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불안정한 성격으로 괴로워하는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선구자이다.
그 치열성의 정체는 그의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삶에 대한 부단한 탐구 정신과 강렬한 도덕의식이다.
그의 도덕의식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윤동주의 도덕의식과 닮아 잇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삶과 작품은 윤동주의 「서시」나 「참회록」을 닮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그 무게를 벗어던지려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청년 시절, 그의 일기와 편지를 뒤덮고 있는 자살이라는 화두와
거기에 배어 잇는 번노의 무게는 그의 반성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가슴 시리게 증언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작품들은 현대 철학의 텍스트이기 전에 그 자신에 대한 「참회록」으로 읽힌다.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의 특징은 청빈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논리-철학논고』 한 권으로 일찍이 세계적 철학자로 발돋음했지만,
그는 그것이 가져올 모든 세속의 명예와 권력을 거절했다.
그는 철학자들이 빠져들기 쉬운 난잡한 용어 사용과 사변의 유희를 거부했다.
대표작 『철학적 탐구』에 어떤 현란한 형이상학이나 이렇다 할 세련된 테제가 없다는 사실도
그가 지켜온 청빈주의 정신에서 연유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제도권의 글쓰기인 학술적 저서나 논물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평생을 써 내려간 일기와 노트에서 편집된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의 투쟁의기록이다.
마지막 일기는 암으로 임종을 맞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가 놀라운 정신력으로 견고한 사색과 탐구를 실천하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주로 현대 논리학과 분석철학의 범주 안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그가 논리에 대해 러셀 콰인 등과 크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철학이 어떠한 사조나 학파와도 잘 어울리기 어려운 독특한 것임을 간과하기 쉽다.
현대논리학과 분석철학은 해체주의자들이 비난하는 이성중심주의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헤브라이즘에 속하는 메시아 신양의 현대적 버전으로 간주한다.
만일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헤브라이즘의 현대적 버전이라면,
현대 논리학과 분석철학의 이성중심주의는 헬레니즘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논리학과 분석철학이 주도하는 이성중심주의적 영미 철학과 대륙의 해체주의 사이의 반목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사이의 뿌리 깊은 반목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역사, 문화적 해석을 차치하고라도 이들 사이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대화는 아직도 요원하기만하고,
양자 간의 창조적 융합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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