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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5 / ‘내 예수님이야’라는 믿음으로 (마13:44)
아이들 동화책에 나오는 얘깁니다만, 옛날 어느 마을에 거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이집 저집 밥을 얻으러 다니던 어느 날 돈 때문에 다투는 부자들을 보며 “부자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 탈이야. 나는 따뜻한 옷 한 벌에 쌀 한 가마니만 있으면 불평하지 않을 텐데”라고 중얼거립니다.
마침 그때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을 시찰하던 천사가 그 말을 듣고는 할아버지의 동냥자루에 금돈 한 닢을 넣어 주었습니다. 순간 그가 천사인 걸 알아본 할아버지는 천사를 붙들고 애원합니다. “나도 등 붙일 집은 하나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천사가 금돈 한 닢을 더 주자 또 하는 말이 “논 마지기라도 있어야 자식들하고 먹고살지요.”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금전을 구걸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천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금돈은 할아버지가 달라는 대로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자루가 찢어져 돈이 땅에 떨어지면 모두 흙으로 변해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한 푼만 더. 한 푼만 더 하며 결국 자루가 여며지지 않을 정도의 금돈을 받았습니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할아버지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루를 어깨에 둘러메는 순간 자루가 찢어지며 금돈이 와르르 쏟아져 모두 흙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로마 격언에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목마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전에 유행했던 말 중에 사람이 돈 돈 돈 하다 보면 나중엔 돌아버리게 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사실 소유함에 있어서는 다다익선이 좋습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기에 이 땅에 있는 것들로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다 채워주지 못합니다. 설사 가졌다 해도 만족이 없고, 만족한다 해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세상 것은 나쁘다. 세상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세상을 부정하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만 산다면 자칫 인생을 비관주의나 허무주의로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성경은 절대로 세상을 부정하거나 세상 재물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세상은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성도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축복의 현장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그런 가르침 중의 하나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단지 비유나 가정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지역은 아브라함 때로부터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던 곳입니다.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 때도 그랬고 사사기의 내용도 보면 모두가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끝내는 전쟁으로 패망한 나라가 이스라엘이었기에 그 숱한 전쟁을 겪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름으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 아는 곳에 땅을 파고 보화를 묻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보화를 땅에 묻어왔는데 문제는 보화의 주인이 전쟁 중에 죽거나 사정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 당시에도 땅에 묻힌 보화가 심심찮게 발견되곤 했던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누군가 땅에 묻힌 보화를 발견했다면?”이란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 말씀을 현실로 받아들였던 겁니다.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는데 누군가가 발견했다니 그가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가 부럽고 궁금했던 겁니다.
내용을 보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밭 주인이 아니라 그 밭에 고용된 품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날도 남의 밭에서 일을 해주다가 밭에 묻혀있던 노다지 항아리를 발견하고는 아마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물단지를 다시 묻어두고는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서 마침내 로또 같은 보화의 주인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품고 말씀을 경청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또 다른 사실 하나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장은 그 땅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신나는 상상 이후에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가질 수 있을까?”를.
그때 예수님이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여기서 우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을 사는 인생의 주인이 결코 내가 아니라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주인이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뭐 하나라도 있어야 할 텐데 정작 인생에서 원하는 것 중에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겁니다.
내 인생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보니 돌아오는 것은 불만과 짜증과 스트레스와 고생뿐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가 인생을 삶에 있어서 그냥 ‘생활’하면 안 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활은 뭐고, 신앙생활은 또 뭐야 라고 헷갈리실 수 있는데, 사전에 보면 생명이 있는 동안 살아서 경험하고 활동하는 것 즉 생계를 꾸려나가는 모든 활동을 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이란 건 뭘까요?
아닌 말로 평일 동안 세상에서 사는 게 생활이고 주일이면 교회 가는 것이 신앙이니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신앙생활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세미나에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분이 대답하기를 ‘정권교체’라고 했던 게 생각납니다.
강사가 이유를 묻자 그분이 대답하시기를 이제껏 내가 나를 다스리던 삶의 자리와 세상의 가치관이 나를 지배하던 자리를 하나님께 넘기는 것이 신앙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생활이 되어야 하기에 신앙생활은 나와 하나님,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께로의 정권교체란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어떤 왕이냐? 누가 통치자냐에 따라 백성들의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누가 주인이냐에 따라 생활로 끝나기도 하고 신앙생활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알던 청년 한 분은 세탁소 종업원이었는데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에서 멋지게 보이려고 손님이 맡긴 비싼 외투를 입고 나갔다가 우연히 그 옷 주인에게 발각이 되어 현장에서 대망신을 당했다는 얘길 듣고 한참을 웃은 적이 있습니다.
남 얘기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유명 가수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한껏 힘주며 노래하기도 했습니다마는 인생을 내가 살 가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더라도 인생이나 세상이 내 것이 아닌데 마치 내 것인 양,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양하다가는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쳐도 내 인생마저 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 거란 말인가고.
여러분 생각엔 인생이나 세상이 누구 거 같습니까?
성경에 가장 첫 번째로 기록된 말씀인 창세기 1: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음을 믿으시지요?
