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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경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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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뜬 눈으로 밤을 샌 어느 아침,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자신은 점점 투명해지는데 주변 사물들의 채도는 점점 짙어졌다. 경희는 그것들이 자신을 덮쳐오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것은 불가해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의 결과가 어디서 오고,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경희는 울 수밖에 없었다. 덮쳐오는 무게감들. 심장 언저리를 커다란 짐승이 지그시 누르는 느낌. 알 수 없는 것들이 실체를 가진 느낌이 두려웠다. 그것들이 언젠가 경희를 두꺼운 솜이불처럼 덮어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밤이 되면 불 꺼진 빈 집에서 혼자 울었다. 낮은 울음이 빈 공간에서 잘게 부서졌다. 무게를 가진 것. 실체를 가진 것.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경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 사실이 경희를 희미한 존재로 만들었다. 아주 사라지는 것도 아닌, 그 자리에 있지만 그것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존재로 말이다.
2
그 여름, 경희는 차를 몰고 밖으로 나섰다. 누구에게 연락해야하나.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경희는 그저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딘지도 모르는 국도를 달리고 또 달렸다. 장마가 지겹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를 달리고, 또 하루를 달리고. 떨어진 기름을 채우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으며 경희는 달렸다. 마침내 경희는 먼 곳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이 어쩐지 의미심장한 곳이란 걸 깨달았다. 그곳은 강릉의 작은 항구였다. 키 작은 건물들이 컨테이너를 이어놓은 것처럼 붙어 있는 곳이었다. 경희는 이제 막다른 곳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테트라포트가 가득한 방파제 위에서 경희는 전화를 들고 망설였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다. 둑 위에 쪼그리고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경희의 팔뚝에 스스스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이곳이 가장 적합할지도 몰랐다. 밀물과 썰물의 경계가 모호한 이곳에서. 방파제 구멍 안에 빠지게 되면 시체도 찾기 힘들다 했던 말을 기억했다. 경희는 고개를 돌려 주차한 차를 바라봤다. 가만히 서 있는 자동차가, 웅크리고 있던 경희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머리를 감싸고 둥글게 엎드려 울던 모습이. 고개를 흔들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볐다. 피부가 거칠었다. 살비듬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다시 차를 몰고 둑을 빠져나오면서 경희는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이어지던 신호가 멈추고 전화 너머에서 잠이 덜 깬 듯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항구에서 좀 벗어난 곳에 차를 주차한 뒤 경희는 연두와 통화를 했다. 잠이 덜 깬듯했던 연두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경희? 경희라고? 어? 강릉? 그 전화를 붙잡고 경희는 웃음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연두의 목소리가 사년 전과 전혀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게 우스웠다. 그 목소리의 변화 없음이 어쩐지 벼랑 끝에 서 있는 경희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언제까지 강릉에 있어? 아, 나는 항상 시간이 많아. 여기 온 뒤로 돈도 시간도 항상 넘쳐나. 응, 응, 그래. 내가 나갈게. 잠시만, 음. 지금이 세 시 반이니까, 이따 다섯 시쯤 보자. 응. 내가 거기로 갈게.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 있어. 응. 그래 이따 보자. 경희는 시트를 젖히고 몸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자동차 안에 천천히 물이 차오른다. 차갑거나 뜨겁지 않은, 체온처럼 미지근한 물이 허리를 넘어 가슴을 넘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물에서 썩는 냄새가, 쓰고 비린 맛이 난다. 경희는 헛구역질을 한다. 눈을 감고 높아지는 수위에 몸을 맡긴다. 이윽고 얼굴까지 모두 물에 잠기고 나서야 눈을 뜬다. 눈앞에 흐릿한 형체가 보인다. 그것이 두 팔을 뻗어 경희의 얼굴을 감싸 쥔다. 가까이 온다. 경희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을 때, 검은 형체가 파도처럼 부서지는 목소리로 거칠게 속삭인다.
살려줘.
경희가 눈을 뜬 시간은 네 시 반이었다. 자동차 시동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어지러웠다. 시동을 끄고 밖으로 나와 숨을 들이켰다. 바닷바람의 짠 냄새가 흘렀다. 잠시 머리를 짚고 수평선을 바라봤다. 오징어잡이 배 한 척이 천천히 수평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습한 바람이 몇 차례 경희의 귓가를 스쳐갔다. 경희는 연두와의 약속장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경희가 연두를 먼저 알아봤다. 연두가 웃을 듯 울 듯 복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경희에게 다가와 포옹했다. 향수 냄새가 짙었다.
