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안국선(安國善, 1878-1926) |
국가 |
한국 |
분야 |
소설 |
해설자 |
김연숙(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
이 책에 실린 안국선의 작품은 1908년에 발표된 ≪금수회의록≫과 1915년에 나온 단편집 ≪공진회(共進會)≫에 실려 있는 <기
(妓生)>, <인력거군(人力車軍)>, <시골 로인 이야기> 네 편이다. ≪금수회의록≫은 안국선이 대한협회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한 작품으로 사회 비판적이라면, 1915년 발표한 ≪공진회≫는 청도 군수를 지낸 이후의 작품으로서 친일적이고 사회 순응적이어서 매우 대조적이다. 실제로 ≪금수회의록≫은 1909년 5월 치안 방해를 이유로 판매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금수회의록≫은 개화기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908년에 ‘황성서적업조합’에서 간행한 우화(寓話) 소설이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연설회의 형식을 빌려, ‘나’라는 1인칭 관찰자가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연설 회의장에 들어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동물들의 연설은 이미 1907년 간행된 연설 입문서 ≪연설법방≫의 연설 예문에서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연사로 나온 동물은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새로 그들은 인간의 간사함과 포악성, 비윤리적인 태도 등을 비난한다. 연미복을 입은 까마귀는 연단으로 맨 먼저 나와, 어느 정도 자란 까마귀는 제 어미에게 먹이를 갖다 준다는 ‘반포지효(反哺之孝)’를 강조하면서, 인간들의 불효를 비판한다. 여우는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여우를 내세워 인간의 간교함을 꼬집는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비판한다. 개구리는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소견 좁은 인간을 풍자한 ‘정와어해(井蛙語海)’를 강조한다. 벌은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나 속으로는 남을 해친다는 인간의 양면성을 비판하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을 강조한다. 게는 인간이 나약하고 창자 없는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것을 비난하며, 사람을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불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파리는 조강지처도 버리고 유지나 지사를 고발하여 감옥에 넣는, 이른바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소인배들을 비난하는 ‘영영지극(營營之極)’을 비판한다. 호랑이는 옛말에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없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인간의 가혹한 정치와 권력의 남용이 산속의 호랑이보다 포악하고 무섭다는 말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 한다. 원앙새는 자신들은 어디를 가거나 올 때에도 항상 같이 다닌다는 ‘쌍거쌍래(雙去雙來)’의 화목한 부부의 의라고 하면서, 인간들의 부정한 행실을 비판한다.
이처럼 연설 주제가 각각의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성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내용을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그리고 인간 생활에 대한 비판이 동물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각각의 동물들은 인간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서 인간의 부도덕과 악을 조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화성과 풍자성을 가지고 있다. 또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할 때, 개화기의 부정부패, 탐관오리의 타락과 사대적 경향 그리고 문란한 풍속과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강렬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한편 ≪금수회의록≫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비판이 주로 기독교적 사상과 전통적인 사상을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는 당대 신소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효(까마귀), 지조와 절개(게), 부부화목(원앙새) 등의 덕목들은 전통사회 윤리관이고, 하느님이 영혼과 덕의심을 주어 인간이 만물 중에 가장 귀하다 하나, 이미 사람은 그런 특권을 버렸다고 비판하는 부분들은 기독교적인 윤리관이다. 따라서 혼란과 타락에서 인간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작자가 내세운 것은 전통적인 윤리의 회복이며 회개하여 하느님이 사랑하는 선량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종종 ≪금수회의록≫의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당시의 사회를 구제하는 데에 전통적인 윤리나 기독교적인 윤리 덕목들이 일정정도 유효했지만 이에 비해, 작품에 나타난 현실 비판은 너무나 심정적이고 이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 위기에 처한 민족의 현실을 타개한다는 실질적인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수회의록≫은 당시의 신소설들이 문명 개화를 촉진하자는 입장에서 쓰인 것과 비교해서 그 문명 개화로 말미암은 도덕적 타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쓰였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신소설이 통속적 흥미에 치우쳐 빈약한 주제 의식을 보이고 있던 것과 비교할 때, ≪금수회의록≫은 강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금수회의록≫의 형식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우선 전체적인 구성상 회의 형식이 특징적이다. 비록 대화식의 토론 진행은 아니지만, 단상에 나와 발언할 때에는 반드시 회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고 나오는 것이라든지, 합당한 발언에 대해서는 ‘손뼉 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공감을 하는 광경 등 일련의 회의 진행이 근대 초기에 유행했던 정견 발표회(政見發表會)와 흡사하다. 또 동물들의 연설에서 주제 의식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계몽성과 교술성이 강하고, 청중을 향한 연설에는 율문 투와 반복과 문어체적인 요소의 말이 많이 나타난다.
문학적 양식의 측면에서 볼 때, ≪금수회의록≫은 서사적인 양식으로서의 소설에는 다소 미달한 작품이다. 서사가 아닌 직접 전달 즉 연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연설체로 쓰인 작품들은 연사들 간의 의견 대립이나 갈등이 노정되지 않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서사성이 없어 사건 진행이 전무하다. 따라서 이 작품은 대화체 소설이며 우화 소설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그 외 ≪금수회의록≫은 ‘꿈’의 장치를 사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꿈속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특별한 구성 없이 그 내용이 작품 외적 사실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몽유록과 흡사하다. 그러나 몽유록은 역사적 인물이 주로 나타나지만, ≪금수회의록≫에는 동물들이 등장한다는 차이가 있다.
