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추억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굴은 주름지고 뱃살은 축 쳐져도 옛날 추억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활력이 생긴다. 추억의 힘이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이 들수록 진짜 부자는 '추억이 많고, 추억을 함께 할 사람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요즘은 어느 정도가 나이듬의 경계점인지 점점 모호해지고 있지만, '적당히 나이 든' 나는 요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추억은 오래 살기만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기억이 많아질 뿐이다.
추억이라는 것은 그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이 동반되어 있어야 한다.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나도 두근대는 여행이 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오랜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은 출발 전 부터 행복감에 들뜬다. 서울에 번듯한 내 집 하나 없어도 이렇게 추억을 함께 할 친구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부자다.
군산에 오랜 친구와 함께 하기 좋은 여행지가 있다.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철길마을은 장농 속에 보관된 끈적끈적한 접착 앨범을 들춰보는 아련한 여행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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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실어나르던 철길의 변신
군산은 일본 식민지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도시다. 군산항을 통해 일본은 우리나라 호남평야의 질좋은 쌀을 수탈해갔다. 전북지역 농민들은 가장 많은 쌀을 생산했음에도 가장 가난한 농민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겪어야 했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역시 일본 식민지배와 관련이 있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종이가 자급자족되길 바랬다. 그래서 군산에 제지공장을 설립했다. 제지 원료와 생산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군산역에서 제지공장까지 2.5km의 길에 철로가 놓여졌다.
하지만 1년도 안돼 일본은 패망했다. 해방 후 1950년대에는 고려제지선으로, 이후는 페이퍼코리아선으로 불리어졌다. 놀라운 건 1944년부터 2008년까지 64년간 이 철로는 제지 회사만 이용하던 길이었다.
결국 2008년 철로는 폐쇄됐고 독특하 분위기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다. 철로 주변에 하나둘씩 1960~80년대 기념품숍 등이 들어섰고 지금은 군산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로 떠올랐다.
일본은 군산항을 통해 호남의 쌀을 약탈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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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의 일요일 아침을 책임지던 영원한 테리우스
물건은 추억을 전한다
철길마을은 좁은 철로 양 옆으로 기념품숍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데, 이 모습은 태국 매끌렁 기차마을과 닮아있다. 이곳은 지금은 멈춘 철길이지만, 매끌렁은 여전히 기차가 운행되는 살아있는 철로가 차이점이다.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상인들은 철로 옆에 펼쳐놓았던 채소, 과일, 생선 등을 빠른 속도로 정리하고, 기차가 지나가면 다시금 아무렇지 않게 좌판을 펼친다. 이 모습이 여행자들에게는 신기해 지금은 태국의 인기여행지가 됐다.
지금은 운행이 중단되긴 했어도, 철길은 저절로 추억을 연상시킨다. 대학시절 MT를 떠나던 경춘선의 철길. 맘에 들던 동기생이 기차 연결 통로로 나가면 슬며시 따라나가 말을 걸기도 했던 풋풋했던 그 공간. 갑자기 밤 바다가 보고 싶다며 첫사랑과 청량리역 막차를 탔던 기억. 풋사과처럼 덜익었던 추억들이 철길 위에 떠다녔다. 우리는 수많은 추억을 토해냈다. 때로는 잊고 지냈던 기억에 손뼉을 치기도 했고, 사소한 추억에도 눈물이 찔끔 날정도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시절을 함께 했기에 함께 웃을 수 있다.
태국의 매끌렁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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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옆 기념품 숍은 철길마을의 가장 큰 재미다. 가게에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한두개씩은 묻어있을 법한 장난감들이 가득하다. 아직도 이런 물건을 만드는 곳이 있을까 놀랠 정도다.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서 먹던 형형색색의 불량식품들.(그때는 엄마가 해준 밥보다 그게 더 맛있었다) 그리고 구슬치기, 공기놀이, 팽이치기, 딱지치기, 인형놀이까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의 물건들이다. 장난감 자체보다 이 물건을 보면 떠올려지는 추억이 있기 때문에 물건은 의미가 생긴다. 그래서 연인과 이별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사람의 물건을 없애는 일이지 않은가.
어렸을 적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나는 늘 장난감이 부족했다. 다른 친구들은 금발의 마른인형이 한 두개씩은 꼭 있었는데, 난 왜 없냐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곤 했다. 공주처럼 옷을 입혀보고도 싶고, 머리도 예쁘게 묶어주고 싶었다. 그 나이 때 여자아이들에게 마른인형은 또 다른 자아나 마찬가지였다. 그럴때면 엄마는 종이인형을 사오며 미안해했다. 어쩔 수 없이 두꺼운 도화지에 그려진 인형 옷을 가위로 잘라 어깨에 매달며 만족해야 했지만, 팔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마른 인형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난 종이인형을 사주던 엄마 나이가 됐고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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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빌려입고 철길마을을 걸어볼 수도 있다
옛날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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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마른인형 대신 종이인형을 갖고 놀던 그때가 그립다
그 시절 집집마다 있던 못난이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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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은 못난이 삼형제다. 기념품 숍마다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전시되어있고, 아예 못난이 인형만 파는 전문숍도 있다. 어렬 적에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집에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하나씩 있었다. 생활이 어렵던 우리집 조차 못난이 인형은 앉은뱅이 책상위에 다소곳이 올려져 있었다. 새까만 얼굴에 빳빳한 직모를 가진 세 명의 형제가 찡그리거나 울고 있는게 이 인형의 매력이다. 우리나라 70~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못난이 인형이 왜 인기였을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등장한 플라스틱 인형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자유롭게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표정이 가족들을 먹여살리느라 고생한 부모님들의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에서 파는 못난이인형이 그때보다 좀 더 과감하고 세련돼졌다. 머리스타일도 제각각이고, 옷도 화려해졌다. 때론 술을 든 못난이인형도 있다. 표정도 다양하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철길 끝에서 끝까지는 20여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길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보는 추억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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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오늘 우리 막걸리 한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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