3
경희는 연두를 따라 횟집으로 들어갔다. 온돌 장판이 깔려 있는 작은 횟집이었다. 두 개로 나뉜 수조 오른편에서 광어와 우럭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편에는 멍게와 해삼 같은 것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경희는 천천히 입을 뻐끔거리는 우럭을 보고 있었다. 이따금 작은 기포가 솟아올랐다. 하얗게 표백된 눈동자가 초점 없이 머물러 있었다. 연두가 미리 예약을 해 놓은 것인지 식탁에는 이미 밑반찬들이 나와 있었다. 반찬들을 사이에 두고 수저와 물수건이 서로를 마주 보고 가지런히 놓였다. 연두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소주잔과 맥주잔이 경희 앞에 놓였다.
“4년만인가?”
연두가 경희의 잔에 소주와 맥주를 섞으며 말했다. 경희가 잔을 받고 연두의 잔에 똑같이 소주와 맥주를 섞었다. 팅, 잔 부딪히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렸다. 경희는 술을 한 번에 모두 들이켠 뒤 연두를 바라봤다. 연두는 입술을 오므려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때 연두의 버릇이었다. 감정을 숨기려 일부러 입술을 오므린다고, 연두는 말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버릇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뭐 하고 지냈어? 아직도 그 네일샵 다니는 거야?”
경희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 진즉에 문 닫았어. 선배부부가 이혼소송을 했는데, 위자료다 재산분할이다 해서 가게가 공중 분해됐거든.”
“어쩐지... 그 사람들 같이 있으면 분위기가 안 좋긴 했어. 무슨, 방금 갈아놓은 칼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니까.”
연두는 강릉으로 들어와 부모님의 펜션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도 남고 돈도 남아서 심심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웃음이 무게를 가진 것 같아서 경희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로 오기 전 했던 결심 같은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난 네가 어디서 죽어버린 건 아닌가 했어.”
연두가 경희의 잔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따르며 말했다. 경희는 잔을 받아들어 천천히, 빙글빙글 돌렸다. 하얀 포말의 흔적처럼 거품은 컵의 표면에 붙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연두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둘은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 침묵이 어색해질 무렵 접시에 담긴 회가 나왔다. 회 접시가 식탁에 놓이는 그 과정이 둘 사이의 침묵을 무마해주었다. 연두가 잔을 들어 내밀었다. 경희도 잔을 들어 연두의 잔과 살짝 부딪혔다. 그리곤 다시 술을 마셨다. 연두가 회 두 점을 집어 경희의 접시에 옮겨놓았다.
“많이 먹어. 이거 자연산이야. 내가 사는 거니까.”
경희는 연두가 옮겨놓은 회를 집어 입에 넣었다. 입 안에서 찢어지는 물고기의 살점을, 경희는 오래도록 삼키지 못하고 씹고만 있었다.
4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희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시작했다. 3개월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3개월이 지나면 일을 시작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생긴 대출금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갚으면 그만이다.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연애도 하지 않을 테니, 그러니, 대출금 2,3 천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몇 년 만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의사가 말한 3개월에서 3개월을 더 산 뒤 죽었다. 해방감이라던가 슬픔이었던가. 무엇을 느낄 새도 없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일샵에서 일할 수 있었다. 네일 도로시였나, 도로시 네일이었나. 대학상가에 있던 열 평 남짓한 네일샵이었다. 경희와 같은 과 선배가 운영하던 가게였다. 경희는 무려 3년을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고 퇴근했다. 돌아보니 3년, 이었다고 경희는 생각했다. 그 3년 동안 경희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3년을 살았다, 보다는 견뎠다, 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를 제하고 대출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원금은 3년 동안 반 정도 갚는데 그쳤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경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생각은 걱정을, 걱정은 경희의 발밑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걷다가도 깜짝 놀라 발밑을 확인했다.
네일샵인지 뭔지, 경희는 그 곳을 도로시라는 단어 하나로 기억했다. 출근 할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져간다고 느꼈다. 경희가 동화 속 도로시와 자신을 동일시 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를 느끼는 감각, 경희는 그런 것들이 사라져간다고 느꼈다.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 대체로 추상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한 감각. 때문에 경희는 자신이 도로시 옆에 서 있는 심장이 없는 로봇인 것만 같았다. 삐걱거리는 팔 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도로시로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몇 번인가 피식 웃기도 했다. 그 때문에 손님에게 오해를 사 컴플레인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경희는 그런 일들로 분노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런 일들 따위는 지나가고 나면 그만인 것이었다.
