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행자가 공존하는 '교통정온화' 대책(Traffic Calming)
우리나라의 교통은 열악하기 짝이없다. 간선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주택가 이면도로에는 불법주차 차량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간선도로에서의 과속은 일상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학교변 도로에서조차 빨리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어린 초등학생들이 변을 당하는 사태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교통은 너무나 사나운 것이다. 이빨을 드러낸 맹수같이 위협적인 차들 때문에 보행자들은 언제나 마음을 졸이며 길을 건너야 한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길을 나누어 달리는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원래 자전거는 차도로 다니게 되어 있지만, 대도시 차도에서 자전거로 달리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 현실이다. 분명 사람 다음에 차가 생겼을 것이고, 자동차 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인데, 이러한 현실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보행자의 권리가 특히 중요해지는 주거지에서는 이같이 사나운 자동차 교통을 진정시키는 ‘교통정온화(Traffic Calming)'가 필요해진다.
▲ 교차로 칼라포장 ⓒ교통안전공단
선진교통문화를 가진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미 60년대에 본격적인 교통정온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같은 교통정온화를 엄밀히 규정해본다면, “도로 노선의 변경, 장애물의 설치, 또는 다른 물리적인 방법에 의해 특정 지구 내의 주차뿐만 아니라 통과하는 차량의 양과 속도를 통제함으로써 대상 지구 내에서 보행의 안전과 생활의 편의 등과 같은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보행자가 주로 이용하는 주거지 도로는 통과교통위주의 간선도로와는 다른 설계를 가져야 한다. 정책, 규제적인 교통정온화의 세부시책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최고속도를 규제하는 것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30km로 하도록 한다. 이렇게 할 경우 통과교통은 이 도로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우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지역과 관계없는 교통량의 유입을 막고, 이로 인한 교통사고도 막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대형차량을 규제하는 것이다. 역시 지역과 무관한 단순통과교통을 억제할 수 있다. 특히 대형차량은 진동과 소음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쾌적한 주거환경 보장을 위해 매우 필요한 요소이다.
세 번째로 보행자도로, 자전거 도로를 설치하여 보행자와 자전거 통행자들을 우대하는 방법이다. 보행자가 많은 학교 주변과 보행자가 많아지는 아침, 저녁에만 시행하는 것도 고려가 가능하다.
네 번째는 노상주차에 대한 대책이다. 노상주차, 심지어 보도까지 침범하는 불법주차 때문에 보행자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일상화된 일이다. 이 같은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차금지지역을 설정하고 특히 외부차량의 무분별한 주차로 지역의 상업 활동이 지장을 받을 정도에 이를 경우에는 거주자용 주차공간을 설정하거나 시간을 제한하는 주차규제도 가능하다. 무인 노상주차장 제도 등이 가능한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널리 퍼져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섯 번째는 일방통행제의 시행이다. 일방통행제는 필요 차선폭을 줄여서, 주차공간이나, 보행자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가 차량의 소통까지 원활해지는 장점이 있다.
여섯 번째는 교차로에서 회전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통과차량들이 무분별하게 지역내 도로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내 소도로에서는 도로 교차점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동차가 교차점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행하다가, 주택가 담장으로 가려진 교차점에서 아동이 뛰어나오다가 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따라서 교차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하여 교차로에 특별한 색으로 포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이러한 교통규제적 방식 외에도 실제 물리적인 시설물을 설치하여 규제하는 방법도 있다.
첫 번째는 과속방지턱이다.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면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과속방지턱은 다른 교통시설과 조합하여 응용할 수 있는데, 교차로 입구에 방지턱을 설치한 후 방지턱에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횡단보도의 높이와 인도의 높이가 같아져서 보행자는 보다 편리하게 교차로를 넘을 수 있으며 자동차는 보다 낮은 속도로 교차로를 통과하게 된다.
또한 교차로 교차점 전체를 높게 턱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교차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줄 수도 있고 역시 교차로 저속통과를 유도할 수 있다.
험프식 횡단보도 ⓒ교통안전공단
특히 과속방지턱은 실제 턱은 설치하지 않고 색깔만 칠해둔 ‘이미지험프’라는 것으로 설치할 수도 있는데, 이 지역에 익숙하지 못한 통과교통은 이것을 실제 과속방지턱이라고 오인하여 속도를 줄이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두 번째는 차도 폭을 좁히는 것이다. 이것을 초커라고 부른다. 특별한 지역의 입구에 차량 1대만 통과할 수 있도록 차도 폭을 줄이거나 시설물을 설치하면 차량은 자연히 속도를 줄이게 되고 통과교통은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게 되어 결국 교통정온화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차도폭을 좁아보이게 하는 포장형태 ⓒ교통안전공단
세 번째는 갈지자 도로로서, 시케인이라고도 부른다. 차도를 일부러 갈지자로 구불구불하게 만듦으로써 차량의 속도를 줄이게 되고 역시 불필요한 통과교통을 억제한다.
네 번째는 막다른 도로로서 쿨데삭이라고 부르며 지역내 생활도로를 일부러 차단해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지역이 목적지인 교통은 접근에 문제가 없으나 이 지역을 단순히 통과하는 교통은 이 도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과교통량을 없애게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지역내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을 종래와 같은 직각교차로가 아닌 중앙에 교통섬을 설치한 미니로터리 교차로로 바꾸는 것이다. 결국 차량은 빠른 속도로 교차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과속 방지 및 통과교통억제에 큰 도움이 된다.
▲미니로터리 ⓒ교통안전공단
마지막으로 차량차단기둥이다. 이것은 볼라드라고 부르는데, 가드레일은 연속적으로 차단하는데 비해 볼라드는 간격이 떨어진 기둥을 이용하여 보행자에게 피해 없이 차량통행을 막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차량이 보도를 침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볼라드를 이용한 보차분리 ⓒ교통안전공단
이 같은 교통정온화 대책을 시행할 경우 보행자는 안전을 보장받으며 보행을 할 수 있다. 자동차 통과교통량이 감소하고 속도가 줄면서 저절로 교통사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사고가 저감되어 보행자의 생명을 보호함은 물론이고, 교통으로 인한 공해의 방지 및 통과교통으로 방해받고 있는 지역내 교통의 원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불필요한 외부인의 진입을 방지하여, 범죄의 발생도 낮출 수 있고, 비상상황이 통과교통의 방해 없이 소방차나 구급차만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교통정온화가 시행되는 지역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사나운 자동차 교통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후진국적인 교통문화를 개탄하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개개인의 인식전환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통과교통이 유발되기 쉬운 가로구조를 해놓고 통과교통이 생긴다고 불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통과교통을 억제하는 교통정온화 시책을 정부 주도로 체계적으로 시행해나간다면, 불필요한 통과교통은 충분히 억제되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지역이 될 것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도 교통정온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어, “자동차에 의한 지배”로부터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교통안전공단, “교통정온화(마을마당길)사업의 표준모형개발 및 적용에 관한 연구”, 2002)
[출처 : 국정브리핑(20041221) : 한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