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은 농촌정취가 묻어있는 음식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가을걷이를 끝내고 농부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논두렁의 미꾸라지를 잡아서 수확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달 아래 마을에서 가마솥을 걸어두고 미꾸라지와 갖은 야채를 푹 고아서 이웃끼리 나누어 먹었던 음식이다.
<추어탕의 역사>
추어탕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123년 발간된 “고려도경(高麗圖經)” 은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지은 책인데 처음으로 미꾸라지의 존재를 기재했다. 고려의 민초들이 즐겨 먹는 아홉 종의 수산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이 ‘추(鰍)’가 바로 미꾸라지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통번역을 담당했던 사역원에서 1690년(숙종 16)에 편찬한 중국어 어학서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중국어에 한글 음을 달았는데 ‘추(鰍)’를 ‘묏그리’로 해석했다. 1798년 이만영의 “재물보(才物譜)”와 순조 때의 실학자 유희의 “물명고(物名攷)”에는 ‘밋그라지’가 기재되어 있다.
실학자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한글로 ‘밋구리’라고 적고 있으며 ‘드렁허리와 비슷하나 짧고, 머리가 뾰족하고, 몸이 노랗고 검다, 분비된 점액이 몸을 싸고 있어서 미끄러워 붙잡기가 어렵다, 시골사람들이 국을 끓여 먹는데 특이한 맛이다.’라고 기재되었다. 추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특징이나 맛의 기록이 미약하지만 전국에 걸쳐 분포하였으며 문헌에 기재 된 시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각 지역마다 탕으로 끓여먹는 풍습이 만들어 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추어탕의 영양>
중국 명나라 이시진(1518-1593)이 저술한 의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추어(鰍魚)를 들어 ‘맛이 달고 평(平)하며 독이 없는 식품으로 특히 양기(陽氣)가 위축됐을 때 먹으면 치료가 된다.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정력을 보하기에 발기 불능에 효과가 있다.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 라고 효능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대형 병원 주변에 유명한 추어탕 집이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병자의 치유식, 회복식으로 추어탕을 꼽는다. 동물성 단백질과 칼슘의 공급원이 되며 무기질과 비타민도 풍부하다. 타우린 성분은 간에 작용하여 해독을 돕고 눈을 좋게 한다. 불포화지방산은 혈액에 흡수되어 에너지원이 되다가 신진대사를 도와 세포 구성 물질로 쓰이기도 한다. 더불어 함께 끓이는 시래기와 우거지 등은 비타민D와 칼륨, 식이섬유까지 풍부하다. 따라서 추어탕은 동물성과 식물성 영양소가 결합된 완전 영양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뼈째 갈아내고 푹 고아 식감이 부들부들 하기에 감기몸살에 걸리거나 입맛이 없고 기력이 빠질 때도 훌훌 마시듯 떠넘길 수 있으며 소화 흡수도 쉽게 된다.
그 누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했을까, 미꾸라지는 흉측하고 못된 존재가 아니었다. 살아서는 개천에서 헤엄치면서 습지의 자기정화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논두렁에서는 병충들의 천적이니 농약을 뿌리지 않고 미꾸라지를 풀어 병충해를 막는 친환경 미꾸라지 농법이 각광받고 있다. 하천에 미꾸라지가 있으면 그 해 말라리아에 걸리는 환자가 급감한다. 미꾸라지가 모기 유충을 잡아 먹기 때문이다. 죽어서는 살과 뼈, 지느러미까지 통으로 추어탕이 되어 가난한 민초의 삶을 허기와 질병에서 구했다. 비록 작고 볼품없고 진흙탕에 엉키어 살았으나 사람에게 그 어느 하나 은혜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추어탕 한 그릇을 대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명료해진다. 흙이 바닥으로 가라 앉듯이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분리됨을 느끼게 된다. ‘미꾸라지가 용 됐다’는 속담은 이제 수정되어야 할것같다. 미꾸라지야 말로 흙탕물같이 뿌연 현실에서 지친 사람들을 태우고 날아오르는 비룡의 다른 이름이다.
<추어탕의 지역별 특성>
추어탕은 지역별로 끓이는 법이 다양하다. 이제 네 그릇의 추어탕을 맛보며 그 특징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
□우선 서울식 추어탕
서울에서는 추탕(鰍湯)이라 부른다. 원래는 미꾸라지가 아닌 미꾸리를 써서 끓인다. 미꾸리는 미꾸라지와 같은 과이지만 엄연히 다른 어종이다. 생김새는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짧고 동그랗고 맛이 더욱 농축되어 있다. 미꾸라지가 검지손가락만 하다면 미꾸리는 새끼손가락 정도로 귀엽게 생겨서 통으로 써도 혐오스럽지 않다. 오히려 살점과 뼈의 씹는 맛이 더욱 입체적이었으니 갈아 넣을 필요가 없다. 과거의 논두렁이나 개천에서는 미꾸라지 보다 미꾸리가 더 많이 서식했지만 지금은 자연산 미꾸리가 수요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대부분이 치어를 구해다 양식하여 먹기에 성장 속도가 빠른 미꾸라지를 쓰는 곳이 대부분이다.