네일샵에 처음 왔다던 연두에게 관리코스와 가격 등을 안내했다. 연두는 경희의 눈을 마주 보고 안내를 들었다. 연두의 손을 잡았다. 손톱 끝이 뭉툭한 부분들이 있었다. 물어뜯은 흔적이었다. 왼 손 엄지손톱과 오른손 검지 손톱이 그랬다. 연두의 손톱들을 같은 기장으로 맞춰 다듬고 큐티클을 제거했다. 기장을 연장 하고 젤 네일을 했다. 연두는 파스텔톤 색깔을 원했다. 몇 가지 파츠 중 나비 모양 파츠를 선택했다. 경희의 왼 손 중지 손톱에 푸른 색 나비 파츠를 얹었다. 연두의 손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웠다. 손이 정말 따뜻하시네요. 경희는 연두의 그 말을 기억했다. 지금껏 누구도 경희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연두가 찾아왔다. 이상한 일은 연두가 네 번째 네일샵에 찾아왔을 때 일어났다.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경희의 앞에 연두가 앉았을 때, 연두의 손을 잡은 경희는 울었다.
여름이었다. 경희의 방에 달려있던 에어컨이 고장 났다. 원룸 관리인에게 수리를 해달라고 했지만, 만족스런 답을 들을 순 없었다. 멀쩡하던 에어컨이 갑자기 고장 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수리비를 경희가 부담하게 했는데, 경희는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십 육 만원. 에어컨 기사는 새로 사는 게 나을 거라는 말을 전하고 그대로 현관을 나섰다. 기껏해야 오 육 만원이면 고칠 수 있을 거라던 주인의 말과 전혀 달랐다. 경희는 자신의 월급과 여윳돈을 계산 해보곤 에어컨 수리를 단념했다.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를 견디다 못한 경희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찜질방에서는 비교적 잘 잘 수 있었으나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름을 모두 날 수는 없었다. 이 삼일에 한 번 찜질방에 갔으나 그렇지 않은 날에는 화장실에서 플라스틱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거나 냉동실에 얼린 얼음팩을 안고 잤다. 열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경희는 고통스럽게 숨을 내쉬며 날을 새곤 했다.
그런 날들을 보내는 동안 경희는 문득 문득 복수에 배가 불러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삼 년 전에 죽은 아버지에 관한 생각을 할 때면 분노와 동정 같은 감정들이 불쾌하게 섞였다. 병수발을 했던 반 년. 그 반년이 지나고 받아든 아버지의 빚 같은 것들. 경희는 모든 것을 깨끗이 포기했다. 전세 집이 있었고 통장에 얼마간 현금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처분해야 겨우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남은 돈은 삼 백 이십 만원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지금은 어디에 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픈 몸으로, 아픈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경희가 차려주던 밥상을 출석 도장 찍듯 하루 세 끼씩 꼬박꼬박 챙겨먹던 아버지. 저녁이면 술까지 마시던 아버지. 경희는 3개월 남았다던 의사의 말이 어쩌면 보험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최대한 짧게 말해야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으니까. 그리하여 3개월이던 수명이 4개월이 되고 5개월이 되고, 그제야 목숨을 놓은 환자에게 그만하면 됐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애도의 기간. 그런 것들은 경희에게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경희의 희망은 3개월짜리였고, 3개월이 지나서 6개월을 사는 아버지를 보며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찜질방에 챙겨간 삶은 계란 세 개를 들켜 새벽 세시 반에 강제로 퇴실당하면서 경희는 수치심을 느꼈다. 가난이나 처지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었다. 젊은 사람이 궁상맞게 뭐 하는 짓이야? 외부 음식 반입하면 강제 퇴장이라고 적혀 있잖아. 궁상이라는 말보다, 젊은 사람이라는 말이 경희에겐 수치스럽게 들렸다. 나 젊은 사람이었구나. 젊다니. 젊음이 수치스러울 수 있다는 걸 경희는 그때 알았다. 새벽 거리를 걸으면서, 좁고 습한 방으로 돌아가면서 경희는 찜질방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계란 같은 것 싸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음 날, 네일샵에 온 연두가 경희의 얼굴을 보곤 물었다.
“잠을 못 주무셨나 봐요. 다크써클 좀 봐. 무슨 일 있어요?”
