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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앞부분의 줄거리] ‘나(오 선생)’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권 씨는 직장을 잃은 상태로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어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다. 이후에 ‘나’가 돈을 입금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권 씨는 강도짓을 하러 ‘나’의 집에 칼을 들고 들어온다.
“도둑맞을 물건 하나 제대로 없는 주제에 이죽거리긴!”
“그래서 경험 많은 친구들은 우리 집을 거들떠도 안 보고 그냥 지나치죠.”
“누군 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나? 피치 못할 사정 땜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강도를 안심시켜 편안한 맘으로 돌아가게 만들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대개 그렇습디다. 가령 식구 중에 누군가 몹시 아프다든가 빚에 몰려서…….”
그 순간 강도의 눈이 의심의 빛으로 가득 찼다. 분개한 나머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떨면서 그는 대청마루를 향해 나갔다. 내 옆을 지나쳐 갈 때 그의 몸에서는 역겨울 만큼 술 냄새가 확 풍겼다. 그가 허둥지둥 끌어안고 나가는 건 틀림없이 갈기갈기 찢어진 한 줌의 자존심일 것이었다. 애당초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내 방법이 결국 그를 편안케 하긴커녕 외려 더욱더 낭패케 만들었음을 깨닫고 나는 그의 등을 향해 말했다.
“어렵다고 꼭 외로우란 법은 없어요. 혹 누가 압니까,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아끼는 어떤 이웃이 당신의 어려움을 덜어 주었을지?”
“개수작 마! 그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그는 현관에 벗어 놓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구두를 보기 위해 전등을 켜고 싶은 충동이 불현듯 일었으나 나는 꾹 눌러 참았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선 다음 부주의하게도 그는 식칼을 들고 왔던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엉겁결에 문간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의 실수를 지적하는 일은 훗날을 위해 나로서는 부득이한 조처였다.
“대문은 저쪽입니다.”
문간방 부엌 앞에서 한동안 망연해 있다가 이윽고 그는 대문 쪽을 향해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대문에 다다르자 그는 상체를 뒤틀어 이쪽을 보았다.
“이래봬도 나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오.”
누가 뭐라고 그랬나. 느닷없이 그는 자기 학력을 밝히더니만 대문을 열고는 보안등 하나 없는 칠흑의 어둠 저편으로 자진해서 삼켜져버렸다.
<중략>
그 다음 날, 그 다음다음 날도 권 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그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그리고 본의는 그게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내 방법이 매우 졸렬했음도 이제 확연히 밝혀진 셈이었
다. 복면 위로 드러난 두 눈을 보고 나는 그가 다름 아닌 권 씨임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밝은 아침에 술이 깬 권 씨가 전처럼 나를 떳떳이 대할 수 있게 하자면 복면의 사내를 끝까지 강도로 대우하는 그 길뿐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병원에 찾아 가서 죽지 않은 아내와 새로 얻은 세 번째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현관에서 그의 ⓐ구두를 확인해 보지 않은 것이 뒤늦게 후회되었다. 문간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차갑게 일깨워 준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어떤 근거인지는 몰라도 구두의 손질의 정도에 따라 그의 운명을 예측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구두코가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닦여져 있는 한 자존심은 그 이상으로 광발이 올려져 있었을 것이며, 그러면 나는 안심해도 좋았던 것이다. 그때 그가 만약 마지막이란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새끼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길을 가로막는 그것이 그에게는 대체 무엇으로 느껴졌을 것인가.
아내가 병원을 다니러 가는 편에 아이들을 죄다 딸려 보낸 다음 나는 문간방을 샅샅이 뒤졌다. 방을 내준 후로 밝은 낮에 내부를 둘러보긴 처음인 셈이었다. 이사 올 때 본 그대로 세간이라곤 깔고 덮는 데 쓰이는 것과 쌀을 익혀서 담는 몇 점 도구들이 전부였다. 별다른 이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구태여 꼭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찾자면 그것은 구두일 것이었다. 가장 값나가는 세간의 자격으로 장롱 따위가 자리 잡고 있을 꼭 그런 자리에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 사열받는 병정들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닦인 것이 여섯 켤레, 그리고 먼지를 덮어쓴 게 세 켤레였다. 모두 해서 열 켤레 가운데 마음에 드는 일곱 켤레를 골라 한꺼번에 손질을 해서 매일매일 갈아 신을 한 주일의 소용에 당해 온 모양이었다. 잘 닦여진 일곱 중에서 비어 있는 하나를 생각하던 중 나는 한 켤레의 그 구두가 그렇게 쉽사리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걸 알딸딸하게 깨달았다.
