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yjl1998) | 조회 51 스크랩 0 작성일 2005-10-31 01:53:00 |
좀 긴 것 같기도,..
그래도 독서의 계절 가을 아 - 잉교..?
힘 껏 당겨 왔으이,. 순진시런 엣 친구 생각하몬서,.. 쭉 읽어 보세요,.!!
‘태복이’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끝내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다.
늘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콧물을 훌쩍이며 혀 짧은 목소리를 내던 ‘태복이’는 반에서 꼴찌는 당연지사고 전교 꼴찌를 다른 한명과 번갈아 사이좋게 나눠가지는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머지 공부는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고 그가 아무리 선생님께 종아리를 맞으며 공부를 해도 구구단은 그의 머릿속에 남겨지질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는 구구단을 외웠는지도 모른다. 단지 선생님 앞에서 큰소리로 외워 보이는 것이 힘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가끔 손가락을 꼽으며 떠듬떠듬 곱하기 문제를 푸는 걸보면 그가 구구단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닌 건 같았다.
그렇다. ‘태복이’는 그렇게 다른 아이들보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아이였다.
어느 학교에나 한두명씩은 있을 법한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가 놀림감이 되기도 하는 불쌍한 아이. 차라리 단순하게 공부만 못하는 아이였다면 다른 동창들이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실수를 연발하고 집에서 조차도 실수가 이어졌기에 그의 실수담은 어린 학생들에게 더없이 재미난 이야기였다.
그래서 학교 다니는 동안이나 졸업을 한 후에도 그는 ‘찔찔이’, 때복이‘등의 약간은 놀림
섞인 별명으로 친구들의 입에 빠지지 않고 오르내리는 아이였다.
하지만 다른 동창들은 단지 ‘태복이’를 초등학교 시절의 재미난 추억으로만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게 ‘태복이’는 좀더 특별한 아이고 남모르는 그의 비밀 몇 가지를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된다.
나와 ‘태복이’는 바로 옆 동네에 살았는데 한밤에 갑자기 누가 나를 찾아왔다.
‘태복이’의 어머니였다.
‘태복이’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직 같은 반 친구네 집에서 놀고 있는지 찾아다니다 우리 집까지 온 것이라 했다. ‘태복이’가 갈만한 곳을 떠올렸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아이들이 놀만한 곳은 너무도 뻔했고 놀고 있다고 해도 이 시간까지 그와 놀만한 친구는
없었다.
어째건 ‘태복이’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가 잘 놀러 다니는 곳을 한바퀴 돌았다. 역시나 ‘태복이’는 없었다.
결국 ‘태복이’의 어머니는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학교 가는 길에 왠지 가슴이 계속 쿵덕거렸다. ‘태복이’가 집에 돌아왔을까? 하는
궁금증과 과연 어디를 갔다 왔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제일먼저 ‘태복이’ 자리를 살펴봤다. 그는 자리에 있었다. 하긴 나머지 공부를 하느라 집에는 제일 늦게 가도 학교 오는 건 언제나 남들보다 일찍 오는 아이였다. 책상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태복이’에게 물었다.
“너 어제 어디 갔었어?”
‘태복이’는 대답대신 필통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필통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속에는 연필 대신에 집게를 불끈 세운 까만 사슴벌레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중 큰 놈 한 마리를 집어 들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대뜸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너 가져.”
그 시절 사슴벌레는 아이들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곤충이었다. 마치 지금의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다루듯이 그 때의 아이들은 사슴벌레로 싸움을 붙이거나 집게를
조정하며 놀았었다.
그래서 조금 더 집게가 크고 강한 놈을 갖고 싶어 했고 누군가 사슴벌레 몇 마리가 있으면 한 마리만 나눠 달라며 조르곤 했었다. 그런데 ‘태복이’가 갑자기 사슴벌레를 내민 것이
신기 했다.
“이건 어디서 난거야?”
“어젯밤에 내가 잡았어.”
“그럼 너 어제 사슴벌레 잡으러 갔던 거야? 그럼 엄마에게 말하고 가야지 왜 그냥 갔어.”
