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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광양 백운산행을 진행하는 안내산악회와 동행 후 '논실 → 한재 → 도솔봉(따리봉) → 참샘이재 → 갈림길 → 도솔봉 → 갈림길 → 논실 → 진틀 → 동동'의 13.5km, 6시간 코스를 산악회 계획과는 무관하게 진행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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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
높이: 1,125m
위치: 전남 광양시 봉강면
백운산과 도솔봉은 동서로 나란히 능선 위로 이웃하고 있으며 둘 다 1,100m가 넘는 고산이다.
백운산 산행의 기점은 동곡리 동쪽 마을로 여기서 묵방까지 올라 오른쪽 계곡 길을 따라 백운사를 경유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그중 가장 가까운 코스이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이어 나가면 도솔봉까지 연결할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현재 진행 중인 천고지 산행 중 답이 없는 봉우리 중 하나가 광양 백운산 도솔봉이다. 백운산이야 어느 기관이나 100 산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아, 거의 모든 안내산악회가 1년이면 10여 차례 산행을 진행하나, 그 코스에 정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도솔봉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게 들머리를 진틀마을, 날머리는 진틀 한참 아래에 있는 동동마을로 하고 있다. 안내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들머리인 진틀마을로 같이 이동해 산악회 코스를 버리고 독자적인 도솔봉 산행을 진행한다고 해도 버스가 기다리는 동동마을까지의 거리가 상당해 마감 시간 내 도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오가는 교통편에서 최선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게 4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해 초행자가 주어진 시간 내에 산행을 마감하기는 어렵다. 차비만 10만 원 가까운 건 별도로 하고.
해서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이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들머리까지 이동 후 독자적으로 도솔봉에서 교통편이 좋은 하조마을로 하산해 서울로 귀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방법으로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게 6시간 30분 정도로 초행이라도 웬만한 거리의 산행은 주어진 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다. 못 하면? 광양 맛집에서 거하게 하산주 마시고 1박하는 거고…. 다른 방법으로는 백운산 도솔봉이 호남정맥 상에 있어 정맥 팀을 따라가면 되기는 하나, 언제 진행할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였다. 해서 천고지 산 중 하나인 광양 백운산 도솔봉 산행은 들머리 진틀마을 안내산악회, 날머리 하조마을 대중교통으로 결론 내리고 잊고 있었는데, 산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안내산악회를 뒤적이다가 천고지든 100산이든 백두대간이든 3월 3주 차에 갈만한 산은 광양 백운산이 유일하다는 걸 알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3월 19일 토요일은 천고지 산행으로 이미 세워놓은 계획대로 안내산악회와 대중교통을 혼합해 광양 백운산 도솔봉을 다녀오기로 하고 신청했다.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왕 1박을 각오하는 마당에 안내산악회만으로 도솔봉 산행을 마치고 운 좋게 마감 시간 내 도착하면 그날 귀가하는 거고, 아니면, 1박하는 도박도 괜찮아 보였다. 성공하면 비용을 대폭 줄이는 거고, 실패하면 어차피 각오했던 광양 여행을 추가하는 거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박할 수는 없어, 성공 가능성이 몇 %나 되는지 구간별 거리를 확인했다. 등산 코스는 지도에 잘 나오니, 도로 구간만 교통 앱을 이용해 확인 후 더했다. 산행 순서에 따라 먼저 도로 구간인 진틀휴게소에서 논실 들머리까지 1.1km, 이후 한재를 거쳐 도솔봉에 오른 후 논실로 다시 하산하는 환종주 7.8km, 끝으로 논실에서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는 동동마을까지 도로 구간 5.1km! 해서 총 거리는 14km다. 산행에는 6시간이 주어졌다. 고로 평속 2.4km/h로 달리면 마감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더욱이 전체 거리의 거의 반에 달하는 두 번의 도로 구간 6.2km는 4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으니, 성공 확률은 90% 이상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매주 한 번은 능선을 달려야 하나, 지난주 토요일 대간령 왕복은 산행이라 부르기 민망한 야유회[산행기]로 달리지 못해 찌뿌둥한 몸을 풀어줘야 하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토가 아니라 일요 산행이 될 확률이 높았다. 애초 이번 주 토요일 오지 산행을 신청했으나, 성원 미달로 산악회에서 취소할 확률이 높아 Plan B로 일요일 담양 추월산행을 신청했는데, 추월산에 갈 확률이 99%다. 그럼 몸을 풀기에는 너무 오랜 후라 혹시 주중에 갈만한 산이 있나 궁금해 산악회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발견한 게 광양 백운산 도솔봉 산행이다. 도솔봉 산행 계획을 안내산악회에서 발견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깜짝 놀랐다. 애초 가겠다는 의지 없이 산악회 게시판을 뒤적거렸으나, 이제는 꼭 가야 한다. 해서 목요일 일정을 다 조정하고, 도솔봉 산행을 신청했다. 물론, 이미 신청했던 3월 19일 백운산행은 취소했다.
