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생태학자들이 놓치고 외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생태학은 교수 중심으로 해서 대학 안에 갇혀 있습니다. 대학 밖에서 생태학 일하는, 더구나 박사도 아닌 사람들은 환경 한다고 비주류요, 그 중에 생태를 한다고 또 비주류요, 박사도 아니라고 또 비주류입니다. 그야말로 비주류 중의 비주류 중의 비주류입니다. 생태학회에서도 그들은 존재감이 전혀 없는 인생들입니다. 아니 뭐 그들도 생태학회에 기대도 아쉬움도 없을 것입니다. 생태 일을 해도 '생태학회는 원래 그런 곳이지 뭐' 하며 나와 상관없는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들이 학회에 가입하거나 학회비를 내는 것은 한 마디로 사치이죠.
수년전까지는 국가자격증 제도 하나 없었으니, 기술자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생태학은 기술이 아니라 학문이다' 라고 하는 대학 안에 안주하는 교수들이 많겠죠. 그런데 사회 현실에서는 그들은 다른 환경하는 사람들과 섞여 같이 일하면서도 생태학 전공자는 자격증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환경일 하는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기술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태전공자 뿐이었습니다!
국가기술경력신고를 해도 생태 또는 자연환경 분야는 분류코드가 없으니, 엉뚱한 '조경'쪽이나 다른 분야로 억지로 엮어서 신고합니다. 생물분류기사, 자연생태복원기사(산업기사), 자연환경관리기술사 등의 자격증 제도가 생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굴욕감을 이 땅의 생태학 교수들은 아실까요?
그들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인가요? 다 생태학회 교수들의 제자들 아닙니까!
자격 제도에 대해서 한 말씀 더 드리자면, 자연생태복원기사나 자연환경관리기술사가 생태분야 자격 제도인가요? 처음에는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다 조경분야 자격 제도입니다. 자연생태복원기사 출제과목이 조경학과에는 있지만, 특히 생물학과에는 없습니다. 생물학과 출신자들은 학원에 가서 조경 출신 강사들에게 따로 배워야 합니다. 그 기사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조경 출신자들입니다. 조경 출신자들이 생물분류는 감히 덤비지 못하니까 생물분류기사의 응시자가 매우 적죠. 생물분류기사 응시자가 적으니 다른 시험은 1년에 2번인데, 생물분류기사는 2007년에 2번에서 1번으로 줄었습니다. 생물분류기사를 사회나 국가에서 특별히 채용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국립수목원이나 국립생물자원관이 가장 대표적이죠. 생태학회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이 기사자격을 취득하도록 얼마나 독려하고 교과과정에 얼마나 반영하시나요? 묻고 싶고, 대답 한번 듣고 싶습니다. 생물분류기사 어느 실기시험장에서 감독관이 그랬답니다. "분류기사 따 봤자 별로 소용없어요. 그냥 대학원에 가서 쭉 공부나 하는게 낫겠어요." 자연환경기술사도 시험 보는 사람이건 출제하는 사람이건 면접관이건 대부분이 조경하는 사람들입니다. 생태학 아닙니다.
자격증, 취직, 승진 시험에서 생태학을 시험 볼 때, 생태학의 수험서가 별로 없습니다. 오래 전에 출간되어 지금도 계속 재발행되어 많이 팔리는 수험서가 하나 있는데, 그것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니 출제자도 그 곳에서 출제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수험서에서는 내용 정리에서 이상한 내용이 있고, 문제 풀이에서도 생태학 범위를 벗어난 일반생물학, 생리학, 분류학, 형태학, 작물학 분야의 문제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풀다 풀다 모멸감을 느껴서 책을 덮어 버립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합니다. 생물학과 출신일수록 그 심정은 더 클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생태학 교수들은 이 심정을 알까요?
생태학... 저에게는 이제 애정이 아니라 애증입니다. 애증의 '애'는 그래도 이런저런 것 다 잊고 자연의 생물을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이것으로 계속 가족부양의 수단을 삼아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학 밖에서 생태학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증'이고, '증'이기 때문에 제 아이를 다른 일은 몰라도 생태학만큼은 절대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나 여기에 아직 발을 들여놓지 않은 학부생들에게도 말리고 싶습니다. 반드시 박사, 교수할 사람만 생태학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학 밖의 이들은 고급인력은 못될 수 있습니다. 예, 교수, 박사가 아니니 객관적으로 중급인력, 저급인력입니다. 그러나 대학 밖에서 생태학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 받고, 굴욕감과 모멸감을 받는 것은 개인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SCI 등재, 고급인력 양성 등의 생태학회의 발전 계획 다 좋습니다. 다만, 그것과 상관없이(!) 대학 밖에서 사회 구석구석 대개 한두 명씩 흩어져서 말없이, 생태학회에서 아무 존재감 없이 생태학 일을 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늘 잊지 말아주십시오.
출근하자마자 편지함 열어 차기 생태학회장님의 편지를 보고, 연말 바쁜 업무 일정에도 오전 업무 포기하고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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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차기 한국생태학회 회장과 메일주소를 알고 있는 학회 회원들에게 편지보내고 약간 교정을 본 것임.
첫댓글 오래간만에 들어왔다가 좋은글 보았습니다. 혹 생태학회장님한테 답장이라도 받으면 같이 볼수 없을까요? 답변한번 보구 싶습니다..꼭~~이가 갈리네ㅋ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면 이런 문제도 없겠죠... 지원이 늘어나면 자격제도도 틀이 완전해질거고 인력도 다양하게 필요하게 되고 그런 인력들은 각자 위치에서 밥벌이던 연구던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지원을 독점하는 소수가 그것에 만족하고 더 지원을 받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밥그릇을 지키고 있는데다가... 지원을 받으려 응용분야에만 매달리다 보니 생태학 자체도 고사직전인것 같습니다... 여튼 현재 키(밥그릇)를 쥐고 있는 분들이 나서주길 바랄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