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Mission)
마 28:18-20
‘미션’이라는 단어는 기독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590년대, 천주교의 예수회(Jesuits)라는 조직에서 교회의 명령에 따라 학교나 교회를 세우하고 먼 곳으로 예수회 사람을 보낼 때에 ‘미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미션이라고 하는 말을 보통 ‘임무, 사명’이라고 해석하는데, 그 말의 뜻은 원래 ‘보내다’ 라는 라틴어 ‘mittere’ 에서 기원합니다. 그리고 ‘보내다’라는 “Mittere” 라는 말에서 ‘임무’나 ‘사명’을 뜻하는 ‘Missio’ 가 파생되었고, 이것이 영어의 Mission 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미션이라는 단어는 ‘보냄’이라는 뜻과 ‘사명’이라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보낼 때에는 어떤 사명을 주어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선교용어에 보면, “Missio Dei” 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Mission of God/ Sending of God”,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보내심” 이라는 뜻입니다. 곧 모든 미션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셨기에 가능합니다.
여기에 계신 어떤 분도 내가 스스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당연히 Mission 사명을 주셔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자신을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연이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보냈다고 명확하게 알고, 보내신 사명따라 사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을 명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요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시는 것도,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알고, 그의 보내신 그 목적대로 살아가시다가 죽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으로 나갑니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성경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다가, 갈릴리 산에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이다.
첫째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절)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예수님의 열두제자들도 하나님의 보내심과 사명을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에 나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내 의지에 앞서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보내셨을 때에는 우리가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사명, 미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 메시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권세를 위임 받으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구속주요, 심판주로서, 현재도 인간의 생사화복과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빌2:9-11)
무기력한 것처럼 여겨져 실망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비전에 사로잡혀 사람을 키우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교사들은 주님이 맡겨주신 어린 영혼들을 가르치며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맡겨주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며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19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환경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공통되게 주시는 사명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도 주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셨던 것 같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이 예수님의 제자요, 성도인 저와 여러분 인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미션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며, 그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 예수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시는 곳을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뿐만 가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도 물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이지만, 그곳에만 머무르지 말고, 그 복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도 가라고 하십니다. 유대인인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어했던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사는 사마리아인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원래 구약에 나오는 북이스라엘을 이루는 지파들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후에 앗수르 사람들과 자신들의 식민지 사람들을 북이스라엘 땅에 보내서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사람들과 결혼하게 되면서, 육신적인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게 되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인 순수함도 지키지 못한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러한 사마리아사람들을 향해서 부정하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마리아로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도 가라고 하십니다.
셋째 : 가르쳐 지키게하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0절)
세례 받고 그대로 두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새로 태어난 어린 아기는 자라야합니다.
아기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자라지 못하는 아이가 부모에게 고통이듯이, 자라지 못하는 신자는 하나님 아버지께 고통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새 생명이 어떻게 자라게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양식입니다.
(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젖입니다.
(벧전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니라”
우리 손주들을 보니까 잘 먹어요. 그러니까 건강해요. 엄마가 좋은 것만 먹이려고 애를 써요. 그러니까 건강하게 잘 자라요.
성도여러분,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으십시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자녀들이 디모데처럼 쓰임 받습니다.
(딤후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데서 끝나지 말고 그것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장성한 신자가 될 때까지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전도라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여기까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지키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지키게 하려면 말씀을 듣게만 해서는 안 되고 눈으로 보게 해야 합니다.
보게 하려면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신앙은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웁니다.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군대에서도 가르치고 몸에 배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야 강한 군인이 됩니다. 훈련받지 않은 병사는 총도 쏠 줄 모릅니다. 그러나 훈련받은 병사는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며, 적을 향하여 명중사격을 합니다. 훈련을 통해서 강한 군사로 거듭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