“형들이 그랬어. 밤 되면 사슴벌레가 더 많이 나온다고. 그래서 내가 밤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이거 다 잡은 거다.”
“왜 엄마에게 말 안하고 갔냐고?”
“밤에 못 나가게 하니까...”
이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 것 같았다.
‘태복이’에게 들은 이야기와 몇 일전부터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함께 정리하면
이렇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는 오후 마지막 수업 시간에 분단별로 시합을 부쳤었다.
산수 문제를 내고 같은 분단원 모두가 풀면 먼저 푼 분단부터 집에를 보내주는 시합이었다. 하지만 그 시합에는 함정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문제를 가장 늦게 푸는 분단이 교실
청소를 모두 하고 마지막에 집에를 가게 된다는 함정이었다.
다른 분단 아이들은 곧바로 오늘은 청소 안 해도 된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우리 분단 아이들에게서는 곧바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맞다. 우리에게는 ‘태복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유난히 협동심을 강조하는 호랑이 선생님에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분단 아이들은 벌써 둘러 앉아 공부 좀 한다는 녀석이 못하는 녀석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 분단 아이들은 다른 분단 아이들 모습만을 지켜볼 뿐 좀처럼 문제 풀이를 하지 못했다. 어째 건 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지라 결국 우리 분단 아이들도 나름대로 서로 공부를
시키기 시작 했다.
그러나 역시 다른 분단원들은 모든 문제를 풀어 집으로 갔지만 우리는 집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분단원들을 모두 보내고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청소를
했다.
그 중 특히 ‘태복이’의 얼굴은 더더욱 말이 아니었다. 행여 혹시라도 누가 자신에게 책임을 따질까봐 미리부터 겁이 나서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마룻바닥만을 닦고 있었다.
청소를 끝내고 교실 밖을 나서니 운동장에는 먼저 끝난 다른 분단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서자 그 녀석들은 함께 할 것을 제의 했고 자연스럽게 그쪽 분단과
우리 분단으로 편을 나누어 축구경기를 하게 되었다.
조금 전 산수 문제의 앙금이 있는 탓인지 아이들은 지지 않겠다고 평소보다 훨씬 열심히
뛰었고 그만큼 경기를 거칠어졌다.
결국 경기가 끝날 쯤에는 서로 감정이 상할 만큼 상했고 서로간의 욕설을 뒤로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는 다음날까지도 이어져 교실은 어느새 분단별로 패가 갈렸다.
쉬는 시간에도 같은 분단원들끼리만 떠들고 점심 도시락도 자기들끼리만 먹었다.
사슴벌레가 교실에 모습을 보인 것도 바로 그 때였다. 다른 분단의 한 녀석이 어떻게
잡았는지 사슴벌레를 잔뜩 잡아 왔고 자기 분단원들에게만 한 마리씩 나눠주며 자기들끼리 시합을 붙이고 놀았다.
가뜩이나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갖고 싶은 사슴벌레를 자기들끼리만 가지고 노니 그들이 더더욱 미울 수 밖에 없었다.
청소시간에 우리 분단 아이들은 사슴벌레 이야기로 수군덕거렸다.
“집게 큰 놈을 잡아 와서 완전히 저놈들 사슴벌레를 박살내고 기를 팍 죽여야 하는데..”
한 녀석이 그런 말은 하자 모두 맞아, 맞아 동의를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집게 커다란 사슴벌레를 잡을 방법을 알고 있거나 잡을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아쉬움으로 씩씩거릴 뿐 확실한 해결책을 내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불만만 내세우다 흐지부지 결론을 흐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태복이’가 우연히 형들에게서 어느 뒷동산에 밤이 되면 사슴벌레가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슴벌레를 잡으러 갔던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지만 정말 모두가 놀랄만한 커다란 사슴벌레를 보란 듯이 잡아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린 분단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천진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때문에 산수 문제를 풀지 못해 집에도 늦게 가고 청소도 혼자하게 된 같은 분담원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으며 ‘태복이’는 내게 그냥 단순히 공부 못하는 열등생만이
아니었다.
그것 보다는 훨씬 더 특별하고 좋은 느낌을 주는 아이로 자리 잡았다.
