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족벌언론과 사주들의 맨얼굴 ⑥ ] 중앙일보(3)
우리나라 족벌신문사와 사주들은 ‘권력 그 자체’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재벌과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을 감시하는 임무는 입맛에 따라 선별적으로 하거나, 회사와 사주들의 이익(私益)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처럼 공격의 대상으로 지목되면 사소한 잘못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 과정에서 오보로 판결이 나도 좀처럼 지면을 통해 사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족벌언론과 사주들의 특징을 3가지만 꼽으라면, 거짓말, 뻔뻔함, 그리고 집요함을 든다. 목표가 정해지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 이들에게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엄청난 ‘방송 무기’까지 안겨주었다. 이제 신문과 방송 모두를 가진 족벌언론과 사주들은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대법원에서 탈세 확정판결을 받아도 대통령이 사면해 준다. 대통령은 임기 5년이 끝나면 물러나지만, 족벌언론 사주들은 대물림으로 ‘족벌언론 왕국’을 영속적으로 지배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한국의 지배세력이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그들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혼맥으로 얽히고 설킨 지배세력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족벌언론 사주들부터 살펴본다. 독자와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편집자주>
중앙일보, 이맹희-이건희 소송전 계기로 CJ-이재현 ‘난타’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1910-1987) 전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1931년생; 전 제일비료 회장)씨와 3남인 이건희(1942년생) 삼성그룹 회장 사이의 ‘형제 전쟁’은 ‘아주 오래된, 현재 진행형’이다.
이병철 회장 후계 구도나 경영권 세습과정에서 시작된 싸움이지만, 현재는 ‘비정하고 적대적 양상’을 띠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지휘아래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하는 동안 맏형인 이맹희씨는 은둔생활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서 완전히 멀어져 갔다. 극히 일부 가족을 빼고는 그의 거주지나 소재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다 작년 2월 이맹희씨가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주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제 전쟁이 되살아나 세상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소송전을 계기로 이건희 회장이 자신보다 11살 위의 형을 상대로 좀처럼 입에 담기 어려운 ‘막말’을 쏟아내 세상 사람들을 두 번 놀라게 만들었다.
두 형제 사이의 소송전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중앙일보의 맨얼굴을 여지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널리 알려진대로 이병철 회장이 1965년 설립한 신문으로, 1999년 계열분리될 때까지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것처럼, 이병철 회장도 한 때 직접 정치에 뛰어들려고 1년 동안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심 끝에 직접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대신 정치권력보다 무서운 ‘언론권력’을 선택한 결과가 중앙일보와 TBC(1980년 언론통폐합 때 KBS에 흡수합병) 등의 설립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작고하기 1년 전인 1986년 발행한 자신의 유일한 회고록인 ‘호암자전(湖巖自傳)’에서 이에 관해 비교적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
▲ 지난 2010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이병철탄신100주년 기념식’에서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의 생전모습을 담은 추모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병철씨, ‘정치보다 더 강한 힘’ 위해 언론사 설립
“나는 생애에서 단 한번 정치가가 되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 4·19와 5·16혁명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중략)… 그러한 기업활동에서 얻은 수익으로 세금을 납부하여 정부 운영과 국가 방위를 뒷받침하는 이 경제인의 막중한 사명과 사회적 공헌은 전적으로 무시되고, 부정축재라고들 죄인의 오명까지 쓰게 된다. 이와 같은 경제인의 힘의 미약함과 그 한계를 통감한 것도 정치가가 되려고 생각한 동기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1년여를 두고 숙려(熟廬)한 끝에 정치가에의 길은 단념했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잘 살게 하는데 있다. 그런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결국 종합 매스콤의 창설을 결심했다.”
“언론은 그것을 구사하기에 따라 정의가 되기도 하고, 불의가 되기도 한다. 펜이란, 언론이란, 이 양면의 성격과 기능을 지닌 ‘양(兩)날의 검(劍)’인 것이다. 이것을 충분히 인식한 바탕 위에서 자율의 억제가 통하고 균형감각이 잡힌 힘 있는 종합 매스콤을 만들어 그것을 육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박대통령과도 협의하였더니 찬의(贊意)를 표하면서 그 자리에서 홍종철 문교부장관(문화공보부장관도 지냄: 편집자 주)에게 전화를 걸어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지시하였다.” (호암자전 182-183쪽)
중앙일보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밝힌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는 언론 정도의 길을 걸었는지, 그 평가는 국민과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중앙일보는 사실상 ‘삼성의 사보’ 역할에 충실히 해 왔다는 사실이다.
창간 이후 삼성과 이맹희, 이건희씨 등 창업주 가문에 관한 부정적인 소식은 일절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 보도해 온 것으로 비판받아 온 중앙일보가 이맹희씨의 소송 제기 이후, 맹희씨의 장남인 이재현(1960년생) 회장의 배임, 탈세 혐의 등에 관해서도 ‘예외없이’ 보도하는 등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씨제이그룹 이재현 회장의 탈세와 배임 등의 규모가 워낙 커 법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없고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이지만, 이재현의 입장에서는 장손인 자신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던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살아있다면 중앙일보가 그렇게 매정하게(?)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서슴지 않았을까 상상할 지도 모른다.
이병철 회장은 둘째 아들인 이창희(1933-1991: 전 새한그룹 회장)씨가 삼성그룹의 사카린 등의 밀수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담은 장문의 투서를 박정희 대통령에 보낸 것으로 알려지자, 장남인 맹희씨가 뒤에서 부추긴 것으로 판단하고 맹희씨를 가문에서 ‘파문’한다. 이병철 회장은 차남 창희씨가 잘못했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용서를 구하자 어느 정도 용서했지만, 결백을 주장하는 장남 맹희씨에 대해서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용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이병철 회장도 부인 박두을(1906-2000) 여사와 자신을 모시고 산 장손인 이재현 회장과 손부(孫婦)인 김희재씨에게는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현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 할아버지 몰래 씨티은행에 입사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그만두게 하고 제일제당(당시 삼성그룹 주력 계열사)에 입사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 7월 18일 6,200억원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546억원의 조세포탈 및 963억원 횡령혐의로 구속된 이재현 회장은 만성신부전과 희귀한 근육 위축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CMT)’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20일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허가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 8월 28일 동갑내기 부인 김희재씨의 신장을 이식받고 회복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회장이 아직 살아있다면, 회고록에서 솔직하게 고백한대로, 자신이 설립하고 씨를 뿌린 중앙일보와 동양방송(TBC)이 종합편성채널(JTBC)로 부활하여 거대한 복합미디어그룹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고 어떤 감회에 젖을까? 아울러, 자신의 맏아들 맹희는 미워했지만, 그토록 아끼고 애정을 쏟았던 장손 재현씨가 배임과 탈세 등의 혐의로 감옥에 가는 과정에서 중앙일보가 보인 보도 태도를 지하에서 보고 있다면 통곡하지 않을까?
출 처 http://special.mediatoday.co.kr/network/?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