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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둑은 두 사람이 흑백의 바둑돌을 나누어 가지고 바둑판 위에 번갈아 하나씩 두어 가며 승부를 겨루는 보드게임이다. 주로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즐긴다.
2. 특징
자세한 내용은 바둑/특징 문서를 참고
3. 명칭
한국어: 바둑, 바독, 오로(烏鷺), 혁기(奕棋・奕碁)
중국어: 圍棋/围棋(wéiqí)
일본어: 碁(ご), 囲碁(いご)
영어: Go, Baduk, Weiqi
영어 표기로 한·중·일 삼국이 각각 'Baduk', 'Weiqi', 'Go'를 사용한다. 북미 및 유럽에서는 일본어 명칭을 로마자로 전사한 'Go'라는 표기가 일반적인데, 20세기 구미권은 주로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어 '고'가 바둑의 명칭을 대표하게 되었다.
바둑 자체가 서구권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고, 어휘 'go'가 '가다'라는 뜻으로 너무 자주 사용되는 동사 어휘이기 때문에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Go game'으로 표현하거나, 아예 'Baduk', 'Weiqi'라는 표현을 쓰는 곳도 있다. 한국기원이 미국 등 외국에 바둑 보급 사업을 하면서 쓰는 영문 명칭도 한국식 표기 그대로인 'Baduk'이다. 바둑 세계화를 위해 여러 보급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Baduk'이라는 영문 표기도 조금씩 퍼진 것이다.
학자간 견해차는 있지만, 한국어 명칭 '바둑'의 옛 어형은 '바독'이었고, 방언형으로는 '바돌' 등이 있었다고 본다. 이는 돌(石)의 옛말인 '돓'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라도 방언 등에서는 지금까지 '돌'을 '독'이라 한다. 앞의 '바-'는 '밭'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가장 우세하다. 줄이 그려진 바둑판이 마치 경작한 밭처럼 보인다는 것에서 착안했을 수도 있으며, 집을 짓는 모습이 밭담을 쌓는 모습과 유사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4. 국가별 현황
자세한 내용은 바둑/국가별 현황 문서를 참고
바둑 애호가는 전세계 각지에 있지만, 프로 기사 제도가 있는 나라는 2000년대까지 한국/중국/일본/대만까지 단 4개국, 기원으로는 겨우 여섯 곳뿐이었다.
그러다가 미국은 2012년부터, 유럽은 2014년부터 자체적인 프로 제도를 출범시켰다.
4.1. 한국 바둑 스포츠토토 도입
이전부터 바둑에는 구경꾼들이 경기의 승패를 두고 돈을 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전부터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의견은 계속 있었다. 이에 바둑에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실제로 공청회도 열었다. 할지 말지 아직 정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고 논란도 있다.
다만 2013년에 와서는 그냥 흐지부지 된 듯하다. 스포츠토토 바둑 적용의 제일 큰 문제는 바둑은 승부조작이 너무나 쉽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사설토토는 바둑 쪽으로도 범람해서 문제가 된다. 승부조작의 마수가 언제든 뻗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가 2017년,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이 다른 데에서는 반목을 하다가도 유소년 바둑 인구 증가를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바둑토토 추진을 서로 합의했다. 이에 2018년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에서 기사회 총투표를 시행하여, 찬성 101 vs 반대 59로 가결시켰다. 찬성의견, 반대의견, 투표결과 한국기원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의견이 전달되면 실제로 바둑토토를 발행하게 된다. 바둑토토를 발행하는 것은 2019년으로 예정되었으나, 2023년까지도 소식이 없다.
사실 대다수의 바둑 사이트에서는 특정 대국에 대한 게임머니 베팅을 이미 시행해왔다. 이 때문에 한큐바둑 등 여러 바둑 게임이 19금 판정을 받았다.
5. 기사
자세한 내용은 기사(바둑) 문서를 참고
기사(棋士)는 바둑이나 장기를 잘 두는 사람. 또는 직업으로 하여 전문적으로 두는 사람을 말한다. 기사에 대한 설명 및 연구생, 입단, 승단에 대한 설명 일체는 기사(바둑) 문서를 참조.
6. 규칙
룰 자체는 다른 추상전략게임 등 여타 보드게임에 비해 상당히 간단한 편이다. 하지만 경우의 수가 다른 게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고 형세 판단-끝내기-계가가 어려워 고수가 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세한 룰은 여기를 참고.
의외로 입문자들이 많이 혼동하는 규칙은 '대각선으론 활로가 연결될 수 없다.'는 것. 대각선 5줄이 인정되는 오목에서 입문한 사람들이 자주 혼동한다.
동아시아를 위주로 한 비교적 좁은 저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룰을 관장하는 협회가 부재해 사소하지만 한/중/일/대만 간에도 계가 방식 등 룰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식 바둑룰에 익숙해진 사람이 중국 룰이나 응씨배 룰을 기초로 한 대만 룰로 못 둘 정도는 아니지만 반집 승부가 많은 탑 프로 레벨에서는 유의미한 승률 차가 나기도 한다.
6.1. 사전 규칙
2016년 4월 29일 한국기원-대한바둑협회 규칙.
바둑 경기 규정
제 1 장 경기용 도구
제 1 조 (바둑판)
가로·세로 각 19줄을 그린 평면으로 가로 42cm, 세로 45cm의 나무판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이다. 경기용 바둑판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2.5~7.5cm로 한다.
제 2 조 (바둑돌)
흑과 백으로 구분되어 있다.
흑은 181개, 백은 180개가 표준이다.
제 3 조 (바둑통)
바둑돌을 담는 도구이다.
통의 뚜껑은 잡은 돌을 보관하는데 사용한다.
제 4 조 (계시기)
계시기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인한 것으로 사용한다.