탕의 육수는 소고기나 곱창을 넣고 진하게 우려낸다. 삶은 미꾸라지와 함께 두부와 유부, 목이버섯과 애호박, 대파 등을 넣고 고춧가루로 맵고 칼칼하게 끓여낸다. 마지막에는 채선 대파를 뿌려 먹는다. 산초는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그만이다.
서울식 조리법은 현재 “용금옥”과 “형제추탕”이라는 추어탕 노포에서 맛볼 수 있다. 주문할 때 통추어탕으로 할지 갈아서 만든 추어탕으로 할지 묻는다.한 입 먹으면 진득하니 얼큰하다.육개장이나 해장국을 먹는 기분이다.위와 장을 따라 손끝까지 체세포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든다. 두부와 유뷰가 의외로 미꾸라지의 맛과 어우러져 고소함을 배가 시킨다.
1930년대 생겨난 이 식당들은 정경계, 문화계 유명 인사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그 유명세가 희미해 졌지만 식당 벽에 걸린 신문 기사와 남긴 글과 그림을 보니 식당 그 이상의 생활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든다. 서울식 추탕을 찾는 사람은 과거의 추억을 기억하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이들조차 찾지 않는다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도 든다.
□다음은 강원도식 원주추어탕
여기도 옛날에는 미꾸리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통추어탕이 유명하다. 갈아서 만든 추어탕도 있는데 이는 타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육수를 낼 때 소고기를 넣지 않는 것이 서울식과 다른 점이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써서 얼큰하게 맛을 내니 서울의 조리법과 공통분모가 있다. 초벌로 조리한 탕을 작은 무쇠솥에 담아 손님상에서 다시 끓인다. 펄펄 끓는 추어탕을 먹으면 땀이 저절로 난다. 기호에 따라서 제피가루를 넣기도 한다. 서울의 강렬한 맛과 전라도 경상도식의 먹기 편함을 절충시킨 똑똑한 추어탕이다.
□세번째로는 경상도식 추어탕
마산이나 경주가 유명하다. 추어탕 중에서 가장 맑은 스타일이다. 미꾸라지를 푹 고아서 뼈까지 으깨어 체에 걸러 낸다. 미세하게 걸러진 진액만 넣고 국을 끓이다가 된장으로 간하고 데친 배추속대나 우거지, 토란대, 파, 마늘을 넣고 푹 끓여준다. 불을 끄고 방아잎을 넣으면 고급스러운 향이 완성된다. 간은 된장으로 하기에 구수함이 그만이다. 미꾸라지는 아주 미세하게 갈아 형체가 없어서 누가 말하지 않으면 아주 구수한 우거지 된장국을 먹는 기분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이래야 고급스러운 추어탕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개운하니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으며 은은한 감칠맛이 특징이다. 먹을 때 산초 가루를 넣으면 풍미가 좋다.
□마지막으로 전라도식 남원추어탕
미꾸라지를 삶아 으깨고 시래기를 넣고 오랜 시간 뭉근히 끓인다. 미꾸라지의 뼈와 살점이 녹아버릴 정도로 푹끓인다. 된장으로 구수하게 간하고 들깨가루를 넣어 걸죽한 고소함이 더해진다. 먹을 때는 제피가루를 뿌려 탕에 아직 남은 미꾸라지의 비린맛과 흙내를 걷어낸다. 맛이 가장 풍만하고 고소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먹기 편해서 가장 대중화된 조리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 대기업에서 출시하는 간편가정식에 남원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 모두 그런 이유다.
□현재는 전국에서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지역별로 구별되던 조리법도 서로 영향을 주며 변형되니 이제 그 구별이 어려울 정도 이다. 서울식 추탕을 파는 곳인데 전라도식 추어탕이 더 인기를 끌기도 하고 미꾸라지와 미꾸리, 제피와 산초의 구별도 모호해졌다. 방아잎 대신 구하기 쉬운 부추로 구색을 맞추기도 한다. 지역색이 아닌 손님의 입맛과 요구에 따라 추어탕의 맛도 변모하고 진화하였다.
<지역별 추어탕 대표맛집>
□무교동 용금옥: 서울식 추어탕으로 유명한 맛집으로 1932년에 개업한 노포맛집
주소: 서울시 다동 다동길 24-2
(T. 02-777-1687)
□원주 복추어탕: 원주 추어탕의 원조격인 개운동 원주고 앞 원주 복추어탕은 51년 전통을 자랑하는 추어탕 대표 맛집
주소: 강원 원주시 개운동 406-13 (T. 033-762-7989)
□마산 은혜추어탕: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맛있는 녀석들에 출연한 인생맛집
주소: 경남 마산시 합포구 산호동 27-34 (T. 055-245-1441)
□남원 새집추어탕: 천거동 남원 추어탕 거리에 있는 외부인들이 많이 찿는58년 전통의 추어탕 맛집
주소: 전북 남원시 천거동 160-192 (T. 063-626-5163)
첫댓글 추어탕은 사계절내 좋아해요.
구수해서요..
요즘이 더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