통념상 뭐든지 만든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천지를 하나님이 만드셨음을 믿으신다면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인생을 제대로 사용하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중간에 잘못되었다면 새것처럼 고쳐서라도 우리로 잘 살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요? 인생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보니 잘못된 인생의 A/S도 하나님만이 해주실 수 있다고.
그런데도 솔직히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성경의 첫 장, 첫 줄부터 믿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린 믿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니까요. 세상에서의 실패나 고난 앞에서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으면 되니까요.
생활과 신앙생활이 바로 이 차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이라면 인생을 혼자 고민하고 불안 걱정하는 생활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신앙생활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품꾼은 보화를 얻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의 품꾼이 가진 게 넉넉했다면 왜 남의 품꾼으로 살았겠습니까? 가진 게 없다 보니 우연히 밭에 보화가 묻혔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이냐가 문제였습니다.
본문대로라면 품꾼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내 밭이 되었습니다. 내 밭이 되었기에 이젠 모든 걸 내 맘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종종 본문을 오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렇게 했다는 말을 잘 못 해석해서 헌금을 강요한다든지 교회를 위해 무조건 봉사하고 섬겨야 한다는 등의 강요를 합니다만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자칫 신앙을 위해 내 것을 다 팔았다는 이유로 교만해지거나 시험에 빠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린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까요?
본문에서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을 강조할 게 아니라 ‘왜 팔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왜 팔았나요?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판 이유가 무엇인가요?
밭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밭을 사려 했나요?
그 밭에 묻혀있는 보화를 얻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이래 놓고 다시 본문을 보세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우린 본문에서 세 개의 상징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선 밭은 세상을 상징하고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나이며, 보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밭에 묻혀있는 보화를 얻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았다 함은 우리가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라면 세상에서 우리가 아까워하고 아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쉽게 예수를 버리는지요. 가진 것을 지키고 누리기 위해 얼마나 쉽게 예수를 잊고 사는지요.
보화가 땅에 묻혀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소유하려는 의지나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이미 이 세상에 오셨는데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을 소유할 능력이, 아니 믿음이 있으신지요?
마지막으로 본문에서 중요한 내용은 농부가 감추인 보화를 찾은 곳이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보화를 얻은 장소는 그가 늘 일하던 밭이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나와는 동떨어진 곳에 계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 중에 계십니다. 나의 가정과 일터와 학교, 나의 삶 한 가운데에 예수님은 계십니다.
묻습니다. 살면서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의 예수님’이십니까?
교회의 예수님? 성경 속의 예수님? 다른 교인들의 예수님?
아닙니다. 간혹 아이들이 장난감 하나를 두고 서로 ‘내 거야.’ ‘아냐, 내 거야’ 하며 다투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에서 예수님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따라 하세요) “내 예수님이야!”
그렇게 누구라도 예수님을 ‘내 예수님이야!’라고만 믿는다면 밭에서 보화를 캐낸 사람처럼 우리도 인생에서 기쁨과 능력과 세상 보화와 재물을 다 얻게 될 것입니다.
일상 중에 예수님이 계심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불신자라면 예수님을 찾은 사람이 신자입니다. 그리고 신자라면 예수님이 ‘내 예수님’이 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보화를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 해서 그 소유를 세상적인 소유로 오해하지 마시기를 거듭 말씀드립니다.
예전에 즐겨 부르던 복음성가 중에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 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무얼 하든,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을 ‘내 예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라면 이제부턴 뭐든 믿음으로 하려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하나님을 믿는 성도답게 이런 경구를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이루어진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시는 한 인생에서 여러분은 더 이상 품꾼이 아닙니다. 본문의 흐름을 잘 보세요. 처음엔 품꾼으로 남의 밭에 고용되어 일했을지라도 보화를 발견한 후엔 어찌 되었나요?
품꾼이 주인이 되는 ‘신분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가난한 일용직에서 밭과 보화를 가진 ‘소유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달프고 지친 일상에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사는 ‘인생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 모든 변화는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게 될 일입니다.
이젠 세상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세요. 세상을 향해 자존감을 높이세요. 저와 여러분에겐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 ‘내 예수님’이 계심을 늘 기억하며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돈이면 못할 게 없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신용 카드 한 장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살아 보셔서 아시다시피 세상엔 돈으로도 안 되고 못 하는 게 너무도 많습니다. 신용 카드 때문에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우리가 이제라도 예수님을 ‘내 예수님’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천국의 보화를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부터라도 예수님을 믿어서 그 보화를 ‘내 보화’로 소유하세요. 예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무엇을 소망하든 예수님이 ‘내 예수님’인 한은 무엇을 믿든 ‘믿음은 이루어질 것’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런 여러분의 믿음대로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은 ‘주님 손 잡고 일어서세요.’라는 복음성가 가사를 소개함으로써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아멘!’
믿음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내 예수님이 때문입니다.
(다 같이 한번 외쳐 보겠습니다) “내 예수님이야!”
첫댓글 농부가 보화를 발견한 곳이 특별한 곳이
아닌 바로 농부가 일하던 밭이었다는
말씀에 내가 생활하는 곳이라면 언제나
내 예수님이라는 믿음으로 언제 어디서든
생활이 곧 신앙이 될 수 있길 기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