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약속을 믿고 음식을 차려 놓고 기다렸으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그 대신 거지와 청소 부 영감이 왔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마지막 심판 비유(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 보면,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형별로 갈라지게 될 때, 그 심판의 기준은 예수의 변신들인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얼마나 잘 믿었느냐가 심판의 기준이 아니라, 예수의 변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을 얼마나 잘 대해 주었는가가 마지막 심판의 기준이라는 점이다.
또 요한복음 1장이나 빌립보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모양으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성육신(聖肉身)의 교리이다.
만약 이 교리가 예수께서 과거에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인간의 몸으로 우리 가운데 사심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우리의 생활 주변은 인간의 몸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예수가 어느 누구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계시는가를 물으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톨스토이의 동화 가운데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톨스토이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제화공이 있었는데, 그는 늘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어느 날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내일 네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며 음식을 차려 놓고 예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한 번은 거지가 오고, 또 한 번은 청소부 영감이 오고, 저녁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다. 그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구둣방 할아버지는 불쌍하게 생각하여 예수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다.
그날 밤 꿈속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가서 세 번 다 잘 대접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니라.”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