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9:1-10
하나님 앞의 인간
##### 1.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습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2절).
이 한마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여 중구 난방 시끄러운 천만 사람의 입들을 단번에 막아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나설만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인격이 뛰어나서 인류가 성인이라고 추앙하는 몇몇의 경우가 있고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비교적 출중한 덕을 지니고 사는 이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고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실 때 전체 인류가 다같이 죄인이란 점에서는 서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상에는 뛰어나게 높은 산들이 더러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 볼 때는 평지와 다름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보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수준에 이른 자, 하나님과 더불어 정상적으로 교제를 나눌 수준에 스스로 이른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악된 인간의 판단력으로 감히 하나님을 저울질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의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초월하여 세상 만물과 각 인생의 앞길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들을 친히 기르시는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을 인도하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 2.인간은 하나님과 쟁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쟁변하려 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3절).
하나님께서 천 마디로 지적하신다 하더라도 인간은 거기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답변할 수 없다는 단정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하신 일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막막한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경우가 심각한 것일수록 잘못된 것은 하나님편이 아니라 인간 편임이 조만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일본의 어떤 저술가는 뜻밖에 당한 자기 아내의 죽음을 두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은 엄청난 실수를 했습니다'라고 항변했습니다. 자기 원고 정리를 아내가 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 제 자신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소서'
너무나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교인 중에는 하나님은 왜 이 땅에다 죄와 고통을 만들어 냈느냐 원망하면서 그 탓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불량한 자녀가 자기 부모에게 왜 날 나았느냐고 항변하는 짓과 조금도 다를 것이없습니다. 이 점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진흙 그릇이 어떻게 토기장이에게 힐문할 수 있느냐고 경고하였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한마디도 쟁변을 벌일 수 없습니다. 온갖 모순은 다 인간의 죄악과 어리석음에서 온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최선의 도리입니다.
##### 3.인간은 하나님을 힘으로 항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4절)
힘으로 하나님을 항거하다니 이 세상에 그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최근 세계 각처에서 홍수와 지진 등의 천재 지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목숨을 잃고 힘들여 장만한 삶의 거처들을 상실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런 재난은 하나님의 콧김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상상을 초월할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티끌만도 못한 하찮은 존재인 인간이 우주 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힘으로 항거한다면 이는 자멸을 재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에는 그런 망동을 부린 자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거할 정도를 넘어, 자기가 신을 죽였다고 선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미쳐서 죽는 자멸을 낳았습니다. 교만한 인간 사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한 불경 죄는 없는 것입니다.
<예화>// 인류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인 2차 세계대전은 1936년 독일,이탈리아, 일본의 삼국동맹체결로 한층 가속화 되었습니다. 이 삼국동맹의 결과로 평화로운 지구 곳곳은 온통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로 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적인 것 중에서 하나님 대신 자신들을 신격화 한 것과 기독교인을 학대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정의로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삼국동맹의 주역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유태인을 600만이나 학살한 히틀러는 연합군이 독일로 전진해 오던 45년, 지휘벙커에서 애인 엠마 브라운과 함께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극악한 파시스트인 이탈리아의 뭇솔리니는 45년 연합군에 패전후 국경밖으로 도망하려다 암살됐습니다. 일본의 동조 천황은 전쟁기에 국민들로부터 거의 신으로 떠받들어지던 이미지를 모두 상실한 채 89년 한 인간으로 돌아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전쟁의 악령에 사로잡혔던 세사람은 결국 그 악령의 조종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쳤던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하나님께 대항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쓰라린 자기 파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를 깨닫는 사람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욥 9:11-24
하나님 앞의 욥
##### 1.자기 죄를 인정해야 한다
본문 20절...<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지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
--우리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 2.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본문 12절...<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또 본문 15절...<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
--이것은 설명이 필요없는 말이다. 믿는 자의 최고의 무기는 겸손이다.
정말 우리가 겸손한가? 한 번쯤 우리를 돌아보자.
교회에는 이런 인물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 잘 배운 사람, 훌륭한 사람, 그런 사람보다도 오히려 겸손한 사람이 많은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겸손을 배우자.
##### 3.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 19절...<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호출하겠느냐.>
과연 우리가 그렇게 사는가?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의 이익을 채우려는 우리가 아닌가?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자.
욥 9:25-35
절망속에 부르짖는 욥
욥은 고난을 당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으며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다. 심각한 절망속에서 욥은 자신을 한탄하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절망속에서 고통받는 욥이 부르짖는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 1.욥은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다
본문 25-26절...<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세월이 빨리 간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본문에서 욥은 인생을 체부, 빠른배, 독수리로 비유하고 있다.
이런 인생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야 할까?
값지고 보람되게 보내는 인생이 되자. 후회없는 인생을 살자.
##### 2.허무한 우리의 인생이 그것도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다
27-28절...<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우리의 죄를 아는가? 우리는 짧은 인생을 죄중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자랑할 것이나 내세울 것이 없는 인생이다.
값지게 살자.
##### 3.우리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28절 상반절에 <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가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것이다.
--나치 독일의 죽음의 소용소에서 수만명이 죽어나가는 그 어려운 상황을 견디어내고 살아남은 붐(Corrie ten Boom)이라는 사람은 그의 수기에서 이런 말을 썼다. <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 어두워졌다고 해서 당신은 기차표를 찢어 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 내리지는 않겠지요. 조용히 앉아 기관수를 믿고 있는 것이 최선책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끔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답답해지고 어두워진다. 그러나 터널은 임시적이며 통과하게끔 되어 있다. 붐씨는 기관수를 하나님으로 말했다. 침착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고통을 통과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뜻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 소위 안전이란 막연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자연계나 인간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긴 일생을 두고 생각할 때 위험을 피한다는 것은 과감하게 자기를 노출시키는 것보다 더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삶이란 모험을 감행하든지 혹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든지 둘 중 하나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능자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위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 4.욥은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본문 32-34절...<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힘을 믿고 그 힘앞에 나의 초라한 모습을 그대로 내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어려울때일수록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겸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