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剖檢, Autopsy)
한 때, 귀농과 귀촌에 관심이 있었다. 고향 청송으로 가기는 서울에서 거리가 너무 멀고 경기도 양평이나 철원 정도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귀촌한 선배들의 삶이 궁금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다음 카페에 귀농귀촌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페에 가입하여 살펴보니 귀촌해서 사는 사람보다는 귀촌이 하고 싶어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나처럼 이곳저곳 정보를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더러는 주중에는 서울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수도권 근처에 마련해 둔 농장으로 주말 농부가 되기 위해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카페에 가입해서 나는 글을 많이 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회 수 많은 글 쓰는 사람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들과 교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유명인 아닌 유명세를 즐길 즈음 녹우 형을 만났다.
카페의 불문율은 어떤 것이든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정기적인 모임이나 작은 소모임에서 만나 서로 알려준 사항들은 자연스럽게 공유가 되었는데 녹우 형은 서너 번을 만났지만 용인 어디에서 산다는 것 이외는 알려 주는 것이 없었다.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무개 회원과 학번이 같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아무개 회원이 77학번이라는 걸 알기에 형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형과 헤어지고 토요일 오후에 다시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여행이 즐거웠고 유익했다며 다음 주말 월례모임에서 간단한 발표회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끊었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에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 있는 시간인데 무슨 급한 일인가 전화를 받으니 형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는 용인경찰서 소속 경찰인데요. 이 전화기 주인과 무슨 사이세요?” 형의 전화로 왜 경찰관이 전화를 했을까 놀랄 틈도 없이 경찰관은 다음 이야기를 한다. “이 전화기 주인이 사망하셨는데요. 단축번호 1번에 선생님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사망자 가족이신가요?” 사망이라니. 누가 사망했다는 것인지 통 짐작이 되지 않았다. 경찰관의 설명은 이랬다.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않아 걱정하던 직장에서 형 연락처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형 친구가 집에 도착해 확인해 보니 방 안 냉장고 앞에 쓰러져 있었고 이미 사망한 후였다고 한다. 나와는 지난 금요일 헤어졌고 토요일 안부 전화를 했는데 사망이라나. 믿어지지가 않았다.
형의 시신은 근처 병원의 응급실에 있었다. 연락된 형의 가족이 도착하면 확인 후 가족들이 원하는 영안실로 이송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경찰관의 설명은 이랬다. 금요일 나와 헤어지고 근처에 서는 친구와 저녁을 먹었고 토요일 오후에 그 친구와 다시 저녁을 먹고 몸살 기운이 있다며 일찍 헤어진 후 일요일은 외부 출입이 없었으며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새벽에 잠에서 깨어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쓰러진 후 사망한 것 같다는 것이다. “옆에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인데 참 안타깝네요.” 잠시 후 도착한 형의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형의 시신은 근처 병원의 영안실로 옮겨졌고 장례준비가 시작되었다. 형의 가족은 원하지 않았지만 이럴 경우는 부검을 해야 한다고 경찰이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망을 지켜본 이가 없어 사망원인을 알 수 없기에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8시 30분 양천구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剖檢室), 형을 태운 병원차가 먼저 와 있었다.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큰 형님이 울면서 다시 애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습 나온 다섯 명의 의대생들과 용인경찰서 형사 한 사람과 나. 부검의는 우리를 옆에 두고 "시작합니다." 라면서 부검을 시작했다. 내가 부검실에 들어간 것은 가족 대표 자격이었다. 요즘은 가족도 부검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형의 가족이 들어갈 수 있지만 가족 중 그 누구도 부검실 참여를 원하지 않아 얼떨결에 내가 들어간 것이다.
형의 알몸을 보았다 그것도 죽은 알몸을 몸은 조금 부어 있었다. 칼을 대자 피가 나왔다 3일이나 지났지만 몸속의 피는 응고되지 않았다. 위액을 담고 간도 조금 자르고. 증거를 위해 조금 비대해 있는 심장 사진도 찍고. 두피를 잘라 두개골을 살피고. 의사는 심장마비라고 했다. 30분이 지나지 않아 부검은 끝이 났다. 형은 깨끗했다. 부검을 할 필요도 없었는데.
응급차를 타고 다시 영안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부검을 마치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몸을 닦지 않아. 형의 몸은 차가웠다. 왼쪽 종아리를 잡으니 내 허리만 하다. 삐죽이 나온 왼쪽 엄지발톱은 유난히도 길다. "진즉에 발톱이나 좀 깍지." 형의 종아리를 잡은 내 왼손이 서서히 차가워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운전기사는 갓길로 "삐뽀삐뽀" 소리를 내며 죽어라 달린다. 거의 80kg의 거구는 의식이 없어 심하게 출렁인다. 형의 종아리를 잡은 왼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간다.
다시 병원 영안실. 이제 염습(殮襲)을 한단다. 천을 들추어 형의 얼굴을 보았다. 이동하면서 흔들려서인지 봉합한 두피에서 피가 조금 흘렀다. 입관(入棺) 전 마지막 형의 모습은 평온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울컥한다. 연화당. 큰 공원 같지만 화장터란다. 형의 몸에 불이 닿고 2시간이 지나 뼈로 나왔다. 분쇄기에 넣어 가루로 만들었고 조금 지나 따뜻한 형의 가루가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고향 산에 뿌린단다. 사각 통에 담긴 따뜻한 형을 만지며 잠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나는 녹우 형 덕분에 부검실에도 들어가 보고 부검의 과정도 지켜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부검실 장면도 흐릿해졌고 녹우 형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형과 주고받은 메시지들은 아직도 기계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은 형은 왜 나를 단축번호 1번에 저장해 두었는지 이다.
첫댓글 갈때는 허망하게 가는데 언제 갈지 모르니 평소에 준비를 하는것도 좋겠습니다.
얼마나 고인이 마음을 주었으면 1번 저장을 했겠 습니까?
가는길 부탁 할려고 좋은 벗을 만났나 봅니다.
형제도아닌데 ᆢ
1번 지정한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끝까지 사후를 고맙게 해준 1번에게 감사 하고~
동생 잘있어 ᆢ
아마 그렇게 인사
했을겁니다~^^
1번답게 ~
아니 친형제보다 더의지 했을그분은 사람보는 안목이 있는 분이었나봅니다.
위로의 말씀 드리며 사는동안
건강하고 잘먹고
잘살다 갑시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
홍보배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꼭 물어 보고 싶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다소 황당한 일을
겪으셨네요 그리고
수고하셨어요 1번에
저장 되여 있다니~
좀 이상하네요 가족도
있는데 제 저장번호 1번은
아들이랍니다~^^
저의 저장 번호 1번은 고향 선배입니다.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네요....ㅋㅋ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그분과
돈독한 우정을 쌓으셨네요. 솔직히 가까운 가족의 시신 보기도 두려운데 마지막까지 같이 하신게 대단합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 하더이다...
늘 따뜻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1번은.. 최고라는 뜻이었겠지요..
최고라기 보다는 가장 편하다는 뜻으로 이해 하고 삽니다.
이물 없는 사이...
아휴
우찌 이런일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은
심장마비가 대부분이죠
굳이 부검을 하는것도
차암내
체중이 많이 나가시는 분들이 심장마비로
뜨시더군요
비만은 진짜로 위험합니다
알콜중독 니코친중독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제 같이. 얘기하고
하루 이틀만에 사망 이라고 하는데
황망합니다
생과 사
눈깜짝 할사이에
갈라 집니다
믿고 기댈수 있는 사람이
1 번 이지요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입니다.
뭐니 뭐니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