경희는 그 말이 주는 안도감이 무서워서 연두의 손을 잡고 울 수밖에 없었다.
5
연두는 그 뒤로 그때의 일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경희가 연두의 손을 잡고 울었다는 것. 그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연두는 그저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는 것. 경희를 끌고 그대로 가게를 나간 연두가 카페에 경희를 앉혀놓고 무엇 때문에 힘이 드느냐 물어 본 것이 경희는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 날 하루 종일, 연두는 경희의 앞에 앉아 경희의 역사를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인 경희를 위해. 오직 경희를 위해서만 말이다.
경희는 연두와 만나면서, 어떻게 이렇게 여유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떤 굴곡도 없다는 느낌이었다. 구불구불 꺾인 길을, 신발 코를 질질 끌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걷는 경희와 다르게 연두는 쭉 뻗은 도로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경희가 아무리 바쁘게 걸어도 가지 못하는 거리를 연두는 천천히 걸어 금방 도착할 것만 같았다. 중간에 소나기가 오면, 더웠는데 마침 잘 됐다,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경희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이 어째서 나와 함께 하는 걸까. 무언가를 바라고 나에게 접근 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경희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연두는 경희가 바라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방이 두 개인 곳에서 살고 있었고, 에어컨이 고장 나지 않았다. 다달이 대출금과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경희에겐 더 이상 무언가 빼앗아갈 게 남아있지 않았다. 몇 번을 고민한 끝에, 경희는 연두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네가 너무 위험해보여서.”
연두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랑 닮은 여동생이 하나 있었어. 오래 전에 죽은.”
수학여행을 가서 죽은 여동생이 있었다고, 연두는 웃으면서 말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그렇지 않았다. 눈가가 붉어졌다고 느꼈다. 경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앞에 놓인 커피만 한 모금씩 마셨다.
“그 애는 자살했어. 세상이 그 애 마음대로 잘 안 됐었나봐. 거의, 똑같았어. 너랑 말이야. 많이 힘들어 했는데.”
6
“그래서, 내가 보고 싶어서, 결국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지?”
경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연두, 언니를 보고 싶었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왜 날 두고 그렇게 가버렸어. 언니를 만나면서 나는 약해졌고, 약해진 마음으로 내 거대한 구멍과 다시 싸워야만 했어. 그냥 두지 그랬어. 나를 그냥 뒀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야. 그냥, 삶이란 게 이렇다고, 그렇다고 생각했겠지. 근데 그게 아니잖아. 언니 때문이야. 많은 말을 경희는 속으로 삼켰다. 연두가 벨을 누르고 매운탕을 주문했다. 소주를 잔에 따르고 맥주를 따르려 했으나 병이 비어 있었다. 연두는 그대로 소주를 마셨다. 연두가 코를 훌쩍였다.
“미안해.”
“뭐가?”
“네가 이렇게 된 게 내 탓이 아닌가 싶어서.”
무엇을 하러 온 건지, 경희가 말하지 않아도 연두는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닷가 횟집의 조명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수평선 끝에는 노란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경희는 그 말이 연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언니 탓이라고?”
연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식탁의 벨을 누르고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매운탕이 끓기 시작했다. 가스 불의 세기를 줄이고 국자를 위 아래로 움직였다.
“네가 왔다고 했을 때 정말 놀랐지. 정말로 정말정말 많이 놀랐어.”
주문한 술이 도착하자 뚜껑을 따고 경희의 잔과 자신의 잔을 채웠다. 다시 채운 잔을 들이켜곤 새로 채웠다.
“어쩌면 나에게 잔뜩 화가 나서 온 건 아닌가 싶기도 했어.”
연두의 눈가가 붉어졌다. 울지는 않았다.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다시 한 잔을 비워냈다. 경희가 연두의 빈 잔과 자신의 잔을 다시 채웠다.
“언니가 왜 그런 생각을 해. 나는 좋았어. 언니 만나는 거 말이야.”
“그것 때문 아닌가, 하고. 좋았기 때문에.”
연두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경희는 문득 불안해졌다. 연두가 국자를 들어 경희의 접시에 생선살과 국물을 퍼 담았다. 자신의 접시에도 국물을 조금 덜었다.
“그 날, 내가 그런 식으로 나가지만 않았어도......”
연두는 경희와의 마지막 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그때 돌아가셨거든.”
