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간의 대화
김정자
태풍과 더불어 내리는 빗소리가 내귀를 시끄럽고 짜증스럽게 한다. 두달 전
부터 벼르던 운동계획이 무산되니 허탈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주룩주룩 내리는 가을비가 김장배추에는 약이 될 망정 누렇게 결실을 맺고 수
확하기만을 기다리는 나락에는 해롭기 만하다. 들녘의 이곳저곳 쓰러져 있는 벼
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팠다. 하물며 농부들의 마음은 어찌 내마음에 비할까?
자연의 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감당키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또
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의 으로 끝내 책임질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
을 한탄하게 한다.
시댁 쪽으로 조카딸의 시모님께서는 올해 83세의 노령으로 초년부터 혼자되시
어 삼남 매를 힘겹게 기르셨다. 장성한 삼남 매의 모습들은 어느집 자식보다 훌
륭하게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며칠전 조카딸의 첫손자 백일잔치에 초대되어 갔다가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허
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토록 깨끗하고 정갈하셨던 사돈어른께서 치매에 걸
려 고통을 받고계시는 현장을 보고는 백일잔치의 기쁨보다 그 어른에 대한 안타
깝고 서글픈 생각에 떡도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말로만 듣던 치매, TV화면
에서 가끔 남의 일로 바라보던 끔찍스런 일이 가까운 내 가족의 턱 앞에서 전개
되고 있었다.
옛부터 내려오는 망령이란 말끝에 심하면 똥병이란 말이 따라 붙던 그런 현상
이었다. 그 어른은 눈동자의 초점을 잃은 채 무언지 연신 지껄이는 말소리가 이
미 허공에서 맴도는 소리로만 들린지 이미 반년이 지났다.
그녀의 손은 항상 배변의 주위에서 머물고 있으며 가끔씩 이불 속에서 그녀의
손이 밖으로 나올 때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태다. 벽이고 방바닥
이고 이불까지 온통 풍기는 냄새와 함께 코를 들 수가 없으며 참을 수 없이 나
오는 구역질은 이내 온 식구가 식사도 몇 끼씩 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치매병원에 모실 까도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나라의 실정
은 남의 이목도 두렵고 또한 용기가 나질 않는다 했다.
뼈만 남은 그분을 바싹 안아 목욕탕에 앉히고 샤워기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
끔히 씻겨 분내움까지 곁들여 소파에 앉으시게 한다. 온통 엉망이 된 방을 말끔
청소하여 환경을 다시금 간추려 향수까지 뿌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며느리의
모습은 비오듯 흐르는 땀과 함께 정녕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만 보였다.
준비된 식사는 조그만 상에 받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모님앞에 놓으면서
며느리는 계속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 시장하시죠? 이제 진지 드셔야
죠? 오늘이 증손자 백일이예요. 이건 백설기, 이건 수수팥떡·· 미역국에 이
르기까지 그분의 손을 잡고 집어 준다.
그러나 고개를 저으며 먹지 않겠다고 거부를 하는 모습은 아마도 자기 자신의
현실을 조금은 아는 듯 싶었다. 조카딸은 끝내 설득하며 백일잔치의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이라도 먹여 드리는 효성심을 보면서 감동하였다.
조금 후에 노인은 자기 며느리를 향해서 “댁은 누구유?”
조카딸은 웃으며 “누구긴 누구여 어머님 며느리지....”하며 웃는다. “그래유? 정
말 고마워유....” 그들의 대화 속에 인생 끝점에서의 마지막 정다운 대화를 느꼈
고 그나마 고부간의 오랜 시집살이 속에 쌓여진 갈등의 해소 기간이란걸 알 수
있었다.
시어머니의 미안한 마음과 그토록 참기 어려운 참담한 고통을 인내하며 뒷바
라지하는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은 조카딸의 오랜 세월의 시집살이로부터 고통의
연속이었으나 지금은 시어머님이 불쌍한 마음 뿐이라 한다.
“작은 어머니,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이 내앞에 닿았을까요?”하며
울어버리는 그녀의 절규에 나도 함께 그녀를 끌어안고 울었다.
지난날 가끔은 내가 이 세상을 마칠 때 그만큼이나 힘들은 병마가 나를 괴롭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남편과 자식에게 부탁해 왔다.“혹시라도 내가 치매나
불치병이 걸리면 조금도 망설이지말고 과감하게 전문병원에 의탁하여 내인생의
마감을 조용하고, 아무도 괴롭히지 않고 착하게 이세상의 안녕을 맞이하고 싶다”
라고.....
나의 인생의 깨끗한 종말을 어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을 재촉하는 비가 주룩주룩 흐느끼는
듯 멈추지 않고 귓가에 들린다. 금년의 때늦은 장마가 또다시 시작되는 듯 싶
다.
