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비에, 행 판서 정기회(鄭基會)는 나왔고, 참판 조문하(趙文夏), 참의 이최영(李㝡榮), 참지 남정기(南廷綺), 우부승지 민상호(閔商鎬)는 나왔다.
박제억(朴齊億)ㆍ구연식(具然軾)ㆍ김안근(金安根)ㆍ노방우(盧邦愚)ㆍ안광익(安光翼)ㆍ권종규(權鍾圭)를 동지중추부사로, 이교준(李敎俊)ㆍ이희빈(李熙斌)을 동지훈련원사로, 이규명(李奎明)ㆍ정기로(鄭基潞)ㆍ서상복(徐相復)ㆍ김병로(金秉魯)ㆍ이규복(李圭復)ㆍ정윤모(鄭允謨)를 첨지중추부사로, 이교민(李敎敏)을 훈련원 도정으로, 정주묵(鄭周默)을 겸 훈련원도정으로, 송귀호(宋龜浩)ㆍ신태휴(申泰休)를 내금위장으로, 조지현(趙贄顯)을 겸사복장으로, 한택리(韓澤履)ㆍ강종석(姜宗錫)ㆍ김시풍(金始豐)ㆍ김영제(金映濟)ㆍ임우철(林禹喆)ㆍ진도봉(秦道鳳)을 오위장으로, 안학선(安鶴善)을 조사오위장으로, 김한길(金漢吉)ㆍ이민하(李敏河)를 충익위장으로, 이규범(李圭範)을 충장위장으로, 유성관(劉聖寬)ㆍ양맹헌(梁孟憲)ㆍ박승순(朴承順)을 창덕궁 위장으로, 유병응(劉秉應)ㆍ김영신(金永信)을 경희궁 위장으로, 정진환(鄭鎭桓)을 훈련원 첨정으로, 정범석(鄭範錫)을 주부로, 장승원(張承遠)ㆍ허일(許鎰)을 문신겸선전관으로, 강만영(姜萬英)을 수문장으로, 구연팔(具然八)을 황해 수사로, 이민조(李敏祚)를 중군(中軍)으로, 김진규(金振奎)를 볼하 첨사(乶下僉使)로, 박우동(朴禹東)을 경상좌도 수군우후(慶尙左道水軍虞候)로, 서문찬(徐文贊)을 가배량 만호(加背梁萬戶)로, 강석만(姜錫萬)을 지도 만호(智島萬戶)로, 박준혁(朴準赫)을 조라포 만호(助羅浦萬戶)로, 한원철(韓原喆)을 명월 만호(明月萬戶)로, 최세철(崔世哲)을 금성 별장(金城別將)으로, 김건순(金健淳)을 장산 별장(長山別將)으로 삼았다. 선전관 가설에 임찬호(任璨鎬)를 단부하고, 동지중추부사에 문유승(文裕承)을 단부하였다. 호군에 윤길구(尹吉求)ㆍ심의영(沈宜瑛)ㆍ박용대(朴容大)ㆍ정환교(鄭煥敎)ㆍ이교준(李敎駿)ㆍ김형기(金亨基)ㆍ박주흠(朴周欽)ㆍ윤회(尹檜), 부호군에 조형하(趙衡夏)ㆍ심상찬(沈相瓚)ㆍ이경하(李敬夏)ㆍ강동영(姜東永)ㆍ한복리(韓福履)ㆍ조국현(趙國顯)ㆍ유완수(柳完秀)ㆍ정운엽(鄭雲燁)ㆍ장예근(張禮根)ㆍ이종(李鍾)ㆍ임영준(任永準)ㆍ최한영(崔漢永)ㆍ한시영(韓時永)ㆍ권학준(權學準), 부사과에 유진찬(兪鎭贊)ㆍ장연수(張溎秀)ㆍ이종선(李鍾瑄)ㆍ김긍현(金肯鉉)ㆍ홍순익(洪淳益)ㆍ권석재(權錫載), 부사용에 박표계(朴標銈), 이상을 모두 단부하였다. 남우후(南虞候)에 박시종(朴時鍾)을 단부하였는데, 특별히 한 번만 더 잉임시키라는 전지를 받든 것이다.
첫댓글 위의 자료는 승정원일기로서 외5대조부이신 강동영 선조의 기록이 있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