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강희맹에게 원자를 보호하는 중책을 맡기기도 했다.
1477년(성종 8) 3세인 원자가 병이나자, 성종은 강희맹의 집에 원자를 보내 치료하게 하였다. 이 때 강희맹의 부인인 순흥안씨가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원자에게 춥고 따뜻함을 잘 조절해주고 젖을 알맞게 먹여 10일이 채 되기도 전에 건강을 되찾게 해주었다. 그녀가 원자를 보살필 때, 위기속에서 지혜를 발휘하여 원자를 구했다는 일화가 적혀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자가 잘못하여 실을 삼키는 바람에 목구멍이 막혀 매우 위급하였다. 여러 종자들은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다. 부인이 달려와서 보고, '어찌 물건을 삼킨 어린이를 반듯이 눕혀 물건이 더욱 깊이 들어가게 하느냐'하며 즉시 안아 일으키고 유모를 시켜 양편 귀밑을 껴잡게 하였다. 이어 부인이 손가락으로 실을 뽑아내니 기운이 통하여 소리를 내었다. 여러 종자들은 부인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려 감사하기를, '부인께서 우리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어찌 다만 우리들을 살렸을 뿐이겠습니까. 나라의 근본이 부인때문에 편안하게 되었습니다'하였다.'
위의 기록에 나오는 강희맹의 부인 안씨는 안승효의 딸로, 1442년(세종 24) 강희맹과 결혼했다.
그녀가 원자를 잘 길러주고 위기에서 구해준 까닭에 강희맹은 성종의 신임을 더욱 굳게 받을 수 있었다. 1478년(성종 9) 성종은 원자가 강희맹의 집에 있으므로 호위하는 군사들을 보내주었고, 원자가 준마를 보기 좋아하여 집으로 말 1필을 내려주기도 했다.
1482년(성종 13)에도 원자가 강희맹의 집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원자가 강희맹의 집에 장기간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된다. 강희맹과 연산군과의 각별한 인연은 그의 문집 <사숙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산군 역시 왕이 된 후 강희맹이 도움을 준 것을 기억했다. <연려실기술>에는 '그때 매양 정원의 소나무밑에서 놀았는데, 왕위에 오르고나자 진시황이 소나무 다섯 그루에 대부의 벼슬을 준 것처럼 소나무에 벼슬을 주고 금띠를 둘러주고, 또 그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말에서 내리게 하였는데, 지금의 순청동이 바로 그 피마병문이라한다'는 기록이 있다...91 - 92쪽
참모로 산다는 것, 신병주, 2003년, 매경출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