이런 사정으로 이번 목요일 번개 산행으로 광양 백운산 도솔봉을 다녀오게 됐다. 기상청 산악 기상예보에 의하면 당일 광양 백운산 정상의 기온은 영한 1~2도를 오르내리나, 체감기온은 영하 4~6도 사이고, 바람은 초속 3m로 약간 추울 거 같아 지금까지 해왔던 겨울 산행과 같은 준비를 하기로 했다. 점심은 당연히 컵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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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지만, 평소 주말 산행과 다름없이 준비해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40분경이다. 산악회 버스 정차 예정인 국립외교원 앞에는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모여 있었다. 이번에 동행하는 안내산악회 버스는 기본 7시 정각에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나, 서울에서 상당한 거리가 떨어진 남도는 특히 멀어 10분 이른 6시 50분에 출발한다. 오늘 출발하는 7개 팀 중 6개 팀은 7시에 나머지 한 팀인 광양 백운산만 6시 50분에 출발한다. 고로 지금 모여 있는 대부분 등산객은 광양 백운산 아니 도솔봉에 같이 갈 동지들이다.
출발 예정 시각인 6시 50분에 버스가 도착해, 짐칸에 배낭을 넣고 카메라와 패드만 들고 체온을 확인 후 버스에 탔다. 양재에서 타야 할 모든 승객이 다 탄 후인 6시 53분에 출발한 버스는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운 후 실내등을 끄고 멀고 먼 남도 끝자락 광양을 향해 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보고 있었으나, 실내등이 꺼져 깜깜한 가운데 책을 보려니 눈이 아파 패드를 끄고 잠을 청했다. 햇볕이 따가워 눈을 떠보니, 대략 1시간 20분가량 잤다. 그리고 바로 터널로 들어가는 게 정안터널이다. 거의 매 주말 하루는 산악회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니 웬만한 도로의 터널과 휴게소는 다 알 정도가 됐다. 터널을 지나 조금 더 달려 8시 50분경 여산 휴게소로 들어갔다. 반 왔다. 아니다. 도착 예정 시간이 11시 40분이니, 아직 3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앞으로 2시간만 가면 되는데, 11시 40분 도착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산악회 게시판에서 산행 계획을 보는 순간 품었던 의문이기도 했다.
가람 이병기의 고향답게 시조를 주제로 만든 작은 공원을 둘러보고 버스에서 내릴 때 한 장 들고 온 이번 산행 코스 지도를 사진으로 찍었다. 이후 볼일을 보고 버스에 탑승해 패드로 책을 보고 있으니, 인솔 대장이 QR 체크를 시작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는 안내산악회는 여기가 유일하다. 승객이 모두 탑승하자, 버스는 출발했고, 대장은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산행에는 100 산을 선정하는 모든 기관의 인증 장소인 백운산 정상에 오르는 A 코스와 인증과는 무관한 도솔봉에 오르는 B 코스가 있는데, 설명 전 먼저 B 코스 산행자는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해서 당연히 손을 들었는데, 혼자다! 대장을 포함 모두가 놀랐다. 대장과 나는 도솔봉 산행자가 없음에, 다른 등산객은 인증도 안 되는 도솔봉에 오르는 인간이 있는 것에. 다른 등산객이 놀라워했던 이유는 산행이 끝나고 옆자리 등산객과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됐다.
