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되면 제일 힘겨워하는 사람이 며느리들이다. 가고 싶은, 보고 싶은 내 혈육은 못 보면서 말 많고 탈 많은 시댁 일은 어깨가 뻐근하도록 한다. 하고 나서도 불만이 많다. 일을 조금 많이 하면 누구는 안 하는데 내가 많이 했다고 불만이고 안 사오면 안 사왔다고 불평이다. 더구나 큰며느리의 경우에 더 심하다. 큰며느리는 가족사의 중심에 서 있다.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일을 다 도맡아서 해야하고 형제들이 모이면 먹을 음식을 해야하고 거기에 더해서 선영에 차례 음식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선영에 차례 모실 음식을 장만하는 것으로 맛을 볼 수 있게 하지만 형제들이 객지에 있는 경우는 다르다. 모처럼 모이는 형제들 입에 맛난 것 넣어주고 싶어하는 시어머니의 마음까지 헤아리려면 그야말로 등이 어떻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 더 이상한 것은 어머니가 며느리였음에도 큰며느리에게 과방 열쇠를 주고 나면 속없는 시댁 식구로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내가 이 집에 와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난다"라던지. "내가 지긋지긋하다"라던지 "옛날에는 이것 쯤이야" "이집에 와서..."로 시작 되는 불평은 명절이 나 끝나도록 이어진다.
그럼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이고 과연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누구이고 왜 일을 하는가? 물론 시어머니 역시 살붙이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살붙이를 생각하면 "이 집"은 원수처럼 생각이 되는 것이다. "이 집"만 아니었으면 내 살붙이하고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 수 있는 것을 "이 집" 때문에 고생한 것이다. 불평을 할라치면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어머니의 자녀들인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하는가? 내 아이들 먹을 것만 준비하면 간단할 것을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해서 형제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골라 하면서 정작 내 아이들인 손자들이 맛있게 먹을 것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는 안 하면서.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당신 입장만 생각하는 어머니에 대한 불평까지 더해서 명절이 다가오면 미리 머리가 아프고 싫었다. 어렸을 때는 즐겁기만 하던 명절이 며느리가 되고부터는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나서 내 살붙이와 즐겁게 지내지 못하고 시댁의 눈치를 봐야하나? 억울한 마음에 즐거움 보다는 몸이 먼저 아파버렸었다.
"시"자만 들어가도 이가 갈린다는 사람들 또한 많은 것을 보면 나의 이런 생각이 엉뚱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럴까?
달리 각도를 바꾸어 생각을 해 본다면 자신의 자리를 자신이 부정을 하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살아 온 내 자리에 대한 거부이다.
나는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어머니의 성정을 살피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이제는 내가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는 내 자린 것이다. 큰며느리면 큰며느리의 자리에서 둘째면 둘째의 자리에서 막내면 막내의 자리에서 서로 마음을 조금씩만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아마 내 자리를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즐거운 명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즐겁게 명절을 보내게 되기까지는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다. 시어머니들이야 기왕 그런 사상을 가졌으니까 "그러려니" 넘기게 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불평도 없어지고 시동시간들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다.
1도의 각도만 다른 사람과 달리 생각하게 되면 모든 일이 즐거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