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47,1-9.12; 요한 5,1-16
+ 찬미 예수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원전 587년, 첫 번째 예루살렘 성전이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야훼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어찌 이민족의 침입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단 말입니까?
이에 대해 에제키엘 예언서 전반부(8-11장)는 바빌론이 공격해 오기 전에,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시는 장면을 그립니다. 백성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성전을 떠나셨고, 바빌론은 빈 성전을 함락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에제키엘은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고(40-42장) 주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장면(43장)을 예언하는데요, 그리고 오늘 독서 말씀이 이어집니다. 주님의 집, 곧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는데 이는 커다란 강이 되어 온갖 생물과 나무들을 살게 합니다.
교부들은 이 물이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보는 한편, 정화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세례의 물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벳자타 못의 물 역시 세례의 물을 상징합니다. 벳자타 못은, 어떤 사본에는 ‘벳에스타’(베데스타)라고 표기되어 있는데요, 이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 되기는 합니다만, 잘못 표기된 것일 가능성이 크고, ‘벳자타’가 맞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동안 앓고 있는 병자를 보시고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 사람에게 ‘들것을 들고 다니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치유에는 관심이 없고 안식일 법을 지키는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2002년도에 했던 피정이 생각났는데요, 피정 마지막 날 나눔을 하는데 그날 복음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이었습니다. 어느 수녀님께서 나눔을 하셨는데, 당신이 수도 생활을 하신 지 38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38년 내내 주방에서만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평생 몸담아왔던 수도회의 규칙이 어느 날 갑자기 안식일 법처럼 느껴지셨다고 합니다. 사소한 규칙 하나를 어겼는데 당신에게 돌아온 질타를 대하며,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이 규칙이 안식일 법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쁜 와중에 8박 9일간 실컷 기도만 하고 가니, 이제 원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돌아가서 기쁘게 수도 생활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수녀님의 긴 수도 생활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어떤 규칙을 어기셨기에, 당신이 38년간이나 지켜왔던 수도 규칙이 그렇게 느껴지셨는지, 마음이 무척 짠했습니다.
안식일 법 그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이고,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의 쉼으로 초대하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내가 그것을 지키며 하느님을 만나면 좋은 것이지만, 남에게 강요하고 그것으로 남을 비난할 때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벳자타 못의 병자입니다. 스스로 변화되고 싶지만 변화되지 못하고, 고치고 싶은 악습을 안고 살아가며, 물이 출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 남에게는 안식일 법을 강요하는 바리사이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가 치유되었는지에 시선이 간다면 우리의 시선과 예수님의 시선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안식일 법을 지키는지에 시선이 가 있다면, 우리의 시선은 바리사이의 시선을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