단편소설집 ≪공진회≫는 1915년에 안국선이 발표한 것으로 원래 <기
(妓生)>, <인력거군(人力車軍)>, <시골 로인 이야기>, <탐정순사(探偵巡査)>, <외국인의 화(話)> 등 다섯 편이었으나, 당시 경무부의 검열에서 뒤의 두 편이 삭제되고 앞의 세 편만 남아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공진회≫는 소설 속에 다시 사건이 이어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서문’이나 ‘이 책 보는 사람에게 주는 글’ 등을 앞에 제시하여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며, 세 편의 소설이 연작 형식이라는 특색이 있다. 또한 일상어 표현을 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화기 소설에서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 작품들을 살펴보면, <기
(妓生)>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을 배경으로, 진주ㆍ서울 및 중국 칭다오(靑島), 일본 도쿄 등을 무대로, 한 기생이 온갖 유혹과 환난을 물리치고 어렸을 때의 친구인 유만이와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인력거군(人力車軍)>은 1910년대 서울 거리에서 날품팔이하는 인력거꾼을 주인공으로 하여 서민층의 생활 단면을 그리고, 그의 과도한 음주를 징계하기 위하여 아내가 짜낸 지혜와 근면ㆍ절약하는 삶의 자세를 부각한 작품이다. <시골 로인 이야기>는 동학운동 직후의 강원도 철원과 서울을 무대로 하여, 의병 봉기 및 진압 등 난리를 겪는 우여곡절 속에서 지난날에 혼인 약속이 되어 있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 성취를 그린 작품이다. 특히 <시골 로인 이야기>는 액자 구조의 단편소설 양식을 특징으로 한다.
한편, 안국선은 ≪공진회≫의 ‘서문’과 ‘독자에게 주는 글’을 통해 당시 열렸던 물산 공진회 참가를 권유하고 여흥을 돋우기 위해 글을 썼다고 밝힘으로써 소설의 교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안국선이 보여주는 보다 발전된 근대적 소설관의 인식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 작품들은 근대적인 단편소설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인력거군>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신소설이나 고대소설과 흡사한 내용을 길이만 짧게 축약한 단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 로인 이야기>에서 보이는 액자 구조나 <인력거군>에서 드러나는 사실적 묘사와 단편적 양식 등은 장편 신소설과 1920년대 이후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교량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아 왔다. 이런 점에서 ≪공진회≫는 최초의 근대적인 단편소설집이라는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진회≫가 제목 그대로, 일본 식민 당국에 의해 거행된 ‘시정 5년 기념 조선 물산 공진회’의 적극적 홍보였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1915년 9월 10일에 열렸던 공진회는 “총독 정치 개시 이래 5년간에 있었던 조선 산업의 진보 발달”을 선전하기 위한 박람회였다. 각종 진열관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을 ‘진보’와 ‘개선’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식민지 조선을 원료 생산지이자 상품 시장으로 적극 개발ㆍ공략하기 위한 홍보였던 것이다. 안국선은 이런 공진회를 조선이 진보되고 개혁되는 계기로 파악했고, <매일신보>와 같은 친일계 언론들은 공진회가 경성의 불경기를 일소하고 호경기를 가져오는 데 큰 요인이라고 선전했다. 공진회 개최 이후 식민지 조선의 경성이 엄청나게 발전했던 것은 사실 그대로다. 경성 시내 곳곳에 새로운 상점이 들어섰고 신문화가 급속히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표면적인 것일 뿐 ‘진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사실’을 찬찬히 살펴보면, 상점과 신문화의 주인공은 조선에 진출해 있던 일본인뿐이었다. 경성의 조선인은 일본인과 반대로 점차 상권을 잃고 있었고, 인구마저 현격히 줄어든다. 1915년 11월 말 공진회가 끝난 뒤 일본인 상인들은 그들의 초기 거점이었던 ‘혼마치(本町: 지금의 충무로)’ 등에서 벗어나 경성 전체로 엄청나게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반면에 조선인들은 당시 외곽이었던 왕십리, 마포 등으로 내쫓김이나 다름없는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경성은 1910년대 이후 식민지 상업도시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금수회의록≫에서 보여주었던 비판 의식과 ≪공진회≫의 친일 찬양을 두고, 그저 작가 의식 혹은 작품 활동의 변모라고만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각기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인 의의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겠지만, 이와 함께 역사의식의 부재가 가져왔던 종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과 ≪공진회≫는 역사의식없는 문명과 개화, 가치를 배제한 발전과 진보가 어디로 치닫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 계몽과 진보에 대한 열망이 종국에는 친일로 귀결되었던 쓰라린 역사.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발전과 진보에 대해 여전히 남아 있는, 현재진행형의 심각한 숙제이기도 하다.
- 참조어
- 금수회의록, 기생, 인력거군, 시골 노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