연두의 어머니는 새벽 여섯 시, 스스로 겨울 바다에 몸을 던졌다. 사망 원인은 익사가 아닌 저체온증이었다. 엄마의 시신은 부표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 시간 연두는, 경희와 함께 밤새 술을 마시고 경희의 원룸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연두는 그 사실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싫었다. 그 겨울, 차가운 물속에서, 어딘가에서 떠내려 온 부표 하나를 붙잡고, 위 아랫니를 딱딱 부딪혀가며 떨었을 것을 생각했다고. 그리하여 어느 순간 추위도, 아픔도,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거라고. 다음 날 오후 늦게 눈을 뜬 연두는 수없이 많은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자가 수십 통 와 있었다. 씻지도 않은 채 옷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경희가 눈을 떴다. 연두는 경희에게, 집에 일이 생겨 바로 가 봐야 한다고 말한 뒤 급하게 원룸을 빠져 나왔다. 그 길로 어머니가 있다던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때 아무 말도 없이 간 게 마음에 걸리긴 했어. 하지만, 나중에 설명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보통 일은 아니잖아. 누군가 죽는다는 게. 그런데, 그 다음부터 너와 연락이 되질 않았지. 핸드폰 번호도 바뀌었고. 아마도... 네가 상처받은 거라고 생각했어.”
경희는 연두가 말하는 그때의 장면을 다시 생각해봤다. 그렇지 않았다. 연두는 그렇게 급해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두 눈에, 어쩌면 경멸이었을 감정을 담고 있었다. 술이 덜 깬 머릿속에 희미하게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연두의 목소리였다. 내가 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려고 만나는 줄 알아? 제발, 자존감을 갖고 살아.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 살 거야.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경희가 연두를 만날 때 하는 이야기라고는 언제나 상처의 역사뿐이었다. 오늘은, 어제는, 그제는...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며 받은 상처의 역사. 드디어 견디지 못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두가 정말로 저런 말들을 했을까.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다. 꿈이었을까. 경희가 말했다.
“난, 좀 다르게 기억했어.”
연두는 벌판에 선 순록처럼 경희를 바라봤다. 무심한 눈동자. 경멸의 눈빛. 서로의 시선이 묘하게 비껴갔다. 연두는 현관에 선 채 단화 끝을 타일 바닥에 톡 톡 두들겼다. 경희의 머릿속에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모를 말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언니, 언니가 나를 구원했어. 구원이라니,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어. 그런 말을 들을 만큼의 일을 한 적이 없어. 연두의 목소리가 연기처럼 무겁게 바닥으로 깔렸었다.
갈게
철문이 닫혔다. 연두가 나간 원룸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경희는 굳게 닫힌 철문을 바라봤다. 연두는, 경희가 가진 검게 뚫린 구멍을 메워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흉터가 남더라도, 상처라는 건 언젠가 아무는 법이니까. 구멍을 새 살로 채우고 그 곳에 따뜻한 피가 돌 수 있게 만들어줄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까만 구멍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였다. 새살이 돋을 가능성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것을 모른 채로, 검은 모래로 뒤덮인 사막에서 흰 신기루를 쫒듯, 연두는 소위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경희에게 밀어 넣으리라 다짐했을 거라고, 경희는 생각했다. 그 구원 때문에 경희는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그래서 경희는 연두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다. 그 겨울에 연두가 그렇게 떠났다고.
“너무 다른데?”
연두가 웃었다.
연두가 떠나고 나서 경희는 스스로가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어떤 방향으로도 흐르지 않았다. 경희의 주변에서 그저 공기처럼, 혹은 습기처럼 그렇게 머물렀다. 무엇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경희는 여전히 로봇처럼 도로시를 향해 삐걱거리며 걸었다. 다시 사 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한계라고 생각했을 때, 경희는 네일샵을 그만뒀다.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천 몇 백 만원으로 중고차를 한 대 샀다. 원룸 보증금을 뺐다. 다시 여름이 왔을 때, 경희는 차를 몰고 어디랄 곳도 없는 곳을 향했다.
7
연두가 운영하는 펜션에서 며칠을 보낸 뒤, 두 사람은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여행을 제안한 것은 경희였다. 경희는 배를 타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자신이 이상했다. 멀미조차 하지 않는 게 무슨 의미일까. 배 난간에서 연두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경희는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울릉도에 들어가 짜장면을 먹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깎아지른 절벽이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봤다. 카메라에 메모리가 가득 찰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그 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나는 풀꽃 하나까지 사진에 담았다.
