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9. 큐티
민수기 11:26 ~ 35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
관찰 :
1) 모세를 반대하던 장로에게도 임한 성령
- 26절.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 엘닷과 메닷은 명백하게 모세의 지도를 반대한 자들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 반항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아마도 모세는 그들의 반항적 성향을 알고서도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해서 70인 장로들 중에 포함시켰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막 앞으로 모이라는 모세의 명령을 고의적으로 따르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예언을 하게 되었다.
- 27절.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 모세는 엘닷과 메닷에 대해서 사람을 보내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회막 앞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장막에서 나오지 않았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놀라서 모세에게 보고하게 된 것이다.
- 28절.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 모세를 수종들던 여호수아는 모세의 지도력에 반발하고 있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모세에게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그치도록 할 것을 청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이 사건을 통해서 모세가 지도력 반발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하는 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지도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모세에게 반발한 자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29절.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여호수아의 관점과는 달리 모세의 관점은 더 크고 넓은 것이었다. 모세는 진정으로 이스라엘 250만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여서 다 선지자가 되는 것,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 다 하나님의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자신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에 모세의 관심과 중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 30절.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왔더라” => 회막에 모여있던 장로들이 자신들의 거쳐로 돌아왔다. 이들은 이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에 대한 증거를 체험했다. 엘닷과 메닷 역시 자신들이 비록 반대했지만 모세의 지도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후로 70인 장로들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길을 따르는 과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이것이 70인 장로들이 모두 온전한 순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순종하게 되는 분기점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2) 여호와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시다
- 31절.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 메추라기는 짧은 날개와 작고 둥근 머리, 그리고 통통한 몸집을 가진 꿩과의 철새다. 이 메추라기는 팔레스틴을 중심하여 봄에는 아프리카에서 떼를 지어 북쪽으로 나아왔다가 가을쯤 되면 아라비아와 시리아 쪽으로 옮겨가 겨울에는 다시금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이러한 계절풍을 타고 이동하는 메추라기 떼들을 마치 비 같이 이스라엘 진에 떨어지게 하셨다. 두 규빗이면 대략 1m 정도이다.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진영 사방 십수 km에 걸쳐서 쌓이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 32절.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룻 길 되는 길에 쌓인 메추라기들을 하루 종일 모으게 되었다. “열 호멜”이면 오늘날의 도량으로 약 2,200리터에 해당한다. 적게 모은 자가 그러하니, 많이 모은 자는 훨씬 많이 모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메추라기들을 오랫동안 먹을 수 있도록 햇볕에 말려서 저장하고자 했다. 이미 이들은 이집트에서 생선을 햇볕에 말려 오랫동안 보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3) 기브롯 핫다아와(קִבְרֹותהַֽתַּאֲוָה, 탐욕의 무덤)
- 33절.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토한 자들에 대해서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고기가 먹고 싶다고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한 자들을 큰 재앙으로 치셨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망하던 대로 고기를 씹어 먹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시 여기고 고기를 “쳐 먹기만”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노하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향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토했던 자들이 회개의 열매를 맺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 주셨을 것이다.
- 34절.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 “기브롯 핫다아와”(קִבְרֹותהַֽתַּאֲוָה)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을 토하고, 하나님께서 엄청난 역사로 메추라기 떼를 모아 고기를 먹여주심에도 불구하고 회개함이 없이 그것을 “쳐 먹는” 것에만 착념한 자들을 죽여버리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토록 먹고 싶던 고기를 씹어 먹는 도중에 동료를 장사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유가 “탐욕”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감사로 받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이 탐욕이고, 그 결과는 기브롯 핫다아와(קִבְרֹותהַֽתַּאֲוָה, 탐욕의 무덤)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 35절.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행진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 시내산에서 3일 길 행진했던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다시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사한 사람들을 잊고 행진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하세롯에서는 또 다른 권위에 대한 도전이 이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계시고 이 과정을 통과해야 가나안으로 가는 준비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가르침 :
1)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는다. 모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성향이 있는 자일지라도 70인의 장로들의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반대한 자들은 회막에 모이라는 명령에 불순종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도 성령의 임재를 허락하시고 예언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으로 70명의 장로들은 모세의 지도력을 따를 수밖에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 온유함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지도력을 얻게 되었다.
2) 여호수아는 모세를 향한 두 명의 장로들이 보인 지도력 반발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세가 보이는 모범을 통해서 향후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지도력 반발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몹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아닌, 그 본질을 추구하고 따라야 함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3) 여호수아가 깨닫게 된 모세 지도력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시는 이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성도들을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게 하는 것, 자신 이상의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역의 핵심은 주님을 닮아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것을 헷갈려서 자기 사람 만들고, 큰 교회, 큰 목회, 큰 프로젝트를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영적 지도자의 핵심 태도이고, 목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야 한다.
4) 회개함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탐욕”이다. 탐욕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했던 것이고, 그 탐욕 때문에 참된 회개 없기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꿀꺽 삼킨 것이다. 그 결과는 기브롯 핫다아와(קִבְרֹותהַֽתַּאֲוָה, 탐욕의 무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명을 상기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의 탐욕을 회개하는 태도와 자세를 회복해야 했다. 하나님은 정말 두려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뜻을 반한 것에 대해서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렇기에 그런 거룩하신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 은혜요, 또 은혜이다.
적용 :
1)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혈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길을 가는 자이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판단, 상식,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온유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온유한 자를 쓰시는 분이시다. 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 근본이 사실은 자신의 탐욕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즉각적으로 참된 회개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결과는 기브롯 핫다아와(קִבְרֹותהַֽתַּאֲוָה, 탐욕의 무덤)가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련함이 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스스로 똑똑한 척 하는 자들의 우매함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탐욕이 아닌 온유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더욱 기도하자.
3) 민영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주님의 은혜의 손길에 민영이를 내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