인솔 대장이 당황한 이유는 백운산행 계획을 이번처럼 도솔봉을 포함해 A, B로 나누는 건 극히 드문 일로 당연히 도솔봉 산행에 목말라 있는 등산객을 위한 계획이다. 일반적인 백운산행은 이번과는 반대로 진틀에서 시작해 동동에서 끝내는 산행이다. 나도 2018년 12월 1일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다녀왔었다[산행기]. 대장이 말하길, 그도 도솔봉이 있는 B 코스로 산행을 할 예정이었으나, 산행자가 한 사람이라, A 코스인 백운산에 오르겠다며, A 코스 산행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A 코스가 일반적인 백운산행과는 반대로 진행하는 거라 시간이 많이 남는 등산객은 B 코스에 있는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따리봉까지 다녀오라고 권했다. 물론 무턱대고 가면 마감 시각을 맞출 수 없으니, 하산 출발 고개인 한재에 2시 30분까지 도착한 A 코스 등산객만! 그리고 산행에 주어진 시간 5시간 30분. A 코스 설명이 끝나고, 내게 B 코스 설명이 필요하냐고 물어 필요 없다고 얘기해주는 거로 이번 산행에 관한 설명을 끝냈다.
산행과는 별개로 대장이 덧붙인 건 마을 200여 미터 위에 고로쇠 수액도 판매하는 송어양식장이 있는데, 본인이 돌아다니며 먹어본 최고의 맛이었다며, 시간이 되면 맛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 목표가 생겼다. 빨리 산행을 마치고 송어회를 먹기로. 왼쪽으로 지리산을 보며 달린 산악회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순간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로, 이물질 침투 방지용 미니 스패츠를 착용했다. 그리고 조금 있자, 버스는 고개를 오르기 시작해 A 코스 들머리인 진틀에 도착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등산객이 버스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들고 버스에 다시 탔다. 내가 내릴 곳은 이보다 1km가량 위인 논실마을 주차장이라. 위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더울 거 같아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배낭에 넣는 등 산행 준비를 마치자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11시 정각이다. 내 예상대로다! 고로 마감 시각은 4시 30분으로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내리기 전 공지한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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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주차장에 내려 배낭을 둘러메고 보니, 이정표나 지도가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디든 위로 올라가면 될 거라는 생각에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이정표와 지도가 나타났다. 도솔봉까지 2.5km다. 그런데 지도를 아무리 살펴봐도 산악회가 제공한 지도에는 있는 제비추리봉에서 도솔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타는 길이 없다. 인솔 대장도 언급했던 길인데. 해서 일단 그 능선에 가깝게 접근하는 길을 따라가면 등산로가 나타날 거라는 기대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능선 옆으로 난 임도로 갔다. 그 능선으로 올라타는 길은 내가 사용하는 두 개의 등산 앱에도 없다.
임도 갈림길을 지나, 계속 올라가자 산사태로 무너진 곳으로 등산로로 보이는 길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이정표나, 등산로라는 표지가 아무것도 없어,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단독 산행이니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명확한 등산로를 찾아 계속 갔다. 그리고 11시 22분에 애초 마을 입구에 있던 이정표가 가리켰던 도로와 만났다. 괜히 잘 모르는 길을 찾다가 거리만 길어졌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소모했고. 그런데 이 임도가 다른 지역과 달리 마을 주민이 고로쇠 채취를 위해 활발히 이용하는 도로라, 곳곳에 주차해 있는 트럭이나 승용차가 있었다. 물론 그런 걸 보면 멀쩡한 도로를 두고 걸어 올라가는 스스로가 한심해지지만.
산을 향해 쭉 뻗은 임도를 따라 11시 36분에 등산객이 타고 온 거로 보이는 SUV 한 대가 주차해 있는 임도 끝에 도착했다. 등산로의 시작점이다. 거기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도솔봉까지는 1.5km, 산악회 버스가 있는 논실 주차장까지는 1km다. 그런데, 등산로를 찾기 위해 능선 쪽으로 우회하는 바람에 3km가 넘는 임도를 걸었다. 실제 산행의 시작은 이제부터로 등산로는 너덜겅이라 부르기에는 큰 돌덩어리 사이로 나 있어, 너덜보다는 걷기가 편했다. 여기저기 널린 고로쇠 수액 흡혈 관을 지나치며 위로 올라 11시 44분에 따리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따리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참샘이재고 직진하면 이름 없는 고개다. 도솔봉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직진!
