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시인선 34 (조가경 시집)
『달리는 거울』
979-11-92613-09-3 / 141쪽 / 130*210 / 2022-08-31 /10,000원
■ 책 소개
2021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한 조가경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며, 형상시인선 서른네 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두려움에 대하여」, 「달력」, 「달리는 거울」, 「돌아온 이웃」, 등 65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묶었다.
“흉터를 긁는다… 지우려다가 넓게 퍼지는 녹물… 긴 한숨으로 뿌려둔 꽃씨의 화단 피딱지 같은 꽃 언제쯤 필까”(시「해빙기」 일부) ‘흉터’라는 기억이 상징하는 바처럼, 『달리는 거울』에는 이러한 삶의 상처와 내면의 상흔에 관한 존재론적인 성찰과 삶의 회복을 꿈꾸는 시인의 간절한 메시지가 단단하고 섬세한 시편으로 형상화되었다.
내가 눈사람 만들 거라는 걸 알고/ 가는 길마다 훼방 놓던 백구였다/ 눈이 마주쳤는데 더 많은 눈이 내렸다/ … / 백구는 자꾸 따라왔다/ 혓바닥을 이용하며 더 세게 따라왔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딱딱해질 때까지/ 발바닥 자국을 눈 위에 남겼다 (「두려움에 대하여」중에서)
‘거울’을 모티프로 한 표제작 「달리는 거울」에서 보듯 쉬지 않고 ‘달리는 ‘나’, 그 뒤를 쫓는 ‘백구’가 상징하는 두려움 불안, ‘밭’ ‘비탈’이 상징하는 실패와 좌절 등의 체험, 척박하고 무거웠던 삶의 기억을 고백한 어두운 시편은 생명 존재가 맞닥뜨리는 고통이라는 숙명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은 한편으로 그 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통찰, 새로운 삶의 지향점을 발견해내는데, 자연 속 작은 존재들과의 교감, 사물과의 소통, 모든 존재 간의 연대를 그려내는 서정적인 시편이 눈부신 감동으로 다가온다.
내딛는 발아래 밟히는 솔잎이 미끄럽다/ … / 땡볕이 첫발을 내려놓던 깔딱고개/ 들숨과 날숨이 가슴을 눌러오면/ 머리카락 비집는 고민/ 길은 인연이다 싶으면서도 아찔해질 때가 있다/ 아픈 발톱을 데리고 나 여기까지 왔지만/ … / 왼발의 통증이 닿은 문경새재는 / 붉은 인주 빛으로 걸린 해/ … / 뒤꿈치 밀어 올려주는 젖은 풀등과/ 주저앉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묵묵한 바위의 말에/ 더 이상 비탈이 두렵지 않다 (「문경의 길」 중에서)
장미나무 곁에 잡초/ 불어오는 바람엔/같이 흔들리고/ 어쩌다가,/ 소나기 몰려오면/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부둥켜안았다//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혼례」 전문)
개미, 소나무, 파도, 상수리나무 아카시아 꽃향기, 장미 나무와 잡초… 이 모두가 시인이 데리고 온 사랑의 존재들이다. “과거의 상흔이 ‘그 옛날 바람’이라면 상흔의 비애를 넘어 삶의 회복을 소망함은 ‘그 옛날의 바람이 돌아와 꽃을 흔드는 손길’에 비유할 만한 일이다”(신상도 문학평론가) 그 소박한 존재들이 건네는 사랑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시인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피워낸 한 송이 꽃 같은 시집 『달리는 거울』이다.
■ 저자 소개
조가경
- 본명: 조영희
- 경북 영양 출생
- 2021년 《서정시학》 하반기 신인상
- 대구문인협회 회원
- 형상시학회 회원
■ 목차
자서
1
두려움에 대하여 / 감정싸움 / 줌 / 섬에 들다 / 문경의 길 / 봄 신호등 / 곽티슈 / 사량도 / 파랑 볼펜 / 늦은 조문 / 하롱베이 / 양봉의 길목 / 저녁행 / 사문진 나루터에서 / 해빙기 / 어디나 상족암 / 혼례 / 장마 그 이후
2
달력 / 자꾸자꾸 / 갱년기 여자 / 몽돌육수 / 비밀일기 / 편집증을 허물다 / 검은 거울 / 최후의 서체 / 손톱 / 풍선의 날들 / 사춘기 / 물빛 처방전 / 화면을 읽다 / 두더지가 오는 길 / 해서는 안 되는 놀이 / 오래된 초병 / 소리의 끝
3
달리는 거울 / 걸림 / 반사경 / 안과 밖 / 폐가에 내리는 비 / 또 다른 양보 / 봄 수렁 / 접시를 깨다 / 엉킴을 풀다 / 구조적 유혹 / 하필 / 아침의 논객 / 저녁의 카페 / 코로나19 / 브로마이드 / 엉키다, 먹이사슬 / 호두나무 일기 / 고요한 장례식
4
돌아온 이웃 / 관계 / 옹이 / 노숙인 / 달팽이 증후군 / 식당, 왠지 쑥스러운 / 일요일의 상가 / 불편한 선물 / 오늘의 산행 / 드라이플라워 여자 / 발가락 사이가 너무도 간지러웠던 거다 / 삐딱한 여자
해설|그 옛날의 바람이 돌아와 꽃을 흔드네_신상조
■ 출판사 서평
조가경의 시는 척박한 삶의 끝에서 더듬는 과거의 상흔이 카오스chaos의 물결로 넘실댄다. 결핍과 욕망으로 가속도가 붙은 삶은 자주 비탈을 미끄러지는 좌절을 겪고, 그러한 영혼은 자연에서 발견한 소박한 존재들로부터 위로를 얻는다. 좌절이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감정인 데 반해서, 위로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감정이다. 조가경의 시에서 이 모순된 감정은 거칠게 스스로를 몰아가는 화자의 모습으로 곧잘 형상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집의 제목이 ‘달리는 거울’임은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 신상조(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