에서 만든 동명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전 세계로 방송되어 지금의 스머프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됐고 출판물로는 만화와 유아용 학습도서로 편집되어 출간됐다.
[조앙과 피를뤼]에 등장한 스머프 ©Peyo
1958년에 페요가 만화잡지 <스피루(Spirou)>에 연재하던 [조앙과 피를뤼 (Johan et Pirlouit)]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스머프는, 곧 새 연재만화의 주인공으로 다시 나타났다. 페요가 처음 스머프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동료 작가인 앙드레 프렝캉과 함께 식사를 할 때였다. 페요가 프렝캉에게 소금을 건네 달라는 말을 하려다 그만 스머프를 건네달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프렝캉이 소금을 주면서 “스머프 여깄어. 스머프 다 하면 나한테도 스머프해 줘.”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스머프는 사과 3개를 쌓은 높이의 작은 키에 살사(sarsaparilla)잎과 케이크를 즐겨 먹고 스머프만의 스머프 언어로 말하며 버섯모양의 집에서 사는 개성적인 캐릭터로 태어났다.
스머프들이 사는 방식도 흥미롭다. 모든 인간에게 잠재된 성격과 재능을 하나씩 뽑아서 만든 듯한 스머프들의 이름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농부’와 ‘요리사’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는 스머프들이 있는 반면, 온종일 불평만 하는 ‘투덜이’와, 끊임없이 친구들을 골탕을 먹이는 ‘익살이’처럼 무위도식(?)을 일삼는 스머프들도 있다. 비록 이렇게 비생산적이고 직접적인 쓸모가 없더라도 어떤 스머프도 그들에게 요리를 하거나 밭을 갈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을. 누구도 무엇을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 이웃들. 전쟁의 공포 아래 나치의 지배를 견딘 작가가 염원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다.
스머프말을 하는 스머프 ©Peyo
그러나 호주의 작가 마크 슈미트는 스머프 마을이 사회주의 공동체를 상징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뜨거운 논쟁이 시작됐다. 스머프의 외형, 운영방식 등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사회주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내 방송사에서도 짧은 동영상 - EBS 지식채널e, [엉뚱한 상상]편-으로 제작되어 소개됐다.
그러나 대중문화 전문 웹진 <Vivid Scribe>의 편집자이자 작가인 케이트 크레이크는 "스머프가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가르치고 있지만 특정한 사회구조와 정치적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사회적 귀속은 순수한 추론과 추측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논쟁은 점점 확대되어 전체주의와 인종차별주의로까지 번지자 페요의 아들, 티에리 클리포드는 "스머프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며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벨기에 만화의 부흥과 스머프의 성공
방드 데시네(bandes dessinées), 줄여서 베데(BD)라고 불리는 프랑스, 벨기에 만화는 일반적으로 불어로 발표한 만화작품을 말한다. 불어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적 특성으로 두 나라를 함께 분류하지만 후에 벨기에 만화가 가진 독특한 개성과 작품성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유럽 만화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안정적으로 복구시켰으며 영화와 만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1948년에 TV가 등장하자 전 세계 대중은 전후의 고통스런 기억을 조금이라도 희미하게 할 수 있는 환상적인 즐길 거리들을 손에 얻게 됐다. 유럽도 미국 대중문화의 폭격에서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프랑스, 벨기에 만화가 세계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성으로 인정받게 된 그 시작에는 미국 만화에 대한 수용 태도에서 비롯됐다.
1900년대의 유럽 만화는 각종 신문과 주간지, 월간지에 실린 작은 에피소드나 코믹한 내용을 그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말풍선과 같은 미국식 만화 표현기법으로 만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34년에는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여러 미국만화를 모은 만화잡지인 <르 주날 드 미키 (Le Journal de Mickey)>가 발간됐다. 즉각적으로 잡지가 성공하자 출판사들은 줄을 이어 미국 만화 시리즈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미국 만화의 인기 속에서 프랑스, 벨기에 만화를 대표하는 유명 만화잡지 <스피루>도 1938년에 창간됐다. 페요의 [조앙과 피를뤼], [개구쟁이 스머프]도 이 잡지를 통해서 이름을 알렸다.