이제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 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닌 탓에 별로 만나지를 못했다. 간혹 등하교 길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옆의 친구들 때문에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간단한 안부를 나누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태복이’는 점점 더 내 기억과 관심에서 멀어졌다. 단지 그 시절 그에게서 기억이 남는 특별한 일이 있다면 어느 일요일의 일 정도였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쪽 멀리서 누군가 비를 홀딱 맞고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왠지 낯설지 않아 유심히 쳐다보니
뜻밖에 ‘태복이’였다.
그 역시도 나를 본 듯 내 쪽으로 달려와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비 오는데 무슨 일이야?”
“잔디 구하러...”
말을 흐린 그는 짐받이 쪽에 실린 커다란 비닐포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닐포대에는
진짜 방금 뽑은 듯 흙이 잔뜩 붙은 잔디가 담겨져 있었다.
“잔디는 왜?”
“학교에서 뽑아 오래. 내일 검사 맡는 날이야.”
“그렇게나 많이?”
나 역시 중학교 시절 가끔 잔디 모으기를 해서 작은 비닐 통투에 한봉지씩 학교에 가져
간적이 있었지만 커다란 비닐포대에 담아 갈 정도로 많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태복이’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친구들이 자기네 동네에는 잔디 구 할 곳이 없다고 해서 내가 대신 가져가는 거야.”
대충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태복이’와 같은 실업계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태복이’가 꽤나
괴롭힘을 당한다는 말을 이미 들었던 터였다.
그는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태복이’의 주변 아이들이 그에게 자신들의 몫까지 구해오라고 한 것 같았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태복이’ 스스로가 친구를 위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왠지 그건
아닐 거란 느낌이 들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 빗속에 우산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잔디를 구하러 다니는 그를 보니 도저히 그렇게 순순히 인정해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긴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 했다.
그 예전 우리에게 사슴벌레를 잡아다 줄때도 그랬을까.
그는 늘 정말 어려운 일을 자기 혼자서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몇 년이 더 지났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퇴근길에 우연히 ‘태복이’와 마주쳤다. 녀석도 여전히 이 도시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길거리에 마주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그는 또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하고 사냐는 질문에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있었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졸업 후 곧바로 가구점에 취직한 그는 배달과 잡일을 했었다. 몇 년이 지나자 주인은 돈이 없다는 핑계로 월급을 미루기 시작 했다. 세달, 네달을 밀리던 월급은 급기야 1년치가 훨씬 더 넘어버렸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니었다. 돈이 아주 급하다며 잠시만 쓰고 돌려준다고
‘태복이’에게 돈을 빌렸다. 당장 망한다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예전에 월급 받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둔 돈을 어쩔 수 없이 빌려주었다. 한달만 쓰고 돌려 준다는 돈 역시 1년이 다되도록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돈을 돌려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그 뿐이었다.
결국 ‘태복이’는 월급도 받지 못하고 돈만 떼이고 그곳을 그만 두었다. 더 있고 싶어도 월급이 나오지 않아 생계 문제 때문에 도저히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족발집에서 배달을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언제 족발 생각이 나면 연락하라며 족발집 스티커 한 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족발집 스티커를 내미는 그의 꼬질한 손을 꼬옥 잡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잘될 거야, 앞으로는 모두 잘될 거야라는 말은 단지 내 마음속에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 뒤 가끔 ‘태복이’에게서 족발을 시켜 먹었다. 녀석은 언제나 반가운 얼굴로 배달통을 들고 들어와 여전히 혀 짧은 소리로 커다랗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배달을 시켜 먹는 횟수만큼 세월은 지났고 어느 늦은 밤 배달을 온 그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 지금 있는 족발집을 인수하기로 했어.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배달을 못 올 것 같아. 주방일과 다른 지역 배달 일을 맡아야 할 것 같거든.......”
너무도 반가운 말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족발을 시켜도 ‘태복이’는 오지 않았다. 그 대신 한참 젊은 아이가 배달통을 들고 들어섰다.