갈림길을 지나 10분가량 올라가자 저 위로 두 명의 등산객이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임도 끝에 주차해 있던 SUV의 주인 같았다. 마른 나무를 주워 지팡이 삼아 올라가는 두 등산객 뒤에 바짝 붙어 살펴보니, 이 지역 주민이 차를 타고 올라와 등산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혼자 왔냐고 묻는다. 해서 같이 왔는데, 다른 이들은 백운산으로 가고 혼자만 도솔봉으로 왔다고 하자, 과거에는 도솔봉에도 많이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등산객이 안 찾아온다고. 추측건대 까만 소 인증 때문이 아닐까? 현지 주민 등산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올라가 11시 59분에 도솔봉 직전 고개에 도착했다. 좌로 가면 도솔봉 우로 가면 따리봉이다.
그 이름 모를 고개에는 긴 의자를 설치해 등산객이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시간도 시간이고, 하산 시 송어회도 먹어야(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배를 이워야) 하기에 그 의자에 앉아서 점심 즉 컵라면을 먹기로 하고 배낭에서 먹거리가 든 디팩과 뜨거운 물이 들어 있는 보온병을 꺼냈다. 먼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물이 남은 보온병에는 귤청을 부어 귤차를 만들었다.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두 등산객에게 점심 좀 먹겠다고 얘기하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이정표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인증을 찍어준 후 배낭을 고개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왼쪽 도솔봉으로 향했다. 그 두 명의 현지 주민은 왔던 길로 하산하고.
등산로에 나무를 박아 만든 계단으로 시작하는 도솔봉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고개의 해발 고도가 930m가량, 목표인 도솔봉이 해발 1,223m(이 글을 쓸 때까지 이렇게 알고 있었다)! 고로 270m 정도 올라가야 한다. 거리는 500m. 어느 봉우리나 그렇듯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쉽지는 않았으나, 뒤로 돌아보면 보이는 따리봉과 희미하게 보이는 백운산의 모습이 힘들 걸 잊게 했다.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에 가린 오른쪽으로 보이는 지리산도. 확실히 조망은 백운산보다 도솔봉과 따리봉이 좋다. 봉황을 닯아 '봉바위'라 불린다는 바위 앞에서 봉황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며, 도솔봉으로 향해 12시 29분에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이는 위치에 도착했다.
거기가 전망대로 섬진강 건너 구름인지 미세먼지에 싸인 지리산을 조망하기에는 최고의 위치였다. 그 주 능선의 웅장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양 끝의 반야봉과 천왕봉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날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조망을 즐길 수 없음을 한탄하며 길을 재촉해 12시 33분에 백운산 도솔봉에 도착했다. 최우선 산행 목표인 천고지 즉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나 봉우리 중 146번째 정상에 도착했다. 앞으로 남은 봉우리는 19개! 2022년 흑호해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정상에는 이정표와 정상석이 2개, 전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해서 먼저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카메라를 돌 위에 놓고 인증을 찍었다.
그리고 광양만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만든 전망대로 갔다. 역시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거 때문에 바다를 볼 수는 없었으나, 그나마 보이는 것만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왔던 길을 되돌아 배낭이 기다리는 이름 모를 고개로 갔다. 아주 당연한 얘기였지만,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앞으로 가야 할 따리봉과 백운산 정상을 바라보며 가는 길이라 오면서는 뒤돌아서서 보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걸 고려하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왕복 산행도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봉바위를 지나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가자 저 앞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배낭이 날 반겨준다.
