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귀촌. 모두 돌아온다는 의미의 귀(歸) 자를 씁니다. 농촌으로 돌아간다, 마을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돌아간다는 말은 본래 있던 곳, 근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뜻도 가능합니다. 모두 농촌이 고향은 아닐 진데도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결국, 사람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곳, 먹을거리가 자라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라고 하지, 살고 먹는 문제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먹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귀농을 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니 농촌생활이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고 싶은 '도전적인' '열정적인' '준비된' 사람들이 귀농을 결정하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삶의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일이니 준비가 꼼꼼하게 필요한 게 당연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미 귀농한 사람들을 방문해 그들의 일과 삶을 곁에서 보는 일이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부산귀농학교에서 일손돕기 행사를 열었습니다. 방금 귀농학교를 졸업한 따끈따끈한 졸업생들이 이미 귀농한 선배의 일터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있었습니다.
뭔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으로 신 나게 경남 하동군 북천면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엔 지난 2010년 귀농학교를 졸업한 정도경 씨가 기양초 부추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정 씨와 예비 귀농자들은 쉴새 없이 무언가를 묻고 대답하느라 바빴습니다. 물론 손은 일하느라 쉴 새가 없었지요. 알싸한 부추 향기가 가득한 하우스 안이 귀농에 대한 꿈까지 더해져 더욱 꽉 찬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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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들의 도시텃밭' 모임의 회원들이 손수 벌레를 잡고 유기농 액비로 키운 배추와 무 등을 자랑스레 내보이고 있다. 이들은 해운대여성인력개발센터의 도시농업코디네이터 과정을 수료한 인연으로 만나게 됐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그러고 살펴보니 귀농이 아니더라도 내 먹을거리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부산귀농학교에서는 도시농부를 위한 강좌도 있더군요. 도시농부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추를 길러 먹는 사람도, 주말농장을 마련해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도, 주택 옥상의 작은 텃밭을 가진 사람 모두 포함된답니다.
식량 자급자족의 문제,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가 직접 길러 먹음으로써 한 번에 해결됩니다. 그러니까 공간과 관련된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네요. 지난 9일엔 부산에서 처음으로 도시농부 장터가 열렸습니다. 도시농부들이 한데 모여 자신이 생산한 것을 서로 나누고 다양한 정보교환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행사를 지나던 시민들에게는 도시농부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도시농부, 귀농자. 모두 생명을 스스로 길러내고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맺어내는 씨앗과 수확물들은 미래가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생명의 건강한 순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길러내고 돌보는 즐거움에 흠뻑 빠진 사람들을 만나 생명의 에너지를 나눠 가질 수 있었습니다.
1. 저 사람 농사 열심히 하네 꼭 들을 겁니다
부산귀농학교 31기 졸업생으로 귀농해 있는 정도경 씨가 오전 10시40분께 도착한 예비귀농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시작했다. "하우스 한 동의 묵은 부추를 다 베어내고 그걸 실어내 거름 하도록 정리해주세요. 그리고 땅 고르기와 땅 긁어주기를 할 겁니다. 낫으로 베어내는 것은 여성분들이 해주세요. 부추는 향기가 강하고 잎이 세니까 꼭 장갑을 끼고 작업하세요." 41기 졸업생들이 일하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정 씨의 말에 각자 할 일을 찾아 나섰다. 정 씨의 '만세농원'에 41기 졸업생들이 일손돕기를 하러 온 것이다. 경남 하동군 북천면의 '만세농원'은 200평 하우스 9동에 기양초 부추를 재배하고 있다. 예비귀농자들이 선배 귀농자의 농장에서 일하면서 귀농 생활이 어떤지도 미리 볼 기회다.
