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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거짓 교사
제목 : 거짓 교사들의 특징과 멸망
성경 : 벧후 2:1~3
찬송 : 340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0827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벧후 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에게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일단 흐르는 피부터 멈추게 하고, 터진 상처부터 꿰매야 합니다. 가장 긴급하고 꼭 필요한 조치를 해 주고, 단단히 일러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병에서 나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일러 주고 손에 쥐어 주듯 확실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베드로후서 1장이었습니다. 2장은 문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합니다. 건강한 몸속으로 악질 바이러스가 쳐들어와서 몸 곳곳에서 질병을 일으키고 다니는 증상들을 세세히 보여줍니다. 교회가 왜 ‘신적 성품’에 참여하고 이런 면에서 부지런히 성장해야 하는지, 병의 증상과 예상되는 결과를 보여 줌으로써 환자를 설득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래서 거짓 교사들이 어떻게 교회의 구석구석을 궤멸시키려 드는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암적인 존재가 되어 병을 깊게 만드는지, 베드로는 X-Ray로 찍듯, 아니 CT나 MRI로 촬영을 하듯 면면히 들여다 보게 해 줍니다. 또한 그 병의 결과와 위험 그리고 강력한 경고까지 곁들입니다.
√거짓교사들의 부패한 삶의 특징은 크게 보면 세 가지입니다.
1)교만
2)탐욕
3)방탕
그들은 교사로 활동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그들의 심령 속에 가득한 근본적 동기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여 제 멋대로 하려는 육적 자아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욕이 자라게 되고 방탕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패한 행실은 부패한 성품에서 나옵니다.
√신적 성품에 실패한 거짓 교사들
베드로가 1:4~7절에서 신적 성품의 덕목들을 열거할 때, 분명 거짓 교사들이 실패하는 덕목의 각 영역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은 신적 성품과는 전혀 다른 거짓 교사들의 부패한 성품과 행실들을 적나라하게 열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믿음 다음에 덕이 와야 한다고 강조했을까요?
실제로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믿음이 있다고 말했을 테지만 덕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들어와 있지만, 그들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습니다(2:2). 이들은 불의한 일을 하고 불의한 처벌을 받으며, 그래서 교회의 ‘점과 흠’으로 지목됩니다(2:13).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먹잇감으로 여기고 노략질할 뿐입니다(2:14). 성도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떠벌리지만 결국 자신도 죄의 노예로 무너지고 맙니다(2:19~22).
덕이 없는 이들에게 지식이 있을까요?
이들은 무모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을 통치하는 ‘주’가 되심을 부인하며 제 고집대로 하는 자들입니다(2:1).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던 불순종하던 자들처럼 무지한 자들이며(2:5), 주의 천사도 감히 고발하지 못하는 영적 존재도 무시해 버리고, 자신들이 무슨 지극히 큰 영적 권세를 받은 양 호언장담하며 떠벌리는 자들입니다(2:11). 오죽하면 베드로는 이들이 잡혀 죽기 위하여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처럼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를 생각하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라고 했겠습니까?(2:12) 이들의 무지와 무식은 끝이 없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결국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지식이 없는 그들에게 절제가 있을 리 없습니다.
절제 없는 그들은 탐욕과 방탕으로 내달립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여 순복하는 경건이 아닙니다. 불 경건입니다. 그 불 경건의 뿌리는 그들 속에 있는 절제되지 않는, 스스로 절제하지 않는 탐욕과 방탕의 정욕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란한 방탕의 정욕을 따라 성도들을 유혹하고(2:2), 실족하게 하고(2:18), 파멸로 끌고 갑니다(2:19~22). ‘탐욕’은 저들의 브랜드입니다. 저들은 ‘잘 팔리는 복음’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부터 성도들을 통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가르침입니다(2:3). 거짓 교사들은 단순히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절제 없는 탐욕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자들입니다(2:14). 저들 속에 있는 절제 없는 탐욕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그 씻었던 구덩이로 돌아가는 것처럼, 끝내 그들이 나왔다고 말하는 그 불 경건 속으로 던져 버립니다.
절제가 없는 그들에게 인내가 있을 리 없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도 멈출 수 없습니다. 인내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그에게 주신 그 은혜와 영광의 자리, 택하고 부르신 그 자리에 지속적으로 견디어 남아 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도의 자리, 교사의 자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의 자리를 벗어나는 길을 잃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으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성도의 인내에서 벗어나 점점 영적 소경이 되어 가는 자들입니다(1:9). 그래서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지 않기 때문에, 신적 성품에서 성장하지도 않습니다. 점점 더 옛 죄를 깨끗하게 하심도 잊어버리는 자리로 추락하고 맙니다(1:9).