계시원이 담당하는 경기일 때, 주최 측과 계시기 종류와 방법을 협의할 수 있다.
제 5 조 (경기용 탁자와 의자)
탁자와 의자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인한 것을 사용한다.
6.2. 대국 규칙
흑과 백을 쥔 사람이 한 수씩 번갈아 가며 둔다. 이때 선공은 무조건 흑을 쥔 사람이 한다. 단, 접바둑은 백을 쥔 사람이 선공을 한다.
돌이 놓이는 위치는 선과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선과 선이 교차하고 돌이 놓이지 않은 지점이라면 어디든지 돌을 놓을 수 있다. 단, 아래의 8~9와 같은 예외가 존재한다.
일단 놓인 수는 무르거나 움직일 수 없다. 단, 온라인 대국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무르기를 인정한다. 조작 실수로 엉뚱한 곳에 착수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집(家)을 많이 지은 쪽이 이긴다. 집의 개념은 다음 문서를 참조하자
중도에 기권할 수 있다. 기권을 흔히 '돌을 던진다' 또는 '돌을 거둔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기권승은 불계승, 기권패는 불계패로 표기한다.
상대방의 돌로 둘러싸인 돌은 죽은 돌이 되며 둘러싼 쪽의 대국자가 들어내야 한다. 잡힌 돌은 계가할 때에 상대의 집을 메운다.
사방이 다른 색 돌로 둘러싸인 곳에는 착수할 수 없다. 단, 둘러싼 다른 색 돌 중 끊어진 부분이 있어서 단수가 되어있을 때는 착수가 가능하다. 물론 단수가 된 그 다른 색 돌은 잡힌다.
동일한 패의 형태는 반복될 수 없다. 즉, 패가 나서 자신의 돌이 잡히면 그 바로 다음 수에는 다시 잡아낼 수 없고 다른 곳에 한 번 이상 둔 후에야 다시 잡아낼 수 있다(패의 규칙).
규칙 자체는 간단하나 제한된 바둑판 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여태껏 수많은 수와 이론, 정석들이 연구되어 있으며 상대와 자신의 수 하나하나에 엄청난 변수가 생기기에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필요로 한다. 흔히 바둑을 배운다고 하는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5번을 실행시킬 수 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상대의 5번을 방해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 말해 이 규칙은 엄밀한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것이다. 또한 5번의 경우 중국식 룰에 해당된다고 보기에는 좀 미묘하다. 자세한 규칙은 아래에 서술한다.
맨 위 규칙을 어겨 한 번에 두 수를 두거나 자신이 두어야 할 물체 이외의 것을 두어서 패배를 시인하는 경우도 있다.
대국 규정 미비로 심판들을 곤혹시키는 사례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초읽기 상황에서 화장실 가는 문제. 이는 오래전부터 문제시 되어 왔던 것으로 관례적으로는 상대 선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면 시계를 정지해 주었다. 그러나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거나 혹은 화장실에 얼마나 있어도 되는가(오래 있으면서 바둑 내용을 생각할 수도 있으므로)는 정해진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그래서 한국기원에서는 2014년에 초읽기 때는 화장실에 갈 수 없도록 규정을 개정했고, 2016년에는 초읽기 시에도 화장실에 1번은 다녀올 수 있도록 규정을 다시 개정했다.
6.3. 덤
자세한 내용은 덤(바둑) 문서를 참고
요약
바둑은 흑돌을 쥔쪽이 먼저 두는데,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에 백을 쥔 상대방에게 추가 점수를 주는데 이것을 덤이라 한다. 과거 일본식 덤은 4집 반 혹은 5집 반이었지만 바둑이 발전됨에 따라 흑이 갈수록 유리하다고 여겨져 2020년 현재 한국/일본은 일반적으로는 6집 반을 주거나 가끔 5집 반을 주는 대국도 있으며 중국은 7집 반을 준다. 이때 반집은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인위적 장치라고 보면 된다.
6.4. 중국식과 일본식, 그리고 한국식 룰
자세한 내용은 바둑/국가별 룰 문서를 참고
6.5. 서양식
중국식처럼 실전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서, 돌이 차지한 자리는 셀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계가는 일본식 수준이다. 집을 셀 때는 중국식이나 전만법처럼 빅도 헤아리고(다만 사방에 양쪽 돌이 다 있는 공배는 세지 않는다.), 나머지는 일본식처럼 한다.
7. 역사
7.1. 중국
현재는 바둑판에 가로세로 19개씩의 선이 있지만 과거에는 9줄, 15줄, 17줄인 때도 있었다. 덧붙여서 최초의 바둑판이 몇 줄짜리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9줄짜리 바둑판이 최초였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바둑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 고대에 요 임금이 망나니였던 자신의 아들의 수양을 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요 임금은 신화적인 성격이 강해 실존인물인지 의심스러우나 적어도 춘추시대에 바둑이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상나라 중기~주나라 초기 시절에 이미 원시적인 바둑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춘추시대 관련 기록을 보면 늦어도 주나라 초기 시절에는 바둑이 존재했으니 3000년은 묵은 게임이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 사람 공자의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차라리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낫다'고 언급하였다. 맹자도 바둑을 지나치게 두는 것을 경계하는 말을 남겼다. 맹자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불효 중 두 번째가 '쌍륙이나 바둑하고 술 먹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공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며 같은 말을 소학(小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전국시대의 인물들이 바둑을 언급하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판은 중국 전한 6대 황제 경제 시대의 도자기 바둑판이다. 다만 일부 파편만 발굴돼서 몇 줄짜리 바둑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알은 서진 시대의 물건이며, 돌을 깎아서 만들지 않고 모양새가 좋은 돌을 모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기보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국 후한 말의 군벌 손책과 여범이 둔 바둑 기보가 있다. 이 기보는 중국 송나라 이일민(宋李逸民)이 편저한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 실려 있다. 다만 이 당시 바둑판은 17줄 바둑판이었는데, 해당 기보는 19줄 바둑판에서 치러진 대국 기보라 송나라 때 작성된 위작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전 바둑 기사이자 정치학 박사인 문용직(前 프로 五단)은 이 기보를 아예 위작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포석의 산책 - 고대 중국 포석의 갈등
또한 원나라 시대에 작성된 사활 풀이집인 현현기경이나 관자보 같은 것은 오랜 옛날임에도 불구하고 난이도와 문제 풀이의 독창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재 바둑 프로 기사 지망생들에게 애용되는 사활집이다.