■ 귀농, 꼼꼼한 준비가 성공적인 정착의 지름길
베어낸 부추를 실어내느라 바쁜 정 씨에게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언인지 물었다. 그는 "허투루 하면 절대 안 된다. 그야말로 주변에서 '저 사람 농사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인정을 받아야 정착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씨는 2010년 5월 부산귀농학교를 수료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경남 거창 '북상임산'에서 귀농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귀농인턴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도 몰랐느냐'는 얼굴이었다. 정 씨는 "당시 임업에 관심이 많아서 80만 평을 경영하는 북상임산에 들어갔다. 이어 같은 해 8월 친환경 사과농장에서 1년 6개월간 인턴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인턴생활을 거치는 게 겹쳐졌다. 정 씨는 "그러다 알게 된 것이 기양초 부추라서 지난해 9월 200평 하우스 5동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하동군 북천면 방화리로 귀농해 '기양초 부추 작목반'에 가입했다. 정 씨는 "다행히 첫해에 내가 농사를 좀 잘 지었다. 그랬더니 주변 분들이 '진짜 제대로 농사지으러 왔구나' 하는 시선으로 보더라"고 전했다. 그가 이곳에서 시작한 것은 부모님이 하동에 계시고, 외가가 있던 지역이라 심정적으로 가까운 것도 이유였다.
그는 "마을 분들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와서 농사를 짓겠다 하면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동안 어떤 사람인지 지켜본다. 나는 부모님이 계시니 상대적으로 하동 사람이라는 친밀감을 드러내기 좋았고, 우선 농사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게 마을 분들의 눈에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정 씨는 친환경 액비로 기양초 부추를 키우고 있다. 그는 "많이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품질이 좋은 부추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양하게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버텨야 귀농의 자리가 잡힐까. 정 씨는 "최소한 3년은 버텨야 한다. 첫해 하우스 5동으로 시작해 현재 9동에 시설 재배를 하고 있다. 내년에 하우스 리모델링을 마쳐 현대식으로 개조하면 투자는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마다 잘 정착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한 번에 가족이 다 내려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족들은 도시에 거점을 두고 천천히 진행해도 무리가 없다"고 조언했다.
2. 생전 처음 해보는 낫질, 땅의 소중함 느껴요
■ 몸으로 일하는 재미에 푹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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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귀농학교 41기 여성 졸업생 두 명이 낫으로 부추를 베어내고 있다. 기양초 부추는 다년생이라 똑바로 베어내야 다음에 자라나오는 부추가 곧게 되므로 낫으로 베어야 한다. |
변서현(46·부산 사상구 괘법동) 씨는 귀농을 배워 시골에 살아볼 생각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뭐든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귀농학교는 지난 9월 시작해 두 달간 18차례 수업을 들었다. 변 씨는 "생전 처음 해본다. 낫을 잡고 이제 10분가량 지났는데 농촌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동시에 땅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부추를, 다양한 채소를 키워내는 힘이 있는 것 아닌가"라며 부추 베기에 열을 올렸다.
옆에 있던 오현숙(42·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씨도 부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 씨는 "처음엔 귀농을 고려하지 않았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현재 김해로 옮겨 귀촌한 상태"라거 말했다. 그는 "고2, 고3 연년생 두 아이가 대학에 가고 나면 완전히 귀농할 생각이다. 현재 초등학생인 막내는 말 안 들으면 예전 살던 부산으로 이사 간다고 하는 게 가장 큰 협박일 만큼 귀촌 생활을 좋아한다"며 웃었다.
1시간가량 지나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권해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왕에 시작한 거,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이거 다 하고 밥 먹는 게 좋겠다"며 구슬땀 얼굴로 낫질을 쉬지 않았다. 기양초 부추는 3~4년 사는 다년생이다. 당일 베어낸 것은 상품성이 없는 것으로 퇴비로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베어서는 안 된다. 베어낸 자리가 똑바르고 평평해야 자라나는 부추가 고르게 자라난다. 생전 처음 낫을 잡아 본다는데도 솜씨가 야무지다.
베어낸 부추는 외발 수레에 실어 바깥으로 나르거나 하우스의 뚫린 옆으로 들어냈다. 오현숙 씨의 남편 노동명(46) 씨도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레에 부추를 실었다. 노 씨는 "오늘도 오후 2시까지만 도와드리고 아내와 함께 양계장에 가보기로 했다. 오이, 애호박 등을 재배하는 곳도 다녀보고 귀농에서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노 씨는 "아내가 처음 귀촌을 제안했고,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귀농에 동의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도시생활보다 훨씬 나은 삶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즐거워했다.
