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친구들>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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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 같았던 겨울이 지나자마자 세상은 온갖 꽃들로 가득합니다. 서점도 새 계절의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알록달록한 표지들은 저마다 화사하고 눈이 부십니다. 책장은 조잘대는 책의 소리로 가득합니다. 책의 말, 그렇습니다. 책은 스스로 말을 할 줄 압니다. 무늬로 말하고, 기억과 느낌으로 말을 합니다. 아직 사람의 냄새가 스며들기 전이라면 책은 자신만의 냄새를 가득 채워 말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잿빛으로 말을 하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순천의 안개를 품었습니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호주의 낯선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처절한 냄새를 담았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과거와 만나는 사람들을, [섬에 있는 서점]은 마야를 만나는 섬 주민들의 설렘을 실어 나릅니다. 그러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만나면 근면한 노동에 대해 킥킥대는 조롱 소리를 담기도 합니다. 이르자면 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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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낭만적으로 바라보기엔 서점의 현실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스마트폰 출현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서층이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만이 숭배되는 현실에서 문학과 인문학의 공간을 점점 초라해지고 있습니다. 작가와 출판사, 서점과 독자가 서로 연결되어 의미를 공유하고, 확장해야 할 출판 생태계는 심각하게 붕괴되면서 저마다 각자도생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출판 생태계의 붕괴가 사회문화적 안전망의 붕괴로 이어질까 걱정스럽습니다. 한 사회의 문화적 밀도는 독서의 밀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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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 꿈을 꾸어봅니다. ‘이야기 소생술’이라 해봤습니다. 넉넉했던 시절, 조곤조곤 들리던 이야기를 복원하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를 해치지 않고도 왕이 되는, 자기를 새롭게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한꺼번에 다 써버리지 않고도 왕이 되는’ 생태계를 복원해보려고 합니다. <서점 친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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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친구들>을 시작합니다. 매달 소설책 한 권을 선정하고 그 책을 보내드리는 회원제 북클럽입니다. 지역의 독서문화를 이끌고 있는 몇몇 중형서점들이 함께 합니다. 운영방식은 참여하는 서점의 사정에 맞춰 조금씩 다르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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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진행과정은 매달 신간 소설 중에서 세 권을 선정합니다. 각 서점의 <서점 친구들>은 그 세 권 중에서 한 권 이상을 선택합니다. 최소한 한 달에 소설책 한 권은 읽어보자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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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의 책은 이야기의 즐거움과 힘을 보여주는 책, 동시대의 문제의식과 호흡을 함께 하는 책, 낯설고 어렵지만 감각과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을 고르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선정은, 서점인들이 선택한 ‘오만과 편견’의 결과입니다. 전문가의 안목도 평론가의 엄정함도 갖추지 못해 부족하겠지만,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읽고 소통하면서 되돌아온 결과의 기록이자 연대의 흔적들입니다. 1년을 지속하고 나면 가장 의미 있었던 책을 골라 그 해의 서점문학상으로 추천해보려는 욕심도 갖습니다. 그 책은 각 서점에서 최선을 다해 진열하고 홍보하게 됩니다. 시작보다 많은 서점들이 연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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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진주의 진주문고, 일산의 한양문고, 대전의 계룡문고, 구미의 삼일문고, 충주의 책이있는글터 그리고 청주 꿈꾸는책방이 함께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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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면서 대나무를 생각했습니다. 4년 동안 땅 밑에서 조용히 자기들만의 길을 만들고 성장하다가 5년 후 지상에 나오자마자 25미터로 자란다는 대나무 말입니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부러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매듭을 지어 성장을 성실하게 다져둔다는 그 대나무 말입니다. 그 성실한 다짐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느리고 더디더라도, 부러지지 않게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설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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