세설신어에는 남조 귀족들이 바둑을 둔 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다. 바둑 실력도 서로 평가하였는데 구품관인법에서 따와서 일품(一品), 이품(二品) 등으로 평가하였다.
7.2. 한국
한국 바둑의 기원은 '순장바둑'으로 가장 오래된 순장바둑판 유물은 고구려 때부터 발견된다. 평양시 임흥동 고구려 유물 1호에서 바둑판 조각이 발견된 것이 그것으로, 화점이 찍힌 간격이 현대의 바둑판과는 다르고 조선시대 순장바둑판의 그것과 같은 형태이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뒀던 바둑은 순장바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구당서에는 고구려인들이 바둑과 투호를 좋아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걸 보아 고구려인들이 가장 즐겨 하던 보드게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순장바둑은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 시절에 국제 시합에 대비하기 위해서 폐지했다.
기록상으로는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고구려의 장수왕이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내 개로왕과 바둑을 두게 하는 한편 백제를 염탐하게 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한국 바둑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신라의 경우, 5세기 고분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과 천마총에서 나온 자갈돌이 바둑돌로 사용된 것이었을 거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황남대총에서 같이 출토된, 이 바둑돌을 담았던 그릇으로 추정되는 중국산 칠기(황남대총 남분 '마랑'명 주칠기 바둑알 통)에는 3~4세기 중국 삼국시대~서진시대의 바둑고수로 '기성'(棋聖) 칭호를 받았던 마랑(馬朗)의 이름이 새겨져있기도 했다. 이러한 바둑용품이 황남대총에 부장품으로 묻힌 것을 볼 때 황남대총의 주인공도 생전에 바둑을 좋아했고, 이미 당대 신라에도 백제처럼 바둑이 보급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7세기 초에 사망한 신라 귀족의 무덤인 경주시 용강동 고분 6호 석실에서도 신라 때 바둑돌로 사용한 듯한 자갈돌들이 발견되었다.
중국과 바둑 교류를 한 기록도 있다. 신라 효성왕 2년(738) 2월에 당현종이 성덕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좌찬선 대부(左贊善大夫) 형도(邢璹)라는 인물을 신라로 파견한다. 이때 당현종이 '신라인들은 바둑을 잘 둔다던데.' 하며 형도에게 양계응(楊季膺)이라는 바둑 고수를 부관으로 딸려 보냈는데 신라의 바둑 고수들이 모두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는 또한 우리 백성들이 바둑을 잘 둔다고 하여, 솔부병조참군(率府兵曹叅軍) 양계응(楊季膺)에게 조서를 내려 부관으로 같이 가게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바둑 고수들이 모두 그의 아래였다.
《삼국사기》 제9권 신라본기 제9 효성왕
신라 효성왕도 향가 원가(怨哥)의 배경 일화와 같이 그 개인적으로 바둑을 상당히 좋아했지만, 당시 당나라는 기대조(棋待詔)라는 바둑 전문 관직을 두었던 나라이기에 현대 이전까지 바둑을 개개인이 게임으로서 즐기는 레벨이던 한국과 비교하면 이런 결과는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바둑은 성행해 궁녀들도 바둑을 취미로 많이 뒀다고 하지만, 일단 정부 차원에서는 조선 시대 바둑을 기예(技藝)로서 낮게 여겨 조선왕조실록에 검색해 보면 바둑의 폐해를 까는 기사도 제법 보인다. 그러나 워낙 재밌다 보니 바둑을 두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현대 바둑은 일본에서 바둑을 배우고 온 유학파 출신인 조남철이 한국으로 귀국하여 1945년 11월,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2016년 7월에는 이세돌 九단이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하여 알파고와의 대국 과정을 소개하고 바둑에 대한 홍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세계 바둑계에서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것은 이세돌 九단이 사상 최초다.
7.3. 일본
현재 일본 정창원에는 바둑판 목화자단기국(木画紫檀棊局)과 바둑통 은평탈합자(銀平脫合子), 4가지 종류의 바둑돌 백기자(白棊子), 흑기자(黑棊子), 감아발루기자(紺牙撥鏤棊子), 홍아발루기자(紅牙撥鏤棊子)가 보관되어 있는데. 화점 수만 제외하면 현대에 쓰이는 바둑판과 형태가 동일하고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바둑판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 의자왕이 선물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쇼토쿠 태자가 애용했다고 한다.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 바둑으로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은 종주국인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부터였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거물들이 바둑을 좋아하였으며 그 결과 국가 차원에서 바둑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수립한 뒤 바둑을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기소(碁所)라는 관청을 수립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의도는 전쟁이 끝나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에게 바둑을 두게 함으로써 관심을 돌리려는 생각이었다. 이 기소의 최고 책임자를 임명하는데 이 책임자(기소 명인)는 당대 바둑의 최고수여야 했다. 기소 명인의 녹봉은 당대 영주급인 데다 기소 명인이라는 칭호에 대한 매력 때문에 당대 바둑 고수들은 사활을 걸고 바둑 실력을 연마하였고 그 결과 이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4개의 바둑 가문이 성립이 되었는데 그들은 혼인보, 이노우에, 야스이, 하야시였다.