십년전 나의 시모님께서 떠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님께서는 그 당시 이
십여년전 앞세운 당신의 큰아들 제삿날 쓰러지시고 당년 84세의 나약한 신체는
이내 일어나지 못하신 채 중풍이란 몹쓸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었다.
근 팔개월을, 눕히고 일으키고, 먹이고, 씻기고. 영양주사 꽂고, 배변시키고.......
똑같은 일의 반복이 내 일과였다.
그럴때마다 “애미야! 미안해... 하면서 괴로워하시던 나의 어머님!
남편보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이해하시며 “나 건강할 때 부지런히 놀러
다니고 볼일 보라” 하시던 어머님. 그러시더니 23년전 먼저 떠나신 시아버님 제
사 이튿날 이내 다시 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그러니까 팔개월 동안 병시중 해 드린 이 며느리에게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년에 제사를 한 번만 들이도록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의 제삿날이 한날이 되고
말았으니 집안 모든 어른들께서 며느리의 효성을 금방 갚고 떠나셨군!”하며
신기한 사실 앞에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소리에 나도 할말을 잃을 만큼이나 어
이가 없었다.
20여년동안의 다정했던 어머님과의 사랑을 이 세상을 떠나시던 순간 상쇄하는
듯한 계산을 끝내버린 어머님이 정말 원망과 미움, 그리고 서러움의 울음속에 장
례식이 거행되었다. 우리가족들의 슬픈 통곡은 문상객들까지 함께 울리는 애절
한 이별식이었다.
우리 고부간의 사랑은 모녀지간보다도 더욱 친밀한 관계였다.
어쩌다 남편과의 의견차이로 다투기라도 할 때면 늘 내편에 서서 그이를 언제
나 멋쩍게 만들어 주셨던 보고싶은 어머님....
며칠전 조카딸의 생활을 보고 나는 이미 떠나가신 시모님을 생각하며 안타까
운 마음으로 조카딸에게 배변의 방법을 일러주었다.
매일 목욕시키기전 환자를 옆으로 눕히고 일회용 소독 장갑을 구입하여 둘째
손가락에 바세린을 바르고 손가락하나를 조심스럽게 투입시켜 느낌으로 잡히는
물질을 살그머니 꺼내면 얼마나 쉽게 배변을 시킬 수 있음을 알게된다. 물론 환
자와 호흡을 함께 하며 '아-'하라며, 조심스럽게 이 물질을 꺼낸다. 아-소리와 함
께 항문이 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목표의 물질이 깨끗이 제거되고 끝으로 신문지만
접으면 깨끗한 배변 처리가 된다. 그런 다음 따끈한 물로 목욕을 시킨 후 뜨거
운 수건으로 배변의 자리를 십여분 마사지 해 드리면 얼마나 시원해 하시는지,
그런 후 일과를 시작하면 조금도 어렵지 않다.
환자의 손에 묻힐 이유가 없다. 방에서도 냄새날 염려 없고 부담 없이 음식도
드시게 할 수 있다. 방문객들에게도 조금의 폐도 되지 않고 우리인생 마지막준
비의 산 교육으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똥 못 누면 죽는단 말.’이 생각난다. 스스로 배변을 못할
때 간병인이 처리하면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정녕 고부간
의 애틋하리만큼 따뜻한 사랑 속에 움트는 애정이 있기 전엔 그다지 쉽게 이루
어 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으로도 그토록 고통받으시던 기간동안 우리들의 고부간의 대화는 정말
진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이 오갔던 것으로 생각난다.
“애미야 냄새나지?” “아니요, 하나도 안나요, 냄새는 무슨 냄새...향기롭기만
하네....” 하며 웃으면 “이상하네, 우리애미는 냄새 못 맡는 병이있나봐”하시며
웃으시던 그 없는 지푸라기처럼 느껴지던 어머님. 마치 철없는 어린애처럼 천
진스럽고 꾸밈없는 표현들만을 내귀에 속삭여 주시던 그 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끝내 내손을 잡고 주무시듯이 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이 오늘밤은 진정 너무
나 보고싶다.
1998.
첫댓글 마치 철없는 어린애처럼 천
진스럽고 꾸밈없는 표현들만을 내귀에 속삭여 주시던 그 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끝내 내손을 잡고 주무시듯이 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이 오늘밤은 진정 너무
나 보고싶다.
그 없는 지푸라기처럼 느껴지던 어머님. 마치 철없는 어린애처럼 천
진스럽고 꾸밈없는 표현들만을 내귀에 속삭여 주시던 그 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끝내 내손을 잡고 주무시듯이 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이 오늘밤은 진정 너무 나 보고 싶다.
부끄러운 습작을 읽어주신 두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