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일서 4장 9-11절 화목제물로 증거된 사랑
사랑은 말로도 하기는 하지만 말만하는 사랑은 결국 상대에게 큰 실망을 가져다줄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어떤 행동들이 동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부부가 남자는 평생 물장수를 해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렸고 아내는 삯바느질을 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두 부부는 많은 자녀들을 이 두 가지를 해서 학교 공부도 시키고 결혼해서 모두 자리를 잡도록 도왔습니다. 이제 모든 자녀들이 다 독립해서 나가고 노부부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아직도 아내는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 인해 많은 주문들이 들어왔지만 눈은 예전만 못해서 두꺼운 안경을 써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방안의 등잔 불빛아래서 바느질하는 아내를 사랑스럽게 지켜보던 남편이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아직도 날 사랑하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바느질을 멈추고 남편을 보면서 “나는 평생동안 당신을 위해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또 아이들을 키우며 바느질도 하고 많은 일들을 했어요.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묻습니다. “여보 그런데 당신은 지금도 날 사랑하오?” 아내가 고개를 들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당신을 위해 이렇게 밥도 짓고 바느질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서 당신을 돕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남편이 또다시 묻습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그 많은 것들을 해온 것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나를 사랑하오?” 그말을 들은 아내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합니다. “그래요. 나는 당신과 결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사랑해요 여보” 그 말을 들은 남편의 얼굴이 행복으로 가득찼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말과 행동이, 행동과 말이 언제나 함께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구약 성경 신명기 4장 3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하고 말씀하시는 데 이스라엘 조상들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혼손인 너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원리는 오늘날도 역시 적용되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구원하셔서 교회로 삼으신 이유는 여러분들의 어떤 행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셨음으로 인하여 아들이 택하신 사람들을 아들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계셔서 여러분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7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이 말씀은 조상들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도 사랑하셨듯이, 오늘날의 교회도 역시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셨듯이 교회인 여러분들 역시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13절을 보면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후손들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시고 소생에게 은혜베푸시며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또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교회가 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복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시며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토지 소산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소와 양을 번식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도 역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그 증거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여러분들에게 주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영생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 나하고 영원토록 같이 살자”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예 좋아요”하면 여러분들은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인해 영생을 얻게 됨은 물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 계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역시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시고 있으며 15장 12절 역시 비슷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한다고 사랑을 고백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사랑을 증거하셨습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는 애굽에서 탈출시켜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40년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지간히 말도 안듣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완악하여 하나님을 거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다 참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그러면 여러분들을 위해 행하신 사랑의 행동이 무엇입니까?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이것을 쉬운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으며, 그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또한 아들의 달리신 십자가에서 주신 생명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이보다 더 큰 사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 사랑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부모들이 아무리 큰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이 사랑보다 클 수 있을까요? 오랫 동안 사귀어 왔던 연인들이 아무리 깊은 사랑을 한다고 이보다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명까지 내주는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 깊은 사랑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어떻게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도록 무한합니다. 그 깊이를 사람이 다 알 수 없고 그 높이와 길이 역시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 속 깊은 사랑의 심연을 다 측량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랑이 인간 세상을 먼저 찾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화목제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10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다시 한번 쉬운 성경을 찾아볼까요? “진실한 사랑이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들의 사랑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진실한 사랑은 하나님의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여러분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화목제물은 화해와 회복을 향한 제물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틈이 벌어졌습니다.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들의 잘못 자체를 깊이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런 죄를 범했다면 아들들부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여고 애쓰고 힘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애쓰고 힘써야 할 인간이 하나님께 동생이 예배를 더 바르게 드려서 하나님께서 동생의 예배와 제물만 받으셨다고 화를 내면서 동생을 들에서 쳐죽였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충만히 받은 스데반이 담대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설교를 하자 스데반도 역시 돌로 쳐죽였습니다. 이런 악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다가가셨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여러분들에게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들의 빈 가슴에 가득히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들 안에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증거하고자 하십니다.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화목제물로 아들을 내주심으로 아들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이 사랑에 대하여 받았으며 들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방식을 따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수원에 있는 신문보급소에 총무라는 신분으로 취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첫날 가자마자 식사당번은 신입총무가 해야 한다면서 3000원을 쥐어 주고, 쌀은 있으니까 그 돈으로 반찬을 만들어 하루를 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까지 밥을 해본적도 없고 음식을 만들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밥을 했고 반찬도 만들었고 찌개도 끓였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어머님이 만들어주셨던 맛을 기억해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까지 어머니 곁에서 매일 먹었던 음식이 바로 저의 반찬을 만들어낸 비결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반찬을 차려놓자 배고픈 배달원들과 직원들이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방식을 따를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이 비결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마음과 방식을 소상히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방식의 사랑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 역시 이 시대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의 화목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흠없고 온전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받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사랑하실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