네 가문이 기소 자리를 놓고 수백 년 간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바둑은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현대 바둑의 이론이 정립되는데 즉 귀에 선착→변으로 발전→중앙으로 진출이라는 것이라든지 세력, 실리의 구분, 정석 등등이 거의 현대 바둑과 유사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러한 막부 시대의 일본 바둑계에서 가장 돋보였던 기사로는 혼인보 도사쿠가 있다. 도사쿠는 당대 13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대 최고수들을 모두 선 치수 이하로 접을 수 있는 실력자였다. 또한 도사쿠는 돌이 서로 얽혀있는 과정의 효율을 매우 중시하였고 따라서 이미 놓여져 있는 돌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용하는가 식의 새로운 방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에도 막부 시대에서 도사쿠 이외에 널리 알려진 기사는 혼인보 슈사쿠로 그는 히카루의 바둑의 소개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어성기라 불리는 쇼군 앞에서 두는 바둑에서 19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다만 그는 명인 기소가 되지는 못했는데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 막부가 붕괴되자 기소가 없어져 4대 가문은 직격탄을 맞았고 그 결과 각 가문들은 해체되는 수순을 맞는다. 그 뒤 일본 바둑 기사들은 오쿠라 재벌 2대 총수 오쿠라 키시치로의 후원 하에 1924년 일본기원을 설립했고, 1939년에는 혼인보 가문의 마지막 당주 혼인보 슈사이가 1936년에 일본기원에 양도한 혼인보 가문의 가명(家名)을 계승하는 기사를 선수권제로 결정하기 위한 타이틀전인 혼인보전을 창설했다. 그 후 1953년에는 왕좌전, 1961년에는 명인전을 창설하며 본격적인 타이틀전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 후 1976년 (대)기성전이 창설되며 현재의 7대 기전 체제가 완성되었다.
8. 여성 바둑
여성 바둑은 1990년대까지는 존재감이 없었다. 루이나이웨이를 제외하면 남자 바둑 기사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실력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는 여자 바둑계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2010년대 이후부턴 후술되어있듯 흥행 측면에선 여성 바둑계도 남성 바둑계 못지 않은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8.1. 남녀 실력 격차
Q: 바둑은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여자가 더 잘하는데 바둑에선 왜 여자가 남자보다 약할까요.
A: “(여자가 남자보다) 일반적으로는 감성적이고 이성적 힘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은 것 같아요. 두뇌가 다른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여자 아니다”고 말하는 거죠. 또 여자 스스로 남자한테는 안 된다는 자격지심도 있고요.”
- 전 여류 최강자 루이나이웨이 九단(2011년) 기사
Q: 남녀의 기량 차이에 대한 얘기가 다양하다.
A: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나다. 판단력·예측력에서 차이가 나는 듯하다. 바둑도 그렇다. 남녀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32강전은 특별했다. 상대들이 실수를 하고 나는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임할 수 있었다.“
- 2016년 전 여류 최강 위즈잉 五단 기사
남자 바둑 프로 기사와 여자 바둑 프로 기사 간 실력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2024년 2월 고레이팅 기준 세계 랭킹 여류 기사 1위인 최정 九단이 전체로는 71위이고, 그 다음인 위즈잉 기사가 135위다. 그나마 이것도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비하면 실력차가 상당히 좁혀진 것이다.
2020년대 초반 기준 위즈잉(중), 최정(한), 셰이민(일), 왕천싱(중), 오유진(한), 조혜연(한), 김혜민(한), 후지사와 리나(일)같은 최정상급 여류 기사들이라 해도 남녀 종합 메이저 기전으로 들어가면 본선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줄줄이 탈락하거나,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나마 2022년 최정이 삼성화재배에 참가해 변상일 등 최상위권 남성기사들을 꺾고 세계여자기사 최초로 결승에 진출해서 신진서에 져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건 특이한 케이스고 일반적으론 메이저 대회에서 잘해도 16강 정도가 아직은 한계다.
그래도 바둑 역사 전체를 통틀어 '남자 최고수와 붙어볼만 하다'는 평을 들은 여자 기사가 있긴 한데, 바로 루이나이웨이 九단이다. 전성기 때는 남녀를 합친 세계랭킹 20위권에 들었으며 응씨배 4강, 국수전 우승, 맥심커피배 우승 등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국수전 우승 때는 4강에서 이창호를, 결승에서 조훈현을 꺾었으며, 천하의 이창호를 상대로 상대전적이 앞서기도 했다. 루이나이웨이는 중국 내부 문제에 휘말려 2~30대 시기를 거의 날렸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측면도 크다. 비교대상이 없는 역대 최강의 여자 기사이고, 정상급 남자기사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조-서 양강 체제나 이창호-유창혁 시대에 다른 기사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을 감안하면, 루이나이웨이는 저들의 바로 아래 단계로 볼 수준이 됐다는 것.
