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 아재"
고향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왜란•호란을 다 겪었다니 500년은 돼 보이지만,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가지마다 마을 전설이 열려 있는 나무,
지금도 푸른 잎과 힘차게 뻗는 가지를 보면
나무 나이로는 아직 청춘인지 모르겠다.
느티나무 마당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며,
만남의 광장이다.
고누를 두며 막걸리도 마시고 낮잠도 잔다.
동네 행사나 잔치, 명절엔 그네와 씨름,
대보름엔 달집태우기와 매구패라고 불리는
농악놀이(지신밟기)도 열린다.
오가는 길손들이 쉬었다 가며, 봇짐이나
등짐 행상이 오면 임시 장터가 되기도 하고,
봄•가을엔 보리와 벼를 거두고 말리는
타작(打作)마당이 되기도 한다.
장보러 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던 곳이다.
느티나무는 도시로 떠난 자손들의 무사안일을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신목(神木)이기도 하다.
애도하는 장례행렬의 상여는 느티나무 마당을
한바퀴 돌며, 망자가 살아왔던 마을과 고별하는
마지막 장이 된다.
느티나무 마당엔 오래 전부터 보름달만한
둥근 돌 하나가 놓여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걸 <들돌>이라고 불렀다.
예전엔 이 돌을 들어 어깨넘이를 한 사람이
있었다지만, 근래는 무릎까지 들어올린 사람은
있어도, 이웃마을에서도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이
원정을 왔지만 아직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러던 어느날, 큰 키에 만만해 보이지 않는
한 청년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이 학수고대하던
그 기록에 도전장을 던졌다.
책보를 어깨에 매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누나가 내게 말했다.
"학교 마치면 곧장 와, '아재'가 오실거야."
"외아재(외삼촌), 아니면 당숙 아재."
"아니, 우리집에서 일할 아재 말이야."
아재는 경상도에서 쓰는 아저씨의 사투리다.
남제 아재는 키다리 미스터 '조'라고 부르는
마을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그 들돌을
어깨넘이한 장골이다.
웃음은 헤프지만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4.19혁명 무렵 나의 초등학교 시절,
아랫마을에서 도지(睹地)를 짓다가 우리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한 분으로, 나의 유년기 동심의
세계에서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전란에 다 앗낀 보릿고개에 배고팠던 그 시절,
일 년에 새경으로 벼 6~7섬 받는 머슴자리나마,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그 일자리마져 구하기 힘들었다.
남제 아재는 나를 "창아~"라고 불렀다.
누렁지•찐쌀•생고구마가 군것질이던 시절이다.
삐비와 잔대•칡을 캐 간식거리를 구해주셨고,
뛰놀다 늦은 귀가에 아버지의 회초리로부터
방패도 되어 주셨다.
논매기 갔다가 붕어•메기를 골풀 꿰미에 가득
꿰어 오셨고, 무논에 지천으로 있는 우렁이와
미꾸라지를 잡아 방아잎이나 초피열매를 넣어
추어탕을 끓이시곤 하셨다.
개울엔 눈쟁이(송사리) 치송어(돌고기)가
바글거리고, 소나기 물줄기를 따라 미꾸라지가
마당까지 올라왔다.
1km 쯤 떨어져 있는 덕천강엔 금린어(쏘가리)•
눈치(누치)•은어•뱀장어•징거미도 있었다.
보쌈으로 물고기 잡기, 까막밥(찔레꽃 열매)에
싸이나(독극물)를 넣어 꿩이나 산토끼 잡는 법,
꿩풀(야생 춘란)도 아르켜 주셨다.
하루는 아침에 꼴 베러 갔던 아재가 뱀장어
한 마리를 잡아 오셨다.
지개 작대기 반쯤 돼 보이는 제법 큰 놈이었다.
기름이 동동 뜨는 장어탕을 생각하며
입가에 희색이 만연한 아버지께서,
"자네, 이걸 어디서 잡았나?"
"골안 저수지에서요."
"에끼 이 사람아!
그 저수지는 만든지 얼마 안됐으며,
그전에도 거긴 장어가 없었어.
돌트미 웅덩이에서 잡았겠지,
장어가 절벽같은 수문을 어떻게 올라 간담."
아버지께 감히 대꾸를 못하는 아재는
나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 저수지에서 잡았어."
나는 남제 아재의 말을 믿었다.
키 크고 좀 싱겁긴 했어도 부지런하고
친절하던 남제 아재,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마라톤을 한다며 강둑을 달리는 나에게
점배(진주의 전설적인 씨름선수)처럼 되라며
씨름을 권하시던 아재.
미꾸라지가 오래되면 뱀장어가 되고,
뱀장어가 오래되면 용이 되려고 바다로 간다는...
가물치는 사람이 안 볼 때는 걸어다니고,
새끼를 낳아 업어 기른다는...
좀 엉터리이긴 해도 최초의 물고기 선생님이자
나의 고민 해결사였던 남제 아재,
이번 추석에 고향 가면 꼭 찾아 뵈어야겠다.
인근 마을에 아직 사시는지?
고향을 떠났더라도 꼭 찾아가서 밤새도록
곡차를 기울이며, 초등학교 시절 추억 속으로
젖어 들고 싶다.
실뱀장어가 급경사를 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아재가 뱀장어를 저수지에서
잡았다는 말을 그때 나는 믿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열(烈)아~"라고 부르던 나를,
아재만 "창(昌)아~"라고 부른 이유도 물어
보겠다.
철없던 소년 창아도 이제 흰머리가 듬성한데,
아재는 이미 백발이 되셨겠지요?
아재~ 아재~~
남제 아재, 지금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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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睹地): 세(稅: 25~30%)를 주고
남의 토지에 농사를 짓는 것.
●뱀장어
뱀장어는 신비한 물고기다.
산란과 부화와 성장과 죽음의 비밀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210여 종 민물고기 중 바다에서
강으로 산란하러 오는 물고기는 많지만,
민물에서 성장해 바다로 가서 산란•부화하는 민물고기는 장어가 유일하다.
필리핀 동북쪽 깊은 해구에서 산란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 알에서 부화하면 '레토세팔루스'라는
댓잎 모양의 유생기를 거쳐, 강 하구에 이르러
실뱀장어로 변태해 강이나 호수로 올라간다.
뱀장어는 아직 인공부화를 하지 못하고
실뱀장어를 잡아 기른다.
우리나라 민물 장어는 '뱀장어'와 '무태장어'
2종이 있다.
무태장어(無泰長魚)는 천연기념물 25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해제되었다.
무태장어는 2m까지 자라는데, 무태(無泰)는
한없이 크다는 의미다.
실뱀장어는 물이 흐르면 댐 수문도
기어올라 넘어갈 수 있다.
ㅡ 孫昌烈 ㅡ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