돌아오는 배에서 연두는 멀미에 시달렸다. 선실 유리창으로 이따금 하얀 포말이 튀어 올랐다. 연두는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경희는 미지근한 맥주를 조금씩 홀짝였다.
“멀미약을 먹었는데도... 이상하네...”
연두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상체를 세워 앉았다. 눈가가 붉게 변해있었다. 연두는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그리곤 다시 내려놓는 손에 따 놓은 맥주 캔이 엎질러졌다. 흰 거품과 누르스름한 맥주가 울컥 울컥 쏟아졌다. 배는 흔들리고 있었고 경희와 연두 둘 중 누구도 맥주캔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연두는 울고 있었다. 울면서 말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다시 바꿀 수 없는 일이 세상에 있다는 걸 일찍 알았다면 조금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연두가 캔을 일으켜 세우고 티슈를 꺼내 맥주를 닦아냈다. 그 후로 둘은 나란히 누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도착한다는 선내방송이 나왔을 때, 연두가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정말로 죽을 운명이었다면, 그게 운명이었다면, 결국 그렇게 되는 거겠지? 그렇겠지?”
경희가 연두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손을 잡은 채로 경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
연두와 작별 인사를 한 뒤, 경희는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그 길로 편의점에 갔다. 청테이프 네 개와 번개탄 두 개, 라이터, 소주 세 병을 샀다. 이런 걸 사면 의심을 산다고 하던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은 경희가 가져온 물건을 계산하곤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 길로 경희는 연두를 만나기 전 처음으로 도착했던 둑으로 갔다. 에어컨을 내부 순환으로 바꾸었다. 죽더라도, 한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경희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 조금 웃었다. 라디오가 나왔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재생되고 있었다. 문 틈 마다 테이프를 꼼꼼히 붙였다.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두 병째 들이켤 때 나오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았다. 빠르게 마신 술은 경희의 의식을 빠르게 앗아갔다.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세 병째를 반 쯤 비우고, 정신이 몽롱해진다고 생각될 즈음, 라이터를 들어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엄마를 울게 만들 생각은 없어요.
만약 내일 이 시간까지 제가 돌아가지 않는대도,
계속, 계속 살아가세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
.
.
.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구요.
경희가 한 일에 대하여, 연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와 곧장 조수석에 올라탔고, 그대로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 누웠다. 병원복을 벗고 연두가 사 온 옷으로 갈아입은 경희가 운전석에 탄 뒤 시동을 걸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경희는 엑셀을 밟았다. 차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경희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차를 몰아가고 있어도 연두는 일어나지 않았다.
천천히 차를 몰았다.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도로 왼편에 바다가 보였다. 해변 도로를 달리면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두는 피곤에 지친 것처럼 팔을 눈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기대 있었다. 어떤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경희는 생각했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메우기 시작했다. 차가 달리는 속도보다 구름이 덮는 속도가 더 빨랐다. 목마르다. 연두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달리다 도로변 매점을 찾았다. 경희는 음료수 두 개를 샀다. 음료수를 건네받은 연두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경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손톱만 한 물방울이 차창에 탁, 탁, 하고 부서졌다. 곧이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상등을 켠 뒤 속도를 줄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연두가 불안하게 앞을 보고 있었다. 경희는 도로변에 정차하고 운전대에 몸을 기대 엎드린 채로, 한참을 앞만 바라봤다. 경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이 검게 암전됐다. 딸각, 딸각, 비상등이 점멸했고 물에 빠진 사람의 양 팔처럼 빗속에서 와이퍼가 허우적댔다. 빗방울 부서지는 소리로 차 안은 먹먹했다. 경희도, 연두도 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쉬이 입을 열 수 없는 무게감 있는 침묵이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반짝, 번개가 비치고 얼마 안 있어 낮은 울음 같은 천둥이 따라왔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강해졌다.
“흐,,,흑,,,흑...”
연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느낌은 곧이어 울음으로 변했고 얼마 안 있어 통곡으로 변했다. 연두의 목에서 쏟아지는 거친 목소리가 빗소리와 탁하게 섞였다.
“나는...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랐어...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무슨... 무슨 일이 있어도, 너만은 행복하길 바랐는데...”
울면서, 울면서 몇 마디를 더 말했지만 경희는 그 뒤의 말들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천천히 사이드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D에 옮겨놓았다. 비상등을 껐다. 자동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았고, 낮은 천둥소리가 울음처럼 따라왔다. 그럼에도 경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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