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는 하나의 섬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건립하고
이 섬들은 서로를 비추며 상호간에 영향을 줍니다.
이 '영향 받음'의 측면에서,
각자의 기질 등 조건지어짐에 따라 커다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괴로움에 처한 사람(전쟁 고아)를 바라볼 때,
각자 다른 방식ㅡ다른 정도로 반응합니다.
아주 거칠게..일반적으로 권장되는 모델은
<자신의 일상을 깨지 않는 선에서, 연민을 가지는 것>
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는
권장되는 덕목으로 보입니다.
연민이 적절하게 풍성할 때, 자비롭다고 하며
연민이 피상적이고 옅을 때, 냉담하다고 합니다.
(저는 후자임)
또,
세상의 일반적 괴로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열려있고 성숙하다고 하며
눈앞에서 목격하는 특정한 괴로움에만 반응하는 것을
닫혀있고 건조하다고 합니다.
(저는 또 후자임)
ㅡ
인간은 독립된 섬이지만, 상호영향 하에 존재하고,
인류는 동업중생으로서 공존하므로..
연민이라는 반응의 당위?는 받아들여지는데..
저의 실제 일상에서,
ㅡ눈 앞에 보이는 것만 다루는ㅡ습관이 너무나
강력해가지고..
관념(추상적 인식, 상상, 상념)으로 인식되는
ㅡ일반적인 인간 괴로움ㅡ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는 것의 길목 자체가 막혀 있는듯 합니다..
아니면.. 실은 정반대로
ㅡ타인에 대한 관심(괴로움 포함)이 없어서
ㅡㅡ> 눈 앞은 현실에만 초점을 맞춘다
는 구조일지도 모르겠네요.
ㅡㅡㅡㅡㅡㅡ
소위 ㅡ마음이 따뜻한ㅡ사람을 볼 때면
종종 '내가 인간이 덜 됐나?'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ㅡ기질탓ㅡ이란 변명이 있긴 한데..
그 기질 자체가 좀 거시기하다는 입장 앞에서는
변명꺼리도 안 되는 문제가..
첫댓글 과거 적었던 건데, 한번 더 적어볼까요?
세계라는 것은, 일체인 건데, 일체는 오온 12처 18계입니다. 알아차림 내지 관찰에 따르면, 주관적 세계만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각자가 하나의 섬입니다.
우리가 객관이라고 하는 것은, 주관과 주관의 부딪힘입니다. 중생의 부딪힘이 객관입니다. 즉 객관은 주관의 특수영역일 뿐입니다. 세계란 주관적 세계일 뿐입니다. 중생이 어디까지인가의 문제는 있지만, 객관은 유의미한 그리고 분별능력의 오차 범위 내에서 성립합니다. 통상 제가 적는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물질이라고 하는 것조차 중생이므로, 객관이 곧 기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량심(자 비 희 사)은 어떻게 닦는가? 사무량심은 보통 선정 영역으로 서술되는데요. 선정 영역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든 사무량심을 개발하는 수행은 '세계' 즉 '주관적 세계' 곧 '일체'를 사무량심 각각으로 가득 채우는 겁니다. 사무량심 각각이 세계이도록 하는게, 사무량심을 닦는 거라고 칭합니다.
기세간의 문제는 세계의 부딪힘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세계가 자 비 희 사 로 가득하다면, 기세간 세계의 부딪힘에도 자 비 희 사 가 성립할 뿐입니다.
참 쉽죠?
이게.. 상당히 곤란한 질문인데요..(죄송함미다)
ㅡ나름 기로에 서있어서..ㅠ ㅠ
불교적인 인간관?에서 냉정하게 볼 때..
ㅡ희사ㅡ에 지분이 90% 몰빵되고, ㅡ자비ㅡ가 마이 약한 인간은..
1. 기질 이슈가 지분이 크다.
2. 아니다. 그냥 반쪽짜리 수준이다(과락)
모아니면도 식으로 굳이 보자면, 어느 쪽일까요?
전혀 곤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문이나 지적할 것이 없으면, 고착된 상태로 볼 여지가 많아서 곤란한 상황일 경우가 압도적이라고 봅니다.
자 비 희 사 모두 사무량심으로, 어느게 더 우월하다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는, 희 사 비 자 순으로 순차적으로 개발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비 희 사 의 순으로 되는 것은 관점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보살피다, 슬퍼하고, 기쁨을 찾고, 그러다 기쁨조차 놓는다는 순서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순서가 쉬운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떻든 자 비 희 사 는 연기의 여러가지 모습 중 네가지입니다.
연기는 그 고유의 모습이 없어, 드러남에 그 모양에 한량이 없습니다.
희ㅡ사ㅡ비ㅡ자.. 계발 순서로 볼 수 있군요.
만구 혼자만 웰빙?(소위 '희.사.'로 채워서..)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깐..
이거야말로 <나혼자 (잘)산다>여서..
제가 지향하는 '건전한 인간의 모델' 에서
큰 빵꾸가 난 건 아닌가.. 찜찜함이 있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색계4선이 전통을 대표하는 희 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에 대한 믿음과 지혜,
그리고 그 믿음과 지혜에 기반한 알아차림이 확고해져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면,
그것은 곧 스스로를 보살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가운데 모든 것이 조건에 의해 성립한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지면,
우리는 그 안에서 잔잔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 성립하고, 그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슬픔이겠지요.
그러한 슬픔은 우리를 집착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하고, 그 멀어짐이 곧 평온이며, 그 평온을 일종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황벽님의 자비가 외부로 열려있는 것이라면,
방문객님의 자비와 희사는 선정영역으로 깊게 들어가는 것 같구요...
저는 어차피 선정 등으로 깨달음의 길에 이르는 것은 불가해서요.
그냥
늘 생활 속에서 알아차리라는 그 가르침 하나 안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