흔히들 남자쪽이 여자보다 더 호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겠지만 바둑에 있어선 오히려 반대다. 남자 바둑기사들과 여자 바둑기사들 대국 스타일이 꽤 많이 다른데 이것도 실력 격차의 원인으로 꼽힌다. 바둑은 실리를 중시하는지, 세력을 중시하는지, 전투를 중시하는지에 따라 기풍이 나뉜다. 남자 기사들은 각자 특징이 있긴하나 기본적으로 밸런스가 잡혀있다. 그런데 여자 기사들의 바둑 기풍은 십중팔구 전투형 올인이다. 대마 수상전 같은 게 걸리면 바둑이 그 자리에서 끝나기 때문에 남자 기사들은 일단 타협을 하고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반면 여자 기사들의 대국에서는 타협 없이 강 대 강으로 충돌해서 대마 수상전 및 거대 패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전투 위주로 흐르는 여자 기사들 바둑을 중계하는 남자 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여자 바둑은 왜 이리 살벌한지 모르겠다"인데 보통 이렇게 '무서운' 대국들은 화끈한만큼 허무하게 끝난다. 어느 한 쪽이 물러서는 순간은 이미 역전할 기회가 지나거나 남아있다 하더라도 전투가 무기인 기사가 전투에서 졌으니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무기로 기회를 살려보기가 힘들다. 난타전이 이어져서 보는 사람은 재밌지만 이런 바둑은 상성을 쉽게 탄다. 전성기의 이창호나 알파고의 대국이 제일 완벽에 가깝다고 말해지는 것도 상대가 강공으로 나온다고 싸워주는 게 아니라 대국 전체로는 우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승리를 굳혀나가기 때문이다. 이게 되려면 맞싸울 때와 타협했을 때 손해 계산이 정확해야 하고, 이 정도로 계산이 정확하지 못한 경우 선택의 여지 없이 눈앞에 보이는대로 싸워야한다. 그렇게 싸웠는데 매번 크게 이기지 못하면 눈에 안보이는 집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방어하던 상대가 마지막엔 작은집 차이로 승리를 가져간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부분 부분에서 포인트를 땄지만 알파고의 그림에 갇혀버리는 그런 상황이 남자 - 여자 바둑 대국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환경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미 많은 기전은 오픈기전이고 제한기전에서도 성별에 따른 제한을 두지 않아 여자만 참가할 수 있는 여류기전은 있어도 남자만 참가할 수 있는 기전은 없다. 단지 여류기사들이 본선에 올라오질 못해서 남성기전으로 보일 뿐. 또한 현대바둑은 기본적으로 기보들이 다 공개되고 신문에까지 기보가 연재될 정도로 정보가 오픈되어 있다. 즉, 남자 기사의 기풍을 흡수할 환경은 더할 나위없이 충분한 셈. 환경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육체의 차이도 영향을 끼치는데, 바둑이 두뇌 스포츠라 신체능력의 영향이 없을 것 같아도 신체능력차의 영향은 엄연히 존재한다. 바둑은 뇌를 풀가동해야 하는 고도의 연산활동이고, 이런 고도의 두뇌활동에는 당연히 칼로리가 소비되고 체력과 지구력이 영향을 끼친다. 단일 기관으로는 신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이 뇌다. 졸리거나 지치면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고, 바둑도 이에 해당한다. 여성에 비해 체력이 강한 남성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을 거치며 7kg정도 빠졌다고 하는데, 6일간 7kg면 육체스포츠 중에서도 야구같은 종목보다 더 체력소모가 크다. 야구를 남자가 더 잘 하는 데에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신체적인 차이니까. 바둑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평소에 기사들은 1일 8~10시간씩 바둑만 두며 연습을 하고는 하는데, 상술했듯 1일 8시간~10시간씩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꽤나 체력적으로도 힘든 일로, 하루 1~2시간의 연습시간 차이가 수십년이 누적되면 실력격차가 어마어마해지는 것이다.
애초에 여성 기사 풀이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둑 하는 인구 자체가 극도로 남초인데, 바둑이 인기가 있던 20세기도 그런 마당에 21세기 들어선 PC방 등 다른 유희거리도 넘쳐나 그런데 가는 여자는 많아도 바둑 기원에 가는 여자는, 특히 젊은 여성은 눈 씻고 찾아봐도 매우 드문 극소수일 지경이다. 실제 이게 남녀격차의 한 원인일 순 있다. 다만 이 주장에 따르더라도 아직은 원천적인 남녀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이는데, 중국의 여자 선수들은 한국의 남자 선수보다 인구풀로만 보면 더 많은 인재풀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 남자 선수들은 잘만 들어가는 세계랭킹 100위권 안에 한두 명 밀어넣기도 힘들어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 또, 세계 랭킹으로 따지지 않고 중국 + 한국 여자 선수 vs 한국 남자 선수로 생각해 봐도 정상급 한국 남자 선수를 확실히 이기는 여자 선수는 없다. 따라서 남녀간 바둑 실력 차는 아직 분명히 존재하며, 무조건 선수 풀이 작아서 그런 거라고 설명하기엔 다른 예시들이 있다.
또다른 반론도 있다. 스승의 집에서, 혹은 도장에서 많은 경우 숙식까지 해결하며 다른 공부에는 손을 놓고 연구생 생활에 매진해야 프로 바둑기사가 될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상황에서 아들이 아닌 딸이 그런 길을 걷게 할 부모가 많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며 예를 들어 이창호가 만약 여자였다면 지금보다 보수적이었던 1980년대에 그의 부모가 아이를 조훈현의 집에서 먹고 자며 바둑을 배우게 보내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20세기 과거의 얘기다. 2000년대부터 이미 내제자 제도는 사실상 사라졌으며 기원은 심지어 남자도 점점 안 가서 영업이 안 되어 도박장으로 불법영업하다가(...) 잡히는 뉴스가 태반인 현대에 이런 이야기는 루이나이웨이 젊은 시절에나 통할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계는 다른 스포츠 분야보다는 남녀격차가 적은 편에 속한다. 대놓고 운동능력으로 겨루어야 하는 육체 스포츠는 여자 국가대표가 남자 중고등학생이랑 겨루어야 하는데 비해 바둑은 어쨌든 성인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조건에서 대결을 할 수는 있고, 여성 기사가 혼성 기전에서 남성 기사를 꺾고 우승한 사례도 없지는 않다. 보드게임 계열 중에서도 쇼기의 경우 아직까지 남자들과 경쟁해서 프로 기사(장려회 4단)가 된 여성 기사가 아예 없고, 체스도 전설의 여류선수 주딧 폴가(Judit Polgar) 1명을 제외하면 슈퍼 GM이라고 불리는 선수가 전혀 없는 지경이다. 어쨌든 바둑은 순위 100위권 이내에 여자 프로기사가 존재하는 등 타 보드게임에 비해 꽤 격차가 적은 편이다. 2021년 최정처럼 남녀혼성에서 그나마 실적을 내는 타종목 선수는 매우 드물다. 스타 게이머 서지수도 본선리그 진출은 한번도 못했고, 프로리그 1승도 못했다. 최정은 그에 비하면 본선리그 진출 다수에 바둑리그에서도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으니 남녀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은건 맞다.
