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작은 이야기
김진숙
어제 시댁에 다녀오는 길어었다.
한 손에는 무거운 김치통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초조한 마음을 쥔 채 청주로
오는 좌석 버스에 올랐다. 아들로부터 열쇠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는 전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 안 풍경이 여느 버스와는 조금 달랐다. 핸들을 잡은 운전기사 아저
씨가 마이크를 통해 ‘다음 승강장은 어느 지점’이라는 것을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일러 준다. 녹음된 안내 방송을 들을 때보다 사람 사는 인정이 느껴져 흐뭇해
있는데 그 기사는 다시 말을 잇는다.
“오늘은 십일월 십일일, 작대기가 나란히 넷인 날입니다. 수요일이구요, 일이
·넷이니까 '아무 의미’라도 붙이고 싶어지는데요. 어제는 증평 장 날이었고, 내일
은 청주 장 날 입니다. 여러분, 생활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예요. 미국의 존 글렌 상원의원이 일흔 일곱 고령에도 불구하고 우주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지나는 곳 이곳, 우
측은 상당구청이구요, 왼쪽을 보시면 청주대-ㅂ니다. 이곳에 볼 일이 있으신 분
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좌석버스를 중간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더 많은 얘기를 들었을텐데...라는 아쉬
움이 들었다. 버스에서 김치통만 새지 않았더라도 그가 하는 각종 사연에 귀담
아 들을 수 있고, 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것 저것 질문해 보았을 것이다. 차
를 타고 10분 쯤, 무릎에 놓인 김치통에서 국물이 흐르기 시작해 차츰 청바지가
축축해지는것이 아닌가. 난감했다. 출발하기 전, 준비가 허술한 탓에 이런 결과
를 빚었다. '설마 괜찮겠지'라는 방심이 잘못이었다. 매사에 준비없이 사는 데
에 대한 질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서 내릴 지점이 다가올수록 차츰 거정이 앞섰다. 김치국물이 흐른 좌석을
화장지로 말끔히 닦아놓긴 했어도 기사양반으로부터 한마디 책망이라도 들을 것
같기에 조마조마한 가슴을 누르며 간신히 인사했다.
“미안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랬더니 그 기사양반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잘 가라’는 인사마저 곁들
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에서 이같은 사태(?)가 펼쳐지면 어
떤 방식으로든 난색을 표명할 듯도 싶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고마웠다. 차량번호라도 알아 두는건데, 정작 차에서 금방 내려선 김
치국물로 젖은 청바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탓에 그것을 그만 잊고 말았다. 이
날 저녁, 우리 가족은 그 분을 ‘오늘의 대상’으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그런데 한기 탓이었을까. 요즘의 내 모습을 돌아 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고, 청소하고,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가고 나면 나
머지 시간을 허송으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아니 한 해,
두 해가 쌓인다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 노력없이는 자기 성장을 누구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생활철학을 갖고 살아가는 듯 하다.
오후에 만났던 버스 기사만해도 그렇다.
어느 날, 단순히 운전만 할 것이 아니라 승객들을 위해 무엇인가 자기가 할 일
을 찾았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착안한 것이 '생생한 안내방송이었나보다.’ 자기
에게 주어진 일에 불평하지 않고 생활의 작은 부분 하나라도 예사로 지나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모습에서 그의 확고한 생활관, 직업의식이 엿보인다.
<파랑새>의 저자 메테를링크는 말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한 페이지 한 페
이지를 창작한다.'
한 권의 책 가운데 하루에 한 페이지를 써가는 셈이 된다. 의미가 없는 페이
지를 쓰는 날도 있는가하면, 좋은 내용으로 가득한 날이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책장이 모여서 기록되는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 명저(名著)는 못되더라도 졸저
(拙者)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 ‘이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
해 보아야겠다.
1998
첫댓글 인생은 한 권의 책이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한 페이지 한 페
이지를 창작한다.'
한 권의 책 가운데 하루에 한 페이지를 써가는 셈이 된다. 의미가 없는 페이
지를 쓰는 날도 있는가하면, 좋은 내용으로 가득한 날이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책장이 모여서 기록되는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 명저(名著)는 못되더라도 졸저
(拙者)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 ‘이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
해 보아야겠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창작한다.'
한 권의 책 가운데 하루에 한 페이지를 써가는 셈이 된다. 의미가 없는 페이지를 쓰는 날도 있는가 하면, 좋은 내용으로 가득한 날이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책장이 모여서 기록되는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 명저(名著)는 못되더라도 졸저(拙者)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 이 순간' 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