권 씨의 행방불명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될 때였다.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기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되도록 침착해지려 노력하면서 내게 이웃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누차 장담한 바 있는이 순경을 전화로 불렀다.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나)
[앞부분의 줄거리] 막이 오르면 결혼을 소망하는 한 빈털터리 남자가 어떤 여자도 가난한 자신과 결혼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관객들에게 물건을 빌려 스스로를 부자처럼 꾸민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하인은 이 빌린 물건들을 하나씩 회수해 간다. 남자는 한 여자를 빌린 집으로 초대한다.
남자: 결혼하십시다.
여자: 결혼? 누가 누구하구요?
남자: 그야 내가 당신하구지요.
여자: 만난 지 몇 분 됐다구 그러시죠?
남자: 시간을 따진다면야 나도 할 말이 많죠.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린지 아십니까? 짐작이 안 가시면 여기 계신 분들께 물어보십시오. 내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그 삼분지 일이나 덧없이 보내고서야…….
(하인, 느닷없이 덤벼들어서 남자의 구두를 벗겨 간다. 여자는 몹시 당황한다. ㉠남자는 만류하지만 하인은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과시하려는 듯 시계를 가리킨다. 남자는 구두를 빼앗기고 하인은 벗겨 낸 구두를 가져간다.)
남자: 내 하인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여자: 뭐죠?
남자: ⓑ구두가 내 발에서 떠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여자: 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남자: 어찌 아시겠습니까? 인생이 그런 것이라곤 …….
여자: 인생이 그런 거라뇨?
남자: 아, 아니요. 제발 알려고는 마십시오. 여자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남자는 그걸 알기 때문에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여자: (현기증이 나서) 뭐가 뭔지…….
남자: 부디 모르십시오.
여자: 물 한 잔 주시겠어요?
남자: 그러십시다. (하인에게) 자네 물 한 잔만 주게.
하인: (부동자세)
남자: ㉡그럼 물 한 잔만 빌려 주게.
(하인, 물 한 잔을 가져온다.)
남자: 그냥 달라고 할 땐 꼼짝도 않더니 빌려 달라고 하니까 가져오는군. (여자에게) 드십시오.
여자: 고마워요.
남자: 뭘요, 빌린 건데요.
(여자, 물을 마신다.)
남자: 정신 좀 드십니까?
여자: ㉢여전해요.
남자: (미소를 짓고) 익숙해지면은 좀 나을 겁니다.
여자: 저는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당신이 이렇게 부자리라곤 꿈도 못 꿨죠. 전보에 알려 주신 대로 찾아왔더니…… 이건 너무 어마어마한 저택이잖겠어요? 문 앞에서 저는요, 한참이나 망설였어요.
남자: 어려워 마시고 그냥 들어오실걸.
여자: 아뇨. 황홀해서 망설였던 거예요.
남자: (미소를 짓고) 아, 그랬어요?
여자: 네. 당신의 전보를 받았을 때요, 저의 어머닌 말씀하셨답니다. ㉣얘야, 어서 가 봐라. 가 봐서 빈털터리 같거든 아예 되돌아오구 부자거든 꼭 붙들어야 한다.
남자: 그래, 당신은 뭐라 했습니까?
여자: “알았어요, 어머니.” 오른손을 들구서 그렇게 대답했죠.
남자: 내 원 참! 오른손을 들다, 그러니까 맹세를 하셨군요?
여자: 그렇죠!
남자: 그 잔에 물 좀 남았습니까?
여자: ㉤아뇨. 다 마셨는데요.
남자: 유감입니다. 내 몫을 남기시지 않구서.
(하인, 또다시 남자에게 달려들어서 넥타이를 풀어낸다. 남자는 빼앗기지 않으려 힘껏 저항하지만 하인의 억센 힘을 당해 내지 못한다. 결국은 빼앗기고 하인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넥타이를 가지고 나간다. 여자는 두 남자의 다툼에 놀란다.)
여자: 왜들 그러시죠?