나뭇가지에서 배낭을 내려 둘러메고 두 번째 목표인 따리봉을 향해 출발했다. 그 길은 지금까지와 비교하면 거의 평지나 다름없었다. 물론 헬기장에 오르기 위한 약간의 경사도 있었으나 다른 산에 비하면 경사도 아니다. 이제는 좀 전에 다녀온 도솔봉의 전경을 보기 위해 가끔 뒤돌아보며 따리봉 직전 참샘이재를 향해 호남정맥을 따라 걸었다.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느 능선이나, 지맥, 기맥 등등의 이름을 붙여 어디를 가든 이름이 있으나, 그중 호남정맥은 누구나 인정하는 1대간 9정맥 중 하나라, 의미가 있다. 백두대간은 3/5, 한북정맥은 2/3, 낙동정맥은 1/5, 호남정맥도 1/5 정도 달렸다. 천고지 산행이 끝나면, 다음에는 대간과 정맥이나 이어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가다 보니, 등산로는 고개로 내려가고 저 앞에 노란 표지가 보인다. 참샘이재다. 따리봉까지 800m 남았다. 현재 시각 1시 5분 너무 빠르다! 이대로 가면 송어양식장에 2시에 도착한다. 애초 목표는 3시로 1시간 정도 송어회에 하산주 한잔하고 유유자적 산악회 버스로 갈 생각이었다.
참샘이재를 떠나 마지막 깔딱이랄 수 있는 따리봉 정상으로 올라가며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예상보다 코스가 쉬워 유유자적 가고 있음에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해서 먼저 떠오른 게 한재에서 내려가지 않고, 이대로 달려 신선대까지 갈까였다. 신선대까지의 거리와 남은 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가능한 계획이다. 다만, 신선대에서는 진틀로 하산해 다시 논실 송어양식장까지 1.2km가량을 올라와야 한다는 게 걸렸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깔딱을 오르자,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등산로로 걸어가고 있는데, 도솔봉과 비슷하게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였다. 그 계단을 오르면 정상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정상은 더 높은 곳에 있었다. 해서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앞에 바위가 길을 막고 있고 길은 그 바위를 우회하고 있다. 남는 게 시간이라 바위를 우회하지 않고, 배낭을 똑바로 둘러메고 바위를 기어올랐다.
바위 반대편으로 내려가자 다시 깔딱이다. 도솔봉보다 따리봉이 더 힘들다. 그 깔딱을 다시 10분가량 오르자 저 위로 전망대가 보인다. 저기는 정상이 맞겠지? 1시 34분 아래에서 봤던 전망대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정상이다. 먼저 전망대에서 뒤로 돌아 희미하게 보이는 도솔봉과 이어지는 호남정맥을 감상하고 앞으로는 도솔봉에서 이어진 호남정맥이 백운산으로 뻗어 나가는 걸 감상했다. 하나 유감은 이 전망대에서는 지리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전망대 난간에 카메라를 놓고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이번 산행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되는 호남정맥 지도를 보며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수정했다. 도솔봉과 따리봉은 정맥이나, 백운산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따리봉 뒤 응달에 있는 눈을 보자 산악회 버스 안에서 인솔 대장이 눈 내린 따리봉이 절경이니 눈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런데,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보며 왜 멀쩡한 길 놔두고 저리고 갔을까 궁금해 주위에 뭐가 있나 찾아봤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 눈을 보지 못한 등산객이 눈을 밟고 싶어 들어갔을 거라 결론 짓고, 한재로 향했다. 그런데 의외로 한재로 내려가는 길 곳곳은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워 뒤로 꽈당할 뻔한 걸 간신히 면했다. 길에 안전 밧줄이 설치된 이유가 있었다. 사고 없이 얼음 지대를 통과한 후 조금 내려가자 앞에서 여성 등산객이 올라온다. 현지 주민을 제외하고 이번 산행에서 처음 보는 등산객이라 반가워서 산악회 이름을 대고 맞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 혼자 가신 분!" 한다. "네!"라고 대답하고 인사하고 다시 길을 가는데, 그 여성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이어 중년의 등산객이 나타나 나를 보더니, 다시 한재로 돌아가 하산해야 하는지 묻는다. 아마 그 등산객은 내가 백운산에서 따리봉으로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해서 "따리봉에서 직진하면, 참생이재가 나오는데 거기서 하산하면 됩니다!"라고 알려주고 갈 길을 갔다.
