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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친구들 돌보기로 수행의 길 걸어온 경승실장 성범스님
전현자
기자 : 스님, 매우 중요한 불사를 해 오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병원법당 불사를 하시게 되었는지요 ?
기자 : 스님, 매우 중요한 불사를 해 오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병원법당 불사를 하시게 되었는지요?
스님 : 1986년 불교부인회 [당시50년 된 단체로서 창설자의 딸, 구자순 회장]
임원들과 서울대 병원에서 주관하는 봉사자 교육을 받고 안내하는 중, 지방에서 오신 노 보살님들이, 시멘트 바닥에 가지고 계셨던 요구르트를 제 앞에 놓고 절을 하시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 병원에는 법당도 없이 정목스님께서 매주 정락 큰스님을 모시고 강당에서 법회를 열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분위기에서 자라왔고 오빠는 의사가 되었던지라 저 또한 크면 의사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으로 살아왔던 저로서는 그 충격을 받은 순간 대의대왕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는 마음의 의사가 되어 병상 포교를 하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 그런 감동에서 출발하신 병원 불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스님 : 88올림픽 때는 국제포교사로 조계사 벽화를 외국인 에계 설명 하고,
장애자 올림픽 때는 법당에 상주 하면서 포교 하였는데, 그때 허벅지 아래 부텨 두 다리가 없는 미남의 외국인 선수는 거의 매일 휠체어에서 통!! 하고 법당바닥에 내려와 “고국의 애인이 한국 가서 바람피우지 말랬다” 며 .. 웃기곤 했습니다. 그는 2개 부분에서 1등 하는 저력을 보여 주기도 했지요. 그의 신심과 긍정적 사유가 이루어 낸 결과라고 생각 됐습니다. 그 당시 경제인 연합회 임원중, 한분이 N .M .C 을지로에 있는 국립의료원에 당시 주양자 (복지부장관을 지낸) 박사님이 원장으로 있을 당시, 병원 내에 법당이 생기는데 대구에 계신 비구스님이 참여하고 있으니 서울에 있는 내가 상주 할 것을 권하여 발원 한 바도 있어 함께 개원 했습니다. 오래된 건물 지하에 있는 법당은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고, 한 서너 명 앉을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바로 옆에는 개신교 기독관 이었는데,향내 난다. 목탁소리 시끄럽다 하며 항의가 빗발쳤죠.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병원전법에 전념하였고. 어느 날 한 밤중 바로 옆에 있는 영안실에서 시달림을 마치고 오니 포교원의 남자 법사님 두 분이 와 계셨는데, 자기들은 도저히 무서워 혼자 있을 수 없다며 혀를 내 두르며 놀라워 했습니다. 돈암동에 있는 방생선원 주지 성덕스님의 인연으로 신도들과 가끔 봉사 오시어 도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돈암 경찰서 경승으로 활동 하던중,어느 환자분의 보호자가 경찰청 불자였는데, 그 분의 권유로 경찰청 불교법회에 자주 가곤 하였습니다. 그때 향봉 스님이 경찰청 경승실장 으로 있을 당시였는데, 어느 날 경찰병원이 왕십리에서 송파구 가락동에 신축하여 이전 하는데 당신 형님이신 정다운 스님이 경승실장이 되었으니, 병원 활동에 많은 경험으로 상주해 줄 것을 권유 받고 물어물어 찾아가보았습니다.
진흙먼지만 풀풀 나는 머나먼 곳이었지만 신념이 씨가 되어 병원 개원 전, 1991년 경승실 을 열고 함께 입주 하였습니다. 근사한 책상과 기구들이 준비된 사무실 같은 곳이었습니다. 몇몇 보살님들이 방문하여 무슨 컨설팅 회사 같다며 머리를 저었습니다. 부처님을 모시자고 하니 그 당시 예산이 2천만원 든다며 거절 하였고, 얼마 지나 조계종 파동에 인연하여 철수 할 의사를 들은 나는 혼자서라도 지키겠다며 남게 되었습니다.