남자: (씩씩거리면서 웃고 있다.) 이번엔 넥타이가 내 목에서 떠나갔습니다.
여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네에?
남자: 뭐, 놀랄 게 못 됩니다. 그저 시간이 지난 것뿐이니까요. 안심하십쇼. 만약 내 목이 떠나가고 넥타이만 남았다면…… (계면쩍은 듯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관심을 돌리려고) 그건 그렇구요, 당신 어머니 퍽 재미난 분이시군요. 나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그 맹세를 시키셨다는 어머니, 어떤 분인지 더 듣구싶습니다. 어떠신가요? 어머니 성품이 너그러우시다든가…… 왜 그렇게 쳐다만 보십니까?
여자: 넥타이를…….
남자: 그것엔 관심 없습니다.
여자: 왜 빼앗기셨죠? (옆에 와 부동자세로 서 있는 하인을 흘겨보며) 그것두 난폭하게.
남자: 그렇지요. 난폭하게 주인을 덮치는 그런 하인에겐 난 전혀 관심없어요. 오히려 당신 어머니의 성품이 너그러우신지…….
여자: 하지만요, 저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남자: 알았어요. 문제는 빼앗긴 물건인가 본데, 그야 되돌려 받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인에게 큰 소리로) 여봐, 가져와! (묵묵부답한 하인. 까치발을 딛고 일어나서 그의 귀에 속삭인다.) 여봐! 그 가져간 것 5분만 더 빌려주게.
하인: (대답이 없다.)
남자: 딱 5분만 더. 사정해도 안 되겠나, 응?
하인: (반응이 없다.)
남자: 좋아, 좋다구.
여자: 뭐래요, 하인이?
남자: 네, 날더러 잘해 보라구 그럽니다.
(남자, 관객석을 투덕투덕 걸어 다니다가 넥타이를 맨 남성 관객 앞에 앉는다.)
- 이강백, 「결혼」
21. (가)와 (나)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②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물질을 중시하는 사회 분기를 엿볼 수 있다.
③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통해 세대 간의 갈등을 엿볼 수 있다.
④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외면하는 이웃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비정성을 엿볼 수 있다.
⑤ 문화적 이질성에 따른 차별과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다원화된 사회 양상을 엿볼 수 있다.
22. <보기>를 참고하여, (가)에 대해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는 급속한 산업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소외된, 비참한 도시 빈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도시 빈민을 대표하는 권 씨는 소외로 인한 고립감과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자아도취적 표상을 찾으며 나름대로의 자의식을 지키고자 하나 주변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타인의 지나친 배려로 내면에 상처를 입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자아는 무너지고 ‘의기소침’의 감정으로 치달아 버리는 소시민적 자의식이 나타난다.
① ‘피치 못할 사정’이라며 강도 짓을 하는 권 씨를 통해 비참한 도시 빈민의 모습을 엿볼 수 있군.
② 권 씨는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라는 이력에서 자신에 대한 자아 도취적 표상을 찾으려 하고 있군.
③ 권 씨는 ‘그따위 이웃은 없다’는 말을 하며 이웃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오 선생의 자의식을 일깨워 주게 하는군.
④ 권 씨를 ‘편안한 맘으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했던 오 선생의 말이 오히려 권 씨의 내면에 상처를 입혔음을 알 수 있군.
⑤ ‘그 다음 날, 그 다음다음 날도 권 씨가 귀가하지 않’는 것에서 자아가 무너져 ‘의기소침’의 감정으로 치달아 버린 자의식을 엿볼 수 있군.
23. ㉠~㉤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여자 앞에서 좀 더 신고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② ㉡: 빌린다는 표현을 쓰면 들어줄지 시도해 본 말이다.
③ ㉢: 현기증이 계속되고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④ ㉣: 어머니가 바라는 남자의 모습을 딸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⑤ ㉤: 남자에게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24.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는 권 씨가 자존심을 지녔다는 것을, ⓑ는 물질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 ⓐ는 권 씨가 자부심을 지녔다는 것을, ⓑ는 물질이 도구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③ ⓐ는 권 씨가 허위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는 물질이 공공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④ ⓐ는 권 씨가 자존심을 지녔다는 것을, ⓑ는 소유물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⑤ ⓐ는 권 씨가 허위의식을 지녔다는 것을, ⓑ는 소유물이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