밥봉 갈림길을 지나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가자 호남정맥은 거의 산책로, 고속도로 수준이다. 해서 다시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한재에 도착해 신선대까지의 거리를 확인한 후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사실, 진틀에서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논실 양어장까지 올아와야 하는 게 너무 싫어, 본심은 조금 더 유유자적하며 바로 하산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니 숲의 나무 곳곳에 흰 팻말이 보였다. 뭐라고 쓴 건지 궁금해 숲을 뚫고 들어가 확인해 본바 '서울대학교 부속 남부연습림' 구간 표시다. 피아골과 백운산에 서울대 연구임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여기다. 그리고 또 다시 나타난 급경사의 계단. 백운산에서 한재를 거쳐 따리봉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이 가련할 정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6명이 올라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솔봉보다 100m가량 낮다는 거(당시는 도솔봉의 높이를 1,223m로 알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정상석의 사진을 확인하고서야 1,123m로 따리봉보다 낮다는 걸 알았다)!
따리봉의 높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건, 분명 산행 계획을 세울 때 본, 지도에는 따리봉이 도솔봉보다 높았기 때문에 참샘이재에서 따리봉 올라가며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 계속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했다. 그런데, 힘들게 올라가 안부에 도착했음에도 1,100m대라 100m를 더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했는데, 약간 올라가자 정상이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정상석을 유심히 살펴보고, 1,153m라는 걸 알았다. 물론 그래서 다시 혼란이 생겼지만. 분명 지도상에는 따리봉이 높았는데, 실제는 낮으니. 뭐든 자세히 보지 않고, 선입견에 사로잡혀 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습관이 불러온 착오다. 어쨌든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가자 저 아래로 몇 대의 승용차가 주차된 도로가 보였다. 한재다. 예상은 했으나 짜증이 몰려왔다. 한재에서 논실마을까지 승용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한 임도란 얘기다. 도솔봉에 오를 때도 거의 중턱까지 포장된 임도로 올라갔는데.
한재에 가까이 접근해 보니, 건너편 의자에는 백운산에서 내려온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런데 한재에 도착해서 알게 된 게 좌는 구례, 우는 광양이었다. 좌로 10km 거리에 남도대교라는 다리가 있다는데, 아마 섬진강 위의 다리일 거다. 한반도에 사는 민족만 그런지 다른 민족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강이 아니라 산을 기준으로 지방을 나눴다. 왜 나는 강을 기준으로 생각할까? 대간과 정맥, 지맥. 기맥 등에 익숙해서 물길을 기준으로 나누는 게 각인됐나? 내가 또 놀란 건 지도에서 화개장터를 발견하고다. 당연히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나뉘어 있으니 화개도 멀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이를 먹어 깜빡깜빡한다. 그런데 이정표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백운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2.6km다! 현재 시각 2시 9분! 한 시간 내에 신선대를 거쳐 진틀까지 하산은 불가능하다. 물론 마감 시간 전까지 도착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송어회를 버릴 수는 없다!
남아도는 시간은 먼저 송어양식장까지 이것저것 다 구경하며 유유자적 내려가고, 식당에서는 송어회에 소주든 막걸리든 최대한 시간을 끌며 마시고, 그래도 남는 시간은 패드로 유튜브를 보기로 했다. 평소 버스에 패드를 두고 산행을 하는데, 이번에는 혹시나 해서 배낭에 넣어온 게 신의 한 수라고 자화자찬하며 송어회를 향해 내려갔다. 한재를 떠나 유유자적 10분 정도 내려가자 임도 왼쪽 옆으로 모기장으로 둘러싸인 게 있었다. 처음 멀리서 그걸 봤을 때는 역사적으로 대단하지만, 옮길 수 없는 중요한 걸 보호하고 있는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뭔지 궁금해, 그 모기장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호기심은 고조됐으나, 시간을 벌기 위해 유유자적 내려갔다. 그런데 날카로운 시각이 모기장을 뚫고 내용물의 정체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고,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면서 약간 당황했다. 전혀 특별할 거 없는 고사목 내지는 고목을 싸고 있는 모기장이다. 뭘 보호하기 위한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주 당연히 이 시설물에 대한 안내문 또는 경고문이 모기장 전면에 붙어 있어 읽어봤다. '장수하늘소 대체 서식지 적응실험' 중이란다. 당연히 이 글을 쓰며 구글링해 봤는데, 정체가 모호하다. 그렇다고 해도 장수하늘소를 위해 고목에 모기장을 쳤으니, 봐주기는 하는데, 쓸데없는 세금이 투입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와중에 임도를 따라 오르내리는 트럭과 승용차를 보고 황당함을 느끼며 내려갔다. 그런데 양쪽 숲에 있는 채혈 통에서 뻗어 나와 차량이 싣기 좋게 임도까지 뻗어 나온 흡혈 관이 혐오스러운 이유는 뭘까? 물론 올라가는 임도에도 있었다. 사실 백운산은 한국 현대사에서 인간들이 목숨을 걸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기는 하다. 뭐 어쨌든 유유자적 내려오다 보니, 2시 30분에 오전에 도솔봉을 향해 올라갔던 임도로 향하는 거로 보이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왼쪽은 포장도로, 오른쪽은 비포장이라, 처음에는 비포장 임도를 택해서 걸어가다가, 아무래도 오전에 올라왔던 길로 향하는 거 같아 등산 앱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추측이 맞았다. 해서 더 큰 원을 그리기 위해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포장된 임도로 내려갔다.