스님들이 떠나면서 책상과 의자 집기들을 모두 실어갔고, 텅 빈 공간에 신문지를 깔고 명상에 잠겨 있는데, 원장님께서 만나자하여 갔더니 “앞으로 사무실을 어떻게 할 것 인가?”고 물으시어, 나도 모르게 불쑥 부처님 모시고 포교 하겠노라 하였습니다. 주위 분들의 도움과 출가자로써 본분 및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려는 노력에 의해 드디어, 부처님 봉불, 점안식을 거행했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죠. 이 또한 인연법이라 생각합니다.
올 해로 25주년을 맞이하며 그 긴 세월을 한순간으로 느끼며, Now Here, Here Now ! 로 살던 나, 이번 계기로 뒤돌아보며 반추의 맛을 느껴 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기자 : 죽음을 앞둔 분들이나 병고에 고통스러워하는 불자님들을 어떻게 위로하시는 지요 ?
스님 : 위로라고요? 부처님께서 왕위도 반납하시고 깨치신 진리를 알려줌으로서 근본적으로 이해하도록 합니다. 즉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도리를 요약 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불성인 참나가 누구에게나 있고, 현상의 나는 그 주인공의 심부름을 잘 함으로써 기적(곁으로는 기적이나 진리의 측면으로 볼땐 그저 있는 일 이다)을 이룰 수 있다는 주인공, 참나 관하는 법을 전하고 있는데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100% 잘 받아들여 많은 성취를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기자 : 어떤 불자님께선 몇 십년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신행 하였음에도 죽음 앞에서 개종 하신다는데 그런 분들을 대하실 때 어떻게 하시는지요?
스님 : 그런 분들에게 종교 이전, 진리인 불법을 전하여 줍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진정,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역시 병상에 있는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건히 하고,찾아가는 전법을 꼭 해야겠다 하는 원력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기자 : 병들지 않을 때 도 어려움이 많은 인생길에 스님께서는 어떻게 극복 하시 길래 세납이 많으셔도 왕성하게 활동 하시는지요?
스님 : 그간 부처님의 깨달으신 법을 체득 하고자 40세부터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내려놓고 살다 보니, 몇 살 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참 생각해야 하는 넌 센스가 발생하였는데, 작년부터는 많은 사람이 물어보는 통에, 내 나이를 의식해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하고 느꼈지만, 잊어버리는 병?이 자꾸 도집니다. 생각해 보니 숫자가77이 되었군요. 그간 관법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치유 현상이 발생하고 세포와의 대화가 이루어져 중병 10가지 이상, 자연치유가 되었습니다. 예로 3년전 안과에서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6개월 내로 수술해야지 안하면 실명한다는 진단을 받으며, 아! 자연치유를 본격적으로 하라는 참나의 나툼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고 경승실로 와 병원에서 수술해야한다는 것을 지도법사 무관스님과 한마음 봉사회장 변윤연 보살님에 했더니 두 사람 다 당장 입원하자며 성화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연치유를 하겠다고 말하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후 자연치유를 위해 가벼운 운동과 참나에 관하며 3개월 후 다시 의사를 만나니, “왜? 오셨나요? 모든 것 정상입니다” 하고 말씀 하시더군요. 옆에서 지켜본 그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석달 후부터 눈앞이 뿌옇고 답답하여, 안경을 벗으면 선명하고 하여 결국 안경점에 가니 눈이 좋아졌다하여 안경을 새로 맞추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참나, 주인공의 비서 역할만 잘 하면 주인공의 나툼 으로 잘 살 수 있습니다,
기자 : 출가하시기전 교육이나 정치에도 관심과 활동을 하셨다는데 출가하신 가장 큰 동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 출가 이전?, 전생이야기를 모처럼 들으니 남의 말 같네요.불심으로 살았으나 무언가 허전하고 불성, 참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만 커져, 출가하여 만족스런 삶, 감사한 마음으로 보람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자 : 병원법당을 운영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어떠하셨는지요?