8.2. 여성 바둑의 높은 시청률
바둑TV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바둑이다. 2018년 한국여자바둑리그 tv 시청률(0.358%)이 2018년 한국바둑리그(0.26%)보다도 높다.
여성 토너먼트 바둑 기전인 한국제지배 여자기성전 시청률은 0.4%를 넘는데, 바둑 기전 전체 평균 시청률에서 농심신라면배(0.5%대)를 제외하면 제일 높다. 물론 이벤트 대국이나, 1~2회짜리 대회에서는 남자 바둑 기전 시청률이 간간이 더 높은 경우가 있는데, 농심신라면배를 제외하면 10일 이상 치러지는 전체 바둑 기전 평균 시청률에서는 여자 바둑이 남자 바둑보다 높다. 그리고 삼성화재배나 LG배에서 가끔 여자 바둑 기사들이 본선에 올라오거나, 예선 대국에서 선전을 펼칠 때가 오히려 남자 바둑 기사끼리 바둑 둘 때보다 시청률이 높다.
배구 V-리그가 남자 대회 시청률이 여자 대회 시청률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잡혔지만 그래도 역전을 허용하고 있지는 않다. 야구 KBO 리그나 축구 K리그, 농구의 한국프로농구, 당구 시청률은 당연히 남자 대회의 절대 우세. 그러나 바둑만큼은 아예 시청률에서 여자대회가 남자대회 시청률을 추월해버렸다.
여자 바둑 시청률이 남자 바둑 시청률을 추월하게 된 이유는 정확히 알긴 어렵다. 그러나 한 이유만 원인이 됐다기보단 여러 원인들이 중첩된 결과일 것이다. 일단 한국여자바둑리그가 2015년 출범할 때부터 최대한 지역연고 밀착정책을 취한 것이 시청률을 올리게 된 시초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남자 바둑기사 대비 여자 바둑기사들이 외부 활동(바둑 보급, TV 출연)이 많은 터라 다른 방송에서 나왔던 경험을 토대로 일부 시청률을 끌어왔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여성 바둑 기사들이 남성 기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력이 약하다 보니, 아마추어나 바둑 입문하려는 바둑 문외한 시청자들 입장에선 오히려 좀 더 이해하기 쉬워서 시청률이 높아진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즉, 아마추어들이 바둑 공부하고 실전에 써먹기엔 오히려 약간 낮은 실력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국내 여자 바둑의 경우 기풍이 남자 바둑에 비해 오히려 더 공격적이고 전투에 올인하는 스타일이다. 바둑에 이해도가 높은 매니아라면 수준 높고 밸런스가 잘 잡힌 남자 바둑을 선호하겠지만, 바둑 자체를 잘 모르는 라이트 팬 입장에선 여자바둑의 이런 처절한 공격바둑이 더 재미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자바둑의 스타일 자체가 라이트 팬층에게 나름대로 소구하는 바가 있다는 것.
그 외 아무래도 남성 시청층이 많은 바둑TV 특성상 여성 기사들에게 끌리는 부분도 시청률에 아예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여성 바둑 기사들이 꼭 미녀만 있는건 아니고 인기있는 여성 기사들도 결국은 실력이 받쳐줘야 인기가 유지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 바둑 기사들에 비해선 패션적으로도 더 돋보이는 경향은 있다. 기본적으론 정장 스타일로 고정되는 남성에 비해 여성 기사들은 패션에 다양성을 주는 경우가 좀 더 많은 편이다. 때문에 평균 연령대상 젊은층 입장에선 누나, 언니나 또래, 동생 정도가 프로로 활동하는게 신기해서 볼 수도 있고, 중노년층 입장에선 딸이나 손녀 보듯 시청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가 어린 기사들은 지고 나서 눈물을 보인다던지 같은 감성적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는지라.
9. 바둑과 병역
한국의 프로 기사들에게 처음부터 예술체육요원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까진 한국 바둑의 역대 1인자인 조남철-김인-조훈현 모두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서봉수, 유창혁 등도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예외적인 케이스로 일본에서 1인자로 군림하고 있던 조치훈만 유일한 면제였는데, 조치훈 본인은 국민학교도 얼마 못다니다가 중퇴했기 때문에 면제였다고 밝혔다. 즉, 바둑은 당시 오락거리의 영역이었지 딱히 예술이나 스포츠로 인식되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바둑은 나름 머리 쓰는 고급놀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당대 프로 기사들은 전성기가 40세라는 말도 할만큼 유명 기사들의 평균 연령대 자체가 높은 것도 있어서 대부분 타이틀을 딸 정도의 기사들은 이미 병역을 마친 상태였기에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허나 80년대 후반 이후 특히 90년대 들어 한국 바둑이 중국과 일본을 제패하고 무쌍을 찍는 가운데, 특히 병역 문제가 남아있던 이창호 기사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인식 변화가 생긴다.