10분가량 내려가자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표지에 의하면 앞에 있는 건 '숲속의 아침'이라는 펜션이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버스 종점이라는데, 우회전하면 뭐가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런데 나에 앞서가던 등산객이 우로 갔다가 되돌아와 펜션 옆으로 난 길로 간다.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다.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한 얘기에 따르면 송어양식장은 마을에서 올라간, 한재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건 양식장이 아니라, 펜션이다. 대장 말이 정확하다면 오른쪽이다. 해서 주저 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식당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내려갔다. '반달가슴곰 출현 주의'라는 경고문 보이고 바로 아래 식당이 있었다. 문제는 문을 열지 않았다는 거. 그런데, 조금 둘러본 바로는 이 식당이 문제의 송어 양식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길을 잘못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려다가 밑에서 올라오는 등산객 두 명이 보이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식당을 지나 그들을 향해 내려갔다. 예상대로 올라오던 두 명 중 여성 등산객이 식사했냐고 묻는다. 당연히 안 했다고 얘기하자, 자기들도 식전으로 송어회를 먹기 위해 올라왔다고 했다. 식당 문 안 열었다고 하자, 그 여성이 밑에는 매점도 없는데, 문을 안 열면 큰일이라며 식당으로 갔다. 사실 문이 닫히고 썰렁한 거만 보고 문을 열지 않았다고 지레짐작한 거라, 혹시나 하고 그들 뒤를 따라 다시 식당으로 가기 위해 뒤로 돌았다. 그 순간 왼쪽으로 수조가 보였다. 송어 양식장이다. 그 둘과 같이 식당으로 가는데, 남성이 식당 문에 신문과 우편물이 끼어 있는 걸 보고 문을 열지 않은 게 확실하고 얘기한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여성이 고로쇠를 실으러 온 트럭 기사에게 식당에 관해 묻자 기사가 주인장에게 전화한 후 오늘 문 열 계획이 없다고 알려주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아래에서 한 쌍의 남녀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분위기를 보니 송어회를 목표로 오는 거 같아 '영업 안 한다!'고 손짓을 하자, 낙담해서 큰 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한 쌍이다. 맞다. 따리봉에서 한재로 내려갈 때 가장 먼저 올라왔던 팀이다. 정말 빠른 사람들이다. 벌써 따리봉에 들러, 참샘이재에서 주차장까지 하산한 거다. 그런데 논실마을이 고로쇠와 펜션이 주 사업이라 혹시나 해서 문을 연 매점이라도 있나 살피며 내려갔으나, 없었고, 저 앞으로 빨간 버스가 보인다. 그 시각이 2시 56분이다. 천고지 산행 중 백운산 도솔봉 산행이 끝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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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노력한 덕에 2시 56분에 주차장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마감인 4시 30분까지는 아직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딱히 할 일은 없고. 일단 주차장에 주저앉아 스패츠를 벗고 등산화 끈을 느슨하게 하고, 배낭을 정리해 버스 짐칸에 넣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주차장 아래에 있는 식당을 둘러봤으나, 역시나 문을 안 열었다. 해서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보니, 이번 산행에 참여한 거의 70%의 등산객이 도착해 있었다. 대부분 인증이 목표라, 인증 범위를 벗어나는 산행에는 관심이 없어, 송어회를 바라고 내려온 사람들이다. 모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한 상태다. 뭐라도 먹을 걸 가져온 사람은 주차장에 앉아서 허기를 채우고, 나머지는 주위를 방황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공통된 바람은 같이 온 등산객이 빨리 내려와 일찍 귀경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와중에 종점에 도착한 시내버스를 보고 저거 타고 광양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갈까 라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일찍 도착해 할 일이 없어 방황하는 등산객을 보자 버스 기사가 문을 열어준다. 해서 밖에서 찬 바람 맞으며 멍청히 있기보다는 편안한 버스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내 자리로 가 앉아 패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있으니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하나둘 버스에 타기 시작해 내 옆자리의 여성 등산객도 탔다. 그리고 누군가와 이번 산행에 관해 통화하는데, 내용 중 '까만 소 1200 챌린지'라는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통화가 끝난 여성이 미안했던지 초등 동창이 광양에 살아서 전화했다고 한다. 내게 말을 붙여 왔으니, 반가운 심정으로 '까만 소 1200 챌린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뭐냐고 물었다. 까만 소에서 그들이 선정한 100 명산 중 해발 1,200m가 넘는 산이나 봉우리 23개를 2월 말까지 2달 만에 인증하는 도전이라고.