스님 : 예,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은, 촛불을 켜놓으면 화재가 걱정되어 촛대에 연꽃을 올려놓고 마음의 불을 밝히자고 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은 호응하였고, 간호사 단 한분만이 강한 반발, 집에서도 촛불을 켜고 하는데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승실에 직원을 두었으나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경제적 부담도 되어 법당 문을24시간 개방하기로 하여 지내오던 중 근래에 생활이 어려운 노숙자들이 법당문을 잠그고 잠자는 일이 발생하여 부득이 야간에는 법당을 잠그고 지냅니다. 다행히 근처에 살고 있는 한마음 봉사회 변윤연 회장이 법당을 잘 살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체 모든 일들을 참나 부처님 주인공에 일임하고 살아갑니다.
기자 : 병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사는 분들께 따뜻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스님 : 우선 Frontier Spirit으로 애국자로 살아오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국력을 증장시키고 정신을 함양함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기자 : 스님은 누구 십니까 ?
스님 : 불성, 참나입니다.
불자로서 우리들은 불교학자가 될 것 이 아닐 진데, 불교의 교리에 얽매이기 보다 깨치신 핵심 원리를 파악하여, 예를 들자면 수박을 붙잡고 어루만지면서 이것이 뭐꼬? 하며 쓰다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딱 ! 잘라 시원히 먹을 수 있어야 하겠지요.
구체적인 방법으로 부처님께서 깨치신 도리를 요약하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불성인 참나 주인공이 있고, 현상의 나는 그 주인공의 심부름을 잘 함으로써 기적(사실은 마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신말씀을 실천하여 시원히 살기 바랍니다.
참나를 관하는 방법은 ; 뜻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외워질 수 있도록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항상 뇌리에 새겨지도록 합니다.
1] 주인공! 당신이 나의 근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2] 주인공!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3] 주인공! 일체현상이 다 당신의 나툼(나타남)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4] 주인공! 당신이 있음을 증명하여 지혜 물리 터지게 하고 모든 것(그때그때에 따라 대입함)을 다 잘되게 하십시오.
5] 주인공!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신만 이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불성을 100%믿고 뜻으로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주인공 자리에다 믿고 맡기면 용광로와 같은 역할로 무쇠 잡쇠 다 녹여 업장소멸 되고 불성자리에서 다 이루어져 마치 농사지어 남도 나누어 주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무슨 뜻이 있겠지 하고 되맏기고, 지켜보면서, 계속 주인공을 관하며, 주인공 잘 받들고 심부름 잘 하시여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루어지는 것도 법, 이루어지지 않아도 법임을 믿고. 일이 뜻대로 잘 이루어졌을 때 엔 감사한 마음으로 주인공자리에 되 맏기고, 뜻 과 같이 안 되어도 거기엔 분명 뜻이 있을 것이 라고 철석 같이 믿고 되 맡겼을 때 더욱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집에 주인을 무시하고 하인 이 주인노릇을 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 집안이 어찌될지요?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계속 믿고 되 맏기고 지켜봄이 참으로 어렵지만, 해 보면 그 맛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함, 보람으로 충만 되지요, 헛됨이 없음이 항상 증명 됩니다. 업장이 녹고 우주의 에너지와 하나 되는, 계합되는 느낌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나 수 행중 지켜봄이 무엇보다 어려운건 사실 이지요.
자꾸 놓치고 망각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고. 가아, 가짜에 속아 휘둘리고도 의식하지 못 하고 한참을 헤메기도 하지요. 알아차리기라도 할라 치면, 그나마 다행! 업장의 두께가 버겁기도 합니다. 무쇠 잡쇠 녹이는 제철 용광로에 비할수 있겠습니까? 우주의 근본 에너지 자체와 연결되어있는 불성자리! 참나 주인공에, 몽땅 천만가지, 수 백, 수 만. 우리 모두는 몽땅 맏겨 놓고 지켜봅시다.
육신은 옷과도 같은 것, 헌 옷 되면 벗어 버리고 새 옷 갈아입는 것과도 같은 것 무슨 집착 할 것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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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