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다 되어 예다아 호동마을 앞에 올 듯 하다고 도리포와 바람이 연락한다.
10만원을 찾아 넣고(참가비는 안 냄) 호동으로 가니 9시 40분을 넘는다.
지하보도를 건너 내가 다녔던 학교가는 길로 갈까 고민하다가 등산로 입구를
미리 알아두자고 차를 골목으로 운전한다.
길은 마을 안길로 볓번 꾸부러져 밭 사이를 지난다.
독립가옥처럼 몇 채 있는 산 아래의 등산로 입구를 확인하고 다시 마을 입구로 내려온다.
건너편에 파랑 관광버스가 멈춰 있고 도리포가 어디냐고 한다.
바보를 차에 두고 길 건너로 가니 차는 떠나고 여수와 도리포 둘만 내린다.
통로를 건너와 바보에게 남자 셋의 걸음을 따르기 힘들테니 대동마을로 가라는데,
이미 출발했을 거라며 그냥 가겠단다.
그는 대동마을로 찾아갈 일도 걱정이고, 나없이 따라갈 일이 걱정인 듯 하지만
신사 형님이나 중암 선생 채송화 등이 있어 걱정안해도 될 듯한데
난 강요하지 못하고 차를 길 가로 옮긴 다음 따라오라 한다.
여수의 걸음은 빠르고 뒤쫒아가던 도리포가 우리를 염려해 멈추곤 한다.
마을 끝에서 마당의 남자에게 등산로가 괜찮으냐고 물으니 자기는 오봉산에 다녀 잘 모른댄다.
예당고를 다니던 2학년 가을엔가 배필상 이광남 선생님을 모시고
임병관 한만선 박상렬 이맹식과 함께 올랐던 길은 기억에 없다.
대한산악연맹부회장님도 하셨던 배선생님이 불을 피운 듯한데
그 때 우린 마냥 멋져 보이기만 했다.
정상엔 안 가고 조망 좋은 곳에서 머물다 내려왔던 듯한데 그곳이 어디였을까?
길은 옛 임도였던 듯한데 차량 다닌 흔적이 없어 가운데로 사람 다닌 길이 나 있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바보는 저만큼에 떨어져 걱정말고 가란다.
여수는 보이지 않고 도리포도 가물한데 구비진 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
바위에 앉아 바보를 기다리다 그가 다가오자 다시 걷는다.
출발한지 한시간이 다 되어 능선에 닿는다.
도리포가 작년에 내가 돌아간 곳이 생각난다며 기다리고 있다.
바보는 보이지 않는다.
방장산 정상에 가 송신소의 옥상에 올라가 예당벌판을 내려다 보고 온다.
저쪽 그늘에서 배낭을 풀고 한잔 하자던 여수가 다시 건물 뒤 시멘트 탁자로 온다.
셋이서 소맥을 마시고 여수의 가양주를 마시는 사이 바보가 올라온다.
주월산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편하다지만 남자 셋의 걸음은 빨라 바보는 금방 뒤쳐진다.
난 둘을 따라 주월산 앞까지 갔다가 바보와 같이 가려고 앉아 기다린다.
정상의 배 모형에서는 시산제르르 마치고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바보는 오지 않는다.
다시 이드리재 앞까지 걸어 내려간다. 바보가 힘겹게 올라오고 있다.
그 사이에도 사진 인증을 해 달라고 해 찍어주고 배 앞으로 가니
빙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던 다이뻐 팀이 자릴 내 준다.
차기고문이 술을 몇 잔 따뤄주고 신사 형님도 술을 권해 몇 잔 마신다.
초아빛식구들이 정상석 아에 모여 사진을 찍는다. 절반 이상인 듯하다.
우리 다이뻐도 같이 찍고 여자들만 찍기도 한다.
남은 반찬이 많아 서로 싸는데 나도 내려가며 먹겠다고 전을 봉지에 넣는다.
옆에서 도리포 등이 더 넣어준다.
방장산을 지나 내려가는 A팀은 출발하고, 대동마을로 내려가는 팀도 따라간다.
옥수 회장이 도곡에 가 뒷풀이를 하는데 같이 가자는데 사양한다.
활공장 나무 앞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이들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도리포꼐 전화하니 대동으로 내려가고 있다.
바보와 둘이 다시 방장산으로 걸어간다.
술에 취한 난 부지런히 걷고 바보도 뒤에서 잘 따라온다.
방장산 아래 도착하니 초아빛 회원 등이 쉬고 있다.
술 한잔 나누고 그들이 내려간 다음 우린 더 여유를 부리고 내려온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광산김씨 예당재에 들어갔다 나온다.
난 호동에 6,7개월 살았을 텐데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김감빈 친구가 광산김씨였을까?
신촌마을을 지나 오는데 피곤한 바보는 얼른 집에 가잔다.
선아네가 고흥만에 가 잡아 온 굵은 해삼을 많이 줘서 또 술 몇 잔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