정확히는 2021년 12월 27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까만 소 선정 100 산 중 해발 1,200m가 넘는 봉우리 23개 중 21개를 먼저 오른 순서에 따라 혜택이 있는 도전이라고. 역시 산을 이용한 마케팅에서는 Two Thumb! 하지만, 1,200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흥분했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현재 진행 중인 천고지 산행에서 남은 19개의 봉우리에 접근할 방법이 없어 고민 중인데, 까만 소가 1,200m가 넘는 산을 인증한다니 한 줄기 빛이라 생각했는데, 지들 선정 100 산 중이라니. 좋다가 말았다. 어쨌든 그 덕에 도솔봉에 오른 것만 해도 고맙다. 그리고 옆자리 등산객 덕분에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아주 당연히 2달 만에 21개의 봉우리에 오르려니, 평일 산행을 해야 하고, 산악회 게시판에 '1,200M+ Challenge'가 의미하는 바도 알았다. 문제는 선착순에 들어도 혜택이라는 게 별거 없다는 거. 그럼에도 도전이 목표인 등산객에게는 의미 있는 이벤트다. 까만 소는 100 산 인증을 우려먹을 수 있어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궁금증은 해소했지만, 시간은 느리게 가고, 남은 등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3시 40분경 인솔 대장이 인원을 확인해 보니, 아직 3명이 도착하지 않았다. 나라면 그 3명에게 전화해 위치를 물었을 텐데, 이 대장은 마감 시각이 멀었으니, 전화할 수 없다며 원칙을 지킨다. 그럼 조금만 늦어도 버리고 갈 사람이라 이런 사람이 무섭다. 다행히 두 사람이 도착했고, 남은 한 사람은 4시 3분경 도착했다. 인솔 대장 말대로 이번 산행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이라 생각보다 일찍 내려왔고, 덕분에 예정보다 30분 정도 빠른 4시 5분경에 서울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날머리이자 들머리인 논실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이인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 후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신갈과 죽전에 승객을 내려주고 8시 7분에 양재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수고했다고 인사 후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과 택시를 이용해 집에 도착한 시각이 9시 5분경이다. 하산주는 논실 송어회 대신 집에서 돼지와 소를 안주로 빨갱이
능선으로 올라탈 수 있는 등산로를 찾지 못해 산악회 계획과는 달리 '논실마을 주차장 → 마을 입간판 → 임도 → 갈림길 → 논실 갈림길 → 임도 끝 → 참샘이재 갈림길 → 무명고개 → 도솔봉 → 무명고개 → 헬기장 → 참샘이재 → 따리봉 → 헬기장 → 한재 → 주차장'의 10.82km(트랭글), 3시간 59분의 광양 백운산 도솔봉, 따리봉 산행이었다. 이동 3시간 46분, 휴식 13분!
최고의 조망처에서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아쉬운 산행이었다. 해서 목표한 산행을 완료한 후 겨울 따리봉을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도솔봉 산행을 할 수 있게 해준 까만소와 인솔 대장에게 고마울 뿐이다.
남은 19개의 천고지도 올해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