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게 맛을 알어 / 조영안
아침부터 구수한 간장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시킨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참게를 잡은 아저씨가 3kg을 갖다 주었다. 딱 요맘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봄 게딱지는 처녀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맛있다고 한다.
참게 특유의 향과 깊은 맛이 배어들도록 이번에는 특별한 방법으로 담근다. 따로 육수를 내지 않고 진간장과 물을 같은 비율로 섞는다. 나중에 꺼내 먹을 때 미리 만들어 둔 소고기 사태살도 넣으면 훨씬 감칠맛이 난다.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소금물로만, 혹은 갖은 재료를 넣은 육수에 담는다. 액젓이나 시중에 나오는 양조간장으로 맛을 낸다. 또 된장에 박아서 꺼내 먹기도 하며, 그 남은 된장으로 찌개를 끓여도 기똥찬 맛이란다.
대부분은 게장을 팔팔 끓이는데 이번에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웠다. 간장이 끓어서 보글보글 기포가 생기면 바로 불을 끈다. 식히고 나서 다시 또 끓인다. 이런 과정을 적어도 여덟 번을 반복한다. 이때 등딱지를 뒤집어 놓아 충분히 장이 배게 해야 일품요리 참게장이 완성된다. 게장을 담을 때마다 어머님은 "게장 담으면서 장난하면 안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전통 방식이 좋은 거야. 처음에는 짠 젓장을 부어야 깊은 맛이 난다."며 나름의 비법을 내세운다. 하지만 너무 짜다고 다른 방법으로 해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다음에는 육수를 내어 도전해 보고 싶다.
우리 가족이 꽃게보다 참게 맛에 푹 빠지게 한 아저씨 한 분이 계신다. 여순사건 무렵 반란군들이 냇가 근처에 묻어 둔 불발탄을 잘못 건드려 사고가 일어났다. 함께 간 형과 형 친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아저씨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왼쪽 손목은 날아가고 얼굴에 중상을 입어 몇 번의 수술 끝에 눈, 코, 입, 귀가 완성되었다. 장애인이 된 아저씨는 봄과 가을에 참게를 잡아 용돈을 버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봄에만 잡는다. 재주가 많아서 한쪽 손이 불편해도 못하는 일이 없다.
27년 전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열성 엄마가 되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세 살 터울의 딸이 입학할 무렵 학교 도서관에 주민센터가 생겼다. 6년 동안 그곳에 근무하면서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 글자를 모르는 어르신 네 분을 가르쳤는데 아저씨도 그중 한 분이다. 듣기와 읽기는 잘 되는데 쓰기는 힘들어했다. 글씨를 참 예쁘게 써서 넷 중 가장 으뜸이었다. 교과부에서 학교폭력에 예산이 쏠리면서 그만두었다. 한글을 터득할 무렵이어서 그분들은 노인복지관 한글 기초반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영예롭게 졸업했다. 이런 인연으로 남편과도 의형제를 맺었고 감과 매실 농사를 서로 도우며 짓고 있다.
봄이 되면 아저씨표 참게를 기다리며 미리 간장과 육수 재료를 준비한다. 참게는 비가 적게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려도 잡기가 힘들다. 적당히 내려 새물(빗물) 냄새가 나야 숨어 있던 녀석이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흙탕물이 적당히 뒤섞여야 좋아한다니 신기하다.
꽃게를 좋아하던 딸도 이제는 참게 맛에 반했단다. 우리 가족은 살이 적고 부드러우며 무른 가을 게보다 속이 꽉 차고 여문 봄 게를 좋아한다. 바다가 가까운 민물과 합수되는 곳에서 잡은 것은 맛도 덜하다. 아저씨처럼 깊은 계곡이 가까운 하천에서 잡은 게 깨끗하고 실해서 더 좋다.
올해도 어김없이 힘이 세서 만지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그 녀석과 싸워야 한다. 1차, 2차, 3차까지 잘 담궈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서 가끔 간장을 팔팔 끓여 완전히 식힌 후 부을 참이다. 지퍼백에 물과 함께 얼려 놓으면 갓 잡은 것처럼 참게탕을 즐길 수 있다. 역시 아저씨가 가르쳐 준 방법이다.
"흠! 흠! 엄마, 이러다 우리 모두 참게 맛에 중독되는 거 아닌가요?"
늦잠을 자고 일어난 딸이 집안에 고소한 향이 가득한 걸 보고 연신 코를 벌렁거린다.
이제는 봄비가 내리면 "옥곡 아저씨 참게 잡겠다. 많이 잡았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첫댓글 우와, 재밌게 잘 쓰셨네요. 단숨에 읽고 한 번 더 읽었어요. 하하.
잘 지내신지요.
아직 멀었어요 수업에 잘 참여해서 더 정진 해야겠습니다.
글이 참 좋네요.
참게 맛을 잘 모르는데 그 비법 배워 고소한 향에 중독되고 싶네요.
칭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경상도 사람이라 참게를 전혀 몰랐어요. 지금은 그 향에 중독되었어요.
요즘 자연산 참게 맛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맛있겠어요.
예전에 비하면 줄어 들었는데 봄,가을엔 좀 나오나 봐요. 올해는 벌써 철수 했다 합니다. 거짓말같이 뚝 끊어졌데요.
귀한 참게장을 맛있게 만드시는군요. 글 읽는내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올해 봄 게잡이는 끝나 냉동실에 몇 마리 보관해 놓고 게장도 정리중이랍니다. 재미나게 읽어셨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저도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매운탕을 많이 먹었는데, 게장 맛도 궁금해지네요.
표현이 더 맛있습니다. 매운탕은 씨래기랑 고사리 넣고 끓이면 더 맛나지요.
정말 재밌어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이 더 재미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참게 하면 옥곡 아저씨를 생각할 것 같습니다.
네,
옥곡 아저씨는 몸이 불구라도 재줏군이시고 마음씨도 고우세요.
저 참게 맛, 모릅니다. 하하.
요리 잘하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그러시군요. 솜씨 좋은 친정어머님이셨는데 참게 요리는 안해주셨나 봅니다. 저도 여기 와서 배웠어요.
정말 읽다 보니 입에 침이 고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꽂게장보다 더 단단하고 깊은맛과 특유의 향이 있어 선호하나 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