결국, 그들의 나중 형편은 처음보다 비참하게 됩니다. 절제 없는 탐욕과 방탕한 정욕의 끝은 불 경건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교만입니다. 저들은 자기들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거절합니다(2:1).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들도 함부로 입을 떼기 어려워하는 영적 대상도, 자신들이 말 한마디면 복종할 것이라는 듯이 가증하고 무모한 허세를 떱니다(2:11). 교만은 불 경건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 불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무지와 무식으로 부인하고 조롱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결국 그들은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곧 거룩한 행실과 경건의 신적 성품에 참여하고 성장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그 영원한 나라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불경건한 자들이 형제 우애를 할까요?
저들은 거짓과 탐욕, 그리고 방탕을 좇아 하는 모든 행실들은 한결 같이 형제들을 실족과 파멸로 이끕니다. 이들은 교회의 교사들이라고 자처하지만, 교회에 속한 믿음의 형제들의 얼굴에 수치를 끼칩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유혹에 빠뜨리고 파멸로 인도합니다. 양 무리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잡아먹는 이리 떼요 짐승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히려 살인하는 자들이 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내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요일 4:9). 거짓 교사들의 불 경건, 그들의 무지, 그들의 부도덕, 그들의 불신앙, 무엇보다 그들 속에 타오르는 절제 없는 탐욕과 방탕, 그리고 그 뿌리가 되는 교만 곧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제 멋대로의 짐승 같은 자아’가 형제들과 심지어 그들 자신을 죽이는 살인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그 죄를 품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짓 교사들은 믿음에서 덕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믿음에서마저 파선한 자들입니다. 결단코 사랑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만한 ‘거룩한 행실과 경건’도 없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신적 성품에 참여하지도 거기서 성장하지도 못한 실패자들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거룩한 교회는 이런 자들에게서 속히 돌아서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과 그들의 확정된 멸망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벧후 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우선 1절에서 거짓 교사들이 출현할 것임을 예고한 후에, 가장 인상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그들의 ‘멸망’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1절에서부터 이들의 확실한 멸망에 대한 단호한 선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여섯 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1)분당(分黨)
‘분당’이란 성경과 교회가 인정한 복음의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 종말과 심판 등에 대한 분명한 진리에서 어긋나는 이단적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결국 그 복음의 진리를 붙들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이단적인 단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역개정판은 ‘멸망케 할 이단’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요한서신에 가면, ‘예수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이 배경이 되는데 이들은 결국 교회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나가 그들이 본래부터 참된 진리에 속해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자들이 나타납니다(요일 2:19).
베드로후서에서는 나중에 이런 ‘이단’으로 분명히 드러나기 전에, 이미 교회 안에서 그런 ‘분당’의 발단이 되는 거짓 가르침을 퍼트리기 시작하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직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가기 전, 교회 안에서 결국 이렇게 이단적인 될 가르침을 몰래 끌어들이고 또한 퍼트리는 자들입니다. 과거 이단들이 교묘하게 교회 안에 침투하여 교회를 통째로 끌고 가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2)그리스도의 주권부인
저들은 형식적인 신앙고백은 있지만, 마음으로는 자신들을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도 개의치도 않는 방만한 자들로서, 결국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고백하고도, 실제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삶의 ‘주인’된 것을 적극적으로 ‘부인’한 것은 그들이 믿는 바가 사도들이 가르친 바와 근본적으로 다른 거짓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말로는 자신들의 죄에서 해방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공공연히 그들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부인하고 자행자지하는 것은,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도 거짓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도리어 ‘자유를 준다’고 유혹하지만, 결국 그들 자신이 죄의 종이 되어, 처음 죄에서 해방된 것처럼 행동했던 상태보다 훨씬 더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폭로합니다(2:18~22).
