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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정방의 피살
소정방의 시체가 묻혔다는 당교. 과연 실재했던 다리였는지 확인에 나섰다. 당교는 상주와 문경을 잇는 경계지점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교의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곳은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 군사와 소정방을 살해하고 묻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정방 피살의 단서를 제공해 주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2. 베일에 가린 소정방의 죽음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당의 천하통일의 꿈이 출발한 곳이다. 당의 대규모 영토팽창시기에 맞춰 장군으로 발탁된 소정방은 백제까지 정복하여 최고의 전공을 기록하게 된다. 이 업적으로 소정방은 왕 다음으로 높은 작위를 받는다. 그런데 당대 최고의 지위까지 오른 소정방의 죽음은 중국땅 어디에도 기억되고 있지 않았다
3. 김유신과 소정방
소정방과 김유신을 주축으로 하는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정방의 당군은 서해안에서 백마강으로 진입하고 신라군도 황산벌을 거쳐 진격한다. 그리고 사비성 앞의 웅진구에서 합류한 양군. 하지만 합류하자마자 소정방과 김유신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4. 당의 신라점령 음모
백제를 점령한 후에 소정방 군대는 바로 철수하지 않았다. 내친김에 신라까지 치려 한 것이다. 백제를 차지하고 신라마저 자신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당의 음모 앞에 삼국통일의 위엄을 이루려던 신라는 자칫하면 자신마저 식민지로 전락할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5. 소정방 살해 이유
소정방이 피살됐다는 당교 마을 부근에는 당나라군의 주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당시 전장지도 아니었던 이 지역에 왜 당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일까. 김유신은 이 당교 근처에서 소정방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다리 밑에 묻었다.
6. 신라의 대당전쟁의 승리
신라와 손을 잡고 이땅에 왔던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는 기벌포를 통해 백제군을 공격하고 백제왕국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 기벌포에서 그들이 멸망시켰던 백제, 고구려의 도움을 받은 신라에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 싸움이 당나라 군대가 한반도에서 벌인 마지막 전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