9.1. 예술체육요원 자격 부여
프로기사들의 예술체육요원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바둑기사 이창호였다. 1993년 이창호는 국내기전 12관왕, 연간 90승으로 당시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데다 국제기전에서도 조치훈에게 3:0 영봉승을 거두면서 동양증권배 2연패에 성공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창호가 신검을 받고 입대 영장이 나오는 1994년 7월이 되자 바둑계는 패닉에 빠졌다. 결국 한국기원 기사회 차원에서 '체육의 경우 국제경기 입상자는 예술체육요원이 있는데 바둑인은 그런 게 없다'며 국회에 프로 기사의 예술체육요원 제도의 확대 적용을 청원하였고, 105명의 국회의원이 여야 합동으로 진정서를 내면서 일사천리로 이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일명 '이창호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창호가 최초로 그 혜택을 받았다.
한중일 바둑 삼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판단한 국제기전을 하나씩 선정하여 병역 특례를 줬다. 이것은 바둑을 예술로 보고 병무청에서 지정하는 국제 예술 대회 2위 안에 드는 사람에게 예술체육요원을 주는 것을 적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기전으로는 동양증권배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IMF 사태로 대회가 중단되었다. 이후 삼성화재배나 LG배 가운데 하나의 기전을 정해 대체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2008년에 바둑이 체육특기로 분류되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중화권에서 개최하는 기전으로는 응씨배가 있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중국이 아니라 대만 개최의 기전이므로 '중화권'의 개최 기전이다. 또 일본의 기전에서는 후지쯔배가 선정되었다. 이 3개의 대회에서 2위 이내(우승 또는 준우승, 즉 결승에 진출하면 혜택이 부여된다)를 기록한 기사들은 모두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동일한 수준으로 예술체육요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4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한국기원에서 예술·체육분야의 일환으로 복무했다.
9.2. 예술 분야에서 체육 분야로 변경
2009년부터는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로 인정받고 또 바둑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체육특기로 분류되어 여타 스포츠와 같이 아시안 게임 및 올림픽 메달 획득 규정과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예술요원 제도는 적용되지 않게 되었고 체육요원 제도가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2009년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강동윤은 선배들과는 달리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고, 그대신 201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병역 혜택을 받았다.
바둑이 올림픽에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됨에 따라 이후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정확하게 나온 바 없다. 바둑계에서는 바둑이 아시안 게임에 다시 합류하지 못한다면, 이전의 이창호法 체제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도 종목이 제외되었는데, 다시 중국에서 실시하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나 다시 바둑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그와중에 국방부는 대체복무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덕분에, 더욱더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체스-샹치가 정식종목에 추가되었다. 따라서 프로 바둑기사들의 병역면제 기회가 한번 더 부활하게 됐다. 여기에 출전한 남자 기사 6명 중에 병역 문제가 남아있던 사람은 신민준 9단 한 명 뿐이었는데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병역 혜택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신진서는 면제로 알려 졌는데, 학력으로 인한 4급 판정 이후 장기대기 면제로 추정된다.
9.3. 해군의 바둑 특기자 모집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 종목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바둑계가 불만을 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바둑계는 이전의 이창호法 체제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단은 해군에서 바둑 특기자를 선발하고 있다. 해군에 복무하면서 바둑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배려해 둔 상태다. 해군 신분으로 대회참가해 맥심커피배 준우승을 차지했던 홍성지 9단이 대표적 사례이다.
10. 바둑과 인공지능
자세한 내용은 바둑/인공지능 문서를 참고
11. 바둑 관련 인물
자세한 내용은 바둑 관련 인물 문서를 참고
12. 바둑 기전
자세한 내용은 바둑 기전 문서를 참고
13. 바둑 용어
자세한 내용은 바둑/용어 문서를 참고
13.1. 위기십결(圍棋十訣)
바둑을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할 열 가지 교훈. 바둑의 십계명에 비유하기도 한다.
부득탐승(不得貪勝): 너무 이기려고만 하지 마라. 무조건 이기려고만 바둑을 두면 욕심이 끼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도리어 실력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입계의완(入界宜緩): 경계를 넘어갈 때에는 천천히 들어가라.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하려 할 때에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라.
기자쟁선(棄子爭先): 바둑을 두는 사람은 선수를 다투어야 한다. 돌 몇 점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뜻.
사소취대(捨小就大):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먼저 얻어라.
봉위수기(逢危須棄): 위기에 처하면 버려라.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고 빠르게 두는 것을 삼가라. 한 수 한 수 깊이 생각하면서 두라는 뜻.
동수상응(動須相應): 상대방과 움직임을 맞추어라. 또는 행마할 때에는 주변의 돌들과 호응시켜라.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돌을 잘 보살펴라.
세고취화(勢孤取和): 내 세력이 약한 곳에서는 평화를 취하라(함부로 싸우려 들지 마라.).
13.2. 바둑에 관한 격언들
자세한 내용은 바둑/격언 문서를 참고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로 묘하게 모순되는 격언들이 좀 있다. 아래에서 소개할 격언들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어느 정도 '최선의 수'를 모색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충분히 무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격언은 격언만 잘 따라둬도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초급 때는 유용할 수 있지만, 기력이 상승할 수록 격언에 얽매이지 않고 한 수 한 수 깊은 수읽기 후 두는 편이 좋다. 프로나 높은 기력을 가진 인공지능의 기보를 보면 오히려 격언과 배치되는 실전적인 수를 더 많이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2선, 3선의 돌은 키워서 버려라.
곡사궁은 삶, 귀곡사는 죽음으로.
귀에서 시작해서 변을 거쳐 중앙으로.
귀의 빗꼴은 공배가 중요.
귀의 빗꼴은 죽음, 변의 빗꼴은 삶.
귀의 특수성. - 묘하게 비튼 말이 '귀는 마술단지'. 특히 사활관계에서는 정말 마술이 따로 없다.
꼬부림과 빈삼각은 같지 않다.
끊으면 뻗어라.
날일자는 건너 붙여라.
