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가 만병통치로 변한 사연
식초가 또 만병통치식품으로 둔갑했다. 하루 세 번 물로 희석하여 주스처럼 마시면 그렇게나 몸에 좋다한다. 암, 노화, 변비, 비만, 항산화, 심장병에 좋다니 가히 천하제일이다. 심지어 숙취를 해소하고, 칼슘 흡수를 돕고, 지방을 연소시켜 비만을 방지한다는 등 아무런 과학적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는 황당한 논리까지 동원된다.
항간에는 식초가 단순한 조미식품이 아니라 고급 건강음료라고 우기는 엉터리 기사가 나오고 신맛 강한 산성식품을 항산화기능을 가진 알칼리성식품이라고도 둘러댄다. 종편에 나온 가정의학과 의사는 식초성분이 우리 몸에 미치는 생리적 기능이 대단하여 그 중요성을 밝힌 업적으로 노벨상을 3번이나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소비자와 시청자를 기만했다.
식초의 주성분은 아세트산(acetic acid)이라는 초산(CH3COOH)이다. 분자구조가 간단한 유기산의 일종이며 강한 신맛을 낸다. 음식을 시게 만들어 기호성을 높이거나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해 식품의 보존성을 좋게 하는 역할(초절임)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 식재료인데도 말이다.
식초(초산)는 초산균이라는 미생물이 술인 에탄올을 먹이로 하여 만들어 주는 발효식품이다. 초산을 발효하는 생물은 초산균이 유일하다. 이를 우리가 먹으면 대사되어 포도당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나온다. 일종의 고칼로리 식품에 해당되나 조미식품이라 에너지 공급원로는 사용할 수는 없는 물질이다.
식초의 주성분인 초산을 신비화하는 비과학적 논거를 보면, 학문적 깊이가 얕은 사이비들이 둘러대는 엉터리 주장이긴 해도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억지 이유가 유추되긴 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영양성분의 에너지대사는 초산의 유도물질인 초산-CoA(acetyl-CoA)라는 중간체를 거쳐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영양성분인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이 모두 이 물질로 변해 에너지를 내놓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대사의 중심물질이 초산의 유도체인 셈이다.
여기서 CoA(코에이)는 비타민 B그룹이 주성분인 조효소(助酵素)A, 즉 coenzyme A을 뜻하며 효소의 기능을 도와주는 중요한 물질이다. 이 물질이 초산과 결합해야만 효소반응이 수행된다. 10여 종류 존재하는 비타민 B그룹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에너지대사에 관련되는 효소의 조효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필수성분으로 중요시 여긴다.
좀 어렵지만 에너지대사회로를 간단히 설명하여 이해를 돕자(그림 참조).포도당이 피루브산(pyruvate)으로까지 되는 대사과정을 해당과정(glycolysis), 피루브산으로부터 나온 초산-CoA(CH3CO-CoA)가 탄산가스와 물로 소모되는 과정을 citric acid cycle(시트르산 사이클, 크레브스 사이클 혹은 TCA cycle)이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포도당은 해당과정에 의해, 지방산(fatty acid)은 베타산화에 의해, 아미노산(amino acid)은 여러 전이반응을 거쳐, 이들 모두가 다 초산-CoA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모든 에너지원이 이 초산-CoA를 거쳐 대사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먹은 식초(초산) 또한 초산-CoA으로 되어 대사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산-CoA는 에너지 대사 외에도 체내에 필요한 지방산, 비 필수아미노산, 콜레스테롤 등이 합성될 때 전구물질(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대사회로는 신기하게도 전 생물(동,식,미생물)에 공통이다. 그래서 이 사실이 모든 생물이 하나의 세포로부터 진화했다는, 진화론을 설명하는 가설이 되기도 한다.
이런 대사회로를 밝힌 사람이 여럿 노벨상을 탔다. 엉터리들은 이를 마치 초산을 연구하여, 혹은 식초(초산)을 연구하여 노벨상을 탄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3번이나. 비약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약이다. 왜 초산(식초)을 여기에 갖다 붙여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무식의 결과인지 아니면 어떤 의도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학문을 왜곡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세간에는 양조식초는 건강식품으로, 빙초산식초는 먹어서 안 되는 독극물처럼 취급하는 풍조가 있다. 이도 종편과 쇼닥터들의 영향이 크다. 곡물이나 과일로 만든 발효식초가 화학적으로 합성한 빙초산의 식초보다 우수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신맛을 내는 성분은 다 똑같은 초산이기 때문이다. 빙초산이라도 식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순도가 높다면 식초의 원료로 사용 못 할 이유가 없다. 공업용 빙초산으로 합성식초를 만드는 것은 불법이지만 허가된 식용빙초산으로 만들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버젓이 식용으로 나오는 빙초산에 무작정 시비 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합성식초가 무조건 양조식초보다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먹어서는 안 되는 몹쓸 식품으로 매도하는 처사가 옳지 않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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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양조식초에는 곡물 등으로부터 묻어들어 간 몇 종류의 미네랄과 비티민이 소량 있기는 하다. 이것을 가지고 만병통치, 식초예찬의 이유로 삼는다면 그건 잘못이다. 그 양이 있으나 마나하기 때문이다. 실제 식초는 이런 성분의 공급원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이런 목적으로 의도해서 먹는다고 해도 하루에 필요한 양의 수 %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소량에 불과해 별 의미가 없어서다.
근거 없는 식초 붐에 편승하여 엉뚱하게도 홍초, 흑초도 소비자를 유혹한다. 양조식초에 과일이나 채소류의 붉은색(안토시아닌 계통)을 섞은 홍초가 몸에 특별히 좋을 리도 없는데도 건강식품으로 대 인기다. 흑초는 식초가 오래되어 갈변현상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블루베리, 포도, 오디 등의 검은색을 입힌 것인데도 이를 신비화하는 부류가 있다. 가격이 일반 상식을 초과하는 데도 쉽게 지갑을 연다. 포도주로 만든 이태리의 흑초가 발사믹인데 이도 애호가들 사이에는 큰 인기란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활성산소를 없애준다는 항산화효과를 들먹이면서 말이다. 건강식품 좋아하는 우리민족, 몸에 이롭다하면 양잿물도 마실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