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는 자신을 찾고, 나아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행의 길이다. 부처님이 중생이 겪는 고통의 무게를 직시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듯, 출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그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세속의 눈에는 그 옷의 무게가 무거워 보이고, 그 길이 외롭고 쉽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세속인들에게 출가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스님이 되었을까’(민족사)를 펴낸 통도사 학장 인해 스님과 동학사 학장 명오 스님은 3월 10일 출판간담회에서 “출가는 결코 어렵고, 두려운 길이 아니며 정말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꼭 한 번 가볼만한 길”이라고 단언했다. 스님들은 이날 자신의 마음속에 꼭꼭 감춰뒀던 출가이야기를 꺼내들며 “출가는 모두가 '0'이라는 출발점에서 누구나 동등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해 스님)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명오 스님)이라고 했다.

책은 두 스님의 출가이야기에서부터 수행과정, 출가 이후 보람 등 자신들의 수행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것이다.
인해 스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고등학생이었던 큰누나를 따라 마산 정법사 불교학생회에 나갔다가 불연을 맺었다. 절에서 준 빵과 과자에 끌려 하루 이틀 정법사를 찾았다가 중학생을 거쳐 고등학생 때까지 정법사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신행활동을 이어갔다.
그 시절 스님에게 정법사는 집보다 편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이후로는 2~3번으로 늘었다. 고3 때부터는 아예 절에서 살다시피 했다. 절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님들과 가까워졌고, 함께 산행하고 차도 마시다보니, 점점 절 밖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은사 대강백 요산지안 스님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이미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삶을 살았던 스님에게 어느 날 “제성아(인해 스님의 속명) 출가해라, 그랜저 사줄게!”, 그리곤 며칠 뒤 “제성아 출가해라, 티코 사줄게!”라고 했다. 농담이라 여겨 피식 웃고 말았지만 싫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사스님이 다시 “제성아 출가해라, 옷 한 벌 해줄게!”라고 했을 때, 마치 조주 선사와 어느 납자와의 문답 속 공안과 같이 느껴졌다. 은사스님이 해주겠다는 옷 한벌, 그것은 승복이었다. 출가는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도 은사스님이 농담처럼 건넨 그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곧 “대법사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발원을 세우고 1994년 9월 23일 속세의 옷을 벗고 영축총림 통도사로 입산했다.
출가 이전부터 출가 인연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인해 스님과 달리 명오 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련도 있었다.
언니 셋과 귀한 남동생 사이에서 넷째이자 막내딸로태어난 명오 스님은 집에서 귀한 딸이었다. 가부장제가 극성을 부리던 그 시절, 그것도 경상도 출신이었지만, 아버지는 소위 ‘딸 바보’로 불릴 정도였다. 그렇게 평온했던 집안에서 큰언니의 출가는 큰 충격을 던졌다. 종손녀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큰언니는 스무 살 되던 해 돌연 서랍에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입산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언니를 찾겠다고 전국의 비구니 도량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만날 수 없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큰 상실감을 줬지만, 큰언니의 출가는 가족들이 불연을 맺게 한 계기가 됐다. 가족과 친척은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 불자가 됐다.
그리고 얼마 뒤 집안에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졸업여행을 떠났던 셋째 언니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길로 큰언니를 따라 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출가 입산을 하면 죽음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셋째 언니도 출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두 언니의 잇따른 출가는 어린 명오 스님에게도 불연의 싹을 틔우는 계기가 됐다. 중학생이 됐을 무렵 큰언니 혜송 스님이 주석하던 김천 백련암을 찾았다. 그곳에서 처음 들은 혜송 스님의 독경 소리는 명오 스님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자신의 눈에 비친 큰언니의 삶은 너무나 고결해보였다. 또한 백련암 대웅전 외벽에 그려져 있는 심우도의 참의미를 깨닫게 되자, 당장이라도 스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어린 남동생의 모습이 늘 눈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어도 출가에 대한 동경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럴수록 삶에 대한 회의감만 몰려올 뿐이었다. 스물 세 살 되던 해, 스님은 부모님께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썼고, ‘출가에 대한 진심’을 알았던 부모님도 끝내 스님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누구보다 절실하고 간절했던 출가이야기 만큼이나 두 스님은 출가 이후 치열한 삶을 살았다. ‘수행자로서 올곧은 삶을 살겠다’는 원력을 놓치지 않았고, 그런 만큼 두 스님에게 출가자의 삶은 하루하루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이었다. 그렇기에 스님들은 출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출가는 꼭 해볼 만 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권했다.
인해 스님은 “출가는 단순히 머리를 깎고 사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선택의 과정이며, 나아가 모든 중생을 위한 깨달음의 길을 여는 위대한 첫걸음”이라며 “길 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찾아 나서듯, 망설임 없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출가의 본질”이라고 했다.
명오 스님도 “절은 상상 이상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곳이고, 스님들은 멋스러웠다. 속가를 떠나온 나를 구속할 사람은 누구도 없고, 나 자신과 대면할수록 성장하는 나를 느꼈다”며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불법에서는 모두 다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손해가 미덕이고, 가난이 공부의 살림살이가 되는 것이 출가수행자의 삶이다”고 했다.
두 스님의 출가이야기는 출가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출가란 무엇이며, 출가수행자의 삶이 어떠한가를 미리 경험하게 하는 안내서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