이들이 부추를 다 베어내자 정 씨가 땅 위에 덮여있던 비닐을 걷어내고는 뿌리를 잘라주는 일에 돌입했다. 기양초 부추의 뿌리는 땅속 깊게 내리는 게 아니라 지면 가까이에 옆으로 퍼지는 형태다. 따라서 서로 얽히게 되므로 이 뿌리를 정리해 주어야 포기별로 곧게 잘 자란다고 한다. 부추 포기를 가운데 두고 양옆 열십자 형태로 땅을 긁어 뿌리를 다듬는 작업이 진행됐다. 정 씨는 "이곳 어르신들도 다 아는 방법이지만 손이 달려서 못하시는 경우가 많다. 나는 농사 초심자니까 그야말로 교과서대로 재배하려고 한다"며 우직한 모습을 보였다.
3. 벌레 먹어 구멍 숭숭 난 배추, 혼자 먹기 아까워 나왔어요
■ 부산 첫 도시농부 장터
- '맘들의 도시텃밭' 유기농 액비로 키운 친환경 배추
- '부산온배움터' 산야초 이용한 비누·발효액 등장
- 커뮤니티 통해 농사법 교류, 생태적 지식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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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부산도시철도 동래역 인근에서 열린 제1회 부산 도시농부 장터에서 부산온배움터가 내놓은 산야초 발효 효소에 대해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sh@kookje.co.kr |
귀농자는 아예 거주지를 농촌으로 옮겨 농사를 생업으로 짓는 사람이다. 도시농부는 자신의 거주지는 도시에 두되, 사는 곳 주변에서 농사를 짓거나 주말농장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모여 장터를 열었다. 그 장터에서 도시농부들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7일 오전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도시농부 장터'가 도시철도 동래역 인근 인공폭포 앞에서 열렸다. 도시농부들이 자신이 기른 수확물을 가지고 와 나누는 자리였다. 도시농부끼리는 물물교환하고 수확물을 사고 싶어하는 시민에게는 돈을 받고 팔았다. 곧 가까워진 김장철을 맞아 배추, 무 등을 푸짐하게 가지고 나온 참가자가 눈에 띄었다.
'맘들의 도시텃밭' 모임 리더인 조정숙(57·부산 남구 용호동) 씨는 부산 해운대여성인력개발센터의 '도시농업코디네이터'과정을 밟으면서 생명이 자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고 했다. 조 씨는 "올해 7월 뜻이 맞는 어머니 10명이 모여 '맘들의 도시텃밭' 발대식을 했다. 올해 목표는 친환경 배추 100포기를 해운대 무료급식소에 기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길러낸 배추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직접 벌레를 잡아가며 유기농 액비를 사용해 키워낸 것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한 포기에 700원 하는 이들의 배추를 손수레에 가득 사가기도 했다.
생태교육 협동조합인 부산온배움터는 산야초를 이용한 먹을거리를 내놓았다. 황경미(산야초 분과) 조교는 "산야초 가루를 이용한 비누, 산야초 발효액, 산야초 발효 식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산야초에 대해 조금만 알면 자신의 건강을 지킬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황 조교가 권한 낙엽차는 구수하면서도 생강나무의 독특한 향이 살아있는 건강한 맛이었다.
부산귀농학교의 함은경 도시농업위원장은 "장터에 대한 요구가 도시농부들 커뮤니티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돼 왔다. 서울·경기 지역에는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부산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함 위원장은 "도시농부들이 서로 농사법도 교류하고 생태적 지식도 나눠 가질 수 있는 데다, 시민에게 도시농업의 장점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만족해했다. 이날 함 위원장은 자신이 재배한 삼채를 넣은 부침개를 만들어 팔았다. 그는 "내년에는 분기별로 장터를 열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최종 목표는 구별로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