‘태복이’를 생각해 몇 번 더 족발을 배달시킨 뒤로 나 역시 그곳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한 관계로 더 이상 족발을 시켜 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자연스럽게 ‘태복이’는 내게서 멀어졌다.
각자의 생활이 많이 바빴던 터라 족발을 시키지 않으면 더 이상 소식을 나눌 수가 없는
것이 당연 했다.
또 몇 년을 그를 만나보지도 그의 소식을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냥 막연히 족발집 장사가 잘되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순탄치가 않았다.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친한 직장 동료들과 거하게 술자리를 가진 밤이었다.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신 뒤에 누군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따뜻한 국물로 속을 풀자고 했다. 그러자 한 동료가 어묵을 진하게 우려내 국물이 일품인 집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며
앞장을 섰다. 그를 따라 들어선 곳은 작은 분식집겸 야식집이었다.
가게 입구에 둘러진 허름한 비닐 포장을 들추고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인 듯한 아줌마가
말없이 물 컵과 메뉴판을 내밀었다. 먼저 앞장섰던 동료가 가락국수 다섯 그릇을 시켰다.
그런데 그는 국수를 시키며 말로 다섯 그릇이라고 하는 대신에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펴
보였다.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그녀가 돌아서자 주문을 시킨 동료가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냈다.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잠시 후 가락국수가 식탁위에 놓여졌고 우리는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면보다는 국물을 먼저 들이켰다.
그 맛이 너무 시원해 그릇째로 들고 마시려는 순간이었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허연 김 사이로 알만한 얼굴이 배달통을 들고 들어섰다.
몇 년 만에 다시 ‘태복이’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태복아!”
술도 적당히 취한 상태로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나니 너무도 반가 왔다.
“정말 오랜만이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너도 어묵 먹으러 온 거야? 장사 안 해?”
오랜만인 탓인지 아니면 술이 취한 탓인지 계속 말이 이어졌다. 내 질문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태복이’는 이내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 했다.
“여기가 우리 가게야.”
“뭐야? 족발집은?”
이번에는 잠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태복이’는 빈자리로 나를 끌었다.
나는 그렇게 그동안 그에게서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나마 또다시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하던 족발집은 그럭저럭 장사가 잘되었고 돈도 제법 벌었다.
그러나 그 무슨 불행인지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배달하는 직원이 어린이를 치어 크게 다치게 한 사고를 낸 것이다.
주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치료비와 합의금를 물어 주고 보니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은 물론
족발집마져 처분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할 수 없이 족발집을 처분 했다.
그리고 신문배달, 막노동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지금의 야식집을 차렸다.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탓인지 한번 찾은 손님들은 또다시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무척 많은 손님은 아니지만 꾸준히 가게에 손님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장사가 되었다.
지난 족발집의 실패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게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비록 말은 하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들의
말은 제법 알아들었다.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부득이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장사를 했다. ‘태복이’는
그런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녀석의 말을 들으며 그에게는 늘 불행과 어려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도
그 불행과 어려움이 어느새 그에게는 별거 아닌 일로 변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후 나는 가끔 술 마시고 속 풀이를 할 일이 있을 때면 그곳을 찾았다.
‘태복이’는 열심히 배달을 다녔고 그의 아내는 조용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리고 한해가 지나 다음 해의 겨울에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그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보이지 않는 사실을 가지고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랬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르느라 가게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워낙 잘 웃는 ‘태복이’였지만 그 즈음의 그의 웃음은 분명 예전의 웃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태복이’는 언제나 손님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한다.
약간 혀 짧은 목소리지만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손님들은 그가 유독 진하게 우려낸 국물 맛을 보며 너무나 좋다고들 입을 모은다.
이제 분명히 인정한다.
그동안 ‘태복이’는 정말 힘들게 살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늘 웃고 있다.
선한 얼굴로 웃고 있다. 그리고 늘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
아직도 ‘태복이’를 소식을 모르는 다른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태복이’는 잘 있다고, 비록 공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나머지 말썽 대장이던 ‘태복이’가
사람들의 쓰린 속을 풀어주며 즐거운 웃음으로 잘 살고 있다고, 너희들보다 더 행복하게 잘
있다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태복이’는 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