√3)방탕
거짓 교사들의 세 번째 특징은 방탕입니다. ‘방탕’(아셀게이아)이라는 표현은 종종 ‘호색’(개역한글/개정)의 경우처럼 성적으로 방탕한 행위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조금 더 폭넓게 ‘부끄러운 행위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원래 뜻은 어떤 ‘법적 제한이나 도덕적 제한에 개의하지 않는’ 방만한 태도에서 나오는 반율법적이고 비도덕적 행위들을 가리키며, 그 결과로서 무모하며 ‘파괴적인 행위들’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탕, 음란과 같은 무법하고 부끄러운 행위들은, 당대 이방인들이 우상 숭배와 더불어 행했던 술 취함과 난잡한 술잔치에 포함되는 특징적인 형태였습니다(벧전 4:3). 거짓 교사들은 당시 로마 사람들이 신(神)을 섬기는 그 이방 성전에서 혹은 그 신들을 예배했던 자들이 모여 난잡한 술잔치에서 행했던, 규제 없는 음란하고 방탕한 행실들을 그대로 전하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말하며 가르쳤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 존재하는 이단들은 한결같이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4)진리의 길을 훼방함
세속적인 방탕한 행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또한 3절에서 폭로하는 대로 성도를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거짓 교사들의 사악한 탐심(貪心)은 결국 교회에 치명적인 수치를 가져옵니다. 거짓 교사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을 좇다가 함께 실족하는 많은 신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 모욕을 받으며 진리의 길, 복음 전도의 길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에 진리의 길은 훼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세상 앞에서 진리의 길을 훼방할 뿐 아니라 교회의 점과 흠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를 통분히 여깁니다(2:13). 거짓 교사들의 방탕과 탐욕의 행위들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도록 방치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수치요, 실패입니다. 요즘에도 간혹 방송에 이단들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들이 방영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과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무조건 교회를 싸잡아 비판을 합니다.
√5)탐욕의 종교 장사꾼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는 교만과 제 정욕대로 행하는 방탕한 행실과 함께, 거짓 교사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의 탐욕입니다. 순서상으로는 2절의 방탕 다음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탐욕이 그들의 교만과 방탕의 뿌리입니다. 유다서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의 경우에는 방탕과 음란이 더 강조되지만, 전반적으로 베드로후서의 세속적인 거짓 교사들의 경우에는 탐욕이 더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13~16). 그들은 탐심을 채우기 위하 거짓으로 말을 지어내 그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들은 말들 곧 그들의 가르침, 설교, 신학 등은 성경구절을 이리저리 섞어서 언 듯 보기에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력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도들로부터 돈을 착취해 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폭로하는 거짓 교사들의 실체입니다. 실제로 이단들을 보십시오. 수많은 회사들을 경영하고 부동산이나 현금 자산을 어마어마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성도들에게 돈을 뜯어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떤 거짓 교사들은 ‘생명나무 헌금’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당장 헌금하면 자신이 축복기도를 해 주며 그러면 병도 금방 낫는다고, 무당도 잘 안 하는 천박한 사기 행각으로 양 무리들을 털어 먹는 신종 거짓 교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6)멸망을 선고받은 자들
거짓 교사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그들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들의 가장 큰 무능은 자신들이 멸망으로 달려가는 그 빗나간 길에서 돌이키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앞에 놓인 것은, 그들이 탈취하여 골수를 빼먹으려는 양 무리의 멸망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 자신의 멸망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혹시 처음에는 영적으로 어떤 감각이 있었는지 모르나, 지속적으로 더럽고 썩어지고 허무한 세속의 본질을 추구한 결과 그들의 성품이 말할 수 없이 부패해져서 더 이상 영원한 나를 볼 수도 바랄 수도 없는 영적 소경 상태에 들어갑니다(1:9).
베드로는 1~3절까지의 단 세 구절에서, 1절에 이어 3절에서도 한 번 더 거짓 교사들의 신속한 멸망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이 그만큼 확실하므로 그런 어리석은 자들을 결단코 따라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들을 따르다가 그들과 함께 서게 되고 결국 그 멸망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저들을 향한 심판이 ‘즉각적이고, 신속할’ 뿐 아니라 옛적부터 그런 악행에 대한 심판의 판례들이 있었고, 또한 그 심판에 따른 형벌의 집행 역시 조금의 지연도 없이 착실히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시켜 줍니다(3절).
베드로는 이제부터, 4절 이하에서 22절까지 거짓 교사들의 임박한 멸망이,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행해진 ‘판례들’(CASES)를 통해 볼 때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3장에 들어서면, 거짓 교사들에 대한 확실한 심판에 대한 선고가 종말의 날에 어떻게 ‘잠들지 않은 채’ 생생하게 집행될 것인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중요한 특징 교만, 탐욕, 방탕을 잘 분별합시다. 거짓 교사들에게 속지 맙시다!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 왜곡된 복음, 순전하지 않은 복음, 사람의 탐욕과 방탕을 부추기는 말들, 그들이 속이는 말들에 결코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들에게서 신속히 돌아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