네 귀를 빼앗기면 필패.
대궁소궁 불상전. - 수상전에서 유가무가는 일반적으로 유가가 이기지만 양쪽이 다 유가일 경우는 집이 큰 쪽이 유리하다.
두점머리, 석점머리는 두들겨라. - 자기 모양은 살면서 상대방의 모양을 쪼그라뜨리는 것이라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괜히 두점머리 두들김이라고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두 집 내고 살면 진다. - 대마가 두집나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외부에 막강한 두터움을 허용하고 뒷맛까지 모조리 없애서 역전할 여지를 줄여버릴 가능성이 무진장 높기 때문.
됫박형은 패로 알라. - 이거, 프로도 무진장 헷갈리는 모양이다. 요다 노리모토가 오오다케 히데오와의 대국에서 착각으로 대마를 죽여버린 일이 있다. 참고로 둘 다 정상급 기사.
됫박형을 알면 5단급.
들여다볼 때 잇지 않는 바보 없다.
들여다볼 때 이어도 바보. - 하도 예외상황이 많아서 그렇다. 장대말로 안형도 없이 몰리게 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럴 때는 변화구가 필요. 보통 주변의 상대 돌이 강할 때 고분고분 잇다가는 크게 말리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다 잡히는 경우도 있다.
매화육궁은 죽음.
모르면 손빼라. - 돌 낭비하지 말라는 뜻.
밭전자 사이를 째지 마라. - 좀더 강한 밭전자 째는 놈 사위 삼지 말라 하는 표현도 있다.
빅은 삶.
빈삼각은 우형의 표본.
붙이면 젖히고, 젖히면 늘어라.
빵따냄은 30집, 거북등은 60집.
사귀생 통어복이면 필승.
쌍립자리가 급소.
석점은 중앙이 급소.
선치중 후행마. - '죽임은 젖힘에 있다.'와 대치되는 격언인데, 사활에서 둘을 적당히 배합해야 실력이 는다.
아생연후살타 - 내 돌을 먼저 살리고 그 후에 상대의 돌을 잡으라는 의미.
양곤마를 만들지 마라.
양날일자로 달아나지 마라.
양씌움을 당하면 필패.
요석은 살리고 폐석은 과감히 버려라.
유가무가 불상전. - 수상전에서 집이 하나 있는 쪽과 집이 아예 없는 쪽이 다투면 집이 있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 다만 여기에는 무가가 안쪽 공배를 다 메우기 전에 유가가 바깥쪽 공배를 다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이걸 두고 홍태선 사범의 경우는 이 격언을 가르칠 때 유가무가 불쌍해로 가르치는데, 대마끼리 얽히고 설켜서 싸움이 날 때 한수 차이로 유가무가로 잡힐 경우에는 정말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는 대국이라고. 정수현 9단이 최명훈 9단과 시합바둑에서 실착 하나로 수상전에 돌입했을 때 이 표현이 별안간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무참히 얼굴이 일그러졌다고 저서에서 언급했다. 그 바둑, 유가무가 때문에 한수 차이로 수십 점에 이르는 대마가 몰살당했다. 다시 말하지만 딱 한수 차이로! 그렇다고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프로바둑에서는 2수 이상 수상전은 미리 읽고 애초에 그 길로 가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1수 차이 수상전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다만 유가무가 상황에서는 무가 쪽이 공통 공배까지 전부 부담해야 하므로 이 공배까지 다 자신이 메우고도 겨우 1수 차이로 진다면 억울한 감정이 들 것이다.
육사 팔활. - 변의 2선에서 몰릴 때에 돌이 6개가 늘어서 있으면 죽고, 8개가 나면 산다는 말. 7개가 늘어서 있으면 선수면 살고 후수면 죽는다. 귀의 2선이나 변의 3선에서는 사사 육활.
2의 1에 급소 있다. - 실제로 귀 사활의 90%는 2-1이 급소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
적의 급소는 나의 급소.
좌우 동형은 중앙이 급소.
죽음은 젖힘에 있다.
직사궁은 삶, 정사궁은 죽음. - 정사궁은 빈 점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뭉친 4궁을 말하는데 포위당한 쪽이 연속으로 두 수를 놓아야만 겨우 살 수 있다. 포위당한 쪽이 한 수 놓으면 어떻게 놓아도 3궁이 되기 때문.
축을 모르고는 바둑을 두지 마라.
판육궁은 삶, 귀의 판육궁은 죽거나 패. - 판육궁은 3x2 형태로 된 직사각형의 6궁을 말하는데 귀에 붙어있으면 완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외부 공배가 다 메워진 상태에서는 2의 2 지점에 치중하면 그냥 죽고 외부 공배가 한 점 있는 경우 2의 1 지점에 치중하면 패가 난다.
패는 요술쟁이.
중앙으로 한 칸 뜀에 악수 없다.
14. 유입 인구 감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 있는 대중 오락거리였고, 2000년대에도 학부모들이 두뇌 발달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권장하는 취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의 방과후 교실 등에서 바둑반이 운영되고 교내 대회 등도 적지 않게 열렸다.
그러나 이후 PC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 등 여러가지 오락거리가 많아져서 유입 인구가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학창시절에 바둑을 취미로 배운 비율이 높은 90년대생들도 성인 되어서까지 즐기는 사람이 드물게 된 형국이다. 젊은 층에겐 점점 외면받고 있으며 고인물 게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기원이나 바둑 학원이 줄어들면서 아예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이에 바둑계도 SNS 홍보나 스포츠토토 도입 시도 등 여러 자구책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바둑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인 바둑학이 존재하는데, 세계에서 바둑학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교는 한국의 명지대학교와 세한대학교뿐이다.
15. 바둑을 소재로 한 창작물
자세한 내용은 바둑/창작물 문서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