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지 않았다‘ (요1장 3~5절 말씀)
이천년 전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슨 일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변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이 말씀을 듣는 청중은 헬라인들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었는데 이들에게 예수님을 잘 이해 시킬 수 있었던 단어가 ‘말씀’ 즉 헬라어로 ‘로고스’라는 단어였습니다. 이 로고스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시며 영원히 선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는데 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즉 창조하실 때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예수님은 팔짱끼고 있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믿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나타내 주셔야 알 수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이 바로 일반계시 영역인 이 천지만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창조주가 있구나’를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특별계시 영역인 성경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그당시에도 헬라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중요한 건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창조물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세상이 삼위 하나님의 작품이구나’를 믿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님이 하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은 생명과 빛을 주시는 일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본질을 다시 생명과 빛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은 다시 ‘생명과 빛’이란 이미지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육체적 생명에 대해서 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초자연적 생명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즉 ‘로고스이신 예수님’ 안에 계속적으로 생명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헬라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추상적 성격을 지니는 정신이 아니라 구체적 실체를 나타내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만물을 살게 하였고, 이 생명이 죄로 인해 죽은 우리 또한 살게합니다.(요11:25~26) 또 한가지 주님의 생명이 우리안에 있는 자들은 빛 가운데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도덕적인 결정들을 하며 빛 가운데 행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빛이 어두움을 비추이고 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5절) 참 빛인 예수님을 영접하던지 어둠에 갇혀 영원한 심판과 늘 날마다 불안과 죽음을 묵상하며 살아가던지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혼돈 가운데에 있습니까? 어두움 가운데 혼돈 가운데서 늘 낙심하고 불안하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생들에게 빛으로 찾아오신 우리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해 자연만물을 통해 역사와 양심을 통해 성경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시냐하면 말씀이신 ‘로고스’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왜 인간이 되어 오셨느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셔서 깨닫게 하시고 이기시려고 이 땅에 오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물댄동산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빛으로 오셔서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