1969년 스피루 잡지 표지 ©Dupuis
나치의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모든 미국 대중문화를 들여오는 건 금지됐지만 사람들은 이미 자극적인 미국 만화에 빠진 터였다. 미국식 유머와 스타일을 갖추면서도 고유한 자국의 개성을 드러내길 원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는 만화가들이 나타났다. 나치에서 해방된 유럽에서 수많은 만화 잡지들이 사라졌지만 1946년 <땡땡 매거진>이 창간되고 <필로트> 같은 만화잡지가 인기를 끌면서 벨기에 출신 만화가들이 속속 작품을 발표했다. 이 시기의 벨기에 만화는 후에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1949년 프랑스는 청소년 보호를 명목으로 미국 만화의 출간을 금지한데 반해 벨기에는 대량으로 출간 유통이 가능했다. 이 점은 만화 독자를 폭넓게 확산시키고 벨기에 만화만의 독창성을 확립시킬 배경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배경으로 벨기에 만화는 외국 만화를 수용하면서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는 작품성 있는 만화를 발표할 수 있었다. [개구쟁이 스머프]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도 이렇게 벨기에 만화가 가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배경에 있는 것이다.
스머프의 진정한 파파, 페요
페요와 스머프 ©Peyo
1928년 벨기에 교외지역에서 태어난 피에르 클리포드는 영국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린 나이에 일을 해야 했고 그의 첫 직업은 작은 영화관의 영사기사였다. 그 때 당시의 중세시대 영화와 공상과학 영화는 후에 페요의 예술가적 이력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브뤼셀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지만 몇 달이 못 지나 그만둔다. 1945년에 CBA(Compagnie Belge d'Animation)라는 작은 만화스튜디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만화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페요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 별명인 피에로에서 따왔다는 설과 어린 조카가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페요라고 말한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이 시기에 만난 앙드레 프렝캉, 모리스와 같은 동료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다가 CBA가 문을 닫게 되자 페요는 신문과 각종 광고에 만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다. 1952년, 친구 프렝캉의 소개로 아동만화 출판사인 뒤피(Dupuis)의 <스피루> 잡지에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장편만화를 발표했다. 중세시대 배경의 [조앙과 피를뤼]가 성공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페요는 [개구쟁이 스머프]로 전 세계적인 만화가로 사랑받았다. 그 후에도 [Benoît Brisefer](1960), [Jacky et Célestin](1960) 등 새로운 만화작품을 선보이며 활발하게 활동했고 1992년 12월 24일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장면은 꼭 봐야해
스머페트를 만드는 가가멜 ©Peyo_출처:람비에크닷넷
스머프와의 오랜 싸움에서 제대로 승리 한번 거두지 못한 가가멜. 온갖 궁리 끝에 스머프들을 꾀일 여자 스머프를 만들게 된다. 악의 마법사가 만든 스머페트는 희귀하면서 고약한 재료들로 만들어졌다. 악어의 눈물과 새의 두뇌와 살모사의 혀 조금, 고양이의 장난기와 공작새의 허영심, 까치의 수다와 같은 재미있으면서도 유머감각이 드러나는 재료들이다. 이러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스머페트는 스머프 마을에 혼란을 가져오지만 결국 파파스머프에 의해 진짜 스머프가 된다.
가가멜이 만든 스머페트는 주성분에서 알 수 있듯 고약한 말썽꾸러기에 말괄량이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음흉하고 괘씸한 장난도 일삼는 말썽꾸러기들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상징하는 성분들이 흥미롭다. 나중에 파파스머프가 돌 심장을 가진 스머페트를 진짜 스머프로 바꾸긴 하지만 어린이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과 관찰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