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성공 혹은 절반 실패 / 신은주
열다섯 번 글쓰기 수업 중 글감이 총 열두 개였어요. (글쓰기 수업 첫 시간, 추석, 다이어트, 페미니즘, 명예, 주례사, 성공 또는 실패, 편견, 스승, 대통령 출마 선언문, 카톡, 한 해를 보내며) 그중 여섯 개를 건졌어요. '절반은 성공했구나'라는 마음보다 '겨우 오십 점이야'라는 실패감이 더 크네요. 써 내지 못한 글감에 아쉬움이 많아요. 주례사, 편견, 스승은 머릿속에서 와글와글 꽤 고민했거든요. 글의 순서도 대강 생각하였지만 첫 문장을 쓰지 않았으니 결국 탄생하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이지요. 공부도 글도 엉덩이로 하는 게지요. 맘먹고 앉아야 시작되어요.
글쓰기 단톡에 들어가던 첫날부터 군기가 딱 잡혔어요. 이모티콘 금지, '감사합니다'는 안돼, 잘못 쓴 글은 당장 틀리다며 교정된 톡이 올라오는 등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답 톡 올릴 때는 틀리면 어쩌나 긴장하며 조심조심 썼어요. 얼마 못 가 '바램'과 '바람'에서 딱 걸리고 말았지만요. 단톡 방에서 선생님 인상은 날카롭다, 거침없다, 세심하다였어요. 게다가 방대하게 계속 올라오는 자료들과 글들 그리고 중간중간 문장 고치기 질문 등등.. 이미 단톡 피로도가 높아있던 저는 힘들었답니다. 농사일과 분주한 일상의 빠르기가 포르테 수준인데 자꾸 카톡 카톡 울립니다. 다 읽을 수 없다는 부담감에 눌리다가 결국엔 글감 주제대로 주 1회 글쓰기만 전념하자고 맘먹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은 참 좋은 수업이겠어요.
드디어 줌 시험 테스트 날 선생님 얼굴을 뵙고 목소리를 들었어요. 예상보다 인자하고 웃는 상이었어요.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요. 함께 시작한 동기 지현 님과 희연님을 이때 먼저 보아서인지 늘 응원하는 마음이랍니다.
첫 수업은 신선했어요. 글 써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났어요. 글과 연예하듯 써라. 글이 서운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라. 구체적으로 써라. 글을 써놓고 계속 고쳐가면 더 좋아진다고 했어요. 맞춤법이 잘 맞는지, 문장의 호응이 잘 되는지 보라고 했어요. 권해 준 맞춤법 책도 샀어요.
둘째 수업부터 마침내 수술이 시작되었어요. 오랫동안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이미 멋진 수필가 같았어요. 빨간 글씨는 맞지 않은 문장, 어색하거나 고쳐야 하는 것이고요. 검정 밑줄은 띄어쓰기 틀린 거예요. 숙제로 올린 글들은 모두 선생님 손을 거쳐 빨갛게 물들어요. 빨강 글씨만큼 얼굴이 붉어져요. 하나하나 고쳐 주시고 알려 주세요. 수업을 마친 뒤에는 고친 글을 다시 올려야 해요.
글을 고쳐 주실 때 혼이 날 수도 있어요. 그때는 저도 같이 민망해져요. 가슴이 콩당콩당거려요. 상처 받진 않을까. 글 쓸 용기까지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선생님은 할 말은 하시는 것 같아요. 또 학생의 진보를 위해서 다그치는 분이세요. 좀 아프긴 해도 꼭 필요한 조언이기에 부단한 연습으로 극복한 다면 성장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땐 아팠어요.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이기에 잘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머리와는 달리 마음은 주눅이 들었는지 선뜻 숙제가 안 됐어요. 가운데 토막이 비게 되었지만 마지막에 잘하면 잘한 거다는 말씀에 힘을 받아 글을 씁니다.
글을 잘 쓰시는 선생님들이 가득한 글방이에요. 빨간색도 별로 없어요.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분들이 존경스러웠어요. 좋은 글들을 읽으며 감동과 도전도 되었어요. 저도 계속 글 쓰고 공부하면 나아지겠죠? "내년에도 만나요". 이 말 하기 쉽지 않아요. '그만해야지' 하는 절망의 순간도 있었으니까요.
기독교와 동성애를 두고 말할 때는 착잡했어요. 글을 배우는 시간이고 학생이 말할 기회가 없었기에 그냥 들었어요. 설령 발언권을 얻었더라도 명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었어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것처럼 답답했어요.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마땅한 대답을 해 줄 내 답지가 없었던 거죠. 말하고 글 쓰는 힘을 기르려면 많은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글의 논지와 내 생각을 비교해보고 내 언어로 정리해서 써봐야 한다고 절감했어요.
왜 선교사가 되려고 했는지 구체적으로 쓰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모두의 생각이 비슷한 속에서만 있어 봤어요. 한 문장만 말해도 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날것의 질문 앞에 서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이 무엇이뇨?' 하는 의문 앞에 대답할 말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이제 그 여정을 향해 나아가렵니다. 단단한 글발로 성장하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겠어요.
저를 이끌어 준 선례 언니처럼 글 잘 쓸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해 보렵니다. 다음 학기는 주 1회 쓰기와 중간중간 올려 주는 공부 거리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