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19일 일요일, 6.25 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느덧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육사 27기 자전거 동호회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민족상잔의 피로 얼룩진 강원도 최전방 백마고지 전적지와 노동당사를 탐방하는 뜻깊은 여정에 나섰다. 모임 장소인 동두천역에 오전 9시에 집결하여 경원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우리의 발이 되어줄 자전거는 별도의 용역 차량으로 미리 보냈다. 백마고지역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린 날씨였다. 역에서 대마리 마을회관을 통과해 역곡천을 건너자, 약 2km 남짓한 거리에 백마고지 전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적지 입구에서는 두 발로 당당히 선 백마상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이곳에는 백마고지 전적비와 위령비, 승전탑, 전망대 등이 엄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백마고지 전투는 중공군과 한.미 연합군이 열흘간 12 차례나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우리 군이 승리한 역사적인 전투다.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이나 바뀌었고, 27만 발 이상의 포탄이 작열했던 격전지였다. 치열한 포격으로 산의 모습이 변해 마치 '백마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 같다고 하여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들을 향해 엄숙히 묵념을 올린 후, 펄럭이는 태극기의 도열를 받으며 승전탑으로 향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승전탑을 지나 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이 최전방 GOP 구역인가 싶을 정도로 사방은 시간이 정지된 듯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했다. 전방으로는 광활한 철원평야가 펼쳐지고 그 뒤편으로 높과 낮은 산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백마고지다. 당시 김일성은 철원평야를 빼앗긴 후 고암산 정상에서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철원평야가 지닌 전략적 가치가 막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용암이 흘러내려 형성된 이 비옥한 곡창지대를 만약 적에게 빼았겼다면 오늘날의 휴전선은 물론 철원평야의 풍요로움도 결코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철원평야를 지켜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 풍요를 누리고 있으니, 이는 실로 하늘이 도우신 일이다. 애국가의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절로 가슴에 와닿았다. 자유를 잃은 채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을 떠올리며, 하루빨리 평화통일이 오기를 간절히 염원한 뒤 약 4km 거리에 있는 노동당사로 향했다. 8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니 노동당사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6.25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적인 장소로, 과거 조선노동당 철원군당이 상주했던 곳이다. 북한군이 이 건물을 사수하기 위해 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탓에, 건물 벽면 곳곳이 온통 총탄과 포탄 자국으로 상처투성이였다.
현재는 붕괴 위험이 높아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외부 관람만 허용되고 있었다. 건물 뒤편의 방공호에서는 당시 정치범과 반공 인사 300여 명이 총살당하거나 생매장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함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시리고 소름이 돋았다. 노동당사를 벗어날 즈음, 바람이 거세지며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전인구 동기의 헌신적인 GOP 출입 협상 덕분에 계획에 없던 월정리역(폐역)을 깜짝 방문하는 행운을 얻었다. 노동당사에서 약 7,5km 떨어진 월정리역은 일반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는 통제 구역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로 유명한 이 역에는, 전쟁 당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누워있어 분단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역사(驛舍)가 쓸쓸히 방치되어 있지만, 언젠가 다가올 통일의 날에는 다시 살아 숨쉬는 역으로 우리 곁에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전역 후 14년 만에 다시 찾은 최전방이었지만 강산도, GOP도, DMZ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장구한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전쟁의 상흔이 깊게 패인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국가방위의 숭고함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전쟁이 발발한지 수십 년이 흘렀으나 휴전선은 말이 없고, 오직 녹슨 철조망만이 그 자리를 대변하고 있다. 저 철조망을 걷어내는 날이 바로 진정한 통일의 날이 될 것이다. 평화와 자유는 결코 거져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분쟁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내는 이스라엘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역사의 교훈을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안보에는 결코 완벽이란 단어가 있을 수 없기에, 오직 강한 정신무장과 철저한 훈련,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확고한 대비태세 유지 만이 조국을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금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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